❶ 에디터스 레터 | 월간차지의 창간에 부쳐
❷ 좌담 | 조커는 크고 록조는 작다: 빅 딕 에너지의 문제
❸ 연재소설 | 곡예사 톰의 실종
❹ 이달의 빈지와칭 | 붙박이 남자 권오중의 알리바이
❺ 여행수첩 | 자동차, 고소공포증, 자전거
❻ 교환일기 | 취향의 형성에 관한 교신
❼ 불평불만 | 팥빙수 아브젝시옹
❽ 직업탐구 | 어느 테크 스타트업 OL의 수요일 오후
❾ 이달의 컴필레이션
❿ 내 운명을 알려다오
⓫ 픽션 앤 프랙티스: 결핍 워크숍 프로토콜
⓬ 독자차지
교환일기
취향의 형성에 관한 교신 2
신포도유민에게
이원상 선생의 감탄사를 활자로 읽으며, 나역시 입술을 들썩들썩.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다른 누군가의 입술과 마음 언저리에서 재생되는 감탄사는 네가 경험한 이원상의 진짜 감탄사와 얼마나 멀까.
멀고 가까움에 관한 생각을 하다가.
교환 일기를 쓰는 지금의 나와 순수하고 기이한 놀이를 즐기던 어린 시절의 나 사이의 거리도 꽤나 멀다는 생각에 닿았어. 그만큼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와 너무 먼 것이지. 사실 잘 기억나지도 않아. 모든 순간들이 취향의 원형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을 텐데 그 순간을 다 기억해내거나, 익히거나, 내재화하지는 못하겠어. 그럼에도 붙잡을 것은 과거 뿐이니까.
나는 왜 이렇게 됐지? 나는 왜 무언가를 싫어하고 좋아하게 됐지?
몇 가지 복잡하고 커다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나는 기억의 조각들을 발견했다. 과거를 응축한 조각은 복잡하고 정교한 퍼즐보다는 거칠고 뭉툭한 일곱 개 조각에 가까운 것 같아. 답을 찾기 위해서 이상한 모양의 조각들을 이리저리 배치하는 그 놀이①. 서론이 길고 복잡했지만, 응.
칠교 놀이에 관한 생각을 하다가.
내가 유년기에 즐겼던 이상한 놀이들이 떠올랐어. 누군가에게 영감을 받지도 않고, 그저 내가 개발해 만들어낸 놀이가 지금의 취향과는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갖고 있을까 궁금해졌거든.
[신포도가 즐긴 놀이의 목록들]
1. 발가락 고정 놀이: 새끼 발가락을 네 번째 발가락 위에 올려둔 채 고정시킨다. 새끼 발가락이 네 번째 발가락 위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발꿈치로 온 집안을 돌아다닌다.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의미는 없다.
2. 천장 걷기 놀이: 헤드가 돌아가는 양면 거울을 준비한다. 거울의 한 면을 천장에 고정시킨다. 천장을 보는 거울상을 보면서 천장을 걷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바닥을 걷는 것이다. 천장에는 생각보다 장애물이 많다. 조명, 스프링쿨러, 야광별 스티커, 아버지가 분노로 잡은 박제된 모기의 시체, 경비 아저씨의 말이 (들리지 않지만) 나오는 스피커 등.
3. 개미 죽이기 놀이: 작은 일개미가 나오는 주공 아파트의 ‘옷방’에서 개미들을 검지 손가락으로 찍, 눌러 죽인다. 휴지에 박제된 개미의 시체를 닦는다. 놀이의 목록을 보면 몇 가지 공통 속성을 발견할 수 있어. 첫째, 의미는 없다는 것. 하지만 이것은 유년기에 즐기는 놀이의 공통적인 속성이기도 하니까.
둘째. 움직임과 거울상. 붙어있지 않은 발가락을 붙이는 것. 존재하지 않는, 심지어 움직이지도 않는 천장의 장애물들을 붙여두는 것. 개미의 시체를 만드는 것. (시체는 움직이지 않으니까.) 때로는 움직이는 것을 움직이지 않게 만들었고, 혹은 움직이지 않는 것을 거울 안에 가둔 채로 이동하면서 움직이게 만들었지. 어떤 것은 내화면—나의 화면—에 간직하고, 어떤 것은 외화면에 밀어두면서.
셋째. 걷는 것. 이상하게 나는 집안을 정말 많이 돌아다녔어. 물론 개미를 죽이는 것은 걸어다니는 일은 아니었지만, 걸어다니는 개미를 보는 것은 좋아했거든. 익숙한 바닥을 걷는 것은 재미가 없으니까 낯선 천장을 걸었고, 발가락 다섯 개가 바닥에 닿는 건 흔한 일이니까 발가락을 구하며 발꿈치로 걸어다녔지.
걷는 것에 관한 생각을 하다가.
집안에서 걷는 것이 지금 나의 취향에 꽤나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닿았어. 영덕군 남정면 양성리와 달리 내가 자랐던 서산시는 생각보다 큰 도시였거든. 동시에 (진짜) 큰 도시의 문화적 자본은 거세당한 곳이지. 롯데리아는 있지만 그 외의 패스트푸드 가게는 찾을 수 없고. 롯데시네마는 있지만 그 외의 영화관은 찾을 수 없고. 엔젤리너스/카페베네는 존재하지만 스타벅스는 없는 그런 곳.②
[도판]
어머니와 시내를 돌아다니다 지치면 롯데리아에 들렀다. 나는 햄버거를 좋아하지 않아 치즈스틱과 감자튀김을 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롯데리아 감자튀김이 가장 맛있다.
사진 출처: Maximum의 터미널 기행 https://cafe.daum.net/busmania/3Cbp/126 target="_blank">https://cafe.daum.net/busmania/3Cbp/126
지린내가 나는 터미널의 공중화장실. 그 앞에서는 목장갑을 낀 할아버지가 노골적인 표지의 성인 잡지를 팔고 있었어. 그 잡지들의 표지 사진은 엄마를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던 유년기의 내게 충격적인 스냅숏처럼 남아 있어. 그런데도 공중화장실과 멀지 않은 곳에서 팔던 쥐포를 먹는 건 참 좋아했다. 구운 쥐포는 500원. 기름기가 묻어나는 붕어빵 종이에 쥐포를 담아주던 할머니의 주름잡힌 손 같은 것….
[도판]
현대슈퍼 앞에서 쥐포를 사먹을 수 있었다.
사진 출처: Maximum의 터미널 기행 https://cafe.daum.net/busmania/3Cbp/126
역시 사람은 과거 기억에 매몰되는군. 어쩌다 몇 가지 조각들을 더 늘어놓게 되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야. 서산이라는 소도시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크기의 개념이 참 이상하다는 것. 서산시 석림동보다 서산시가 더 좁게 느껴졌고, 서산시 석림동보다 석림동 한 아파트의 거실이 더 넓게 느껴졌거든.
어린 내가 자력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은 도보 10분 거리 내외의 석림동뿐이었고. 서산시의 롯데리아와 롯데시네마, 엔젤리너스와 카페베네에 가기 위해서는 아버지, 어머니의 차를 타고 다녀야 했어.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자동차 이외의 다른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은 소도시 어린이에게) 공간의 해방보다는 필연이나 강제에 가까워.
석림동을 걸어다니기 위해서는 나를 보호하던 어머니의 허락이 필요했지만, 거실에서는 그 절차도 필요치 않았어. 헤드가 돌아가는 거울, 어쩌다 발견한 개미, 네 개의 발가락과 굳은살이 배기지 않은 말랑한 발꿈치만 있어도 됐거든. 세계의 허락이나 통과가 필요치 않았던 순수한 방랑. 그곳에서 나는 사막에 불시착한 앵글로색슨족처럼, 비 맞으며 뛰어다니는 강아지처럼 산책했다.
산책과 방랑에 관한 생각을 하다가.
손과 거울, 발과 곤충 다음의 통과 의례는 채널③ 사이의 공백이었다는 생각에 닿았어. 여름 방학,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집을 비우면 옷방④의 작은 브라운관으로 무책임한 방랑을 즐겼지. 투니버스와 재능TV, 카툰네트워크를 벗어나기로 결정했던 날. 리모컨을 광적으로 클릭하며 온갖 팝스타들의 뮤직비디오를 접했어.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것은 섹스 앤 더 시티였는데, 어릴 때의 나는 ‘섹스’라는 단어를 노출한 드라마가 있다는 것이 눈물날 정도로 충격적이었고. (미국은 정말 저런다고?) 여배우가 가슴을 까고 나왔을 때는 심장이 귀에 피를 보낸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어. 10년 된 내 심장이, 아주 푸닥푸닥 뛰었다.
어쩌면 나는 서산시에서 접할 수 있는 수많은 교육과 네트워크보다, 그 옷방 속의 경험을 세상과의 진짜 조우라고 기억하는지도 몰라. 옷방의 작은 기계 안에는 다 있었거든. 타인의 지린내를 맡으며 성인 잡지의 표지를 훔쳐보는 나, 천장을 걸어다니며 누렸던 전능감, 개미를 죽일 수 있다는 특권을 단번에 선물받은 느낌이었지. 섹스라는 기표를 정면으로 마주했던 순간도 우연적이었거든.
그 뒤로도 나는 작은 사각형 안에서 안전하고 비밀스러운 모험을 즐겼다. 롯데시네마에서 해주지 않는 영화를 보기 위해 토렌트를 깔았고, ‘피어 접속중’의 문턱을 넘기 위해 4일 내내 컴퓨터를 켜놓았지. CD롬을 사서 내 힘으로 영화 DVD를 처음 틀어보고. 둔탁한 노트북에서 흘러나오는 듣기 좋은 OST들의 원곡자가 데이빗 보위였다는 것을 알아냈었어. 때로는 이완 맥그리거, 혹은 자비에 돌란과 결혼해 다른 국가의 영주권을 따는 상상도 해봤다.
멀리서 보면 내 자세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을 텐데. 그저 컴퓨터 의자 위에서 양반다리를 했다가, 풀었다가, 가끔 기지개를 폈다가. 흥분될 때면 이따금씩 일어났다가. 겸연쩍게 다시 의자에 앉을 뿐이었을 텐데.
그럼에도 항상 의심했지. 내가 경험한 방랑이 진실된 방랑일까에 대한 의문 같은 것? 내가 읽었던 책들은 진정한 영화광이란 영화관의 어둠에 매혹된 자들이라고 설명했거든. 그 매혹은 나와 너무 멀었어. 내게 주어진 어둠은 기껏해야 작은 옷방의 전등이 눈을 감았을 때 정도였으니까. 나는 내가 사막의 앵글로색슨족, 빗속의 강아지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비겁한 히키코모리 정도면 어쩌지?’
취향의 진실성, 방랑의 조건에 관한 질문에서 벗어나는 것이 성인기 이후의 내게 주어진 임무였던 것 같아. 해를 구하기 위해서는 (진짜) 대도시의 문화적 자본이 쌓여야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열등감 섞인 합리화도 해보고. 그럼에도 내가 지금 찾은 아주 사소한 답 중 하나는, 결국 모든 취향은 비밀스럽게 형성된다는 것. 죄를 지었다는 감각, 거듭되는 자기 의심. 겸연쩍게 앉고, 참을 수 없이 일어나면서 눈알을 돌려 ‘보면 안 될 것을 봤던’ 순간들, 전기세에 대한 고민 없이 4일 내내 컴퓨터를 켜두는 고등학생의 짧은 생각이 취향의 비밀과 조금은 맞닿아있다는 생각은 들어.
물론, 모든 것은 칠교 놀이의 일부일 뿐이야. 정말 내 취향에 석림동 아파트의 옷방이, 데이빗 보위와의 조우가, 다른 국가의 영주권을 상상하던 밤이 어느 정도의 무게감을 더해주었는지는 모를 일이지. 정말 그 조각들이 나의 지금을 만든 조각들일까? 조각은 맞다 쳐도, 그 조각으로 만들어낸 지금의 답, 기껏해야 추상화된 그림이 정말 진실일까? 그 의심에 대한 답을 찾을 만큼 성숙해지지는 못했나봐. 근데, 뭐 그래도 괜찮아. 의미 있는 놀이라는 게 얼마나 재미없는지는… 너도 알잖아.
해피헤비드링커⑤에서 비밀스럽게 샤잠하며, 포도가
① 어릴 적 신포도는 칠교 놀이의 정답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별자리를 보면서 ‘저게 황소라고?’ ‘저게 저울이라고?’를 질문하는 아이와 비슷했다. ‘소’ 그림을 조각으로 짜맞추라고 하는데 정답을 맞춰봤자 소 그림처럼 보이지 않아서 당황했던 기억도 신포도의 칠교 조각 중 하나로 남아있다. ② 물론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서산에는 스타벅스도 들어왔고, 터미널 앞에는 올리브영이 생겼다. 고등학생이 될 때쯤 맘스터치가 생겼고, 서산을 떠날 때쯤 맥도날드가 생겼다. 가본 적은 없지만 CGV도 생겼다고 한다. ③ 데이빗 보위가 외계인 역할로 나오는 영화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에는 9개의 TV를 동시에 보는 외계인이 등장한다. 채널의 리니어함을 동시성으로 번역해낸 장면이다. 외계인은 TV를 정말 저렇게 보나? ④ 신포도는 거의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옷방’이 ‘오빵’으로 쓰이는 게 아닐까 ‘상상’했다. 어머니 아버지가 그곳에 옷을 두지 않고 본인을 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오빵’이라는 넘겨짚기는 어떤 논리적 생각에서 나온 것인지 알지 못한다. 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성산로 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