❶ 에디터스 레터 | 월간차지의 창간에 부쳐
❷ 좌담 | 조커는 크고 록조는 작다: 빅 딕 에너지의 문제
❸ 연재소설 | 곡예사 톰의 실종
❹ 이달의 빈지와칭 | 붙박이 남자 권오중의 알리바이
❺ 여행수첩 | 자동차, 고소공포증, 자전거
❻ 교환일기 | 취향의 형성에 관한 교신
❼ 불평불만 | 팥빙수 아브젝시옹
❽ 직업탐구 | 어느 테크 스타트업 OL의 수요일 오후
❾ 이달의 컴필레이션
❿ 내 운명을 알려다오
⓫ 픽션 앤 프랙티스: 결핍 워크숍 프로토콜
⓬ 독자차지
좌담
조커는 크고 록조는 작다: 빅 딕 에너지의 문제
월간차지 편집부 (제리, 마지, 칼)
조커는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2008)를 비롯한 배트맨 세계관의 작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모두가 알고 있는 그 광대입니다. 록조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2025)에서 숀 펜이 연기한 늙고 가여운 경찰 특수기동대장입니다. 현대판 KKK처럼 굴면서 정작 흑인 여자 앞에서는 엉덩이를 쉽게 놀리는 모순 덩어리 영감! 이 두 캐릭터를 대당으로 두고 떠든다는 게 좀 이상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뭐 어떤가요?
창간호를 장식하는 첫 대담이 이런 주제라는 것은 사실 저희로서도 조금 유감입니다. 창간호에서는 아무래도 그럴싸한 것을 다루는 게 좋잖아요. 남한 커뮤니티의 미래, OTT 시대의 콘텐츠 전략, 남방큰돌고래가 제주 연안에서 출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같은 것들… 하지만 저희는 장고 끝에 조커와 록조의 BDE를 논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논한다는 표현도 조금 넘칩니다. 뭐… 어차피 대단히 진지한 걸 하려고 시작한 잡지도 아니니까요.
BDE는 빅 딕 에너지(Big Dick Energy). 직역하면 조금 민망하니 일단은 그냥 ‘뭔가 크고 묵직한 기운’ 정도로 눙치기로 하지요.
저희가 결집한 중앙동의 한 카페 일각에서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동아리 회장의 횡령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파스텔톤 숄에 기가 막힌 빈티지 귀걸이를 매치한 중년 여성이 홀로 신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이곳의 가지 스튜와 뿔소라 샐러드는 정말이지 일품입니다. 저희의 대화는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조커의 연필 트릭 장면에서부터 록조가 퍼피디아에 굴복하던 BDSM적 순간까지. 카리스마란 무엇인가. 자신감과 허세는 어떻게 구분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이런 캐릭터들에 매혹되거나 매혹되지 못하는가. 왜인지 카페 안의 모두가 저희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인상을 찌푸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피해의식이 분명합니다...
제리: 좌담을 시작하겠습니다.
마지:비장하네.
제리: 제일 중요한 거.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봤는지 돌아가면서 고백하자.
칼: 그거 숙제였어요?
마지: 보고 오라고 했잖아.
칼: 좌담의 주제가 그거였어요?
제리: 나는 세 번 봤거든?
마지: 세 번을 왜 봐.
칼: 재밌어요?
제리:‘록조’라는 캐릭터가 나오거든. 좀 희한해. 미합중국 특수기동대장직에 있는 권력자인데, 늙은 백인 남성이고, 약간 로봇 같은데...
마지: 이제는 로봇이라는 표현도 되게 과거의 유물이다.
제리: 그럼 로봇이 아니라 ‘로보트’라고 해야지.
마지: 확실히 근자의 AI 같지는 않아.
제리: 근데 얘가 디카프리오의 애인을 체포하거든? 이름이 퍼피디아인데, 혁명단체 멤버야. 겁나 섹시한 흑인 여자인데, 퍼피디아가 맨 처음에 록조한테 반달을 할 때 성적으로 능욕을 하거든. 근데 록조가 여기서 인생 최대치 흥분을 해 버린 거지. 풀려난 다음에도 막 혁명군 따라다니면서 멀리서 망원경으로 퍼피디아 엉덩이 훔쳐보면서 좋아하고.
칼: 혁명군이 반달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퍼피디아가 록조를 능욕했고, 그 이후로는 록조가 퍼피디아를 몰래 따라다니다가 체포를 해버렸다는 거죠?
마지: 맞아.
칼: 퍼피디아는 디카프리오 애인이고요? 디카프리오도 혁명군이에요? 디카프리오는 배역 이름이에요? 아니면 디카프리오가 연기를 했다는 거예요?
제리: 얘 포스터도 안 봤나봐.
마지: 나가.
제리: 대충 맞아. 디카프리오는 이름이 밥이야. 그리고 록조는 숀 펜이야.
칼: 대당끼리 같은 위치에 놔야지. 디카프리오는 밥이고 숀 펜은 록조인거지.
마지: 맘에 드네. 다시 들어와.
제리: 근데 진짜 록조가 퍼피디아한테 쩔쩔 맨단 말이야. 사실 그럴 필요가 없잖아. 근데 혁명군 동료 정보 불고 자기랑 몇 번 자주는 대가로 번듯한 집도 주고 신변도 보호해 주고. 특진하고 나서 꽃다발 들고 찾아가고.
칼: 빌런 치고는 낭만적인 스타일 아닌가?마지: 보면 그런 말 안 나와. 드러워.
포스터만 봐도 등장인물 파악에는 무리가 없다.
제리: 섹스 신이 있거든. 근데 그게 어떻게 보면 록조가 당하는 것처럼 보여. 권력 관계는 록조가 훨씬 위에 있는데 사적인 관계에서는 퍼피디아가 완전히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실제로 퍼피디아가 록조를 버리고 떠나기도 하고.
마지: 그땐 록조가 거의 복종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심지어 그 잠자리를 퍼피디아가 원한 것도 아닌데.
제리: 나중에 록조가 백인우월주의자 단체에 심문당하는 장면이 있어. 이름이 뭐더라?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인가? (편집자 주: 맞다.)상부에서 흑인 여자랑 관계를 했냐, 이렇게 추궁하니까 록조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저는 역강간을 당한 겁니다.” (좌중 폭소) 제리: 근데 그게, 그냥 면피용이 아니라 어떤 부분에서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것 같더라고. 그게 록조 캐릭터의 핵심 같애. 권력은 분명히 있는데 욕망을 통제하지 못해서 다 망친다고 해야 되나? 백인 우월주의자면서 자신의 블랙피버를 이기지 못해서 몰래몰래 무릎꿇고 복종당하는 그 모순이...
마지: 현실적이긴 해. 저런 남자들 되게 많잖아. 한두 명 봤어?
칼: 숀 펜 연기 궁금하다.
제리: 완전 미쳤어. 드러운 거랑 별개로. 근데 사실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냐면 있잖아. 록조는 되게 작을 거란 말이지.
칼: 네?
마지: (한껏 발음을 굴리며) 타이니 딕 에널쥐~?
제리: 아니 실제 크기를 말한다기보다, 남성성이 발현되는 방식으로서의 딕 에너지?
칼: 그게 뭔데요.마지: 음… 어떻게 설명하지.
숀 펜은 록조고 디카프리오는 밥이다.
제리: 실제 사이즈랑은 상관이 없는 거거든. 여유가 있는 것? 모든 것에 너그럽고, 부드럽고, 열등감이 없고…
마지: 크리스 에반스, 키아누 리브스, 오바마...
칼: 이거 성희롱 아니에요? 창간하자마자 폐간당할 것 같아요.
마지: 실제 사이즈 얘기가 아니라니까. 만약 그런 거면 진짜 고소감이고. 실제로 어떤지를 누가 알아? 당연히 아무도 모르지. 그냥 존재 자체에 여유로움이 묻어난다는 거야. 모든 발화와 동작과 리액션에. 만약에 니가 남자고, 빅 딕이 실제로 있다고 생각해 봐. 보이지 않더라도 나에게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로 내 여유의 원천이 되지 않겠어? 증명할 필요도 없지. 있다고 우길 필요도 없고. 그냥 나한테 원래 있는 거니까.
칼: 아 대충 알겠다.
제리: 그 반대의 에너지가 뭔가 과시하는 거, 증명하려고 애쓰고, 차에 소음기 떼고... 남들이 나에게 빅 딕에 상응하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아주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거야. 왜냐면 실제로는 없기 때문에.
칼: 여자한테도 있을 수 있는 거네, 그러면?
제리: 있지. 음… 리한나?
마지: 오 완전 인정.
제리: 케이트 블란쳇?
마지: 도자 캣도 있다.
칼: 원래 다들 이 말을 쓴다는 거죠?
마지: 원래는 인터넷 밈에서 나온 건데. 2018년인가? 아리아나 그란데가 피트 데이비슨에 대해서…
마지: 근데 실제로 피트 데이비슨이 크대.
칼: 어떻게 알아요?
마지: 아리아나 그란데가 트위터에서…
칼: 아 오키.
편집부 주석
BDE(Big Dick Energy)는 2018년 6월,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가 당시 약혼자였던 피트 데이비슨과 결별 후 트위터에서 매우 짧고 결정적인 언급을 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아리아나도 좀 오버했다 싶었던 모양인지 빛의 속도로 이를 삭제했으며, 피트 데이비슨은 이 루머(?)를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전세계의 누리꾼들은 이를 놓치지 않았고, 몇 시간만에 ‘빅 딕 에너지’라는 밈이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 밈이 정의하는 바에 의하면 에너지는 실제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그러나 모두가 그 이야기를 조금씩은 합니다), 그것을 증명하려 들지 않아도 되는 어떤 태도에 있습니다. 이는 인물의 성별·인종·정치적 정체성과 무관하게 취득 가능합니다.
제리: 아무튼 딕 에너지는 이제 하나의 분석 틀로 써도 무방할 것 같아.
칼: 근데 왜 록조는 스몰이 아니라 타이니예요?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제리: 스몰이라고 하면 좀… 아까 말한 것처럼 부정적인 느낌이잖아. 열등감 있고 그래서 과시하고 그런 류의. 근데 타이니라고 하면 스케일의 문제가 되는 것 같아서. 록조는 열등감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작동하는 범위가 좁은 거거든.
마지: 권력은 있는데 그게 넓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건가?
제리: 맞아. 권력자인데 그 권력을 퍼피디아 한 사람한테 다 쏟아붓는 거야. 도시를 장악하거나 세상을 바꾸거나 그런 게 아니라.
마지: 집착인가?
제리: 그보다는 욕망의 스케일이 작다? 근데 그게 오히려 더 무섭기도 한 것 같고.
칼: 왜요?
제리: 우리가 실제로 만날 수 있으니까. 빅 딕 에너지를 가진 사람은 뭔가 멀리 있잖아. 아까도 봐봐. 크리스 에반스나 오바마 얘기 했잖아. 근데 타이니 딕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은 길거리에 나와서 막 돌아다녀.
마지: 조커는 어때?
제리: 조커는 정반대지. 빅 딕이지. 도시 전체를 주무르잖아. 스케일이 아예 달라. 조커가 길거리에 등장했다? 개인의 안위를 따질 계제가 아니야. 행정체계부터 끝장나고 단체로 학살당할걸?
칼: 히스 레저 버전으로 가는 거죠?
제리: 당연하지. 나머지는 우선 논외야.
칼: 호아킨 피닉스는요?
마지: 호아킨 피닉스 조커는 스몰을 넘어서 딕리스에 가깝지.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어서 미쳤잖아. 히스 레저 조커는 아무 것도 증명을 안 해.
제리: 맞아. 그게 핵심이야. 조커는 자기가 뭔지 설명 안 해.
칼: 와이 쏘 시리어스~ (샤이니의 노래를 부른다)제리: 잘 부른다~
맞춰봐~ 어느 쪽이게~! 얼굴만 보면 몰라~
마지: 배트맨이 막 심문하잖아. 누구냐, 목적이 뭐냐 물어보는데, 조커는 도통 대답을 안 해. 대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앞뒤를 고의적으로 안 맞추니까.
제리: 흉터 얘기할 때도 매번 다르게 진술하고.
칼: 아버지한테 당했댔다가 아내 때문이랬다가.
마지: 그게 거짓말이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조커는 자기 이야기에 일관성을 부여할 필요를 못 느끼는 거지. 왜냐면 애초에 자기를 설명하려는 욕망이 없으니까.
편집부 주석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2008)에서 조커는 자신의 입에 있는 흉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할 때마다 다른 이유를 댑니다. 그가 과거에 대해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철저한 설계에 따른 것 같습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진위를 청자 혹은 관객에게 확인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 진위 여부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취하는 셈이죠. 원작 코믹스에서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수첩에도 그의 과거는 정확하게 쓰여있지 않다고 하네요. 요컨대, 다크나이트에서 조커의 과거에 대한 플래시백은 완전히 생략되어 있습니다.
제리: 록조는 계속 자기를 정당화하잖아. 나는 법을 지킨다, 나는 세상을 정화하는 데 기여했다, 나는 역강간 당했다…
마지: (웃음)제리: 근데 조커는 정당화 자체를 안 해.
칼: 근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록조는 왜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권력은 오히려 조커보다 더 큰 거 아니에요? 이게 왜 타이니 딕의 근거로 작동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냥 거짓말쟁이 아니에요?
제리: 거짓말을 해야 하는 순간 이미 타이니 딕으로 확정되는 거거든. 빅 딕 에너지가 있는 인간들은 거짓말할 필요가 없어. 왜냐면 타인의 승인이 필요 없으니까.
칼: 조커는 배트맨한테 승인받고 싶어하지 않아요?
제리: 오.
마지: 집착은 맞는데 욕망은 아닌 것 같아.
칼: 차이가 뭔데요?
마지: 승인은 수직적이잖아.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래 사람을 인정해 주는 거. 근데 놀이는 수평적이지.
칼: 아, 놀이 상대다?
마지: 그렇지. 조커한테 배트맨은 자기를 완성시켜주는 존재일 수는 있어. 대사를 그렇게 치니까. 근데 그게 집착이라기보다는…
제리: 필요조건?
마지: 그보다는…
칼: ……
제리: (코고는 시늉을 한다)마지: 그보다는 그냥 선택인 것 같아. 배트맨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 배트맨이 있으면 더 재밌으니까 같이 노는 거지. 자발적 관계라는 거지.
제리: 중요한 얘기인 것 같아. 이를테면 록조는 퍼피디아를 선택한 게 아니라 선택당한 거니까.
마지: 그렇지. 록조는 퍼피디아랑 처음 만나서 성적으로 굴욕당했을 때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뭔가 깨어나버린 거야.
칼: 욕망의 각성이네요. 본인이 통제하지 못하는.
제리: 그래서 타이니하다는 거야. 욕망이 자기를 지배하는 순간 스케일이 오히려 작아져.
칼: 왜요?
제리: 세상이 그 욕망을 중심으로 재편되니까. 록조한테는 이제 퍼피디아밖에 안 보이는 거야.
록조에게 퍼피디아란...
칼: 근데 제가 오늘 들은 바에 따르면, 록조와 퍼피디아의 관계는 사랑은 아닌 거잖아요.
마지: 사랑과 집착의 다른 점이 뭐야. 말해봐.
칼:싫어요. 오빠가 해요.
마지:사랑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는 거고, 집착은 상대한테 자기 판타지를 투사하는 법이잖아.
칼: 퍼피디아는 생존을 위해서 록조를 이용하는 건데, 록조는 진짜 사랑이라고 믿고싶어하는 거죠?
마지: 자기 기만의 스케일이 커질수록 딕 에너지는 작아지는 것 같아.
(잠시 휴식. 제리와 칼이 흡연 후 들어와서 주제를 전환한다.)
마지: 이 구시대적 인물들. 비흡연자를 너무 방치하는 거 아니야?
제리: 칼이 이 앞에서 강아지 사진 찍고 있었어.
칼: 너무 귀여워. 이름 콩콩이래요.
제리: 밖에서 얘기한 건데, 조커가 엄청 많잖아.
마지: 버전이?
제리: 응. 히스 레저만 조커가 아니니까.
중앙동 신작로의 콩콩이
칼: 각각의 조커들이 다 다른 딕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빅이랑 스몰 사이에서 진동하는 게 아니라 완전 새로운 스펙트럼이 있는 것 같아요.
마지: 잭 니콜슨 조커는 뭔데?
칼: 그거는 레인보우 딕이에요.
마지: 으.
제리: 히스 레저는 아무 것도 설명을 안 하는데 잭 니콜슨은 의도적으로 과잉 설명을 해. 과시 자체를 즐기는 거야.
마지: 호아킨 피닉스 조커는 딕리스고?
제리: 헐 나랑 똑같이 생각했어.
마지: 그게 아니고 아까 내가 이미 말했잖아.
칼: 진짜 아무것도 없어. 피해의식만 있어요. 약간 불쌍해.
제리: 이렇게 동정하게 되는 게 위험한 것 같아. 인셀들이 거기에 자기를 투사하니까.
칼: 사회가 날 이렇게 만들었고 여자들이 날 이렇게 무시했다!
마지: 타이니 딕들의 전형적인 변명이잖아. 자기연민 오져.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에서 조커로 분한 자레드 레토
제리: 자레드 레토는 스뎅 딕이야.
마지: 스테인리스라고?
칼: 와. 진짜 징그럽다.
제리: 표면은 매끈한데 속은 텅 빈거야.
마지: 녹 안 슬고 위생적인데 매력은 없다?
제리: 왜. 그래도 미드센추리 인테리어에는 스뎅이 핵심이야…
칼: 쇠테리어라는 말도 있잖아요.
마지: 자레드 레토 조커 보면 무슨 스타트업 회사 마케팅 팀에서 기획한 프로덕트 같애. 일단 태클 걸지 마. 마케팅 팀이 기획하지 않는다는 거 알고 있어. 어쨌든 “이번 조커는 섹시하게 갑시다.”
칼: “타투 넣읍시다.”
제리: “힙스터 느낌으로…”
(좌중 웃음) 마지: 근데 우리가 조커에 끌리는 이유는 뭘까?
칼: 저는 안 끌리는데요?
제리: 히스 레저 조커에도 안 끌려?
칼: 아 그거는 좀 끌려요.
제리: 불안이나 책임에서 자유롭고 싶어서 아닐까? 조커는 책임이 없잖아. 사회적 역할도 없고 지켜야 할 관계도 없고. 근데 록조는 책임이 엄청 많아. 경찰로서의 책임, 백인우월주의자로서 세계 정화에 힘써야 할 책임, 지배종인 남성으로서의 책임… 심지어 윌라의 아버지로서의 책임도, 아무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었는데 지가 지한테 부여해서 난리부르스를 춘 거 아냐.
마지: 그래서 퍼피디아한테 무릎 꿇을 때 오히려 해방감을 느끼는 거 아닐까?
칼: BDSM적으로요?
마지: 응. 복종하는 순간에는 책임이 사라질테니까?
록조는 쩨쩨하기까지 하다. 으...
제리: 근데 또 한편으로는 그게 또 타이니한 이유야. 진짜 빅 딕은 책임을 짊어진 채로도 자유로워야 하거든.
칼: 근데 아까도 말하긴 했는데, 솔직히 조커가 자유롭고 조커한테 끌리고…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되게 수습이 어려울 것 같아요.
마지: 판타지로서의 조커가 위험하니까?
칼: 네. 조커처럼 되고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제리: 인셀들?
칼: 걔네들은 조커가 빅 딕인 이유를 이해해서 동경하는 게 아니라, 그냥 폭력적이고 무책임한 걸 동경하잖아요.
제리: 조커가 빅 딕인 건 폭력 때문이 아니라 자유 때문인데. 사회적 기대나 타인의 시선에서 다…
칼: 근데 인셀들은 사실 외부의 시선에 목매고 있잖아요.
제리: 조커가 되고싶어하는 순간 이미 타이니해지는 거 아닐까? 조커는 조커가 되고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잖아.
칼: 근데 이제 여기 닫는 것 같아요. 우리만 남았어요.
제리: 대충 마무리하고 슬슬 일어날까?
마지: 녹취 다 땄어?
제리:아 맞다, 꺼야지.
칼: 제대로 안됐으면 어떡해요?
제리: 기억나는 대로 쓰는 거지 뭐.
마지: 기억 안 나면?
제리: 그때부턴 픽션이지.
마지: 팩션까진 될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다시 모여. 다같이 머리를 모으고 복기를 해.
늦은 오후의 빛이 중앙동 골목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까눌레와 리쉬 아이스티를 파는 카페로 향했고, 가는 길에 칼은 콩콩이를 다시 한 번 만났습니다. 제리의 녹음기는 작동했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마지는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담이 월간차지 창간호를 장식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여전히 우습게 느껴집니다. 조커와 록조의 빅 딕 에너지를 논하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이었을까요? 세 사람 모두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뭐 어떤가요. 결론 같은 건 애초에 중요하지 않았으니까요. 이것이 월간차지가 할 일입니다. 아무도 안 궁금해하는 질문을 던지고, 아무도 원하지 않는 답을 찾고, 그리고 기억하지 못할 것들을 기록하고, 또 그러다 마는 것. 다음 호가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나온다면, 또 이런 식이 아닐까 합니다.
조커는 크고 록조는 작다: 빅 딕 에너지의 문제
월간차지 편집부 (제리, 마지, 칼)조커는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2008)를 비롯한 배트맨 세계관의 작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모두가 알고 있는 그 광대입니다. 록조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2025)에서 숀 펜이 연기한 늙고 가여운 경찰 특수기동대장입니다. 현대판 KKK처럼 굴면서 정작 흑인 여자 앞에서는 엉덩이를 쉽게 놀리는 모순 덩어리 영감! 이 두 캐릭터를 대당으로 두고 떠든다는 게 좀 이상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뭐 어떤가요?
창간호를 장식하는 첫 대담이 이런 주제라는 것은 사실 저희로서도 조금 유감입니다. 창간호에서는 아무래도 그럴싸한 것을 다루는 게 좋잖아요. 남한 커뮤니티의 미래, OTT 시대의 콘텐츠 전략, 남방큰돌고래가 제주 연안에서 출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같은 것들… 하지만 저희는 장고 끝에 조커와 록조의 BDE를 논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논한다는 표현도 조금 넘칩니다. 뭐… 어차피 대단히 진지한 걸 하려고 시작한 잡지도 아니니까요.
BDE는 빅 딕 에너지(Big Dick Energy). 직역하면 조금 민망하니 일단은 그냥 ‘뭔가 크고 묵직한 기운’ 정도로 눙치기로 하지요.
저희가 결집한 중앙동의 한 카페 일각에서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동아리 회장의 횡령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파스텔톤 숄에 기가 막힌 빈티지 귀걸이를 매치한 중년 여성이 홀로 신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이곳의 가지 스튜와 뿔소라 샐러드는 정말이지 일품입니다. 저희의 대화는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조커의 연필 트릭 장면에서부터 록조가 퍼피디아에 굴복하던 BDSM적 순간까지. 카리스마란 무엇인가. 자신감과 허세는 어떻게 구분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이런 캐릭터들에 매혹되거나 매혹되지 못하는가. 왜인지 카페 안의 모두가 저희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인상을 찌푸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피해의식이 분명합니다...
제리: 좌담을 시작하겠습니다.
마지:비장하네.
제리: 제일 중요한 거.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봤는지 돌아가면서 고백하자.
칼: 그거 숙제였어요?
마지: 보고 오라고 했잖아.
칼: 좌담의 주제가 그거였어요?
제리: 나는 세 번 봤거든?
마지: 세 번을 왜 봐.
칼: 재밌어요?
제리:‘록조’라는 캐릭터가 나오거든. 좀 희한해. 미합중국 특수기동대장직에 있는 권력자인데, 늙은 백인 남성이고, 약간 로봇 같은데...
마지: 이제는 로봇이라는 표현도 되게 과거의 유물이다.
제리: 그럼 로봇이 아니라 ‘로보트’라고 해야지.
마지: 확실히 근자의 AI 같지는 않아.
제리: 근데 얘가 디카프리오의 애인을 체포하거든? 이름이 퍼피디아인데, 혁명단체 멤버야. 겁나 섹시한 흑인 여자인데, 퍼피디아가 맨 처음에 록조한테 반달을 할 때 성적으로 능욕을 하거든. 근데 록조가 여기서 인생 최대치 흥분을 해 버린 거지. 풀려난 다음에도 막 혁명군 따라다니면서 멀리서 망원경으로 퍼피디아 엉덩이 훔쳐보면서 좋아하고.
칼: 혁명군이 반달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퍼피디아가 록조를 능욕했고, 그 이후로는 록조가 퍼피디아를 몰래 따라다니다가 체포를 해버렸다는 거죠?
마지: 맞아.
칼: 퍼피디아는 디카프리오 애인이고요? 디카프리오도 혁명군이에요? 디카프리오는 배역 이름이에요? 아니면 디카프리오가 연기를 했다는 거예요?
제리: 얘 포스터도 안 봤나봐.
마지: 나가.
제리: 대충 맞아. 디카프리오는 이름이 밥이야. 그리고 록조는 숀 펜이야.
칼: 대당끼리 같은 위치에 놔야지. 디카프리오는 밥이고 숀 펜은 록조인거지.
마지: 맘에 드네. 다시 들어와.
제리: 근데 진짜 록조가 퍼피디아한테 쩔쩔 맨단 말이야. 사실 그럴 필요가 없잖아. 근데 혁명군 동료 정보 불고 자기랑 몇 번 자주는 대가로 번듯한 집도 주고 신변도 보호해 주고. 특진하고 나서 꽃다발 들고 찾아가고.
칼: 빌런 치고는 낭만적인 스타일 아닌가?마지: 보면 그런 말 안 나와. 드러워.
제리: 섹스 신이 있거든. 근데 그게 어떻게 보면 록조가 당하는 것처럼 보여. 권력 관계는 록조가 훨씬 위에 있는데 사적인 관계에서는 퍼피디아가 완전히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실제로 퍼피디아가 록조를 버리고 떠나기도 하고.
마지: 그땐 록조가 거의 복종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심지어 그 잠자리를 퍼피디아가 원한 것도 아닌데.
제리: 나중에 록조가 백인우월주의자 단체에 심문당하는 장면이 있어. 이름이 뭐더라?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인가? (편집자 주: 맞다.)상부에서 흑인 여자랑 관계를 했냐, 이렇게 추궁하니까 록조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저는 역강간을 당한 겁니다.” (좌중 폭소) 제리: 근데 그게, 그냥 면피용이 아니라 어떤 부분에서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것 같더라고. 그게 록조 캐릭터의 핵심 같애. 권력은 분명히 있는데 욕망을 통제하지 못해서 다 망친다고 해야 되나? 백인 우월주의자면서 자신의 블랙피버를 이기지 못해서 몰래몰래 무릎꿇고 복종당하는 그 모순이...
마지: 현실적이긴 해. 저런 남자들 되게 많잖아. 한두 명 봤어?
칼: 숀 펜 연기 궁금하다.
제리: 완전 미쳤어. 드러운 거랑 별개로. 근데 사실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냐면 있잖아. 록조는 되게 작을 거란 말이지.
칼: 네?
마지: (한껏 발음을 굴리며) 타이니 딕 에널쥐~?
제리: 아니 실제 크기를 말한다기보다, 남성성이 발현되는 방식으로서의 딕 에너지?
칼: 그게 뭔데요.마지: 음… 어떻게 설명하지.
제리: 실제 사이즈랑은 상관이 없는 거거든. 여유가 있는 것? 모든 것에 너그럽고, 부드럽고, 열등감이 없고…
마지: 크리스 에반스, 키아누 리브스, 오바마...
칼: 이거 성희롱 아니에요? 창간하자마자 폐간당할 것 같아요.
마지: 실제 사이즈 얘기가 아니라니까. 만약 그런 거면 진짜 고소감이고. 실제로 어떤지를 누가 알아? 당연히 아무도 모르지. 그냥 존재 자체에 여유로움이 묻어난다는 거야. 모든 발화와 동작과 리액션에. 만약에 니가 남자고, 빅 딕이 실제로 있다고 생각해 봐. 보이지 않더라도 나에게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로 내 여유의 원천이 되지 않겠어? 증명할 필요도 없지. 있다고 우길 필요도 없고. 그냥 나한테 원래 있는 거니까.
칼: 아 대충 알겠다.
제리: 그 반대의 에너지가 뭔가 과시하는 거, 증명하려고 애쓰고, 차에 소음기 떼고... 남들이 나에게 빅 딕에 상응하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아주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거야. 왜냐면 실제로는 없기 때문에.
칼: 여자한테도 있을 수 있는 거네, 그러면?
제리: 있지. 음… 리한나?
마지: 오 완전 인정.
제리: 케이트 블란쳇?
마지: 도자 캣도 있다.
칼: 원래 다들 이 말을 쓴다는 거죠?
마지: 원래는 인터넷 밈에서 나온 건데. 2018년인가? 아리아나 그란데가 피트 데이비슨에 대해서…
마지: 근데 실제로 피트 데이비슨이 크대.
칼: 어떻게 알아요?
마지: 아리아나 그란데가 트위터에서…
칼: 아 오키.
편집부 주석
BDE(Big Dick Energy)는 2018년 6월,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가 당시 약혼자였던 피트 데이비슨과 결별 후 트위터에서 매우 짧고 결정적인 언급을 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아리아나도 좀 오버했다 싶었던 모양인지 빛의 속도로 이를 삭제했으며, 피트 데이비슨은 이 루머(?)를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전세계의 누리꾼들은 이를 놓치지 않았고, 몇 시간만에 ‘빅 딕 에너지’라는 밈이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 밈이 정의하는 바에 의하면 에너지는 실제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그러나 모두가 그 이야기를 조금씩은 합니다), 그것을 증명하려 들지 않아도 되는 어떤 태도에 있습니다. 이는 인물의 성별·인종·정치적 정체성과 무관하게 취득 가능합니다.
제리: 아무튼 딕 에너지는 이제 하나의 분석 틀로 써도 무방할 것 같아.
칼: 근데 왜 록조는 스몰이 아니라 타이니예요?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제리: 스몰이라고 하면 좀… 아까 말한 것처럼 부정적인 느낌이잖아. 열등감 있고 그래서 과시하고 그런 류의. 근데 타이니라고 하면 스케일의 문제가 되는 것 같아서. 록조는 열등감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작동하는 범위가 좁은 거거든.
마지: 권력은 있는데 그게 넓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건가?
제리: 맞아. 권력자인데 그 권력을 퍼피디아 한 사람한테 다 쏟아붓는 거야. 도시를 장악하거나 세상을 바꾸거나 그런 게 아니라.
마지: 집착인가?
제리: 그보다는 욕망의 스케일이 작다? 근데 그게 오히려 더 무섭기도 한 것 같고.
칼: 왜요?
제리: 우리가 실제로 만날 수 있으니까. 빅 딕 에너지를 가진 사람은 뭔가 멀리 있잖아. 아까도 봐봐. 크리스 에반스나 오바마 얘기 했잖아. 근데 타이니 딕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은 길거리에 나와서 막 돌아다녀.
마지: 조커는 어때?
제리: 조커는 정반대지. 빅 딕이지. 도시 전체를 주무르잖아. 스케일이 아예 달라. 조커가 길거리에 등장했다? 개인의 안위를 따질 계제가 아니야. 행정체계부터 끝장나고 단체로 학살당할걸?
칼: 히스 레저 버전으로 가는 거죠?
제리: 당연하지. 나머지는 우선 논외야.
칼: 호아킨 피닉스는요?
마지: 호아킨 피닉스 조커는 스몰을 넘어서 딕리스에 가깝지.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어서 미쳤잖아. 히스 레저 조커는 아무 것도 증명을 안 해.
제리: 맞아. 그게 핵심이야. 조커는 자기가 뭔지 설명 안 해.
칼: 와이 쏘 시리어스~ (샤이니의 노래를 부른다)제리: 잘 부른다~
마지: 배트맨이 막 심문하잖아. 누구냐, 목적이 뭐냐 물어보는데, 조커는 도통 대답을 안 해. 대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앞뒤를 고의적으로 안 맞추니까.
제리: 흉터 얘기할 때도 매번 다르게 진술하고.
칼: 아버지한테 당했댔다가 아내 때문이랬다가.
마지: 그게 거짓말이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조커는 자기 이야기에 일관성을 부여할 필요를 못 느끼는 거지. 왜냐면 애초에 자기를 설명하려는 욕망이 없으니까.
편집부 주석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2008)에서 조커는 자신의 입에 있는 흉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할 때마다 다른 이유를 댑니다. 그가 과거에 대해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철저한 설계에 따른 것 같습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진위를 청자 혹은 관객에게 확인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 진위 여부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취하는 셈이죠. 원작 코믹스에서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수첩에도 그의 과거는 정확하게 쓰여있지 않다고 하네요. 요컨대, 다크나이트에서 조커의 과거에 대한 플래시백은 완전히 생략되어 있습니다.
제리: 록조는 계속 자기를 정당화하잖아. 나는 법을 지킨다, 나는 세상을 정화하는 데 기여했다, 나는 역강간 당했다…
마지: (웃음)제리: 근데 조커는 정당화 자체를 안 해.
칼: 근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록조는 왜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권력은 오히려 조커보다 더 큰 거 아니에요? 이게 왜 타이니 딕의 근거로 작동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냥 거짓말쟁이 아니에요?
제리: 거짓말을 해야 하는 순간 이미 타이니 딕으로 확정되는 거거든. 빅 딕 에너지가 있는 인간들은 거짓말할 필요가 없어. 왜냐면 타인의 승인이 필요 없으니까.
칼: 조커는 배트맨한테 승인받고 싶어하지 않아요?
제리: 오.
마지: 집착은 맞는데 욕망은 아닌 것 같아.
칼: 차이가 뭔데요?
마지: 승인은 수직적이잖아.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래 사람을 인정해 주는 거. 근데 놀이는 수평적이지.
칼: 아, 놀이 상대다?
마지: 그렇지. 조커한테 배트맨은 자기를 완성시켜주는 존재일 수는 있어. 대사를 그렇게 치니까. 근데 그게 집착이라기보다는…
제리: 필요조건?
마지: 그보다는…
칼: ……
제리: (코고는 시늉을 한다)마지: 그보다는 그냥 선택인 것 같아. 배트맨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 배트맨이 있으면 더 재밌으니까 같이 노는 거지. 자발적 관계라는 거지.
제리: 중요한 얘기인 것 같아. 이를테면 록조는 퍼피디아를 선택한 게 아니라 선택당한 거니까.
마지: 그렇지. 록조는 퍼피디아랑 처음 만나서 성적으로 굴욕당했을 때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뭔가 깨어나버린 거야.
칼: 욕망의 각성이네요. 본인이 통제하지 못하는.
제리: 그래서 타이니하다는 거야. 욕망이 자기를 지배하는 순간 스케일이 오히려 작아져.
칼: 왜요?
제리: 세상이 그 욕망을 중심으로 재편되니까. 록조한테는 이제 퍼피디아밖에 안 보이는 거야.
칼: 근데 제가 오늘 들은 바에 따르면, 록조와 퍼피디아의 관계는 사랑은 아닌 거잖아요.
마지: 사랑과 집착의 다른 점이 뭐야. 말해봐.
칼:싫어요. 오빠가 해요.
마지:사랑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는 거고, 집착은 상대한테 자기 판타지를 투사하는 법이잖아.
칼: 퍼피디아는 생존을 위해서 록조를 이용하는 건데, 록조는 진짜 사랑이라고 믿고싶어하는 거죠?
마지: 자기 기만의 스케일이 커질수록 딕 에너지는 작아지는 것 같아.
(잠시 휴식. 제리와 칼이 흡연 후 들어와서 주제를 전환한다.)
마지: 이 구시대적 인물들. 비흡연자를 너무 방치하는 거 아니야?
제리: 칼이 이 앞에서 강아지 사진 찍고 있었어.
칼: 너무 귀여워. 이름 콩콩이래요.
제리: 밖에서 얘기한 건데, 조커가 엄청 많잖아.
마지: 버전이?
제리: 응. 히스 레저만 조커가 아니니까.
칼: 각각의 조커들이 다 다른 딕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빅이랑 스몰 사이에서 진동하는 게 아니라 완전 새로운 스펙트럼이 있는 것 같아요.
마지: 잭 니콜슨 조커는 뭔데?
칼: 그거는 레인보우 딕이에요.
마지: 으.
제리: 히스 레저는 아무 것도 설명을 안 하는데 잭 니콜슨은 의도적으로 과잉 설명을 해. 과시 자체를 즐기는 거야.
마지: 호아킨 피닉스 조커는 딕리스고?
제리: 헐 나랑 똑같이 생각했어.
마지: 그게 아니고 아까 내가 이미 말했잖아.
칼: 진짜 아무것도 없어. 피해의식만 있어요. 약간 불쌍해.
제리: 이렇게 동정하게 되는 게 위험한 것 같아. 인셀들이 거기에 자기를 투사하니까.
칼: 사회가 날 이렇게 만들었고 여자들이 날 이렇게 무시했다!
마지: 타이니 딕들의 전형적인 변명이잖아. 자기연민 오져.
제리: 자레드 레토는 스뎅 딕이야.
마지: 스테인리스라고?
칼: 와. 진짜 징그럽다.
제리: 표면은 매끈한데 속은 텅 빈거야.
마지: 녹 안 슬고 위생적인데 매력은 없다?
제리: 왜. 그래도 미드센추리 인테리어에는 스뎅이 핵심이야…
칼: 쇠테리어라는 말도 있잖아요.
마지: 자레드 레토 조커 보면 무슨 스타트업 회사 마케팅 팀에서 기획한 프로덕트 같애. 일단 태클 걸지 마. 마케팅 팀이 기획하지 않는다는 거 알고 있어. 어쨌든 “이번 조커는 섹시하게 갑시다.”
칼: “타투 넣읍시다.”
제리: “힙스터 느낌으로…”
(좌중 웃음) 마지: 근데 우리가 조커에 끌리는 이유는 뭘까?
칼: 저는 안 끌리는데요?
제리: 히스 레저 조커에도 안 끌려?
칼: 아 그거는 좀 끌려요.
제리: 불안이나 책임에서 자유롭고 싶어서 아닐까? 조커는 책임이 없잖아. 사회적 역할도 없고 지켜야 할 관계도 없고. 근데 록조는 책임이 엄청 많아. 경찰로서의 책임, 백인우월주의자로서 세계 정화에 힘써야 할 책임, 지배종인 남성으로서의 책임… 심지어 윌라의 아버지로서의 책임도, 아무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었는데 지가 지한테 부여해서 난리부르스를 춘 거 아냐.
마지: 그래서 퍼피디아한테 무릎 꿇을 때 오히려 해방감을 느끼는 거 아닐까?
칼: BDSM적으로요?
마지: 응. 복종하는 순간에는 책임이 사라질테니까?
제리: 근데 또 한편으로는 그게 또 타이니한 이유야. 진짜 빅 딕은 책임을 짊어진 채로도 자유로워야 하거든.
칼: 근데 아까도 말하긴 했는데, 솔직히 조커가 자유롭고 조커한테 끌리고…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되게 수습이 어려울 것 같아요.
마지: 판타지로서의 조커가 위험하니까?
칼: 네. 조커처럼 되고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제리: 인셀들?
칼: 걔네들은 조커가 빅 딕인 이유를 이해해서 동경하는 게 아니라, 그냥 폭력적이고 무책임한 걸 동경하잖아요.
제리: 조커가 빅 딕인 건 폭력 때문이 아니라 자유 때문인데. 사회적 기대나 타인의 시선에서 다…
칼: 근데 인셀들은 사실 외부의 시선에 목매고 있잖아요.
제리: 조커가 되고싶어하는 순간 이미 타이니해지는 거 아닐까? 조커는 조커가 되고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잖아.
칼: 근데 이제 여기 닫는 것 같아요. 우리만 남았어요.
제리: 대충 마무리하고 슬슬 일어날까?
마지: 녹취 다 땄어?
제리:아 맞다, 꺼야지.
칼: 제대로 안됐으면 어떡해요?
제리: 기억나는 대로 쓰는 거지 뭐.
마지: 기억 안 나면?
제리: 그때부턴 픽션이지.
마지: 팩션까진 될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다시 모여. 다같이 머리를 모으고 복기를 해.
늦은 오후의 빛이 중앙동 골목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까눌레와 리쉬 아이스티를 파는 카페로 향했고, 가는 길에 칼은 콩콩이를 다시 한 번 만났습니다. 제리의 녹음기는 작동했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마지는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담이 월간차지 창간호를 장식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여전히 우습게 느껴집니다. 조커와 록조의 빅 딕 에너지를 논하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이었을까요? 세 사람 모두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뭐 어떤가요. 결론 같은 건 애초에 중요하지 않았으니까요. 이것이 월간차지가 할 일입니다. 아무도 안 궁금해하는 질문을 던지고, 아무도 원하지 않는 답을 찾고, 그리고 기억하지 못할 것들을 기록하고, 또 그러다 마는 것. 다음 호가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나온다면, 또 이런 식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