❶ 에디터스 레터 | 월간차지의 창간에 부쳐
❷ 좌담 | 조커는 크고 록조는 작다: 빅 딕 에너지의 문제
❸ 연재소설 | 곡예사 톰의 실종
❹ 이달의 빈지와칭 | 붙박이 남자 권오중의 알리바이
❺ 여행수첩 | 자동차, 고소공포증, 자전거
❻ 교환일기 | 취향의 형성에 관한 교신
❼ 불평불만 | 팥빙수 아브젝시옹
❽ 직업탐구 | 어느 테크 스타트업 OL의 수요일 오후
❾ 이달의 컴필레이션
❿ 내 운명을 알려다오
⓫ 픽션 앤 프랙티스: 결핍 워크숍 프로토콜
⓬ 독자차지
이달의 컴필레이션
2025년의 n계절
신포도음악 감상은 기후의 감각이다. 모든 음악은 필연처럼 묶인 공기의 온습도, 구름의 밀도에 따라 미세하게 조절되는 빛의 세기에 따라 다른 경험으로 가장한다. 2025년에도, 그 전의 무수한 시간들처럼 사계절이 존재했다. 2025년의 마지막 날에 창간된 『월간차지』의 독자들을 위해 2025년의 기후 감각을 소환하는 음악을 준비했다. 사계절의 선형성은 (의도적으로) 매스업해 뒤섞어놨다. 그게 컴필레이션의 매력이니까.
p.s. 이 컴필레이션은 비가 오는 초겨울 오후 2시에 꾸려졌다.
p.s. 이 컴필레이션은 비가 오는 초겨울 오후 2시에 꾸려졌다.
늦여름의 게으름은 소진과 닮았다. 겨우 더위가 익숙해졌는데, 순식간에 추워질 거라는 불안감이 다가오는 계절. 늦여름의 인간들은 서서히 선명해지는 불안을 못 본 체하는 데 남은 체력을 쥐어짠다. ‘산성비(Acid Rain)’의 초입, 흑연이 닳는 소리와 콜 헤이든Cole Haden의 콧수염을 뚫고 겨우 나오는 목소리는 여름의 끝자락 불안과 손 잡고 있다.
Track 2. My Morning Jacket - Time Waited - 초가을
낙엽은 천천히 물들지만 순식간에 떨어진다. 천성이 여유로운 나뭇잎들은 색을 입는 데 몇 개월을 쓰지만, 추위를 견디기에는 잎자루가 너무 얇거든. 느리게 바뀌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늦가을. Time Waited는 느린 음악이지만 손가락을 튕기는 듯한 속도감을 응축한 음악이다. 웰메이드 밴드 음악에는 여러 종류의 속도감들이 충돌한다. 그래서 옹골차다.
낙엽은 천천히 물들지만 순식간에 떨어진다. 천성이 여유로운 나뭇잎들은 색을 입는 데 몇 개월을 쓰지만, 추위를 견디기에는 잎자루가 너무 얇거든. 느리게 바뀌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늦가을. Time Waited는 느린 음악이지만 손가락을 튕기는 듯한 속도감을 응축한 음악이다. 웰메이드 밴드 음악에는 여러 종류의 속도감들이 충돌한다. 그래서 옹골차다.
Track 3. 씨잼 - 레이어드 - 한여름
시간을 먹고 자란 Nourised by Time은 겨울을 위한 음악을, 겨울 속에서 만드는 아티스트다. 어떤 때는 입을 과도하게 찢으면서 발음을 흘리고, 의도적으로 t 발음을 생략하는 습관을 가진 듯하다. 2025년의 한겨울은 도착할 듯, 계속 도착하지 않는다. 아니다! 생각해보니 2025년의 1월과 2월에 코가 빨개진 기억이 난다. 빨개진 코와 얼어버려 잘 벌어지지 않는 입. 사랑은 추위에 덜덜 떨리는 턱주가리처럼 자동적인 것이다.
간절기.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는 계절. 붕 뜬 감각 위에서 비염 환자에게 가혹한 그 짧은 시간. 스타크 리얼리티의 사이키델릭 재즈도 기이함과 괴롭고 들뜨는 짧은 시간을 닮았다. 참고로 스타크 리얼리티도 간절기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캘리포니아 투어 관객이 너무 없어서 밴드가 해체됐다고…. 그러나 때가 되면 찾아오는 비염처럼 스타크 리얼리티도 2025년 포도에게, 갑자기, 도착했다.
게으른 나무들 빼고는 대부분 이때쯤 나뭇잎들을 공기 중으로 내보낸다. 그건 세상에 대한 도전 같은 거다. 인류들이 지구를 아무리 망쳐놔도, 힘 되는 데까지는 나뭇잎들을 내보낼 거라는 선언. 스월비도 나뭇잎 내는 나무처럼 가사를 쓴다. 세상에 뭔가를 토해내듯이 노래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필기 공책 같은 가사들. 개 같은 사람들. 어찌 보면 실패한 많은 만남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무언가를 세상에 내보내는 건 고통스럽고, 또 얼마간 처연하다.
사람들은 여름을 긴 낮으로, 겨울을 짧은 낮으로 기억하지만, 어느 계절에나 어둠은 있다. 여름의 어둠은 수줍음이 많고, 겨울의 어둠은 질척일 뿐. 어둠에는 담뱃불이 특히 매력적이다.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 같거든. 이불 위에서 피우는 담배 불씨를 본다면, 얼마나 벅찰까. 니나 시몬은 얇은 불빛만이 줄 수 있는 낭만을 아는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나 간절하게, 이불 위에서 담배 금지라고, 처연하게, 읊조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