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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차지 2호 > 에디터스 레터 >
놀라워라, 월간차지 유니버스 👤유유민
놀라워라, 월간차지 유니버스 👤유유민
마감이 한창이던 1월 말, 『월간차지』 편집부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 왔다. 애초에 이상한 일이었다. 『월간차지』 편집부에는 유선전화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던 까닭이다…
발신인은 자신이 『월간차지』의 열혈 독자이며, 가장 좋아하는 것은 참치 뱃살이라고 소개했다. 편집부는 두 가지 사실이 직관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잠시 당혹스러워했으나 이내 그를 이해했다. 자신의 취향을 내비치며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찌하여 그가 우리 편집부 역시 참치 뱃살을 좋아할 것이라 짐작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발신인은 『월간차지』 창간호를 수차례 열독한 이후 자신에게 일어난 이상한 일들을 제보하고 싶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그를 편집부 사무실 옆 건물에 위치한 로스터리 카페로 초청해 사건의 전말을 소상히 파악해 보기로 했다. 전화를 받은 것은 제리였지만, 당일 영업 미팅 차 자리를 비우게 되어 칼이 대신 대화를 진행해 주었다.
〖칼〗 『월간차지』의 열혈 독자 마구로 씨를 모시고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마구로 씨, 안녕하세요?
〖마구로〗 네, 안녕하세요.
〖칼〗 『월간차지』 창간호를 읽은 뒤로 이상한 일이 자꾸 벌어졌다고요?
〖마구로〗 네, 분명합니다.
〖칼〗 이를테면 어떤 일이었죠?
〖마구로〗 우선 디즈니플러스에서 <더 뷰티>라는 미드를 보기 시작했는데 말이죠. 웬 남녀가 끝내주는 하룻밤을 보낸 다음 ‘킨츠기’에 관해 대화하더군요.
〖칼〗 킨츠기라. 사금파리 사이에 금가루를 개어 바르고 다시 도자기의 형태로 이어 붙이는 일본식 수리 기법을 말씀하시는 거죠.
〖마구로〗 네.
〖칼〗 『월간차지』 창간호의 「픽션 앤 프랙티스: 결핍 워크숍 프로토콜」에서 소개된 바로 그 킨츠기요.
〖마구로〗 네.
〖칼〗 『월간차지』 창간호를 읽기 전까지는 킨츠기에 대해 알지 못하셨나요?
〖마구로〗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만, 미디어에서 마주친 적은 없습니다.
〖칼〗 그렇다면 킨츠기에 대해서 들어보셨을 적에는 미디어가 아닌 어디서 들어보셨다는 거죠?
〖마구로〗 ……
〖칼〗 우선 알겠습니다. 그다음은요?
〖마구로〗 침대에서 킨츠기 이야기를 나눈 두 남녀가 댄스클럽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더니 모조Modjo의 ‘Lady’에 맞춰서 춤을 추는 게 아닙니까?
〖칼〗 1998년 결성된 프랑스 하우스 듀오 모조의 데뷔 싱글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마구로〗 그렇습니다.
〖칼〗 『월간차지』 창간호 ‘이달의 컴필레이션’ 코너의 「춤추기 좋은 음악」 5번 트랙이기도 하고요?
〖마구로〗 그렇습니다. 이 트랙은 무려 26년 전에 발매됐는데요.
〖칼〗 놀랍습니다.
〖마구로〗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마구로 씨는 불안한 듯이 사탕수수로 만든 빨대를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칼〗 무슨 일이죠?
〖마구로〗 넷플릭스에서 <슬픔의 삼각형>을 보았는데, 선상 파티 장면에서 또 그 노래가 나왔습니다.
〖칼〗 모조의 데뷔 싱글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마구로〗 그렇대도요.
〖칼〗 정말 믿기 힘드네요.
〖마구로〗 선상 파티 장면은 상당히 길었기 때문에 거의 그 노래의 전부를 다 들어야만 했습니다.
〖칼〗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마구로〗 춤을 추고 말았습니다.
〖칼〗 댁이셨나요?
〖마구로〗 그래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칼〗 또 다른 일은요?
〖마구로〗 「붙박이 남자 권오중의 알리바이」를 읽고 나서 종종 유튜브를 통해 <순풍산부인과> 클립을 보곤 하는데요.
〖칼〗 네.
〖마구로〗 처음 본 게 선우용여 선생님께서 <델마와 루이스>에 감명받아 ‘델마’가
되기로 결심하는 에피소드였거든요.
〖칼〗 네네.
〖마구로〗 그 에피소드의 배경음악으로 시크Chic의 ‘Le Freak’가 삽입되어 있었습니다!
〖칼〗 유명한 곡이기는 합니다만.
〖마구로〗 하지만 『월간차지』 때문에 처음으로 재생해본 에피소드인데, 때마침 「춤추기 좋은 음악」의 1번 트랙이 나왔다는 건 소름 돋는 일이 아닐 수 없었어요.
〖칼〗 충분히 이해합니다.
〖마구로〗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칼은 어렴풋이 ‘생활의 달인’의 성우, 양지운 씨의 목소리를 떠올렸다고 한다.
〖마구로〗 길에서 얼굴이 뭉개진 톰 인형을 보았습니다. 꼬질꼬질하고 더러웠습니다.
칼 역시도 이 국면에서는 닭살이 돋고 말아 팔뚝을 손바닥으로 문지를 수밖에 없었다.
〖칼〗 거짓말.
〖마구로〗 정말입니다.
〖칼〗 연재소설 「곡예사 보우의 실종」의 첫 시퀀스처럼 말인가요?
〖마구로〗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합니다.
〖칼〗 사진을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마구로〗 때마침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되어 찍지 못했습니다만, 결단코 사실입니다.
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칼〗 그렇다면, 설마 2호에 관한 사건은 없었겠죠?
〖마구로〗 제가 2호에 무슨 내용이 실릴 줄 알고요.
〖칼〗 예를 들어, 머피의 법칙에 얽힌 사건이라든지요. (편집자 主: 해당 아티클은 4호에 수록될 예정이다.)
〖마구로〗 다행히 없습니다.
〖칼〗 힙합이나 미국 알앤비, FT아일랜드는요.
〖마구로〗 없었습니다.
〖칼〗 패션 마케터의 퇴사와 구직에 대한 건요.
〖마구로〗 없었습니다.
〖칼〗 인류세 이후의 재난영화 특징이라든지요.
〖마구로〗 인류세가 뭔가요?
〖칼〗 넘어갑시다.
칼은 승부욕이 발동하기라도 한 사람처럼 계속해서 2호에 실릴 아이템들을 유출하고 있었다. 녹취를 풀던 제리가 “경쟁 잡지사의 쁘락치였으면 어쩌려고 이래!” 분개하며 칼을 꾸짖었을 정도로 말이다.
〖칼〗 그렇다면 설마 김상희 씨나 현창묵 씨에 대해서는 모르시겠죠? 송자 씨와 송옥 씨의 출산, 일제강점기의 피난 행렬에 관한 이야기요.
〖마구로〗 !!!
〖칼〗 (조금 흥분하며) 있었습니까?
〖마구로〗 이것 좀 보세요.
마구로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핸드폰 액정을 몇 번 터치하더니 유튜브 비디오 하나를 재생시키고는 물병 앞에 비스듬히 세웠다. <순풍산부인과> 19화 클립이었다.
“3.5kg 귀여운 공주예요.”
“어, 아니 저 왜, 동명이인. 송옥자라는 이름이 두 명이라고.”
“아, 그렇죠.”
“이름이 같은 환자가 있으면 말이야. 아주 헷갈리니까 조심하도록 해.”
“예, 주의하겠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오신 그 송옥자 씨요. 얼마나 남편 욕을 해대는지, 내가 다 민망하더라.”
〖마구로〗 송자 씨와 송옥 씨라고 하셨던가요?
〖칼〗 맞아요.
〖마구로〗 출산 이야기라고 하셨고요?
〖칼〗 틀림없어요.
〖마구로〗 오늘 여기로 오는 길에 이 클립을 봤단 말입니다. ‘송옥자’ 씨의 출산에 대한 에피소드를요.
〖칼〗 정말 놀라워요. 정말 놀랍네요. 저는 이제 확실히 알았습니다.
〖마구로〗 뭘 아셨다는 건가요?
〖칼〗 다음 호를 마저 읽으면 당신의 미래가 보일지도 모릅니다.
〖마구로〗 !!!
〖칼〗 앞으로 발행되는 모든 『월간차지』에 틀림없이 당신의 미래가 수록되어 있을 거예요, 마구로 씨.
마구로 씨는 대답 대신 씹고 있던 사탕수수 빨대를 툭 떨어뜨렸다. 칼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차갑게 식은 커피를 쪼록 마실 뿐이었다.
기이한 만남 이후, 편집부는 수시로 멍한 표정을 지으며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2호가 발행된 이후 마구로 씨, 혹은 또다른 많은 독자들에게 벌어질 신묘한 일에 대한 우려와 호기심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미래 역시도 이미 다음 호 어딘가에 예언처럼 실리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호에는 에디터스 레터에서부터 시작해 좌담, 영화 <콘티넨탈 ‘25> 리뷰, 엄마의 가족에 관한 신화적인 이야기, 독자와 함께한 ‘왓츠 인 유어 백’에 이르기까지, 유독 누군가와 말을 섞는 형태의 글이 많이 수록되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필자들이 각자의 말을 잘 전하기 위해 채택한 가장 유효한 방식이 ‘대화’였던 모양이다.
이 웹페이지에 담긴 수많은 대화 속에서 당신의 과거를 발견하거나, 혹은 마구로 씨처럼 곧 들이닥칠 미래의 단서를 마주하게 되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길 바란다. 우리가 나눈 대화가 당신의 일상 어느 지점과 연결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
아참, 마구로 씨가 엊그저께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거짓말처럼 아이클라우드에 저장되어있었다는 전언이다.
독자 여러분의 순탄한 미래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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