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씨잉어와 도인, 도둑맞은 금시계
: 김송자 인터뷰
김혜림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은 2001년입니다. 미국에서는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고, 한국에서는 IMF가 끝나던 시기라고 합니다. 9.11 테러나 외환위기의 종료는 그리 아득한 전설처럼 느껴지지 않는데, 어머니가 살았던 유년기의 풍경은 제가 지나온 동시대와 지나치게 멀어 보입니다.
어머니의 유년기에는 신비한 것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씨잉어와 국경을 넘나들던 러시아군, 백반증을 고치는 여성들의 주술이나 외할아버지의 섬뜩한 영적 능력 같은 것들이요. 모든 아버지들은 꼿꼿이 도를 닦았고, 모든 어머니들이 집안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물체와 바닥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림자의 경계가 흐릿해지듯, 이 신비한 존재들 역시 느리게 형체를 잃어갔습니다. 어머니는 6살에 전수받은 주술을 잊었고, 외할아버지의 영적 능력은 '역사'의 영역에서 '믿음'의 영역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저의 유년기에는 주술과 호랑이 대신 네이버 지식인과 슈 게임, 도시 전설과 가가라이브가 자리합니다. 25년이라는 짧은 간극 속에서 세계의 성분이 이토록 판이해진 것은, 어쩌면 시간의 밀도가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그 시차를 기록한 증빙자료로서 이 인터뷰를 제출합니다.
1. 호랑이와 저주
Q. 엄마의 외할아버지, 그러니까 내 외증조할아버지는 성함이 뭐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것 같아.
현창묵. 내 외할아버지. 영적 기운이 있었대. 나 어릴 때 되게 산골에 살았었거든? 한국 호랑이가 사는 곳이었어. 호랑이가 가끔씩 아기도 물어가고 그랬어. 어느 날 동네 아기가 사라진 거야. 온 동네에서 찾아댔는데, 외할아버지가 그랬대.
“쑥을 심은 밭에서 몇 미터쯤 가면 시체가 있다. 애 엄마한테는 보여주지 마라. 엄마가 못 산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찾아가 봤더니 진짜 머리만 남아 있더라는 거야. 현창묵 씨가 날 항상 지켜줬어. 나한테 나쁘게 대한 남자애들 있잖아. 걔네한테 좋은 끝이 없었어.
Q. 저주받은 거야?
끝이 안 좋았지. 이 흉터 보여? 학교에서 난로를 때잖아. 1학년 때였나? 추우니까 애들이 난로 근처에 모여 있었는데, 어떤 남자애가 연필을 난로에 집어넣은 다음에 내 목 쪽에 갖다 댄 거야. 그래서 흉터가 생긴 거지. 유치원 때는 발을 찌른 남자애도 있었고.
근데 걔네 둘 다 죽었어. 장가도 가기 전에. 외할아버지가 저주 내린 거라고 엄마[현영숙]가 그랬어. 너[혜림] 낳으러 들어갈 때도 엄마가 나한테 계속 그랬어. 누워서 현창묵 할아버지 이름만 부르라고. 또 교회 다니지 말라고. (웃음) 영적 충돌이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Q. 진짜? 이제 나도 그거 해야겠다. 현창묵 할아버지 이름 부르기.
네 동생[선경] 낳을 때는 엄마[현영숙]가 곁에 없었잖아. 그래서 전화로 “혜림이 낳을 때처럼 현창묵 이름 불러” 말해줬었어. 나 좀 잘 살펴주세요, 하고 빌라고. 뭐, 이게 다 짜맞추기 마련이지만, 어떻게 보면 그렇게 맞춰진다는 것도 신기하고.
또 그런 얘기도 들었었다. 옛날에 외할아버지[현창묵]가 엄마[현영숙]한테 그랬대. “네가 나이 들었을 때는 온 세상이 빨갛게 보인다. 풀도 안 남고, 짐승도 안 남는다. 불기둥이 보이는 그때는 높은 곳으로 가야 한다. 백두산으로 가야 된다.”
Q. 산불 같은 건가?
나도 그 생각 했거든? 근데 후에 생각해 보니까 ‘핵무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네 외할머니[현영숙]한테도 비슷한 기운이 있었어. 주술을 할 줄 알았거든.
2. 빨간 벌레, 파란 벌레, 개미
백반증 있지. 그런 건 잘 낫지 않잖아. 근데 엄마[현영숙]가 다 치료해 주고 그랬대.
Q. 어떻게?
치료하는 방법이 있어. 여덟 살 이전의 딸한테만 전수해 주는 거야. 집안 대대로 내려온 건데, 엄마[현영숙]도 그걸 배워서 큰이모네 아들 백반증을 두 번이나 치료해 줬어.
나도 전수를 받았대. 여섯 살 때. 근데 기억에 없어. 주문이 있는데… 빨간 벌레, 파란 벌레… 이런 주문을 외우고 무명실을 마디마다 잰대. 그걸 묶어서 손 위에 놓고 칼 두 개로 왔다 갔다 한 다음, 그 칼이랑 실을 해뜨기 전에 동쪽 문지방 밑에다가 묻는다고 했던 것 같아.
주술 같은 거지. 낮에는 장사 하고, 밤이면 애기들 백반증 치료해주러 다니고 그랬어.
Q. 그런 게 다 끝났네. 주술 세대가 사라졌어. 엄마가 기억했으면 나도 받을 수 있었을까?
그치. 그때는 다 외웠었는데, 안 쓰다 보니까 잊어버렸어. 네 외할머니[현영숙]도 산부인과 의사였으니까 바쁘잖아. 왕진 나오면 왕진 가야지. 날 붙잡고 외워봐라, 외워봐라 할 수가 없으니까.
외할아버지[현창묵]는 일 안 했어. 그냥 도 닦은 거지 뭐. 생계는 우리 외할머니가 다 책임졌어.
Q. 엄마가 외할머니, 그러니까 내 외증조할머니에 관해 가진 기억 중에 제일 강렬한 건 뭐야?
우리 외할머니가 살던 방이 되게 불쌍했어. 그래서 그 집에 가면 눈물이 났어. 부엌 달린 큰 방 뒤에 방 여러 개가 딸린 구조였거든. 그 방은 북향이었어. 창문도 없고, 새까매. 낮에도 불이 안 들어와. 뒤에 딸린 쪽문을 열어야 햇빛이 겨우 들어오는 거야.
연세 들고 나서 앞을 못 봤거든. 지금으로 치면 녹내장이었던 것 같아. 원래 엄청 깔끔한 사람이었는데, 못 보는 채로 생활하면 그러기가 힘들잖아. 그래서 엄마[현영숙]가 외할머니 머리도 감겨 주고, 빗겨 주고, 이부자리 털어서 널고 그랬어. 그러는 동안 정주방에서 기다렸던 기억이 나.
일이 다 끝나면 엄마[현영숙]가 들어오라고, 외할머니한테 인사하라고 불렀어. 들어가면 외할머니가 엄청 좋아했어. 우리 외손주 왔냐고. 아이고, 왜 눈물이 나려고 하지?
Q. 나도 눈물 나려고 그래.
외할머니가 이불 밑에서 과자를 꺼내 줬어. 새카만 방에서는 안 보이니까 밖으로 과자를 가지고 나왔는데 개미가 와글와글 붙어있는 거야. 어린 마음에 그걸 안 먹고 버렸었어. 어려서 철이 없었지. 자기 손주들 안 주고, 오랜만에 보는 외손주 주려고 챙겨둔 건데.
그 얘기를 언젠가 엄마[현영숙]한테도 했어. 엄마도 얼마나 예쁘길래 줬겠느냐고 그러더라고.
Q. 근데 외증조할머니는 왜 그런 방에 산 거야?
엄마 외삼촌이 일찍 돌아가셨어. 쉰여섯 때인가? 돌아가시기 전날에 당신 큰아들이 대학교 졸업하고 은행에 취업한다고 연락을 한 거야. 너무 기뻐하셨는데, 그날 저녁에 자다가 돌아가셨어. 우리 집안이 대대로 심장이 안 좋잖아. 네 외할머니[현영숙]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외삼촌도 심장병이 있었어.
그러고 나서 외숙모 혼자 남았는데, 시어머니가 곱게 보이지 않았겠지. 옛날 사람들은 자식을 앞세워 보낸 집에 그런 말을 했잖아. 부모가 자식 잡아먹었다, 같은. 그치만 외할머니는 얼마나 속상했겠니? 외삼촌 돌아가시기 전에 이모도 죽었고, 둘째 아들은 군대 갔다 와서 죽고. 자식을 셋이나 앞세운 거잖아.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어.
그래서 자기네 아들들한테 햇빛 잘 드는 좋은 방을 준 거야. 당신은 제일 안 좋은 방에 들어가시고. 아직도 눈에 선명한 장면이 있어. 우리 외할머니 방에서 쪽문을 열면 햇빛이 들어오는데, 그게 엄청 밝게 느껴졌어. 그 담장 밖에 구기자나무가 빼곡했거든.
구기자는 빨갛고, 방은 까맣고, 쪽문 밖에는 맑은 햇빛, 파란 나무에 걸린 빨간 구기자. 그게 너무 예뻤어. 그림 같았어. 사진 찍어뒀으면 환상적이었을걸. 너무 예뻤어.
3. 선비 남편의 부인
Q. 외할머니[현영숙]는 의대를 나온 거야?
요즘처럼 의대 나와서 의사 하던 때가 아니었어. 그때는 지식인들이 적었잖아. 그러니까 유능한 사람들을 선발해서, 말하자면 연수를 시킨 거지. 의사 면허증을 그렇게 딴 거야.
Q. 의사 집안이면… 엄마네 집이 동네에서 꽤 부자였겠네.
응, 부자였어. TV도 동네에서 맨 처음으로 들였고. 엄마[현영숙]가 의사니까 대도시로 연수도 자주 갔는데, 요즘 말하면 세미나. 나한테 예쁜 거 입히고 싶어서 시골 애들이 못 입는 분홍색 원피스를 사갖고 왔어. 아직도 기억나.
나일론이 그땐 고급 소재였잖아. 가슴 쪽에 프릴이 달렸어. 자수로 나팔꽃이 두 개 놓여 있고, 초록색 꽃잎이 있어. 허리 쪽에는 고무줄이 있고 밑으로는 쫙 퍼지지. 밑에 프릴이 또 달려 있어. 그걸 입고 너무 좋아가지고. 유치원에 그 자랑한다고 입고 가고. 작아질 때까지 입었지.
그런데 그거 사 왔다고 네 외할아버지[김명수]가 엄청 뭐라고 하는 거야. 어린 애 금방 못 입게 될 걸 사 왔다고. 어린 나이에 엄마는 나 입히겠다고 샀는데. 아빠가 애 보는 앞에서 마누라한테 막 화내는 거잖아. 그게 너무 싫은 거야. 짜증나는 거야.
아니, 나는 예쁘고 좋기만 한데, 아빠는 왜 저러는 거야? 싶었지.
Q. 외할아버지[김명수]는 회계사였지? 집에서 회계를 본 거야?
중학교 행정실에서 행정 업무를 본 거야. 한번은 정규직으로 전환될 기회가 있었어. 시험을 봤는데 아빠[김명수]가 1등이었대. 점수도 1등, 근무 횟수도 1등. 근데 경쟁자가 한 살 어렸대. 그래서 걔를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줬다는 거야.
현영숙 성격에 가만히 있었겠어? 교육청으로 쫓아가서 따졌대. 시험 볼 때부터 나이 때문에 안 된다고 제재를 해야지, 시험까지 봤고 점수도 1등인데, 이제 와서 왜 나이 때문에 떨어뜨리느냐고.
Q. 아우, 똑 부러져.
난리가 났대. 결국에는 교육청에서 회의했는데, 둘 다 불합격인 걸로. (웃음) 아빠[김명수]는 나이가 초과돼서 안 되고 그 사람은 시험 성적이 안 돼서 안 된다고. 이후에는 그냥 개인회사 회계 일도 하고 프리랜서처럼 일하셨어. 요즘 같았으면 돈 많이 벌었겠지만, 옛날에는 지식인들이 돈을 많이 벌질 못했어.
근데 그렇게 되니까 그 경쟁자 쪽에서도 난리가 났을 거 아니야? 엄마[현영숙]한테 막 욕하면서 쫓아오더래. 그래서 엄마가 쌍욕하면서 “개새끼야, 네가 한 일 다 알고 있어” 그랬대. 알고보니 경쟁자가 교육청 사람들한테 개를 잡아먹이고 그랬다는 거야.
Q. 로비를 했구나.
그치. 네 외할아버지[김명수]는 되게 고지식한 사람이야. 꼿꼿한 선비 스타일. 엄마[현영숙]가 아빠[김명수]한테 우리도 로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아빠가 “그 사람들 그런 거에 넘어오는 사람들 아니야” 했다는 거야.
Q. 근데 넘어가는 사람들이었네?
넘어가는 사람들이었어. (웃음) 길 가다가 엄마 보면 침 뱉고 그랬대. 그래서 같이 퉤!
현영숙은 지지 않아. 지금도 호랑인데.
Q. 외할머니[현영숙]랑 외할아버지[김명수]는 어떻게 만난 거야? 연애 스토리 같은 거 궁금해.
중매로 만났다고 했어. 현창묵 씨가 영적 기운이 있다고 했잖아. 현영숙은 나이 많은 사람한테 시집가거나 아니면 자기보다 좀 외적으로 부족한 사람한테 가야 된다고 그랬대. 그래야지 일부종사한다는 거야.
Q. 일부종사?
결혼해서 끝까지 산다는 거지. 그렇게 중매를 받아서 맞선남인 김명수, 맞선녀인 현영숙, 그리고 그들의 엄마들이 같이 만난 거야. 네 명이서.
너희 외할아버지[김명수]가 다리를 절었어. 너 기억 못하는구나? 오른쪽 다리가 좀 짧아. 소아마비 같은 게 아니라 어렸을 때 축구하다가 복숭아뼈를 다친 거야. 치료를 제대로 못해서 염증이며 고름이 생기다가 다리가 짧아진 거지. 그래서 사실 엄마[현영숙]는 아빠랑 결혼하기 싫었대.
근데 외할아버지[현창묵]가 좋다고 하셨어. 영적 기운으로 풀이를 해보니 딱이더래. 외할머니도 그렇게 썩 반대하지는 않았고.
4. 도둑맞은 금시계
그것만 생각하면 참… 너희 외할아버지[김명수]는 평소에는 말씀이 없으셨어. 술이 들어가야지만 얘기를 하는 스타일이셨지. 근데 나는 그게 너무 싫었어. 어렸을 때부터.
술 마시고 들어오면 "송자야! 양말 벗겨라!" 그러셔. 내가 막내니까. 근데 아빠[김명수] 다리가 불편하니 잘 벗겨지지 않았어. 애기 힘으로는 힘들었지. 그게 엄청 싫었어.
표현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었어. 그래서 나는 우리 아빠[김명수]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을 안 했어.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은 많이 받았지만, 아빠의 사랑은 별로 못 받았다고 생각했지. 근데 후에 생각해 보니까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더라고.
Q. 어떤 거야?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사랑이었구나, 이런 거.
집에서 조금 내려가는 소도시에 오일장이 서. 사람들이 팔 거 챙겨가지고 다 내려와. 우리도 새끼돼지 같은 걸 팔려고 장에 갖고 오는 거야. 장에 가면 먹을 것도 많고 볼거리가 많잖아. 그래서 소 타고 장에 꼭 따라갔어. 그렇게 팔 거 다 팔고, 장 볼 거 다 보고 식당 가서 외식했거든.
가면 아빠[김명수]가 음식을 하나하나 집어서 먹여 줬어. “이거 맛있어. 이거 먹어. 많이 먹어.” 그 기억이 제일 강렬해.
나중에 내가 한국에서 돈 벌어서 고향에 다시 돌아갔잖아. 그때는 너네 아빠랑 결혼할 생각을 못 했었어. 아니 안 했었지. 스물네 살 때. 그때 가면서 어렵게 번 돈 가지고 엄마[현영숙] 금반지랑 옷 사고. 아빠[김명수] 주려고 금시계를 샀어.
되게 비쌌어. 한 달 월급을 다 주고, 통 크게 썼지. 내가 “아버지, 이거 시계 차세요” 하고 채워드렸는데, 아빠[김명수]가 울더라고. 자식한테 그런 걸 처음 받아봤대.
Q. 외할아버지는 얼마나 좋았을까? 완전 아기였던 막내딸이 다 커서는.
너무 좋아하셨지. 우시는 걸 보고 그걸 알았어. 근데 그 시계, 도둑맞았어.
비싼 시계라고 아빠[김명수]가 차고 다니질 않았어. 그때 큰이모가 숯 공장을 했었거든. 아빠가 거길 지키고 관리도 했는데, 너희 이모가 시계를 집에 두고 가라고 했어.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아버지, 시계를 집에다 놓고 가세요” 그런 거야.
근데 그때 하필 너희 이모네 집에 도둑이 홀딱 든 거야! 큰이모 돈, 큰이모 패물, 외할아버지 시계 다 도둑맞았어. 그때 엄마[현영숙] 금반지도 놓으라 한 걸 현영숙 씨가 고집부려서 차고 갔었거든. 결국은 그 반지만 남았어.
아빠[김명수]는 얼마나 서운했겠니? 내가 그날 채워줬을 때. 그때 딱 한 번 차고 도둑맞았으니.
Q. 나는 외할아버지[김명수] 돌아가셨을 때가 기억나. 그때 엄마 엄청 울었었어. 돌아가셨단 전화 받고.
너무 속상했어.
Q. 뭐가 속상했어? 장례식에 못 가서?
그냥 죽어서. 세상에 아빠가 없다. 아빠가 없다.
Q. 그때 엄마도 엄청 어렸어. 지금 내 나이 때쯤 아닐까?
30대 초반이었을 거야. 너보단 조금 더 먹었을 거야. 요즘은 엄마[현영숙]가 돌아가시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런 생각만 해도 슬프고. 그래, 사람이 만년 살 수는 없는 건데, 그래도.
5. 씨잉어
Q. 둘째 외삼촌[김문천]은 완전 낭만의 사나이잖아. 난 문천삼촌 놀러 올 때 좋았거든. 맨날 배 태워주고, 낚시하고. 나 고등학교 때는 카프카 책 들고 가서 문천삼촌 배에서 책도 읽고 그랬는데.
오빠[김문천]은 감성적인데 FM이야. 완전 고지식해. 그때 대학교 가서 공무원 했으면 진짜 잘했을 거야. 그랬으면 집안 자체가 또 다르게 풀렸겠지. 근데 여자한테 빠져가지고.
Q. 진짜? 미남의 숙명인가?
결국은 시험 볼 자격을 박탈당했지. 사귀던 지지배가 어느 날인가 갑자기 “이제 나 너 안 볼 거야” 했나봐. 헤어지자고 한 거야. 왜냐고 물어봤는데 만나주지도 않고 이러니까, 오빠가 여자 기숙사를 찾아간 거야.
그 일 때문에 학교에서 졸업장도 못 받을 뻔했어. 둘째 이모랑 할머니랑 학교에 가가지고 사정사정해서 겨우 받았잖아. 대학교 시험도 못 보고. 시험 봤으면 붙었겠지. 수학도 잘하고 역사도 잘했으니까.
Q. 문천삼촌은 왜 그렇게 낚시를 좋아해?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물고기 잡아서 뭘 하려는 게 아니라 낚시 자체를 즐기는 거야. 낚싯대가 없으니까, 대나무 있지? 대나무 아니면 싸리나무. 거기다가 줄 대가지고 낚시대도 직접 만들었어.
나는 되게 싫었어. 집 옆 저수지가 엄청 컸거든. 거의 유원지야. 사람들이 소풍이나 야유회 하러 많이 찾아오고 그랬어. 어쨌든 저수지니까 고기가 많을 거 아냐. 그러면 학교 가기 전에 오빠가 채발을 물길에 풀어두는 거야. 그리고 자기 밥 먹고 올 동안 나더러 덫을 지키라고 했어.
Q. 여동생한테 짬처리시켰네.
지키고 있는데 오빠[김문천]는 안 오지, 애들 보면 다 학교 가고 있지, 마음은 급하지… 난 비린 거 지금도 싫어하잖아. 미꾸라지 지금도 안 먹는데. 만지기도 싫어.
근데 오빠가 그걸 잡아 오잖아? 그럼 친할머니[김상희]가 거기에 소금 뿌려가지고 하나하나 씻어. 창자도 다 빼고. 그렇게 처리한 거 먹을 만큼 먹고 나머지는 지붕 위에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거기다 말리는 거야. 겨우내 튀겨 먹기도 하고. 그러고 집에 들어가면 비린내가 엄청 나.
Q. ‘저거 낚지만 않으면 안 먹어도 되는데’ 이 생각 엄청 했겠네. (웃음)
근데 나도 딱 한번 물고기 잡아본 적이 있어. 언젠가 엄청 큰 씨잉어가 거기에 있는 거야. 종자 잉어가. 비가 많이 오니까 방류를 했는데, 물을 갑자기 확 푸니까 다른 데서 떠내려온 거지. 우리 집이 강 상류여서 깨끗한 물이었거든.
그날도 아빠[김명수]가 술 심부름을 시켰던가? 심부름 가다가 봤는데 이만한 게 뭐 하얀 게 떠내려와. ‘어, 저게 뭐지?’ 봤더니 물고기더라고. 그렇게 싫어했으면서도 그건 욕심이 났었나 봐. 넓은 널빤지 위에서 물고기가 떠내려올 때까지 기다렸지. 그 물고기도 급방류하니까 정신이 없었는지 나한테 잡힌 거야. 엄청 큰 잉어였어. 그걸 어떻게 집까지 갖고 갔는지 몰라.
Q. 무슨 태몽 같아. 얼마나 뿌듯했을까?
신나서 달려가니까, 친할머니[김상희]가 막 “아이고! 너무 잘했다!” (웃음) 완전 잔치였지. 잉어가 엄청 컸어.
거긴 완전 일급수였어. 모래무지도 있고, 산천어도 있었어. 연구하는 데였거든. 수질이 좋고 물이 많고. 그러니까 우리 살던 그 위로 더 올라가면 거기도 십 리인가 더 올라가야 돼. 그럼 완전 산골이야. 산이 높기도 했고, 거기서 샘물이 나오기도 했지.
그렇게 깨끗하니까 호랑이가 살지. 러시아 변경에 훈춘시라고 있거든. 거기서 얼마 전에는 호랑이가 발견됐대. 방생된 호랑이가 엄청 많아. 자연보호구역이거든.
엄마[현영숙]가 살던 데가 그쪽이랑 가까웠지. 엄마가 어렸을 때는 러시아군도 봤었대. 우리 외할아버지[현창묵]가 엄마[현영숙]한테 그랬었대. 눈 파랗고 코 큰 사람이 오걸랑 나가지 말고 집 안에 있으라고. 그게 무슨 소리일까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러시아군 이야기였던 것 같아.
6. 사탕, 손수건, 담배 다섯 개비
Q. 문천삼촌은 살짝 외할아버지[김명수]를 닮은 건가? 그 꼿꼿한 느낌?
아냐. 엄마의 친할아버지, 김태호 씨랑 똑 닮았어. 옷에 먼지 묻으면 우리는 손바닥으로 탁탁 털잖아. 태호 씨는 손가락으로 튕기면서 털었어. 얄밉게. (웃음) 태호 씨는 머리맡에 오동나무로 만든 나무 장을 두고 잤어. 상자 네 군데에 놋 장식이 있거든. 그게 태호 씨의 보물 상자. 장식을 돌려서 뚜껑을 열면 거기 사탕, 손수건, 담배가 딱 있어.
Q. 무슨 독립운동가들 들고 튈 수 있게 만든 상자 같네. (웃음)
거기에 항상 담배가 다섯 개비 있어. 마는 담배야. 한 대 피우면 다시 말아서 한 대 채워놔. 다섯 대를 항상 유지하는 거야. 그렇게 꼿꼿했으니 할머니[김상희]는 얼마나 어려웠겠어. 할머니[김상희]가 그래서 또 북한 다니면서 장사를 했잖아. 그 장사한 돈으로 먹고 살고, 엄마[현영숙]가 번 돈으로 먹고 살고. 힘들었지.
Q. 김태호 씨는 직업이 없었어?
응. 없었지. (웃음) 그래서 할머니[김상희]가 농사지은 거 쌀이니 뭐 야채니 이렇게 쌀 퍼다 딸한테 주잖아? 할아버지[김태호]가 난리 난리를 쳤어. 딸년들 왜 퍼다 주냐고. 자기 자식인데.
그래서 할머니[김상희]가 그걸 퍼서 어디 숲에다 갖다 숨겨놔. 나중에 그거 갖고 버스 타서 딸 집으로 가는 거야. 지금 또 생각해 보면 얼마나 딸이 보고 싶고, 주고 싶겠어. 내일 혼나든 말든 그냥 보고 싶은 거지.
근데 할아버지[김태호] 입장도 이해돼. 본인이 경제적인 가장 노릇은 못 하고, 그렇다고 아들[김명수]이 건강해서 그 짐을 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 며느리[현영숙]가 감내하고 있는 거잖아. 며느리가 식구를 바리바리 아홉 식구를 먹여 살리는데 그거를 이 마누라라는 사람이 퍼서 딸을 주니까, 며느리 보기 좀 그랬겠지.
Q. 엄마가 엄마 할머니[김상희]의 손맛을 엄청 좋아했잖아. 지금 다시 딱 하나 먹을 수 있으면 뭘 먹고 싶어?
도토리묵. 산에서 도토리 주워서 직접 만드는 거야. 얼마나 정성이야. 근데 어릴 때는 그 쓴맛이 싫었지. 안 먹겠다고 하면, 맛있는 거라고 먹으라고 다들 그랬었어.
Q. 근데 그 쓴 걸 왜 다시 먹고 싶어?
쑤는 걸 봤잖아. 가마솥에다가 도토리묵 젓고, 네모난 밥상에다가 비닐을 깔고, 대야에 쑤어둔 도토리묵을 쏟아 넣는 거야. 그렇게 턱, 놓으면 그게 팔랑팔랑 움직여. 대야 자국 그대로 남은 채로. 할머니가 이제 써는 거지. 썰어둔 묵은 물에다가 넣고.
그리고 또 하나는 엿. 엿은 밤새 만들어. 낮에 시작해서 새벽에 끝나. 그러면 그거 둘째 오빠[김문천]이랑 엿 다 퍼낸 뒤에 누룽지처럼 붙은 거 있지? 그거 뜨거울 때도 떼어먹으려고 같이 기다리고 그랬어.
지금은 그런 거 못 먹지. 어디서 팔지도 않잖아.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소설 『타임셸터』에는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전직 장거리 달리기 선수가 등장합니다. 그는 환자들을 위해 과거의 모습 그대로 재현된 '1970년대의 도시'에서 안락한 노년을 보내죠.
비틀스의 열혈 팬인 그는 존 레논이 살해되기 직전인 1979년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결코 1980년을 살 수 없는 그는, 기억의 저편에서 들려오는 존 레논의 살해 소식을 일종의 불길한 예언이나 꿈의 조각처럼 수용합니다. 그는 레논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1970년대에 멈춰 선 도시의 울타리를 넘어 미래(현실)를 향해 질주하기에 이르죠.
“이 경우 달리기 선수는 단지 울타리 하나가 아니라 삼사십 년을 훌쩍 뛰어넘어버렸다.” (135쪽)
기억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그렇기 때문에 수십 년을 가로지를 수 있는 구동력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는 구전, 빈틈 많은 기억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강력하게 매혹하는 법이니까요.
어머니와의 인터뷰를 정리하며 문득 엉뚱한 생각에 잠겼습니다. 주술과 저주, 거대 씨잉어와 은둔하는 도인들이 사라진 시대이기에, 엉뚱한 소문들이 더욱 매력적인 것 아닐까 하고요.
동시대의 한 부분은 조 바이든이 사실 가면을 쓴 짐 캐리라거나, 아리아나 그란데가 아드레노크롬을 사용한다는 소식을, 2020년대 한국에서 부정선거가 이뤄진다는 소식을 꽤나 진지한 삶의 동력으로 삼고 있습니다.
빈틈없는 논리와 완벽한 사실 관계는 너무도 매력적이지 않아요. 앞뒤가 탁 들어맞는 인과율? 정상적이고 행복한 사랑? 로고스의 축복? …. 누가 그런 것을 원한답니까?
아무튼, 25년이라는 시차를 둔 어머니와 저의 유년기는 이토록 판이합니다. 가가라이브와 지식인, 슈 게임과 도시 전설 속에도 신비로움이 존재할까요? 25년이 다시 흐른다면, 제 유년의 파편 역시 붙잡고 싶은 조각으로 남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