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4호 > 여행수첩 >
머피와 함께한 날
👤매구씨
한국 산악자전거의 성지!
장장 45km의 장쾌한 다운힐!
시간이 멈춰있는 길, 닥치고 운탄고도!
뭐 어쩌고저쩌고, 자전거쟁이들이 수식어를 잔뜩 붙여놓은 운탄고도. 나름 산악자전거 애호가이므로 언젠가 꼭 가보리라 하는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집에서 멀기도 하고, 늘상 혼자 나서는 독립군이라 선뜻 동력이 잘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어찌어찌 발심을 내고 날을 잡았다.
05:30 출발
09:30 고한역 도착
아니, 그러게 왜 평소에 먹지도 않는 아침밥을 먹겠답시고 식당엘 가서는. 예상보다 꽤 뜨거운 볕에 뱃속은 더부룩, 초반 컨디션이 아주 바닥이다. 처음부터 긴 오르막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겁먹은 거지. 뱃속을 비운채로 당 정도만 보충하고 가볍게 출발했어야 했다. 기껏 골라 찾아 간 식당은 실패였다. 밥도 정말 맛이 없었을 뿐더러 주인 영감의 불친절에 기분까지 잡쳤다. 콧구녕만한 식당에서 혼자 온 손님이라고 홀대. 거기다가 나는 집밥 같은 아침밥을 원했는데 이보시오 영감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집밥이잖아.
이날 여기서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집밥’이 어떤 의미인지를 비로소 알았다. 대개 우리가 식당에서 기대하는 집밥 같은 밥이란 형태는 집밥이되 맛과 간의 균형이 잘 잡힌 솜씨 좋은 손맛으로 지은, 심지어 깨끗하고 정갈한 밥과 반찬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식당의 밥은 정말 지나치게 집밥이었다. 저그 집에서 대충 차려 먹는 집밥. 세상의 사장님 여러분, 조미료를 갖다 부어도 좋고 양념을 처발라도 좋으니 밥은 제발 좀 먹을만하게 만들어 달라고! 오죽하면 내가 밥을 남겼을까! (나는 잘 먹는다. 어지간하기만 하다면 집에서건 밖에서건 밥을 잘 남기는 법이 없다.)
그 와중에 옆자리 손님 셋은 아침부터 술판이다. 무슨 일을 하는지 말끔한 정장차림에 소주 빈 병이 벌써 여러 병. 씨근거리며 떠드는데, 주인 영감은 손님을 더 받기 싫다는 건지 사람들 밥 먹고 있는 와중에 안에서 문 걸어 잠그는 괴상한 짓까지. 세상에 하다하다 주인이 진상인 식당도 있네.
그런데 이런 젠장, 밥값을 내려고 보니 카드가 없어요. 지갑 안에는 잔고도 없는 체크카드만 덜렁. 설상가상이다. 아마도 어제 집 앞 한강마트 갔다가 추리닝 바지 주머니에 그대로 넣어 놓은 모양이다. 계좌이체를 하려고 폰을 꺼냈더니 이번엔 배터리 부족. 자동차에 달린 충전 케이블도 고장. 엎친 데 덮치고 자빠지고...
고한역에서 만항재 정상까지 내비게이션 상으로 50분이 나오길래 넉넉하게 한 시간을 잡았는데, 핸드폰 충전하느라 차 공회전 시켜놓고 한참을 절절매고, 기껏 출발해서 가다 보니 차에 카메라를 두고 온 것이 떠올라 다시 원점으로 빠꾸, 더부룩한 뱃속에 좀처럼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아 또 중간에서 몇십 분 지체. 만항재에 도착해 보니 12시 10분이었다. 예상대로라면 11시 전에 도착했어야 했다.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걸까. 곳곳에서 덜거덕 삐그덕.
“운탄고도 가세요?” 친구들과 여럿이서 로드 타고 올라온 젊은 친구가 말을 걸어온다. 그렇다니까 부럽단다. 자기도 산악자전거로 한 번 갔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고. 그러게, 나도 재미있었으면 좋겠네. 그런데 나도 초행길이라 해 줄 말이 별로 없다오.
“조심하세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만나면 다들 하는 인사다. 자전거로 운동을 하다 보면 더러 다치기도 하니, 이런 인사는 반 이상이 진심이다. 다만 사고는 산악보다 로드가 크게 난다. 산악자전거가 자주 처박히고 넘어지고 더 다칠 것 같지만, 로드는 사고가 나면 무섭게 난다. 산악자전거는 산에서 속도가 나봤자지만 로드는 내리막에서 속도 붙으면 거의 5, 60km가 된다. 그러다 낙차라도 하게 되면 아스팔트에서 맨몸으로 그 속도를 다 받아내야 한다. 게다가 자동차랑 엮이는 사고도 더러 생긴다. 그저 오버페이스 하지 말고 조심조심. 산악이나 로드나 다치지 않고 오래 타야지.
운탄고도는 예상보다 노면이 거칠다. 군데군데, 낙차하면 데미지가 꽤 있을 것 같은 굵은 파쇄석이 깔린 구간도 많고, 비가 많이 왔었는지 얕은 물골들도 보인다. 내리막에 속도가 붙으니 오히려 웬만한 싱글 트레일보다 더 긴장된다. 그런 길에서는 가속도가 붙은 상태로 돌 하나만 잘못 밟아도 그냥 미끄러질 테니까. 경사각이 꽤 부담스러운 업힐도 중간중간 섞여 있다. 결국 화절령쯤에서 체력 압박으로 잠시 멈춰서는 사북으로 그만 내려갈까 갈등하기도 했다. 아니, 죄다 다운힐이라더니 이거 꽤 만만찮구만? 평면 지도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복병 같은 업다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포기하면 언제 다시 오겠느냐 셀프 가스라이팅을 시전하며 다시 힘을 내 본다. 그런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게 맞아. 거기서 자존심 접고 중도 포기했어야 했어.
도롱이 연못 앞 개활지. 여기서 조금 더 가면 화절령이다.
결과적으로는 체력보다 시간이 더 큰 문제였다. 정말 중대한 문제였다. 도대체 뭔 생각으로 시간 계산을 한 거냐. 시간은 오늘 만난 여러 명의 머피 중에 가장 큰 녀석이었다.
계획상으로는,
14:00 예미역 도착, 소요 시간 3시간 예정.
14:56 기차로 고한역으로 출발.
17:00 차로 다시 예미역에 도착해서 자전거 싣고 속초로 출발.
가는 길에 경로를 틀어서 해 지는 건의령 풍경을 그윽하게 감상하고, 강릉에서 곰치국으로 저녁을 해결한 뒤 속초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때쯤 이미 기차에 있어야 할 나는 오후 네 시가 넘도록 운탄고도 위에서 자전거로 죽어라 다운힐 중이었다.
사족: 새비재를 넘고 나서 계속되는 마지막 콘크리트 포장 길은 좀 별로였다. 차라리 비포장 임도면 재미라도 있지, 브레이크를 놓아버릴 수도 없는 어정쩡한 급경사 각의 어정쩡한 포장도로. 이거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계속해서 눈앞에 함백역이라는 낯선 이정표가 나타났다. 내 계획에는 함백역이라는 지명이 없었는데? 나오라는 예미역은 온데간데없고 함백역은 무슨 역이람? 뭐, 어느 역으로 가든 기차만 탈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운치 없고 무지막지한 다운힐을 견디고 16시 20분쯤 함백에 도착했다. 그런데 정작 동네에는 함백역이라는 이정표가 없었고,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도 모른단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나: 함백역은 어디로 가요?
길 건너 지나가는 학생(으로 보였음): 몰라요. 여기는 역 없어요. (뭔 말이야, 오는 내내 본 이정표가 몇 갠데.)
나: 함백역은 어디로 가요?
지나가는 아저씨: 아, 저는 여기 안 살지만 검색해 볼게요. (정말 친절한 사람. 감사합니다. 하지만 검색은 실패.)
나: 함백역은 어디로 가요?
다리를 건너가던 할머니: 그기... 함백역은 인자는 역이 안 해요. (할머니들의 화법은 재미있다.) 기차 탈라믄 저만치 내려가서 예미역으로 가야 돼요. 한참 가야 돼요.
그렇게 지금은 폐역이 되어버린 함백역을 지나 드디어 예미역에 도착했다. 플랜B였던 16시 08분 기차는 떠난 지 오래였다. 예미역에서 고한역으로 가는 기차 시간표는 다음과 같았다.
12:22
14:56 ― 플랜A
16:08 ― 플랜B
21:51
다음 기차는 21시 51분. 맙소사. 6시간 가까이 남았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숙소까지는 언제 들어가나. 이대로라면 새벽 두세 시가 돼서야 속초에 도착한다. 멘탈이 바삭바삭 깨져 나간다.
버스는 없어요? 동네 가게에 물어봤더니 함백에서 고한 가는 버스는 아침 시간에 하루 한 번. 이제 없다는데. 아니, 도대체. 듣자 하니 정선군에서는 예미리를 MTB 마을로 조성해서 라이더들에게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하고 그렇게 지역 관광자원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켜 보겠다더니만, 정작 와보니 문 닫고 영업도 안 하는 썰렁한 MTB 호스텔, 자전거족이라고는 나 말고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버스도 없고 기차도 없고.
한 이삼십 분 갖은 궁리를 하다가 별수 없다, 자전거로 꼬인 것은 자전거로 풀자. 결국 자전거로 고한까지 되돌아가기로 했다. 지도상으로는 30km, 자전거로는 두 시간쯤. 국도를 타고 우회할 생각이라 이미 체력이 바닥인 점을 감안해서 예상 소요 시간은 넉넉하게 두 시간 반으로 잡았다. 흠, 늦어도 저녁 7시, 8시 전후에는 도착할 수 있겠군. 도대체 다음 기차가 밤 열 시라는 게 말이야 방구야.
문제는 이미 좀 늦은 시간인 데다가 남은 배터리가 30%라 심리적으로 압박이 컸다는 것. 도중에 배터리 나가면 꼼짝없이 20kg쯤 되는 전기 산악자전거를 인력으로 밟고 가는 중노동 예약이다.
잠깐! 여기서 잠깐 변명을 해두자면. 뭔 대단한 라이딩을 한답시고 너스레를 떨더니 전기 자전거였어? 라고 눈 흘기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설명 몇 줄 하고 넘어가려 한다. eMTB란 오토바이나 생활 전기자전거같이 당기면 저절로 굴러가는 스로틀 방식이 아니라 PAS, 즉 페달 어시스트 시스템이다. 발로 페달링을 해야만 그 힘의 일부를 전기가 보조해 주는 개념이다. 거기다 배터리 용량에 따라 등급이 갈리는데, 내 자전거처럼 출력이 약한 경량인 경우 함부로 배터리를 소진하다가는 돌아오는 길에 배터리 아웃으로 초주검이 된다. 무동력은 짧고 굵게, eMTB는 힘은 덜 들지만 거리와 시간을 길게 가져가는 식이다. 무동력으로 산 하나 넘을 걸 시간을 길게 잡아 서너 개의 산을 넘어 다닌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전기를 쓴다고 공짜로 날라댕기는 건 아니라는 거. 전혀 엄살이 아니라는 거.
아무튼 초반 10km 가까운 오르막을 배터리 아끼겠답시고 1단으로만 주행했다. 미련 곰탱이. 아마 이때 그나마 남은 체력을 거의 소진해 버린 것 같다. 체력과 배터리 잔량의 등가 교환이냐. 그나마 기 센 오르막은 아예 엄두도 못 내고 그냥 끌바①로 걸었다. 그러니 시간은 점점 지체되고, 급기야 민둥산역을 지날 때쯤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야간 라이딩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으므로 라이트도 후미등도 없음. 믿을 건 바지 뒤쪽에 달린 야간 반사 띠 두 줄뿐. 완전 스텔스 자전거② 상태로 깜깜한 국도를 달렸다.
터널 안은 극한 체험이다.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거의 미사일 지나가는 소리처럼 어마어마했다. 터널을 빠져나오고 사북 가까이쯤 왔을 때는 자전거 배터리가 꺼졌다. 이제 망한 거다. 20kg짜리 전기자전거는 동력이 끊어지는 순간 천근만근이 된다. 자전거의 무게는 물론이고 체인으로 연결된 모터의 저항까지 순전히 다리 힘으로 돌려야 한다. 되로 받고 말로 내주는 느낌.
그 와중에 둘째한테 전화가 왔다. 아무리 힘들어도 꼬맹이 전화를 안 받을 수는 없지. 아빠 강원도 또 갔네? 자전거 타러 왔지롱. 어쩌고저쩌고, 잠깐 통화하다가 ‘아빠 지금 자전거 타는 중이라 급한 일 아니면 좀 있다 전화하께’ 말하자마자 핸드폰이 방전되어 먹통이 됐다. 그래, 여태 버틴 것만도 다행이지.
아무튼 동력 끊기고 내비까지 먹통이다. 길 잃음. 두 번 잃음. 아니, 조금 전에 본 표지판에는 고한까지 2km라더니만 가도 가도 끝이 없네. (사실 이때 고한 시내로 간다는 것이 엉뚱한 방향의 산을 오르고 있었다. 이것도 집에 돌아와서 지도를 복기해보고서야 알게 된 사실.) 낮이면 방향이라도 가늠이 되겠지만 해는 지고 깜깜한데 동서남북이 오리무중. 도무지 분간이 안 된다. 생판 처음 온 동네에서 제대로 멘탈 털리고 탈진할 지경에 이르렀다. 거기다 길 물어본 택시 기사는 뭔 길을 그따위로 알려주냐. 왼쪽 길이 아니고 오른쪽으로 꺾었어야 했잖아! 그 양반 운전하는 사람 맞아?
여하튼 배터리 나간 자전거를 맨다리로 밟으면서 네비도 없이 물어물어 간신히 밤 9시 30분, 고한역 주차장에 삭은 미역 꼴로 기진맥진 도착. 헤이, 7시, 8시면 도착하겠다더니? 내 고집과 무모함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차라리 혼자서 야간 등반을 하는 게 백번 낫지. 아니야, 그래도 21시 51분 기차를 탔으면 아직 도착도 못 했을 거야. 본격 원 테이크 영화 '정신 승리, 후회는 없다.' 내가 감독이고 주인공이다.
자전거를 차 뒤에 달고 운전석에 앉는데 온몸의 감각이 어색하다. 늘 앉던 운전석이 뭔가 불편해서 의자를 앞으로 당기고 등받이도 세워 보고. 하루 종일 거의 열 시간을 자전거 안장 위에 앉아 있어서 그런가 보다. 손, 발, 허리, 어깨, 목은 물론이고 엉덩이는 거의 짓무를 지경이다. 저녁으로 곰치국을 먹겠다고? 허기가 져서 메뉴를 고르는 일도 사치다. 태백에서 동해로 넘어가는 어느 길목에서 초코바 두 개를 샀다. 그래도 이제는 고속도로에 올라서 차로 달리기만 하면 된다. 얼추 시간을 보니 자정 전에는 도착하겠구만. 역시 그 막차를 안 타기를 잘했어. 흠흠.
그리고 아마도 동해에서 강릉 어느 사이쯤 되었을 듯한데, 운전 중에 언뜻 룸미러를 보니... 어라? 트렁크에 걸어서 설치하는 후미형 자전거 캐리어 때문에 항상 뒷유리 쪽이 가려져서 불편했는데, 이상하리만치 뒷유리가 훤히 잘 보인다.
오만 생각이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간다. 만약 트렁크에 달려 있던 자전거를 어디엔가 흘려버린 거라면? 그리고 혹시 오밤중에 다른 차가 길바닥에 떨어진 자전거를 못 피하고 사고라도 난다면?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강릉 근처 어느 나들목 갓길에 급히 차를 세우고 나가보니, 세상에. 뒷바퀴를 묶은 벨트가 끊어지면서 뒷바퀴가 캐리어 밑으로 빠지는 바람에, 프레임을 잡고 있던 클립이 무게를 못 이겨 놓쳐버린 듯했다. 앞바퀴만 벨트에 묶인 채 자전거는 차 뒤에 매달려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한 일이십 분쯤 그리 끌려온 듯했다. 핸들 바 왼쪽은 그립 채로 갈려 나갔고, 안장도 흡사 칼로 자른 모양새였다. 뒷바퀴는 왼쪽 사이드블럭 깍두기가 다 닳아서 짝짝이가 되어 있었다. 하긴 핸들 바도 안장도 시속 100km로 아스팔트 바닥에 갈리며 끌려왔으니… 심지어 안장은 가죽 리폼한 뒤 첫 라이딩이었다고! 리폼한 보람도 없이 결국 장렬하게 전사해 버린 셀레스트라토스. 좀 비싼 안장인데 말이다. 에라이. (자전거야 형편없이 상해버렸지만 앞바퀴 벨트라도 묶여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십년감수. 모골이 송연하다.)
이 사태의 원흉. 끊어진 뒷바퀴 쪽 고정 벨트.
칼로 자른 듯 갈려 나간 안장. 가죽 리폼한 지 며칠 안 됐는데…
역시 갈려나간 왼쪽 그립. 핸들 바도 5cm 정도 같이 갈려 나갔다.
양쪽 비교. 원래는 오른쪽처럼 생긴 그립이었다.
되짚어 생각해 보니 차가 뭔가 이상하게 꿀렁거렸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상상이나 했겠냐고. 단순히 길이 꿀렁거리나 싶었지. 짐작건대, 아마 그때 클립이 떨어진 게 아닐까.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경찰차 하나가 번쩍번쩍 뒤에 와서 서더니, 마이크로 뭐라고 떠들어대는 게 아닌가. 대충 들어보니 고속도로에 서 있지 말고 나가서 정리하라는 말 같았다. 아니, 떨어진 자전거를 다시 올려야 나가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수습하고 있는 사람한테 뭔 씨도 안 먹힐 잔소리를. 신경질이 나서 개소리할 거면 그냥 갈 길 가라고 막 소리를 질렀는데 아마 안 들렸지 싶다. 문 닫고 앉아서 나와보지도 않더라니까. 그 정도면 그냥 야매로 순찰하는 거 아냐?
아무튼 그렇게 생난리를 치고 숙소에 도착하니 거의 자정. 늦었지만 맥주 한 캔과 와사비 아몬드로 오늘을 기념하고 곯아떨어졌다.
........... 매구야, 이걸 계획이라고 세운 거냐?
호스텔 주인장은 이렇게 쪽지와 키만 남겨놓고 사라졌다.
그래 뭐, 그래도 살아서 돌아왔으니까. 다친 데 없이 무사히 돌아왔으니까. 비록 자전거는 망가졌지만 몸은 조금 피곤할 뿐 무너진 곳은 없으니까. 안장이고 핸들 바고 그립에 타이어에 또 어디가 어떻게 됐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단골 바이크 샵 사장님이 다 해결해 줄 테니까. 부서진 건 새로 갈아 끼우면 되니까. 그래서 나는 돈만 좀 더 들면 되니까. 돈만. 그래서 이딴 무용담을 자랑삼아 떠들고 있으니까. 그래 뭐, 끝이 좋으면 좋은 거지 뭐.
자, 그래서 오늘 만난 머피는 모두 몇 명이었지? 징글징글한 머피들은 어디 숨어 있다 오늘 죄다 기어 나온 건지 입이 있으면 한번 말해봐라, 이 놈들아. 여하튼 일생에 잊을 수 없는 대단한 날이었다. 기념일로 지정해야지. 정말 데이 오브 데이다, 염병…
사족: 편의점 맥주 가격 유감. 네 개를 사면 만이천 원인데 하나만 사려면 사천오백 원이라니. 무슨 가격정책이 그 모양이야. 솔직히 네 캔을 안 살 수가 없잖아! 아닌 척하면서 거의 강매 수준. 맥주 과소비를 조장하는 편의점 가격정책을 규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