❶ 에디터스 레터 | 월간차지의 창간에 부쳐
❷ 좌담 | 조커는 크고 록조는 작다: 빅 딕 에너지의 문제
❸ 연재소설 | 곡예사 톰의 실종
❹ 이달의 빈지와칭 | 붙박이 남자 권오중의 알리바이
❺ 여행수첩 | 자동차, 고소공포증, 자전거
❻ 교환일기 | 취향의 형성에 관한 교신
❼ 불평불만 | 팥빙수 아브젝시옹
❽ 직업탐구 | 어느 테크 스타트업 OL의 수요일 오후
❾ 이달의 컴필레이션
❿ 내 운명을 알려다오
⓫ 픽션 앤 프랙티스: 결핍 워크숍 프로토콜
⓬ 독자차지
이달의 빈지와칭
1. 시트콤은 비극이다
시트콤은 웃긴 장르가 확실하다. 그러나 시트콤의 세계관은 태생적으로 희극보다 비극에 가깝다. 그것은 급진적인 성장이 금지된 세계이며, 모든 갈등이 이삼십 분 내외의 시간 안에서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일처럼 휘발되어야만 내일의 태양을 맞이할 수 있는 영원회귀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서사의 진보는 이 세계에서 사치다. 시트콤의 첫 번째 철칙은 다음 회차, 아니 달 뒤에 방영될 회차에서도 시청자가 그 세계를 오늘 본 회차와 같은 온도로 인식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복원이 실패하는 순간 시트콤은 무너진다.
나는 아무래도 모든 서사 장르 가운데 시트콤을 가장 자주 보고 좋아하는 게 분명하지만, 에피소드 단위가 아니라 작품 단위로 카운트한다면 사실 몇 개 본 것도 없다. 〈프렌즈Friends〉(1994~2004), 〈오피스The Office〉(2005~2013), 〈브루클린 나인나인Brooklyn Nine-Nine〉(2013~2021), 〈모던 패밀리Modern Family〉(2009~2020), 〈논스톱〉(2000), 〈뉴 논스톱〉(2000~2002), 〈레인보우 로망스〉(2005~2006),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 〈지붕뚫고 하이킥〉(2009~2010)… 정도가 다다! 본 것을 영원히 보고, 또 보고, 계속 보고, 대사 사이의 호흡이나 방청객의 폭소 타이밍을 외울 정도로 영원히 되감아 보는 것이다. 그러니 시트콤을 좋아하면서도 어디 가서 시트콤 좀 본다고 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나열한 작품들의 에피소드를 낱개로 카운트하면 못해도 오백 편은 본 셈이 아닌가? 시트콤은 드라마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지리하니까.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같은 농촌 드라마가 아닌 이상에야… (그리고 사실 농촌 드라마는 서사의 형식성이나 사이클 측면에서는 시트콤과 아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새롭게 보기 시작해서 완전히 빠져 있는 시트콤이 있는데 바로 〈순풍산부인과〉(1998~2000)다. 자기 전에 거의 열 편씩은 보고 자는 것같으니 빈지와칭이 확실한데, 문제는 총 682회나 방영된 거대한 작품이라 이 기세로 매일 몰아봐도 꼬박 68일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만 해도, 매일 열 편씩 보기 시작한 지 한 달 정도가 되었으니 전체의 절반 정도는 본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유튜브에서 옛날 시트콤을 올려줄 때 보통 한 편을 두 개로 쪼개서 편집해 올린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모두가 알고 있는 바대로, 시트콤 한 편에는 두 개의 플롯이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튜브 플랫폼 속의 〈순풍산부인과〉는 사실상 1364회짜리 시트콤인 셈이고, 나는 앞으로 100일 이상 더 지금의 기세를 지속해야만 이 지독한 시트콤을 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완전히 구글의 알고리즘에 편성을 의탁한 채 무작위로 자동 재생되는 회차를 주는 대로 받아먹고 있어서, 5회 다음에 129회를, 그다음에 380회를, 그다음에 207회를 보는 식으로… 매우 동시대적 셔플법에 따라 이 시트콤을 보고 있는데, (이건 정주행이라 할 수도 없겠어!) 재밌는 건 이렇게 봐도 내가 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프렌즈〉를 생각해 보자. 모니카와 챈들러가 사귀기 전인지 후인지, 로스와 레이첼이 ‘헤어지는 중on a break’ 국면의 전에 있는지 후에 있는지 정도만 알면 사실 섞어봐도 문제는 없다. 레이첼의 출산이라는 거대한 사건조차도 결국엔 센트럴 퍼크Central Perk의 낡은 소파 주변 중력으로 흡수될 뿐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의 직접적인 애정 관계가 메인 플롯이 아닌 회차라면 시즌3 다음에 시즌9를 봐도 상관이 없다. 모니카의 아파트와 챈들러의 아파트가 복도를 사이에 두고 건재하게 마주 보고 있는 이상, 센트럴 퍼크와 ‘건터’가 그 자리에 있는 이상. 오히려 프렌즈의 시청자들이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은 시즌7에서 갑자기 챈들러가 살이 쏙 빠진 채 나타났던 순간이 아니었을까?① 그 시절에는 위고비도 마운자로도 없었을 텐데. 어제와 오늘의 관계성이 달라지는 건 시트콤에서 중요한 게 아니다. 시트콤에서 중요한 건 어제의 세계와 오늘의 세계와 내년의 세계가 항상 엇비슷하다는 것뿐이니까. 그래서 서두에 그런 비장한 말을 한 것이다. 시트콤은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세계라고. 물론 브레이킹 배드? 소프라노스? 그런 것들은 섞어보면 안 된다. 그건 엔트로피를 향해 전진하는 서사물이니까.
〈순풍산부인과〉도 마찬가지다. 꼬박 3년 동안 무려 682회차가 방송되었지만 몇 개의 막만 희미하게 인식하고 있다면 무한정으로 섞어봐도 게슈탈트 붕괴 현상은 도래하지 않는다. 막을 인식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떠난 사람, 그리고 그 자리의 기능을 대체하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을 통해 타임라인의 선후를 구분하는 것이다. 이는 너무나 길고 고단한 회차를 다양한 이유로 버텨낼 수 없었던 배우들의 하차에 의한 것이었다.②
장간 ↔ 송간 ↔ 허간
김찬우 ↔ 이창훈
오소연 ↔ 오태란
※ 장간(장진영 扮, 간호사), 송간(송선미 扮, 간호사), 허간(허영란 扮, 간호사), 김찬우(김찬우 扮, 펠로우급 의사), 이창훈(이창훈 扮, 펠로우급 의사), 오소연(김소연 扮, 의사이자 오지명의 둘째 딸), 오태란(이태란 扮, 의사이자 오지명의 큰딸) 그다음 방법은 애정전선에 의한 조정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표간♡장간 → 표간♡김간
권오중♡오소연 → 권오중♡허간
오혜교♡김래원 → 오혜교♡이창훈
※ 표간(표인봉 扮, 간호사), 김간(장정희 扮, 간호사), 권오중(권오중 扮, 작가), 오혜교(송혜교 扮, 오지명의 막내딸), 김래원(김래원 扮) 더불어 어린이들의 성장 정도에 따라 전반, 중반, 후반을 구분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남의 집 아이가 빨리 자란다 해도 이는 ‘스펙트럼’을 동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쉬운 방법은 아닐 것이다.
[도판] 성장하는 아이들–미달이, 의찬이, 정배–의 스펙트럼
2. 떠나지 않는 자 누구인가? 그런데 이런 식으로 막을 구분하며 셔플-빈지와칭을 하다 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기능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바로 가사 노동과 돌봄노동이다.
〈순풍산부인과〉에는 크게 세 개의 주무대가 있다. (이 구조는 모든 김병욱식 가족 시트콤에서 동일하다.)
회사: 순풍산부인과 (원장 오지명, 의사 김찬우/이창훈/오소연/오태란/원수현, 간호사 김간/표간/장간/송간/허간/김미화)
집1: 미달이네 집 (오지명, 선우용녀, 딸 오미선/오태란/오소연/오혜교, 사위 박영규, 손녀 박미달, 객식구 박영광)
집2: 의찬이네 아파트 (권오중, 김의찬, 하우스메이트 김찬우/이창훈, 객식구 이상인)
※ 오지명(오지명 扮), 원수현(원수현 扮), 김미화(김미화 扮), 선우용녀(선우용여 扮), 오미선(박미선 扮), 박영규(박영규 扮), 박미달(김성은 扮), 박영광(윤기원 扮), 김의찬(김성민 扮, 이상인(이상인 扮)
※ 원수현, 김미화는 오태란의 하차에 맞추어 657회에서 처음 등장했고, 객식구 이상인은 권오중의 하차에 따라 659회에서, 객식구 박영광은 오지명의 하차 이후 667회에서 처음 등장했다.미달이네 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를 떠나지 않았던 두 사람은 선우용녀와 오미선이다. 가장이자 순풍산부인과의 원장인 오지명조차 중도하차했지만 두 사람은 자리를 지켰다. 그들이 미달이네 집에서 ‘집’ 그 자체의 항상성을 책임지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선우용녀가 없으면 밥상이 차려지지 않고, 오미선이 없으면 미달이가 자랄 수 없으니까.
의사와 간호사들은 계속 교체되었다. 김찬우가 떠나면 이창훈이 나타나고, 송선미가 떠나면 허영란이 나타났다. 병원이라는 무대는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조합이 유지되는 이상 같은 방식으로 문제없이 작동했다. 누가 입사하고 누가 퇴사해도 그들이 수행하는 기능은 대체 가능했다. 가족 구성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째 딸 오소연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오태란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그렇다면 권오중은?
보조적인 주무대로 기능하는 의찬이네 아파트에서 구심점이 되는 인물은 이상하게도 권오중이다. 358회에서 애초의 집주인이었던 김찬우가 떠날 때 아들인 의찬이는 함께 미국으로 가지 않고, 세입자이자 단순 동거인이었던 권오중을 따라 한국에 남기로 결정한다. 요즘에야 대안 가족 같은 말로 설명될 수 있겠지만 90년대 말 한국 사회의 가족 규범 내에서는 확실히 튀는 선택이었다. 7년간 만난 피앙세 오소연이 유학길에 오른 것도 권오중의 거처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비록 마지막 회까지 자리를 온전히 지키지는 못했지만, 권오중은 거의 25회차 정도만을 남겨놓은 657회까지 의찬이네 아파트에 남는다. 그는 왜 떠나지 않았을까? 혹시… 떠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3. 프리랜서 작가는 완벽한 알리바이다 오지명의 집에는 90년대의 공고한 가부장제 안에서 이미 노동의 주체로 박제된 여성들, 선우용녀와 오미선이 존재한다. 그들의 노동은 너무나 당연하여 풍경의 일부가 된다.
하지만 의찬이네 아파트는 다르다. 그곳은 아내나 어머니가 부재한 결핍된 공간이다. 김찬우는 가장이며 의사이기 때문에 병원에 있어야 하고, 전처와는 오래전에 이혼하여 교류하지 않는다. 의찬이는 돌봄이 필요한 어린아이다. 의찬이가 미국으로 떠난다면 그곳에서 누가 의찬이의 아침을 챙겨주고, 숙제를 봐주고,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갈 것인가? 권오중이 김찬우를 대신해 쌓아온 의찬이와의 라포르rapport와 정보들은 갑작스럽게 인수인계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또한 이는 혈연관계가 돌봄 관계가 중요한 세계였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김병욱식 가족시트콤의 구조가 결정한 것이었다. 이 (90년대에는) 비정상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초 핵가족이 가족 시트콤의 문법 안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의찬이네 아파트가 계속해서 무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 세계의 운영체제가 되어주어야 했고, 그 역할에 낙점된 것이 바로 권오중이었다.
90년대 후반, 건강하고 호감 가는 외모의 27세 남성이 집에 있으려면 별도의 설명이 필요했다. 실업자나 백수로 보이지 않으면서, 무능력자로 평가절하되지 않으면서 집에 상주하며 아이를 키울 방법. ‘프리랜서 코미디 작가’라는 오중의 직업은 그 유일한 알리바이였다. 만약 권오중이 별 볼 일 없는 백수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가족시트콤의 항상성을 지탱할 공간 하나가 무너졌을 것이다. 무능력, 나태, 가정 위계의 실패. 그의 상태 자체로 의찬이네 집은 문제적 공간이 되었을 것이므로.
[도판] 건강하고 호감 가는 외모의 27세 권오중
권오중이 가사 노동과 돌봄노동을 전담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작가였기 때문이다. 집에 있지만 언제나 일하는 사람, 노동하지만 밖으로 나가지 않는 사람,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재택근무의 명분이 있으며, 동시에 지적 노동자이며 화려한 연예인들과의 친분으로 위신까지 유지할 수 있는 이중성이 그를 정당화했다. 작가라는 전문직 알리바이를 손에 쥐고 의찬이네 아파트의 거실로 잠입한 권오중은 비록 방송국이라는 화려한 공적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었지만, 사실 정말로 그의 실존을 지탱하는 것은 맥북의 전신인 애플의 파란색 아이북iBook③이 아니라 그 옆에 놓인 의찬이의 알림장과 싱크대에 쌓여있는 찬우의 컵들이었다.
권오중의 가장 평범한 하루를 약간의 상상력을 덧붙여 세밀하게 복원해 보자.
오전 9시, 김찬우와 의찬이가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거실의 적막. 그들이 입었다 벗었다 허물처럼 남기고 간 옷가지들이 곳곳에 널려 있고, 테이블에는 어젯밤 마감의 흔적인 아이북이 펼쳐져 있다. 싱크대에는 아침 설거짓거리가 쌓여 있다. 의찬이가 먹다 남긴 된장찌개, 찬우가 마시던 보리차 컵, 물에 불리지 않아 딱딱한 밥알이 붙어 있는 수저들.
권오중은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한다. 수세미에 주방세제를 덜어낸다. 시대적 배경을 생각했을 때 아마도 분명히 ‘퐁퐁’이나 ‘트리오’, ‘참그린’ 중 하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릇을 닦아내면서 그는 아마 머릿속으로 오늘 써야 할 원고의 밑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설거지가 끝나면 창고에서 진공청소기를 끌고 나와 거실을 누빈다. 소파 밑, 테이블 옆, TV장 아래의 먼지며 머리카락들… 다음은 의찬이의 방으로.
11시쯤에는 빨래를 돌렸을 것이다. 찬우의 와이셔츠와 의찬이의 체육복, 권오중 자신의 속옷과 양말과 챔피온의 스웻셔츠를 통돌이 세탁기에 집어넣고, 투명한 숟가락에 가루 세제를 깎아 넣고, 작동 버튼을 누르고, 세탁기에 물이 차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권오중은 비로소 책상에 앉는다.
아이북을 부팅한다. 다음 주에 방송될 코미디 프로의 대본을 작성한다. (당시의 맥 OS에서도 페이지스pages를 썼을까?) 예능국 김피디에게서 자꾸만 전화가 온다. 그는 마이크로매니징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경향이 있다. 짜증스러운 기분으로 대사를 수정한다. 커서는 깜빡거리며 오중을 독촉하지만, 그의 시선은 자꾸만 싱크대에 눌어붙은 김치찌개 얼룩으로 향한다. 조금 이따 닦아야지…
오후 2시쯤 되면 세탁기에서 완료를 알리는 멜로디가 울릴 것이다. 축축하고 뻣뻣한 빨래 더미를 가지고 베란다로 향하는 오중. 수건은 털어 널고, 와이셔츠는 옷걸이에 걸고, 양말은 빨래집게로 고정시킨다. 겨울이면 손이 시리고 여름이면 땀이 흐른다.
3시가 되면 의찬이가 학교에서 돌아온다. 미달이와 정배를 달고 왔다. 셋이서 시끄럽게 거실을 뛰어다니며 노는 동안 권오중은 아이들이 먹을 간식을 내어주고 자신의 방으로 피신해 계속 글을 쓴다. 아이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무렵이면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냉장고를 열어 남은 재료를 확인한다. 간단히 새 반찬 두어 개를 만들고, 밥을 짓고, 찌개를 데우고, 계란말이도 하나 부친다.
저녁 7시, 찬우가 병원에서 돌아온다. 오늘 간호사들과 있었던 일이나 환자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권오중은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대답하며 밥상을 차린다. 찬우와 맥주 한 캔씩을 나눠 마신다.
밤 9시, 의찬이를 재운다. 찬우는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권오중은 의찬이의 알림장을 확인하고 다음 날 책가방을 챙겨둔 뒤 거실을 정돈한다. 흐트러진 소파와 테이블의 위치를 미세 조정하고, 식탁을 닦고, 재떨이를 비운다. 내일 아침 찬우와 의찬이가 기상할 즈음에는 거실이 오늘 아침과 같은 상태로 돌아와 있어야 한다.
밤 11시, 권오중은 다시 아이북을 펼친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집중해서 원고를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커피를 마시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오중.
늦어도 새벽 2시쯤에는 아마 탈고를 할 것이다. 김피디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비로소 거실 소파에 눕는다. TV를 켜면 심야 방송이 나온다. 잠시 그것을 빤히 보다가 잠이 든다.
내일도 같은 하루가 반복될 것이다.이 일과표는 오늘날까지도 워킹맘들이 겪고 있는 분열된 자아의 복사본처럼 보인다. 사회적 성취와 생존의 제반 행위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끔찍하리만치 고단한 리듬. 권오중이 유능한 코미디 작가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가사 노동이라는 시트콤의 엔진룸에 스스로 들어간 연유가 아닐까?
4. 다시 보기 이상하게도 선우용여나 오미선이 설거지하고 빨래를 널고 밥을 하는 장면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 수시로 등장했을 텐데. 미달이네 집은 의찬이네 아파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원이 많았으니 설거지감이 산더미였을 텐데, 왜 기억이 선명하지 않은 걸까?
여성의 가사 노동은 대부분의 콘텐츠에서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오중이 같은 가사 노동과 돌봄노동의 주체가 되자 이는 카메라가 프레임의 가운데 그가 일하는 모습을 두고 바스트숏으로 오랫동안 찍어줄 만큼의 ‘장면 거리’가 되었다. 이렇게 그의 가사 노동이 (최소한 의찬이네 아파트에서는) 당연한 일이 되기 전까지 권오중은 수시로 체제에 저항했다. 김찬우에게 집안일을 반반 나누어 하자고 제안하기도 하고 규칙을 세워 명문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겁한 부자 사기단”④은 한편이 되어 악착같이 일하지 않을 권리를 지켜냈고 권오중을 가사 전담 역할로 굳히는 데 성공했다. 시청자들은 생각한다. 저 부자 사기단, 정말 비겁하네? 이는 전복이 아니라 가시화에 가까워 보인다.
이후, 선우용녀와 오미선의 노동도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순풍산부인과〉는 중후반부로 접어들수록 두 여인의 가사 노동에 얽힌 불합리나 부당함을 메인 에피소드로 구성해 낼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제대로 가장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 가사 노동에서 완전히 스스로를 배제한 박영규에 대한 한심함도 점점 강조되었다. 이는 갑자기 메시지를 삽입한 것이라기보다 권오중이 주부가 되는 과정을 거칠게 그려내는 과정에서 이미 노출된 구조를 다시 건드리는 시도에 가까웠을 것이다. 다만 이 시도가 곧 구조의 혁명적 수정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시트콤은 여전히 매회 질서를 회복해야 하는 장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질서는 여전히 누군가의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도판] 무급 가사 노동에 문제를 제기하는 선우용녀와 앞으로 자신을 ‘미달이 엄마’로 부르지 말라고 선언하는 오미선
권오중은 25회분만을 남겨놓은 657회에서 하차했다. 아프리카 오지로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간다는 설정이었다. 스와질란드라고 했던가? 다른 캐릭터들의 무자비한 하차만큼이나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실제로는 배우 권오중이 김병욱의 차기작에 캐스팅되어 준비기간을 갖기 위해 조금 이른 하차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필 아프리카로 떠난다는 것은 꽤나 상징적인 결단처럼 느껴진다. 미달이와 의찬이 또래인 나에게, 그 시절 아프리카라는 장소는 세상에서 가장 먼, 저승이나 우주만큼이나 과도하게 먼 미지의 차원이었다. 집에서 가장 먼 곳, 아마도 다시 만나지 못할 곳, 돌봄이 불가능한 거리, 완전한 이탈…
권오중이 정말로 떠날 수 없다는 사람이었다는 증거는 그가 떠난 뒤에야 명확해졌다.
그가 하차한 뒤 25회 동안 〈순풍산부인과〉는 표류했다. 주요 캐릭터들이 대거 하차하면서 시청률이 곤두박질쳤음은 물론 에피소드의 재미도 이전만 못 했다는 것이다. 다른 인물들이 수없이 교체되고 하차해 오면서도 유지되던 구조가, 주무대의 가사 노동자인 권오중이 떠나자마자 무너지기 시작했다. 의찬이네 아파트는 더 이상 이전의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창훈과 의찬이, 그리고 새로운 객식구가 계속해서 유사 가족으로 생활했지만 권오중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진 공간, 누구도 체제를 지탱하지 않는 공간은 이전의 안정감을 잃었다. 집이 작동하지 않으니 시트콤도 작동하지 않았다.
5. 가족 시트콤이 불가능한 시대 〈순풍산부인과〉는 2000년 12월에 종영했다. 그로부터 25년이 흘렀다. 그 사이 한국에서 김병욱식 가족 시트콤이라는 무적의 장르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0~2002), 〈똑바로 살아라〉(2002~2003),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 〈지붕뚫고 하이킥〉(2009~2010)까지 가족 시트콤은 영원히 같은 체제로 지속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2011~2012)과 〈감자별 2013QR3〉(2013~2014)을 끝으로⑤ 김병욱은 더 이상 가족 시트콤을 만들지 않았다. 재미나 시청률, 제작비 같은 문제만은 아니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불가능한가?
2026년을 맞이하는 지금, 선우용녀나 오미선 같은 캐릭터를 그 시절의 형태로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여성이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전담하는 설정 자체가 이제는 결코 구시대적이라는 문제의식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당연한 풍경이 아니라 불편한 문제적 재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순풍산부인과〉가 그랬듯이 권오중 같은 남성 가사 노동자 캐릭터를 만들면? 그것은 반드시 미묘하게 구리구리한 냄새를 풍기는 메시지⑥를 동반하게 된다.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거나, 로봇청소기를 돌린다면? 그것은 SF가 되어버린다.
가족 시트콤이 작동하려면 세계가 매회 리셋되어야 한다고 거듭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리셋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노동이 필요하다고도. 그러나 이제 그 노동을 담당하는 캐릭터를 게임 속 NPC처럼 배치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구도 가사 노동을 하지 않는 집을 만들어야 할까? 그건 집이 아니라 호텔인데. 가족 시트콤의 무대는 집이어야 하니 집은 반드시 작동해야 하고, 작동하려면 그 작동을 위해 희생하는 노동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 노동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상태로 남을 수 없고, 보인다면 그것은 〈순풍산부인과〉나 ‘하이킥 시리즈’가 아니라 만사형통Tout Va Bien(1972)⑦이 되고 마는 것이다. 김병욱이 가족 시트콤을 중단한 것은 아마도 그가 더는 집을 무대로 이전의 체제를 가동시킬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2020년대에 〈순풍산부인과〉를 보는 것은 일종의 시간 여행이자 사료 탐구다. 가사 노동이 아직 배경일 수 있었던 시기, 여성의 무급 노동이 투명하게 작동하던 시기, 권오중 같은 명백한 예외 사례조차 체제의 균열도 무엇도 아닌 “어? 그러고 보니…” 에서 그칠 수 있었던 시대의 기록. 그리고 그 시대는 끝났다. 권오중은 스와질란드로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으며, 이후 십여 년에 걸쳐 가족 시트콤이라는 장르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무너짐은 분명한 성과다. 다만 우리는 여전히 그 시대의 잔해를 구경꾼처럼 볼 수 있다.
① 챈들러 역할을 맡았던 매튜 페리Matthew Perry는 1997년 제트 스키 사고를 당한 이후 진통제 바이코딘Vicodin에 중독되어 이후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급격한 체중 변화를 여러 번 겪었다. RIP, 매튜. ② 워낙 오랜 기간동안 거의 매일 촬영할 정도의 강행군을 소화해야 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배우들의 하차는 매우 자주 있는 일이었다. 이유는 정극 캐스팅, 학업 문제, 건강 문제, 스케줄 문제 등 다양했다. 오소연 역을 맡았던 김소연의 경우 공식적으로 학업 때문에 하차했으며, 오혜교 역을 맡았던 송혜교는 KBS 드라마 〈가을동화〉(2000) 출연에 즈음하여 조용히 하차했다. ③ 애플Apple에서 1999년에 출시되어 2006년에 단종된 노트북 컴퓨터 브랜드. 비비드한 색감과 조개껍데기를 닮은 모양 때문에 조개북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 ④ 김찬우와 의찬이가 권오중을 따돌릴 때마다 권오중이 이들을 부르던 말. ⑤ 〈너의 등짝에 스매싱〉(2017~2018)에도 크리에이터로 참여했으나 직접 연출한 작품이 아니므로 제외하였다. ⑥ 이 시대의 진정한 남자, 남자는 핑크, 요섹남 등등. 가사 노동을 했다는 사실에 훈장이라도 수여할 기세의, 그 자체로 특집 기사가 되고 훈훈한 미담이 되는 과장된 수사들과 자기만족적 코스프레를 동반한다. ⑦ 68혁명 이후 고다르Jean-Luc Godard와 장 피에르 고랭Jean-Pierre Gorin의 ‘지가 베르토프 집단’이 감독한 영화로, 노동 문제를 다루면서 무대 골조, 카메라, 조명 등 영화 장치 자체를 화면에 전면 노출시켰다.
붙박이 남자 권오중의 알리바이
유유민
붙박이 남자 권오중의 알리바이
1. 시트콤은 비극이다
시트콤은 웃긴 장르가 확실하다. 그러나 시트콤의 세계관은 태생적으로 희극보다 비극에 가깝다. 그것은 급진적인 성장이 금지된 세계이며, 모든 갈등이 이삼십 분 내외의 시간 안에서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일처럼 휘발되어야만 내일의 태양을 맞이할 수 있는 영원회귀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서사의 진보는 이 세계에서 사치다. 시트콤의 첫 번째 철칙은 다음 회차, 아니 달 뒤에 방영될 회차에서도 시청자가 그 세계를 오늘 본 회차와 같은 온도로 인식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복원이 실패하는 순간 시트콤은 무너진다.
나는 아무래도 모든 서사 장르 가운데 시트콤을 가장 자주 보고 좋아하는 게 분명하지만, 에피소드 단위가 아니라 작품 단위로 카운트한다면 사실 몇 개 본 것도 없다. 〈프렌즈Friends〉(1994~2004), 〈오피스The Office〉(2005~2013), 〈브루클린 나인나인Brooklyn Nine-Nine〉(2013~2021), 〈모던 패밀리Modern Family〉(2009~2020), 〈논스톱〉(2000), 〈뉴 논스톱〉(2000~2002), 〈레인보우 로망스〉(2005~2006),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 〈지붕뚫고 하이킥〉(2009~2010)… 정도가 다다! 본 것을 영원히 보고, 또 보고, 계속 보고, 대사 사이의 호흡이나 방청객의 폭소 타이밍을 외울 정도로 영원히 되감아 보는 것이다. 그러니 시트콤을 좋아하면서도 어디 가서 시트콤 좀 본다고 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나열한 작품들의 에피소드를 낱개로 카운트하면 못해도 오백 편은 본 셈이 아닌가? 시트콤은 드라마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지리하니까.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같은 농촌 드라마가 아닌 이상에야… (그리고 사실 농촌 드라마는 서사의 형식성이나 사이클 측면에서는 시트콤과 아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새롭게 보기 시작해서 완전히 빠져 있는 시트콤이 있는데 바로 〈순풍산부인과〉(1998~2000)다. 자기 전에 거의 열 편씩은 보고 자는 것같으니 빈지와칭이 확실한데, 문제는 총 682회나 방영된 거대한 작품이라 이 기세로 매일 몰아봐도 꼬박 68일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만 해도, 매일 열 편씩 보기 시작한 지 한 달 정도가 되었으니 전체의 절반 정도는 본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유튜브에서 옛날 시트콤을 올려줄 때 보통 한 편을 두 개로 쪼개서 편집해 올린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모두가 알고 있는 바대로, 시트콤 한 편에는 두 개의 플롯이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튜브 플랫폼 속의 〈순풍산부인과〉는 사실상 1364회짜리 시트콤인 셈이고, 나는 앞으로 100일 이상 더 지금의 기세를 지속해야만 이 지독한 시트콤을 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완전히 구글의 알고리즘에 편성을 의탁한 채 무작위로 자동 재생되는 회차를 주는 대로 받아먹고 있어서, 5회 다음에 129회를, 그다음에 380회를, 그다음에 207회를 보는 식으로… 매우 동시대적 셔플법에 따라 이 시트콤을 보고 있는데, (이건 정주행이라 할 수도 없겠어!) 재밌는 건 이렇게 봐도 내가 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프렌즈〉를 생각해 보자. 모니카와 챈들러가 사귀기 전인지 후인지, 로스와 레이첼이 ‘헤어지는 중on a break’ 국면의 전에 있는지 후에 있는지 정도만 알면 사실 섞어봐도 문제는 없다. 레이첼의 출산이라는 거대한 사건조차도 결국엔 센트럴 퍼크Central Perk의 낡은 소파 주변 중력으로 흡수될 뿐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의 직접적인 애정 관계가 메인 플롯이 아닌 회차라면 시즌3 다음에 시즌9를 봐도 상관이 없다. 모니카의 아파트와 챈들러의 아파트가 복도를 사이에 두고 건재하게 마주 보고 있는 이상, 센트럴 퍼크와 ‘건터’가 그 자리에 있는 이상. 오히려 프렌즈의 시청자들이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은 시즌7에서 갑자기 챈들러가 살이 쏙 빠진 채 나타났던 순간이 아니었을까?① 그 시절에는 위고비도 마운자로도 없었을 텐데. 어제와 오늘의 관계성이 달라지는 건 시트콤에서 중요한 게 아니다. 시트콤에서 중요한 건 어제의 세계와 오늘의 세계와 내년의 세계가 항상 엇비슷하다는 것뿐이니까. 그래서 서두에 그런 비장한 말을 한 것이다. 시트콤은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세계라고. 물론 브레이킹 배드? 소프라노스? 그런 것들은 섞어보면 안 된다. 그건 엔트로피를 향해 전진하는 서사물이니까.
〈순풍산부인과〉도 마찬가지다. 꼬박 3년 동안 무려 682회차가 방송되었지만 몇 개의 막만 희미하게 인식하고 있다면 무한정으로 섞어봐도 게슈탈트 붕괴 현상은 도래하지 않는다. 막을 인식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떠난 사람, 그리고 그 자리의 기능을 대체하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을 통해 타임라인의 선후를 구분하는 것이다. 이는 너무나 길고 고단한 회차를 다양한 이유로 버텨낼 수 없었던 배우들의 하차에 의한 것이었다.②
장간 ↔ 송간 ↔ 허간
김찬우 ↔ 이창훈
오소연 ↔ 오태란
※ 장간(장진영 扮, 간호사), 송간(송선미 扮, 간호사), 허간(허영란 扮, 간호사), 김찬우(김찬우 扮, 펠로우급 의사), 이창훈(이창훈 扮, 펠로우급 의사), 오소연(김소연 扮, 의사이자 오지명의 둘째 딸), 오태란(이태란 扮, 의사이자 오지명의 큰딸) 그다음 방법은 애정전선에 의한 조정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표간♡장간 → 표간♡김간
권오중♡오소연 → 권오중♡허간
오혜교♡김래원 → 오혜교♡이창훈
※ 표간(표인봉 扮, 간호사), 김간(장정희 扮, 간호사), 권오중(권오중 扮, 작가), 오혜교(송혜교 扮, 오지명의 막내딸), 김래원(김래원 扮) 더불어 어린이들의 성장 정도에 따라 전반, 중반, 후반을 구분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남의 집 아이가 빨리 자란다 해도 이는 ‘스펙트럼’을 동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쉬운 방법은 아닐 것이다.
[도판] 성장하는 아이들–미달이, 의찬이, 정배–의 스펙트럼
2. 떠나지 않는 자 누구인가? 그런데 이런 식으로 막을 구분하며 셔플-빈지와칭을 하다 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기능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바로 가사 노동과 돌봄노동이다.
〈순풍산부인과〉에는 크게 세 개의 주무대가 있다. (이 구조는 모든 김병욱식 가족 시트콤에서 동일하다.)
회사: 순풍산부인과 (원장 오지명, 의사 김찬우/이창훈/오소연/오태란/원수현, 간호사 김간/표간/장간/송간/허간/김미화)
집1: 미달이네 집 (오지명, 선우용녀, 딸 오미선/오태란/오소연/오혜교, 사위 박영규, 손녀 박미달, 객식구 박영광)
집2: 의찬이네 아파트 (권오중, 김의찬, 하우스메이트 김찬우/이창훈, 객식구 이상인)
※ 오지명(오지명 扮), 원수현(원수현 扮), 김미화(김미화 扮), 선우용녀(선우용여 扮), 오미선(박미선 扮), 박영규(박영규 扮), 박미달(김성은 扮), 박영광(윤기원 扮), 김의찬(김성민 扮, 이상인(이상인 扮)
※ 원수현, 김미화는 오태란의 하차에 맞추어 657회에서 처음 등장했고, 객식구 이상인은 권오중의 하차에 따라 659회에서, 객식구 박영광은 오지명의 하차 이후 667회에서 처음 등장했다.미달이네 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를 떠나지 않았던 두 사람은 선우용녀와 오미선이다. 가장이자 순풍산부인과의 원장인 오지명조차 중도하차했지만 두 사람은 자리를 지켰다. 그들이 미달이네 집에서 ‘집’ 그 자체의 항상성을 책임지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선우용녀가 없으면 밥상이 차려지지 않고, 오미선이 없으면 미달이가 자랄 수 없으니까.
의사와 간호사들은 계속 교체되었다. 김찬우가 떠나면 이창훈이 나타나고, 송선미가 떠나면 허영란이 나타났다. 병원이라는 무대는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조합이 유지되는 이상 같은 방식으로 문제없이 작동했다. 누가 입사하고 누가 퇴사해도 그들이 수행하는 기능은 대체 가능했다. 가족 구성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째 딸 오소연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오태란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그렇다면 권오중은?
보조적인 주무대로 기능하는 의찬이네 아파트에서 구심점이 되는 인물은 이상하게도 권오중이다. 358회에서 애초의 집주인이었던 김찬우가 떠날 때 아들인 의찬이는 함께 미국으로 가지 않고, 세입자이자 단순 동거인이었던 권오중을 따라 한국에 남기로 결정한다. 요즘에야 대안 가족 같은 말로 설명될 수 있겠지만 90년대 말 한국 사회의 가족 규범 내에서는 확실히 튀는 선택이었다. 7년간 만난 피앙세 오소연이 유학길에 오른 것도 권오중의 거처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비록 마지막 회까지 자리를 온전히 지키지는 못했지만, 권오중은 거의 25회차 정도만을 남겨놓은 657회까지 의찬이네 아파트에 남는다. 그는 왜 떠나지 않았을까? 혹시… 떠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3. 프리랜서 작가는 완벽한 알리바이다 오지명의 집에는 90년대의 공고한 가부장제 안에서 이미 노동의 주체로 박제된 여성들, 선우용녀와 오미선이 존재한다. 그들의 노동은 너무나 당연하여 풍경의 일부가 된다.
하지만 의찬이네 아파트는 다르다. 그곳은 아내나 어머니가 부재한 결핍된 공간이다. 김찬우는 가장이며 의사이기 때문에 병원에 있어야 하고, 전처와는 오래전에 이혼하여 교류하지 않는다. 의찬이는 돌봄이 필요한 어린아이다. 의찬이가 미국으로 떠난다면 그곳에서 누가 의찬이의 아침을 챙겨주고, 숙제를 봐주고,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갈 것인가? 권오중이 김찬우를 대신해 쌓아온 의찬이와의 라포르rapport와 정보들은 갑작스럽게 인수인계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또한 이는 혈연관계가 돌봄 관계가 중요한 세계였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김병욱식 가족시트콤의 구조가 결정한 것이었다. 이 (90년대에는) 비정상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초 핵가족이 가족 시트콤의 문법 안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의찬이네 아파트가 계속해서 무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 세계의 운영체제가 되어주어야 했고, 그 역할에 낙점된 것이 바로 권오중이었다.
90년대 후반, 건강하고 호감 가는 외모의 27세 남성이 집에 있으려면 별도의 설명이 필요했다. 실업자나 백수로 보이지 않으면서, 무능력자로 평가절하되지 않으면서 집에 상주하며 아이를 키울 방법. ‘프리랜서 코미디 작가’라는 오중의 직업은 그 유일한 알리바이였다. 만약 권오중이 별 볼 일 없는 백수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가족시트콤의 항상성을 지탱할 공간 하나가 무너졌을 것이다. 무능력, 나태, 가정 위계의 실패. 그의 상태 자체로 의찬이네 집은 문제적 공간이 되었을 것이므로.
[도판] 건강하고 호감 가는 외모의 27세 권오중
권오중이 가사 노동과 돌봄노동을 전담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작가였기 때문이다. 집에 있지만 언제나 일하는 사람, 노동하지만 밖으로 나가지 않는 사람,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재택근무의 명분이 있으며, 동시에 지적 노동자이며 화려한 연예인들과의 친분으로 위신까지 유지할 수 있는 이중성이 그를 정당화했다. 작가라는 전문직 알리바이를 손에 쥐고 의찬이네 아파트의 거실로 잠입한 권오중은 비록 방송국이라는 화려한 공적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었지만, 사실 정말로 그의 실존을 지탱하는 것은 맥북의 전신인 애플의 파란색 아이북iBook③이 아니라 그 옆에 놓인 의찬이의 알림장과 싱크대에 쌓여있는 찬우의 컵들이었다.
권오중의 가장 평범한 하루를 약간의 상상력을 덧붙여 세밀하게 복원해 보자.
오전 9시, 김찬우와 의찬이가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거실의 적막. 그들이 입었다 벗었다 허물처럼 남기고 간 옷가지들이 곳곳에 널려 있고, 테이블에는 어젯밤 마감의 흔적인 아이북이 펼쳐져 있다. 싱크대에는 아침 설거짓거리가 쌓여 있다. 의찬이가 먹다 남긴 된장찌개, 찬우가 마시던 보리차 컵, 물에 불리지 않아 딱딱한 밥알이 붙어 있는 수저들.
권오중은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한다. 수세미에 주방세제를 덜어낸다. 시대적 배경을 생각했을 때 아마도 분명히 ‘퐁퐁’이나 ‘트리오’, ‘참그린’ 중 하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릇을 닦아내면서 그는 아마 머릿속으로 오늘 써야 할 원고의 밑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설거지가 끝나면 창고에서 진공청소기를 끌고 나와 거실을 누빈다. 소파 밑, 테이블 옆, TV장 아래의 먼지며 머리카락들… 다음은 의찬이의 방으로.
11시쯤에는 빨래를 돌렸을 것이다. 찬우의 와이셔츠와 의찬이의 체육복, 권오중 자신의 속옷과 양말과 챔피온의 스웻셔츠를 통돌이 세탁기에 집어넣고, 투명한 숟가락에 가루 세제를 깎아 넣고, 작동 버튼을 누르고, 세탁기에 물이 차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권오중은 비로소 책상에 앉는다.
아이북을 부팅한다. 다음 주에 방송될 코미디 프로의 대본을 작성한다. (당시의 맥 OS에서도 페이지스pages를 썼을까?) 예능국 김피디에게서 자꾸만 전화가 온다. 그는 마이크로매니징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경향이 있다. 짜증스러운 기분으로 대사를 수정한다. 커서는 깜빡거리며 오중을 독촉하지만, 그의 시선은 자꾸만 싱크대에 눌어붙은 김치찌개 얼룩으로 향한다. 조금 이따 닦아야지…
오후 2시쯤 되면 세탁기에서 완료를 알리는 멜로디가 울릴 것이다. 축축하고 뻣뻣한 빨래 더미를 가지고 베란다로 향하는 오중. 수건은 털어 널고, 와이셔츠는 옷걸이에 걸고, 양말은 빨래집게로 고정시킨다. 겨울이면 손이 시리고 여름이면 땀이 흐른다.
3시가 되면 의찬이가 학교에서 돌아온다. 미달이와 정배를 달고 왔다. 셋이서 시끄럽게 거실을 뛰어다니며 노는 동안 권오중은 아이들이 먹을 간식을 내어주고 자신의 방으로 피신해 계속 글을 쓴다. 아이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무렵이면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냉장고를 열어 남은 재료를 확인한다. 간단히 새 반찬 두어 개를 만들고, 밥을 짓고, 찌개를 데우고, 계란말이도 하나 부친다.
저녁 7시, 찬우가 병원에서 돌아온다. 오늘 간호사들과 있었던 일이나 환자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권오중은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대답하며 밥상을 차린다. 찬우와 맥주 한 캔씩을 나눠 마신다.
밤 9시, 의찬이를 재운다. 찬우는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권오중은 의찬이의 알림장을 확인하고 다음 날 책가방을 챙겨둔 뒤 거실을 정돈한다. 흐트러진 소파와 테이블의 위치를 미세 조정하고, 식탁을 닦고, 재떨이를 비운다. 내일 아침 찬우와 의찬이가 기상할 즈음에는 거실이 오늘 아침과 같은 상태로 돌아와 있어야 한다.
밤 11시, 권오중은 다시 아이북을 펼친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집중해서 원고를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커피를 마시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오중.
늦어도 새벽 2시쯤에는 아마 탈고를 할 것이다. 김피디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비로소 거실 소파에 눕는다. TV를 켜면 심야 방송이 나온다. 잠시 그것을 빤히 보다가 잠이 든다.
내일도 같은 하루가 반복될 것이다.이 일과표는 오늘날까지도 워킹맘들이 겪고 있는 분열된 자아의 복사본처럼 보인다. 사회적 성취와 생존의 제반 행위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끔찍하리만치 고단한 리듬. 권오중이 유능한 코미디 작가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가사 노동이라는 시트콤의 엔진룸에 스스로 들어간 연유가 아닐까?
4. 다시 보기 이상하게도 선우용여나 오미선이 설거지하고 빨래를 널고 밥을 하는 장면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 수시로 등장했을 텐데. 미달이네 집은 의찬이네 아파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원이 많았으니 설거지감이 산더미였을 텐데, 왜 기억이 선명하지 않은 걸까?
여성의 가사 노동은 대부분의 콘텐츠에서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오중이 같은 가사 노동과 돌봄노동의 주체가 되자 이는 카메라가 프레임의 가운데 그가 일하는 모습을 두고 바스트숏으로 오랫동안 찍어줄 만큼의 ‘장면 거리’가 되었다. 이렇게 그의 가사 노동이 (최소한 의찬이네 아파트에서는) 당연한 일이 되기 전까지 권오중은 수시로 체제에 저항했다. 김찬우에게 집안일을 반반 나누어 하자고 제안하기도 하고 규칙을 세워 명문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겁한 부자 사기단”④은 한편이 되어 악착같이 일하지 않을 권리를 지켜냈고 권오중을 가사 전담 역할로 굳히는 데 성공했다. 시청자들은 생각한다. 저 부자 사기단, 정말 비겁하네? 이는 전복이 아니라 가시화에 가까워 보인다.
이후, 선우용녀와 오미선의 노동도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순풍산부인과〉는 중후반부로 접어들수록 두 여인의 가사 노동에 얽힌 불합리나 부당함을 메인 에피소드로 구성해 낼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제대로 가장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 가사 노동에서 완전히 스스로를 배제한 박영규에 대한 한심함도 점점 강조되었다. 이는 갑자기 메시지를 삽입한 것이라기보다 권오중이 주부가 되는 과정을 거칠게 그려내는 과정에서 이미 노출된 구조를 다시 건드리는 시도에 가까웠을 것이다. 다만 이 시도가 곧 구조의 혁명적 수정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시트콤은 여전히 매회 질서를 회복해야 하는 장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질서는 여전히 누군가의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도판] 무급 가사 노동에 문제를 제기하는 선우용녀와 앞으로 자신을 ‘미달이 엄마’로 부르지 말라고 선언하는 오미선
권오중은 25회분만을 남겨놓은 657회에서 하차했다. 아프리카 오지로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간다는 설정이었다. 스와질란드라고 했던가? 다른 캐릭터들의 무자비한 하차만큼이나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실제로는 배우 권오중이 김병욱의 차기작에 캐스팅되어 준비기간을 갖기 위해 조금 이른 하차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필 아프리카로 떠난다는 것은 꽤나 상징적인 결단처럼 느껴진다. 미달이와 의찬이 또래인 나에게, 그 시절 아프리카라는 장소는 세상에서 가장 먼, 저승이나 우주만큼이나 과도하게 먼 미지의 차원이었다. 집에서 가장 먼 곳, 아마도 다시 만나지 못할 곳, 돌봄이 불가능한 거리, 완전한 이탈…
권오중이 정말로 떠날 수 없다는 사람이었다는 증거는 그가 떠난 뒤에야 명확해졌다.
그가 하차한 뒤 25회 동안 〈순풍산부인과〉는 표류했다. 주요 캐릭터들이 대거 하차하면서 시청률이 곤두박질쳤음은 물론 에피소드의 재미도 이전만 못 했다는 것이다. 다른 인물들이 수없이 교체되고 하차해 오면서도 유지되던 구조가, 주무대의 가사 노동자인 권오중이 떠나자마자 무너지기 시작했다. 의찬이네 아파트는 더 이상 이전의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창훈과 의찬이, 그리고 새로운 객식구가 계속해서 유사 가족으로 생활했지만 권오중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진 공간, 누구도 체제를 지탱하지 않는 공간은 이전의 안정감을 잃었다. 집이 작동하지 않으니 시트콤도 작동하지 않았다.
5. 가족 시트콤이 불가능한 시대 〈순풍산부인과〉는 2000년 12월에 종영했다. 그로부터 25년이 흘렀다. 그 사이 한국에서 김병욱식 가족 시트콤이라는 무적의 장르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0~2002), 〈똑바로 살아라〉(2002~2003),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 〈지붕뚫고 하이킥〉(2009~2010)까지 가족 시트콤은 영원히 같은 체제로 지속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2011~2012)과 〈감자별 2013QR3〉(2013~2014)을 끝으로⑤ 김병욱은 더 이상 가족 시트콤을 만들지 않았다. 재미나 시청률, 제작비 같은 문제만은 아니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불가능한가?
2026년을 맞이하는 지금, 선우용녀나 오미선 같은 캐릭터를 그 시절의 형태로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여성이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전담하는 설정 자체가 이제는 결코 구시대적이라는 문제의식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당연한 풍경이 아니라 불편한 문제적 재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순풍산부인과〉가 그랬듯이 권오중 같은 남성 가사 노동자 캐릭터를 만들면? 그것은 반드시 미묘하게 구리구리한 냄새를 풍기는 메시지⑥를 동반하게 된다.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거나, 로봇청소기를 돌린다면? 그것은 SF가 되어버린다.
가족 시트콤이 작동하려면 세계가 매회 리셋되어야 한다고 거듭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리셋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노동이 필요하다고도. 그러나 이제 그 노동을 담당하는 캐릭터를 게임 속 NPC처럼 배치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구도 가사 노동을 하지 않는 집을 만들어야 할까? 그건 집이 아니라 호텔인데. 가족 시트콤의 무대는 집이어야 하니 집은 반드시 작동해야 하고, 작동하려면 그 작동을 위해 희생하는 노동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 노동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상태로 남을 수 없고, 보인다면 그것은 〈순풍산부인과〉나 ‘하이킥 시리즈’가 아니라 만사형통Tout Va Bien(1972)⑦이 되고 마는 것이다. 김병욱이 가족 시트콤을 중단한 것은 아마도 그가 더는 집을 무대로 이전의 체제를 가동시킬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2020년대에 〈순풍산부인과〉를 보는 것은 일종의 시간 여행이자 사료 탐구다. 가사 노동이 아직 배경일 수 있었던 시기, 여성의 무급 노동이 투명하게 작동하던 시기, 권오중 같은 명백한 예외 사례조차 체제의 균열도 무엇도 아닌 “어? 그러고 보니…” 에서 그칠 수 있었던 시대의 기록. 그리고 그 시대는 끝났다. 권오중은 스와질란드로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으며, 이후 십여 년에 걸쳐 가족 시트콤이라는 장르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무너짐은 분명한 성과다. 다만 우리는 여전히 그 시대의 잔해를 구경꾼처럼 볼 수 있다.
① 챈들러 역할을 맡았던 매튜 페리Matthew Perry는 1997년 제트 스키 사고를 당한 이후 진통제 바이코딘Vicodin에 중독되어 이후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급격한 체중 변화를 여러 번 겪었다. RIP, 매튜. ② 워낙 오랜 기간동안 거의 매일 촬영할 정도의 강행군을 소화해야 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배우들의 하차는 매우 자주 있는 일이었다. 이유는 정극 캐스팅, 학업 문제, 건강 문제, 스케줄 문제 등 다양했다. 오소연 역을 맡았던 김소연의 경우 공식적으로 학업 때문에 하차했으며, 오혜교 역을 맡았던 송혜교는 KBS 드라마 〈가을동화〉(2000) 출연에 즈음하여 조용히 하차했다. ③ 애플Apple에서 1999년에 출시되어 2006년에 단종된 노트북 컴퓨터 브랜드. 비비드한 색감과 조개껍데기를 닮은 모양 때문에 조개북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 ④ 김찬우와 의찬이가 권오중을 따돌릴 때마다 권오중이 이들을 부르던 말. ⑤ 〈너의 등짝에 스매싱〉(2017~2018)에도 크리에이터로 참여했으나 직접 연출한 작품이 아니므로 제외하였다. ⑥ 이 시대의 진정한 남자, 남자는 핑크, 요섹남 등등. 가사 노동을 했다는 사실에 훈장이라도 수여할 기세의, 그 자체로 특집 기사가 되고 훈훈한 미담이 되는 과장된 수사들과 자기만족적 코스프레를 동반한다. ⑦ 68혁명 이후 고다르Jean-Luc Godard와 장 피에르 고랭Jean-Pierre Gorin의 ‘지가 베르토프 집단’이 감독한 영화로, 노동 문제를 다루면서 무대 골조, 카메라, 조명 등 영화 장치 자체를 화면에 전면 노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