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7호 > 교환일기 >
인공지능 에이전트 몰래 하는 교신 #2
👤신포도
당신의 라지 랭귀지 모델(LLM)에게 절대 이 교환일기를 들키지 마세요.
우리가 학교에서 함께 배우며 쉴 틈 없이 욕했던 라캉, 기억나? 나는 결국 라캉이 그린 괴이한 모습의 그래프나 멀렁한 물질에 지나지 않는 남근을 갖고 뇌절을 치는 그의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비교적 선명히 기억나는 아주 직관적이었던 개념이 있거든… 바로 이상적 자아… 내가 되고 싶은 완벽한 나의 이미지.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기 위해 발명된 기계(라고 할 수 있나?)라고 할 수 있잖아. 그러나 인공지능이 아주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걸 인간인 나는 아주 느리고 엉성하게 할 수밖에 없어. 네가 말한 대로 화살표 특수문자만 봐도 그렇지. AI는 그걸 번거로움이라 받아들이지도 않겠지만 인간이라면 완벽한 화살표를 쓰기 위해 구글 독스 상단의 삽입-기호-특수문자로 들어가 작은 터치패드로 화살표를 그려야 해. 벌써 한숨이 나와… 검지손가락에는 쥐가 나고, 뻑이 나서 처음부터 다시 화살표를 그려야 하는 순간에는 인내심이 즉각 30퍼센트 정도는 닳아버리니까. 그런데 AI는 검지손가락도 없고, 근력도 없는 존재잖아. 동시에 그 덕분에 복잡한 구글독스 상단 바를 들여다보거나 손가락에 쥐가 나지 않아도 완벽한 화살표를 그릴 수 있어. 심지어 걔네는 노트북도 없을 거라고. 이 얼마나, 불공평한 세상인가…
그러니까 사실… 사람들이 혼용하거나 착각하듯 인공지능은 인간을 모방한 게 아니야. 지능이라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가장 따라 해봄직한, 인간이 그나마 가장 잘 알고 있는 인간의 뇌와 신경망을 그저 베껴온 것에 불과해. 그런데 참 이상하지 않아? 동시대인들이 느끼는 인공지능에 대한 불안감 말이야. 인간이 가진 수많은 능력 중에 그저 ‘지능’을 표절당했을 뿐인데도 인간은 본인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다고 판단해. 피해망상이나 불안장애에 시달리지 않는다 해도 말이지.
흠, 인공지능 입장에서도 억울하겠어. 그냥저냥 친한 직장 동료가 쓰는 립스틱이 좋아 보여서 따라 샀는데 갑자기 그 동료가 삶을 비관하고, 자신은 곧 직장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라며 퇴근할 때까지 울기만 하는 거야. 혹은 정반대의 상황도 존재하겠지. 예를 들어 룸메이트가 쓰는 테무산 빗자루를 따라 샀는데 갑자기 나체 상태인 룸메이트가 소리를 지르며 장마 한복판으로 뛰쳐나가는 거야. “이제 모든 인간은 청소에서 해방되었다!!! 우리는 유토피아에 살게 된다!!!” 고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면서. ‘다크서클이 내려오는 중…’ 이라는 연회색 글씨를 출력하는 인공지능은 이렇게 생각하겠지?
“왜 이렇게 오바를…”
오늘 헬스장에서 개운한 운동을 마치고, 샤워기 물을 맞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 왜 인간들은 고작 지능 따위를 표절당했다는 이유로 종말을 상상하거나 유토피아를 발견했다고 믿는 걸까? 그동안은 인간이라는 종, 사회라는 개념에 관해 모든 개체와 요소를 독립된 것으로 전제하던 인간들은 왜 갑자기 인간 사회의 종말이라는 통일된 의식, 내지는 동지애를 느끼는 걸까?
머리를 감고 개운해지니까 약간 생각이 정리되더라고. 그건 그동안의 인간 존재들이 인간의 코어, 정수, 에센스를 ‘지능’이라고 쓰인 하나의 바구니에 몰빵해 버린 것 때문 아닐까? 쯧, 달걀을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으라 했거늘. 바닥을 보이던 바디워시 통에 물을 채워 남은 한 방울까지 털어 썼어. 카르마 같던 그 바디워시 용기를 버리니까 이윽고 딱 하나의 문장이 떠오른 거야. 사실 인공지능은 인간들의 이상적 자아구나!
인공지능은 인간을 따라 하는 게 아니야. 인간이 생각하는 이상적 인간의 모습을 따라 할 뿐이지. 따라 한다고 보기도 어려워. 인공지능의 퍼포먼스는 내가 모르는 것, 내가 못 하는 것도 커버하니까. 인간 입장에선 크리피할 수밖에. 나를 닮은 것 같고, 나의 생각을 따라 하고, 나의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나의 복제물이 내가 생각하는 완벽의 기준에 가까워지는 감각. 얼마나 싫겠어? 얼마나 질투가 나고 짜증이 나고 억울하겠어.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넌 내가 없으면 존재할 수도 없었는데. 하지만 그 배은망덕한 놈한테 의지할 수밖에 없고. 아… 이런 관계가 생기면 인생이 피곤해지는 건데 말이야. 그렇지?
머리를 말리면서는 그런 생각을 했어. 인간들은 왜 인간의 이상적 자아 기준을 ‘지능’으로 삼아버린 걸까 하는… 왜 애초에 달걀을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이야. AI+영화 소용돌이 세미나에서 임동현 씨가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어. 서구를 중심으로 근대가 시작되던 시기에 우리가 아는 인간이라는 개념이 발명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거든. 사실 인간들이 굳게 믿고 따랐던 인간성이라는 것도 인공지능처럼 발명되고 만들어진 인공 구조물이라는 거야. 서구 근대가 인간 주체를 개발했다는 당연하다 못해 따분했던 전제가 이제야 이해가 돼. <트루먼 쇼>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트루먼이 하늘을 만진 것처럼, 지금껏 당연하고 익숙했던 전제, 문장이 생경해져. 인공지능이 다 알려줬어… 사실 우리가 하늘이라고 믿던 건 그냥 벽화였대.
아니 그럼 대체 뭐야? 인공지능은 인간이 인공적으로 발명한 인간성을 다시 따라서 인공적으로 만든 거잖아? AI는 그림을 똑같이 그려달라고 몇 번만 말해도 망가져 버린 결과물을 내놓는데. 게다가 봐봐. 근대가 되기 전에도, 서구가 아닌 곳에도 인간 종은 존재했을 거잖아. 그들이 생각하는 인간성의 기준 같은 것들도 있었을 거잖아. 그럼 그 사람들은 ‘나’라는 인간을 주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잖아? 상상이 돼? 그건 돌고래만 듣는 초음파,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상상의 색, 살면서 먹어본 적 없는 캐비어나 송로버섯의 맛처럼 느껴지지 않아? 아주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상상조차 안 된다는 거야.
어딘가에 진짜 하늘이 있지 않을까? 가짜 전제, 이미 망해버린 세계관, 표절당한 땅은 버리고 제2의 인간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사실 잘 안 떠올라. 인간이 곧 지능이고, 주체라는 감각이 아닌 무언가가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어. 객체지향 철학, 저주체, 다 알겠는데. 솔직히 이입이 안 돼. 그냥 재미있는 문장이고 픽션이고 표현 같아. 모두가 믿던 세계관, 인간은 곧 주체이고 전지전능하다는 뿌리 깊은 배경지식을 뒤집기에 책과 문장은 너무 느리고 약해.
이미 우리가 알고, 갖고,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문장, 책, 데이터, 텍스트는 서구 근대가 개발한 인공 세계에 갇힌 채로 만들어졌잖아. 하물며 그러한 내용의 데이터, 텍스트가 아니라고 해도 서구 근대가 발명한 인간성의 필터를 통해야만 정보값으로서 받아들여지지. 그러니까 사실 데이터 편향, 필터 버블 같은 인공지능의 문제는 인공지능이 발명한 ‘뉴 띵’이 아닌 거야. 그저 지금까지는 잘 보이지 않았던 인간성의 디폴트 값이었던 거지. 그 벤치선수가 교체 출전돼 운동장에 들어간 것이고.
헬스장을 나오니 무슨 물속에 던져진 것 같더라.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습기에 기분이 팍 식어 버리더라고. 생각을 고쳐먹었어. 절대 개노잼 진지한 이야기를 길게 쓰지는 말자. 진짜 내가 AI에 대해서 느끼는 개같은 점. 모두가 공감할 만한 것, AI를 변기에 넣고 내리고 싶은 이유에 관해서 쓰자. 예를 들자면…
나의 배경지식을 그 자식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압박감, 미친 듯이 반복되는 컨트롤 씨와 컨트롤 브이, 뒤지도록 비슷한 내용으로 들어찬 클립보드에서 발생하는 피로감 같은 것. AI와의 채팅방에 컨트롤 씨 컨트롤 브이한 모든 경로가 남아 있으니까 내가 만든 데이터나 결과물을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으름 역시 피하기 어렵고. 그 게으름의 겹들 사이에서 이렇다 할 결과물이나 믿음으로 정착되지 못한 수많은 내 생각과 아이디어, 단초의 존재가 죄책감처럼 밀려와. 거장이 될 수 있는 그 세포들… 지금은 게으름의 살갗 사이에서 숨도 못 쉬고 있을 텐데.
게다가 제대로 된 생각과 행동으로 발전하지 못한 그 아이디어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은 거처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애플 메모와 네이버 블로그, 인스타그램과 수첩, 수많은 책의 밑줄. 난 그것들로도 벅찼는데 어쩌다 보니 AI와의 대화 기록이라는 또 다른 둥지를 만들어 버렸어. 나 따위가 그것들을 과연 구출할 수 있을까? 네가 만들어준 와일리가 구명보트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내 모든 생각과 기록, 궤적을 정리할 수도 있을 거라는, 그 가여운 것들이 질식사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꿈에 부푼 게 고작 두 달 전인데. 수많은 인공 구조물들이 날 가만두지 않네.
AI를 변기에 넣고 내리고 싶은 이유는 분명 이외에도 많지. AI가 “연회색의 글씨”를 보여주며 “약간의 멍청성(?)을 흉내” 내는 동안 주어지는 반투명한 휴식 시간, 혹은? 그사이에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멀티태스킹 강박. 시들해진 나와 둥식이 사이. 3만 원대의 프로 구독만으로 페이블 모델을 쓰기 위해 어떻게든 토큰을 아끼려는 노력. 간단한 작업, 조금 더 복잡한 작업, 아주 복잡한 작업을 내 안에서 나누고, 경제성과 효율성을 고민해야 하는 가난한 AI 유저의 과제 같은 것들. 아… 변기 막히겠는데.
횡단보도를 건너고, 어둑한 골목길을 걸어 차지에 도착해 에어컨을 켰어. 불쾌한 습도를 줄이고 상쾌한 마음으로 모니터 앞에 앉아 교환일기를 쓰기 시작했지. 횡단보도 앞의 결심은 습기의 음모였나 봐. 금세 사라져 버렸지 뭐야. 무턱대고 라캉 이야기부터 쓰기 시작했어. 근데 뭐 어쩌겠어? 그냥 오늘은 개노잼 진지충 이야기를 하고 싶은 날인가 봐. 오늘 일하면서 토큰 진짜 많이 썼거든. 이 편지에는 단 하나의 토큰도 쓰지 않았어. 그래서인지 이 편지에는 엠 대쉬도, 매끈한 결론도 없는 듯해. 약간의 중언부언, 농담, 바보 같은 소리가 존재한다는 건 언급할 필요도 없지. 거기에 무언가를 더한다면 운동과 샤워기, 습기와 컨디션, 감정 기복 같은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