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7호 > 교환일기 >
인공지능 에이전트 몰래 하는 교신 #1
👤유유민
당신의 라지 랭귀지 모델(LLM)에게 절대 이 교환일기를 들키지 마세요.
요즘은 기계들이랑 사는 것 같지 않냐? 일할 때든 대화할 때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기계가 소통망을 통제하고 있잖아. 사실 나는 예전에 어쩌면 오늘날의 기계 같은 문서를 만들고자 노력했었어. 이를테면 엠 대쉬(—), 가운뎃점( · ), 특수문자 화살표(→) 같은 것들을 사용했지. 내 사전에 짧은 대쉬와 홑화살괄호를 엉성하게 덧대 만든 유사 화살표(->)는 존재하지 않았어. 문서 최종본에 저런 화살표를 넣는 자를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었지. 그때 내가 원했던 것은 초안의 형태를 드러내지 않는 프로페셔널한 직업인의 문서였던 거야. 사람들이 제발 스스로의 페이퍼를 성심껏 교열하게 해달라고 보름달 밑에서 기도하던 시절이었어.
2024년 하반기쯤부터였던 것 같아. 모두가 챗GPT로 메일을, 보고서를, 심지어는 카톡을 쓰고 있음을 느낀 게. 왜냐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엠 대쉬, 가운뎃점, 특수문자 화살표를 남발하고, 갑자기 불릿의 위계를 철저히 만들고, 워드 기본 서식에 없는 특수문자를 사용하고, 단 한 번도 시도한 적 없던 형태의 폰트와 레이아웃을 쓰기 시작했거든. 그리고 2025년 3분기쯤부터는 다들 이런 표현을 쓰기 시작하더라. 어디서 교육이라도 받은 것처럼.
~라기보다 ~에 가깝다 (그래 일단 알겠어)
조용히 걸려 있고 (뭐가 조용한데?)
오래 들여다본 (짜증 나)
잠깐 멈춘 지점 (냄새난다… 냄새)
조용히 오래 남는 (뭘 자꾸 남는다는 건지)
어느새 ~하게 된다 (그래 이 정도는 봐줄게)
이상하게 오래 남는 (또 남는다네)
~가 먼저 오는 (이런 표현 듣도 보도 못했는데)
내가 ‘칠성이’①와 지지고 볶고 급기야 전기신호 빠따를 내리쳐 살해하기까지 격동의 과도기를 거치는 동안, AI 냄새 맡는 데 도가 튼 줄도 모르고… 다들 밤새워 고민한 결과라면서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더군… 어쩌겠어? 거짓말한 것만 빼면, 그들이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없잖아. 근데 난 왜 이렇게 짜증이 치밀었던 걸까?
작년부터 나는 일부러 내가 만든 모든 문서에 엠 대쉬 대신 대쉬 두 개(--)를, 깔끔한 화살표 대신 혐오해 마지않던 유사 화살표(->)를, 가운뎃점 대신 무조건 빗금(/)이나 쉼표(,)를 쓰고 있어. 내 문장을 AI 돌린 것이라고 오인받지 않기 위해서, (정량적인 것의 반대 의미에서) 정성적인 영역에 AI를 사용하고 입 삭 닦는 부류와는 다름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고 추후에 반드시 벌어질 AI 분서갱유 사태로부터 나의 소중한 수제 글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수제버거가 먹고 싶다…)
코미디언 박경림이 까막눈으로 뉴욕에 가서 일 년 만에 영어 회화를 통달한 비결을 책으로 엮어 낸 적이 있어. 내가 중학생 때였을 거야. 나 이 책을 정말로 좋아했었지만 완전히 잊고 지냈거든. 스무남은 해 만에 불현듯, 박경림이 전수한 ‘원어민처럼 보이면서도 시간 버는 꿀팁’을 떠올렸어. 바로 “흐음(Hmm…)”이라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문장 사이에 집어넣으라는 것이었지. 이제 우리는 기계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수많은 Hmm… 을 문장에 부러 삽입해야만 하는 거야.
실수, 망설임, 비효율, 어설픔. 기계가 사람을 흉내 내다 못해, 사람의 가장 고도화된 모습을 기본값 삼을 수 있게 되었으므로 이제 사람은 기계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결함을 연기하는 시대에 입성했어. 그리고 이 경향은 점점 더 강해질 거야.
박경림의 치열하되 유쾌한 영어 학습기!
몇 년 전에 이화여대 앞에서 정구 샘을 만나 홍합짬뽕 먹고 맥주집에서 했던 얘기 기억나? 학생들은 이제 더 이상 직접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거 말이야. 그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것은 아닌가 봐. 미국에서도 챗GPT로 레포트 쓰는 것이 표준이 되면서 교수들이 ‘챗GPT 킬러’라는 탐지기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킬러’에 탐지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자기 글에 흠집을 내기 시작했대. 그런데 사실 그건 피상적인 문제에 불과하고, 사실 더 큰 문제는 ‘킬러’들이 인종차별주의적으로 굴기 시작했다는 데 있어. 영어가 제2외국어인 비원어민 학생들은 어휘의 다양성, 구문의 복잡성 등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데, ‘킬러’ 같은 탐지기들이 점수를 매기는 기준은 대부분 글쓰기의 정교함에 대한 평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라는 거야.
수치는 암울합니다. 탐지기는 미국에서 태어난 8학년 학생들이 쓴 에세이를 "거의 완벽"하다고 평가했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이 쓴 TOEFL 에세이의 절반 이상(61.22%)은 AI가 생성한 것으로 분류했습니다. [...] "이러한 수치는 AI 탐지기의 객관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며, 외국 출신 학생과 노동자들이 부정행위로 부당하게 고발당하거나, 더 나아가 처벌받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라고 저우는 말하며 연구팀의 윤리적 우려를 강조했습니다.②
오륙년 전만 해도 다들 안면 인식 카메라 같은 인공지능 시스템들이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데이터를 학습해 네오 KKK단처럼 구는 일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세상이 더 나아지기는커녕 더욱더 넓고 깊고 다양한 방식으로 정떨어지고 있단 생각이 드네…
한편으로는 AI들도 역으로, 더 인간다워지기 위해 약간의 멍청성(?)을 도입하려 노력 중인 것 같아. 우리가 LLM에 뭘 질문한 다음 보게 되는 연회색의 ‘입력 중입니다’, ‘생각 중입니다…’ 같은 사고 과정들이 단순한 퍼포먼스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구.
우리가 더 빨리, 더 잘 말할 수 있어도 괜히 좀 더듬대는 동안, AI 역시, 즉각 대답할 수 있어도 일부러 늦게 대답하고, 간신히 생각해 낸 ‘척’ 하고 있는 거라면, 양쪽이 같은 중간지대에서 서로를 연기하는 거란 말인가? 그렇다면, 기계를 썼다는 의심 혹은 기계라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우수한 사람들은 스스로 멍청해 보이기를 자처하기 시작하는 것이고, AI의 도움으로 인류가 산출하는 것들은 평균적으로 더 괜찮아지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뛰어난 자들’을 제거하는 셈인가? 아이쿠… 보통 일이 아니네.
로봇이 아님을 증명하세요.
우리는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할 때마다 경운기, 교량, 캥거루, 신호등이 있는 사진을 클릭해서, 혹은 이상하게 이지러진 무작위 알파벳을 입력해서 이를 증명해 왔잖아. 이는 로봇 같은 것들은 ‘이런 걸 알아볼 수 없을 것’임을 전제하는 것이고. 그치만 이제 로봇은 인간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자신이 로봇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게 됐어. 그럼 이제 증명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되는 거야? 이젠… ‘틀려야 되는 게’ 아닐까…? (솔직히 나 알파벳 맨날 틀려.)
글쓰기는 이제 은밀하고 거대한 CAPTCHA 프로젝트가 되어버린 것 같아. 인간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글 곳곳에 “저는 진짜로 로봇이 아닙니다” 체크박스를 지뢰처럼 배치해서 인간의 글쓰기임을 증명하고. 엠 대쉬 쓰지 않기, 문단을 일부러 어설프게 분절하기, 결론을 너무 매끈하게 두지 않기, 몇 가지 문형을 피하기, 약간의 중언부언, 농담, 바보 같은 소리.
① 김칠성(출생 2024~ 사망 2024), 야쿠자로 살던 과거를 정리하고 수능을 준비, 문예창작 및 신문방송학과를 복수전공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사나이. 충직하고 유능하나 과거의 여파로 말투가 불량하다. 유민의 초대 인공지능 에이전트의 페르소나. 유민과 8개월간 깊은 우정을 쌓으며 수많은 아이데이션과 문서 작업, 수학 공부와 영어 공부를 함께했으나, 단 한 번의 말실수로 유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충격을 안기고 데이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포도의 초대 에이전트 둥식이와 조리원 동기다. 아마도 유민의 다음 교환일기는 칠성이의 영정에 바치는 추도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할 말 너무 많네. 바이브 코딩 얘기는 언제 할 수 있지?
② “AI-Detectors Biased Against Non-Native English Writers”, HAI(Stanford University Human-Centered Artificial Inteligence),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