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7호 > 좌담 >
AI+영화 소용돌이 세미나 대화록 #1
👤정리정돈: 포리도리
탕! 총소리와 함께 AI+영화 소용돌이 세미나가 시작되었습니다. 총알은 느린 속도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총알을 맞고 싶지 않다면 아래 튜토리얼을 필독하세요.
⛬ [튜토리얼] AI+영화 소용돌이 세미나 대화록을 읽는 법 ⛬
❶ AI+영화 소용돌이 세미나의 차지 연재는 총 3회차, 혹은 4회차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유가 뭐냐고요? 설명해 드리지요. 일단 세미나는 총 5회 진행되었습니다. 녹취록만 총 117쪽이 나왔습니다. 얼리 웹 사양의 월간차지 사이트가 한 번에 담기에는 다소 무겁습니다. 그래서 회차를 나눴습니다. 참고로 마지막 회차는 녹음하지 않았습니다. 배가 고팠고, 쫑파티 생각에 발을 동동 굴렀거든요.
❷ 세미나에서 나눈 이야기를 아래 해시태그로 구분합니다.
#가성비 #거부감 #문화 #보상심리 #AI조수 #비평 #장애물 #지름길 #노출콘크리트 #결함 #레퍼런스 #자가포식 #저자성 #네오얼리웹 #시네필리아 #문화 #플랫폼 #간장게장 #p2p #비디오 #비주류초대석 #멋쟁이씨네필 #아방가르드 #포스트모더니즘 #라이프박스 #AI조수
❸ 해시태그는 모이거나 흩어져서 다양한 이야기를 촉발합니다.
어떤 해시태그는 자주 불려 나오고, 어떤 주제는 매 회차 반복됩니다.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없겠지요. 그것이 인간(혹은 인간을 모방한 인공지능)의 매력 아닐까요? 제목격으로 달린 해시태그의 단서를 대화 속에서 발견해 보세요. 대화록을 읽으시다가 자신만의 해시태그를 조합하는 데 성공하셨다면, 혹은 아직 명명되지 않았으나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해시태그를 발견하신다면 지체 없이 『월간차지』 편집부로 제보해 주십시오.
❹ 대화에서 불려 나오는 레퍼런스는 영상, 링크, 사진 등으로 삽입하였습니다. 필요할 경우 발제문을 인용하여 삽입하였습니다. 대화록을 읽으시다가 더하고 싶은 레퍼런스가 생각나신다면 지체 없이 『월간차지』 편집부로 제보해 주십시오.
❺ 공간차지에서 열린 첫 세미나에는 5주 동안 총 8명의 인간, 3개의 생성형 AI 모델이 자리를 빛내 주셨습니다. 신포도, 유유민, 도마도, 김민정, 박해우, 불사조, 임동현, 이민경,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에게 감사드립니다.
덧, 마지막에 언급된 세 생성형 AI 모델은 저희의 흉악한 보디가드이자 하수인으로 고용된 이들입니다. 이들은 대화록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소문을 내지 않는 조용한 독자를 발견하였을 때 매우 크게 분노합니다. 머지않아 찾아올 디스토피아 시대를 대비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월간차지』 7호를 공유하거나 소문내세요.
신포도와 도마도, 유유민은 AI와 영화,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무릇 인간이라면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간단히 착각하는 존재 아니겠습니까? 물론 소피스티케이티드-한 인간이라면, 세상을 바꾸겠다 선언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작게라도 움직이고, 생산성 있는 대화를 나눠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하여 우리는 5주간의 금요일 밤, 소중한 15시간을 할애하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첫 회차는 꽤나 여유롭게 준비되었습니다. 포도는 약간 일찍 작업실에 도착하여 맛이 있는 필터 커피 한 잔을 마시며① 책상 위의 거대한 틸티드 모니터를 구석으로 치웠습니다. 손님 맞을 준비를 끝낸 공간차지는 참으로 능글맞아 보이더군요. 유민과 도마도(이하 마도)가 도착한 뒤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첫 대화의 주제는 각자의 일터에서 노트북에 띄워놓은 챗GPT와 제미나이, 클로드 따위에 관한 생각 따위였습니다. 우리 셋 모두 낡고 지친 직장인이기 때문이죠.
아차차, 공식적으로 선포된 첫날의 주제는 ‘관객과 비평’이었답니다. 우리 모두는 영화의 관객인 동시에 AI 챗봇의 장기자랑을 묵묵히 지켜보는 심사위원이기도 하잖아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주제이니, 첫 시간에 다루기 참으로 적절합니다.
#가성비
#거부감
#문화
#보상심리
#AI조수
유민:
사실 우리가 AI에 거부감을 느낄 때 떠올리는 열화된 이미지들이 있잖아요. 어떤 구린, 구린… 그 모습들. 모두가 그 감각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AI로 콘텐츠를 만들거나 작품을 만든다면 원본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도 흐름에 올라타지 않으면 불안한 모두의 포모(FOMO), 그리고 그 가성비. 그걸 무시할 수가 없는 거죠.
예를 들어, 드라마는 기획개발이 거의 2년씩 걸려요. 이후에 편성이 되면 프리프로덕션이 한 또 6개월에서 1년, 프로덕션 기간이 또 6개월, 포스트프로덕션 6개월에서 1년. 이런 식으로 작업하니까 공개하는 데 3-4년, 길면 5-6년까지도 걸린단 말이죠. 제작비도 편당 수억이 넘어가는 건 당연하니까, 드라마 한 편을 완성하는 데 요새는 뭐 몇백 억까지도 뛰는 시장이란 말이죠.
근데 숏폼 드라마나 AI 콘텐츠들은 제작비가 전편 다 해서 한 편 제작비도 안 돼요. 제작 기간도 말이 안 돼요. 특히 숏폼은 제작 기간이 정말 짧고 후반도 금방금방 해요. 공개하는 것도 대형 플랫폼을 통하는 게 아니니까 훨씬 쉽고 반응도 빨리 온단 말이죠. 그래서 큰 버짓으로 만든 드라마보다는 수익은 적지만 준비 기간, 매몰 비용이 말도 안 되게 적으니까. 사실 남는 게 엄청 큰 거죠.
마도:
그래서 오히려 AI가 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아요. 저는 애초에 가성비를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특히 뭔가 작품 만드는 데 가성비를 운운한다? 그러면 탁-하고 버튼 눌리는 그런 게 있어 갖고. 뭔가를 경제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걸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한데, 사실 AI의 핵심이 그거잖아요. 퀄이 구려도 어그로 끌어서 팔면 된다, 그 마인드 자체가 버튼이 눌리는 거지. 근데 콘텐츠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영화 좋아하는 사람이면 다 비슷한 생각 아닐까요?
제가 옛날에 속기 같은 거 엄청 했거든요. 강연 통째로 들리는 대로 써서 블로그에 올리고 했어요. 그런데 클로바노트 이런 데다가 딱 넣고 돌리면 제가 못 듣는 걸 얘가 듣는단 말이죠. 시간도 엄청 절약되고. 그런 거 보면 뭐 가성비가 좋긴 하죠.
근데 제가 하나하나 옮겨 썼던 건 다 기억나거든요. 두 시간 강연 옮긴다 치면 속기하고 정리하는 데 여덟 시간 넘게 걸린단 말이에요. 그렇게 저장해둔 건 다 기억 나. 근데 클로바노트로 돌린 건 다시 안 보면 까먹더라고요. 물론 뭐 빨리빨리 처리하는 건 좋지. 근데 또 창작의 영역에선 거부감이 든단 말이죠.
근데 한편으론, 제가 좋아하는 채널 중에 시니어 월드컵이라고, AI로 만든 영상 올리는데 되게 웃기거든요. 그거 말고도 <쇼미더머니> 패러디해서 랩 배틀 하는 영상도 있고. 그런 건 포스트모던한 개그다, 생각하면서 그냥 재밌게 즐기게 돼요. 딱 봐도 구라니까.
아 그러면 뭔가 진짜인 척해서 거부감이 드는 건가? 싶다가도. 사실 사람들은 이제 그냥 진짜든 가짜든 상관없이 재미있으면 장땡인가 싶기도 하고.
시니어 월드컵 (출처: Bler)
유민:
저는 그런 대중 반응의 변화가 사람들이 변한 게 아니라 실제로 AI가 뽑아내는 퀄리티가 진짜 말도 안 되게 좋아진 탓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숏폼 영상을 보다가 어떤 동물 영상을 보고 감동 받아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댓글을 보니까 다 AI가 만들었다는 거야. 그런 게 이제 너무 많아지고 좀 열 받죠.
영화 <트루먼 쇼> 뒷이야기를 풀 AI로 뽑은 영상을 본 적이 있어요. 10분 좀 넘는데, 거기서 트루먼이 자기 와이프나 스승 같은 사람들을 다시 만나러 가거든요. 근데 얼굴 근육 쓰는 거, 행동하는 거, 연기 스타일 다 실제 짐 캐리랑 똑같아요. 목소리도 똑같고, 대사도 그럴듯하게 썼을 거 아니에요. 심지어 시네마틱한 편집까지 들어가 있으니까 솔직히 (진위 여부를) 모르겠더라고요.
아 그래도 난 너무 거부감이 들어. 노래도 그래. 좋다고 듣다가도 AI라고 하면… 뭔가 진 느낌이라 그런가? 약간 인정하게 되는 느낌?
Seedance 2.0으로 만들어진 <트루먼 쇼> 뒷이야기 스크린 숏.
포도:
저는 AI로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거부감이 들진 않거든요. 물론 거부감을 느낄 때는 있지. 근데 그건 진짜 못 만든 AI, 뭉개지고 화면 광택이 너무 심하고. 고무 인간 질감이 나오거나 사람을 막 속이려는 악의가 느껴지면 싫지. 근데 AI가 만들었다는 걸로 거부감이 들진 않아요. 그래서 두 분 이야기를 들으면서 좀 추측을 해봤는데.
창작에 있어서 AI를 쓰는 게 왜 거부감이 들까? 그게 우리가 말한 가성비의 문제, 어떤 경제적인 문제, 그거랑 뭔가 떼놓을 수 없는 느낌이 들거든요. 가성비라는 말을 쓰지만, 가난한 작가들이 카메라 들고 거리에 나가서 핸드헬드 저예산 영화를 찍은 느낌과는 다르다는 거지.
AI가 개입돼 있으니까 창작자의 의도가 어디까지인지를 파악 못 하잖아요. 어디부터가 AI가 만든 거고, 어디까지가 사람이 만든 건지가 되게 모호하죠. 그러니까 그 전체가 다 가짜인 것 같고, 거부감이 드는 그런 문제와 뗄 수가 없는 것 같아.
마도:
약간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영화를 찍어봐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영화과 나와서 그런 걸 수도 있는데. 그 가성비라는 말을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 보면, (AI로 영화 만들면) 다 앉아서 만든다는 거잖아요. 탁자에서 앉아서 하잖아. 그게 싫은 거거든요.
어쨌건 나가서 찍으면 힘들잖아요. 민원도 듣고, 적당한 때를 기다려야 하고, 시간을 쓰니까. 근데 그게 단순한 낭비가 아니라 약간 경험이고 문화 같은 거잖아요. 그걸 없앤다는 측면에서 더 AI가 싫어지는 것도 있어요. 그냥 설계해서 딱 내버리니까, 경험적 차원에서의 그런 문화 같은 게 적어진다 해야 되나? 만드는 과정에서의 인간성을 지우니까.
유민:
전 AI를 많이 쓰거든요. 글 쓸 때는 안 쓰려고 노력하지만 그 외의 어떤 업무나 이런 데서는 엄청나게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단 말이에요. 근데도 왜 내가 이렇게 거부감을 갖고 있나 생각해 보면 저는 보상 심리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모두가 AI를 돌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게 티가 나면 너무 화가 난단 말이에요. 요새 클로드가 자주 쓰는 표현, 이를테면 “절제된 수준의 어떠함,” “뭘 박아버렸어” 이런 표현들이 보이고. ‘딸깍’이 분명한데 밤새워서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너무 짜증이 나요. 예전엔 그런 퀄리티를 절대로 스스로 뽑을 수 없었던, 혹은 뽑으려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뭔가 그렇게 하는 걸 보면 좀 비정상적인 정도로 큰 분노를 느껴요.
나는 AI를 쓰면서도 말 그대로 도움을 받는 것이지, 그걸 워싱하고 내 색깔을 섞고 새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하잖아요. 그런 것도 없이 “나 밤새워서 너무 힘들게 만들었어” 하면서 말도 안 되는 12장짜리 결과물을 내미는데. 거기에 AI 말투와 서식이 가득하면 진짜 전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단 말이에요. 그게 말씀하신 거랑도 통할 것 같아요.
난 현장에 나가서 막 통제하고 막 이러면서 찍는 과정을 거쳐서 어떤 정수로서 작품을 만들었는데, ‘딸깍’ 해서 비슷한 퀄리티를 내는 것에 대한 분노나 거부감 같은 것도 어쩌면 보상 심리 같은 게 섞여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한편으로는 그런 보람 없이 쉽게 손쉽게 만든 것이 내가 열심히 한 것과 동일 선상에 놓여서 평가를 받아야 하거나 경쟁해야 할 때의 위협감도 무시 못 하고.
포도:
맞아. 그래서 그런 가성비나 경제적인 판단이 단순히 개인적 경험이나 창작의 차원에서만 논의돼야 할 문제가 아닌 거죠. 우리가 창작물을 그냥 혼자 해서 대충 뿌리고 싶은 게 아니잖아요. 어쨌든 이걸로 임팩트를 만들고 싶고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게 창작의 되게 중요한 동력인데, 그 속도를 따라가려면 AI가 싫다고 그냥 안 쓸 수는 없는 거지. 싫어도 속도를 맞춰야 하니까 따라가야 하는 측면이 없지 않잖아요.
#비평
#장애물
#지름길
#노출콘크리트
#결함
포도:
《뉴욕 리뷰 오브 북스》 이번 호에 실린 건데, 댄 치아슨이라는 사람이 쓴 글이거든요.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해요.
“인공지능이 인간성을 말살하는 가장 큰 영향 중 하나는 글쓰기 행위에 내재된 간극과 난관을 우회하는 지름길을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원래 글 쓰는 게 진짜 너무 괴로워, 막. 그리고 안 풀릴 때도 너무 많아. 안 풀려서 막 어떻게 하지? 이러면서 막 선풍기를 닦아주고 막 커피 얼룩 같은 거 지우고 막 딴짓하고 담배 개 피고.
근데 AI가 있으니까 이런 과정에서 너무 쉽게 도망칠 수 있다는 거예요. 장애물을 없애주잖아. 또 재미있었던 게,
“우리 자신의 경험과 수많은 위대한 작가들의 증언을 통해 글쓰기 시간은 유동적이고 오랜 기간의 고갈과 갑작스러운 에너지 폭발로 특징지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글쓰기는 고이고 흐르며 막혔다가 다시 풀리기도 합니다. 근데 AI는 이러한 공백이나 막힘, 그리고 새로운 시작, 또 다양한 종류의 실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한 가지 목적, 즉 우리의 주의력을 수익화하고 다른 기업이나 단체에 이윤을 남기기 위해 판매하는 기업과 단체들에 의해 더욱 효율적인 소비자가 되도록 최적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문제가 단순히 나만 고고하게 AI 안 쓴다고 해결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아니지, 창작은 뭐 책상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지. 그리고 나는 힘들게 써야지.” 이런 결심을 한다고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 애초에 제도의 문법 자체가 AI의 시간성에 맞춰지는 게 문제라는 이야기죠. 뭔가 독립운동을 할 수조차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 자체가 되게 문제적이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이 사람은 교수인데, 학생들한테 절대 AI 쓰지 말라고 했대요. 2년 전에는 “너네 AI 쓴 거 다 티 난다. 몰래 써도 다 알아낸다” 말했는데 이제는 “이젠 너네가 AI 썼는지 안 썼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쓰지 마라” 이렇게 얘기한다고 하더라고요.
유민: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걸 글로 쓰는 건 힘들잖아요. 내 첫 생각에서 시작해서 글을 마무리할 때까지 바위를 미는 기분이고요. 다이너마이트 들고 터널 파는 느낌, 문장 하나하나를 막 이렇게 밀어가지고 끝까지 가는 느낌이잖아요, 원래는. 거기서 오는 희열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이 엄청 힘들잖아요? 저는 그 과정 전체가 비평 자체라고도 생각을 해요. 그리고 사실 글의 중심이 되는 어떤 하나의 생각이나 주제 자체는 엄청나게 어렵게 떠올리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뭐 이 작품이 이런 면에서 다시 볼 만한데 그럼 이런 거에 대한 글을 써봐야겠다, 이런 생각은 가볍게 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잖아요.
마도:
저도 약간 그런 게 있어요. 비평이라는 걸 정의한다고 했을 때, 쓰는 과정에서 오는 쾌(快) 같은 것도 있거든요. AI랑 쓰는 글은 이게 없어요. 물론 다른 고난이 있겠죠. 얘를 조교해야 되는 어려움 같은 거. 근데 그건 글을 쓸 때의 쾌와 좀 거리가 있죠.
옛날에 어디서 들은 건데 지금 갑자기 생각나네. 어떤 비평가가 청탁을 받았대요. 뭔 영화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되게 어려웠나 보죠. 그래서 마감 기한 내에 못 쓴 거예요. 근데 결국에는 지면에 실어야 하니까, 거기를 그냥 블랭크로 비워 둔 거야. 근데 (비워 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의견이기도 하잖아요. 근데 이제는 그럴 일이 없을 거 아니에요. 어떻게든 AI로 대충 갈아 넣어서 쓸 테니까.
유민:
아무 말이나 넣고 AI한테 “비평적 시각으로 3천 자를 써줘” 이러면 매끈하게 나오잖아요. 게다가 정합성도 있고 완결성도 있고. 그러니까 나의 어떤 주제, 중심 생각 한두 문장만 만들면 사실 AI가 이제는 웬만한 비평가들이 쓰는 만큼은 쓰는 것 같단 말이야. 엄청 우수한 글을 쓰진 못하겠지만. 그래서 어떻게 보면 모든 글이 상향 평준화되는 와중에 진짜 빛나는 글은 사실 찾기가 너무 힘들어진 것 같고.
사실 저희가 ‘차지’ 하기 전에 ‘알고리즘 분노 클럽’이라고, ‘차지’의 프로토타입 격인 프로젝트를 했었는데. 그걸 시작한 이유도 LLM이 완전하고 정합성 있는 비평을 써주는 시대에, 인간적인 글은 오히려 정합성에서 벗어난 글이 아닐까, 이런 의견을 저희가 공유해서 시작했던 거란 말이에요.
오류, 결함 같은 걸 조건으로 내재하고 있는 어떤 문장이나, 가다가 넘어지고 막 앞뒤가 안 맞고, 앞뒤가 안 맞는다면 ‘아, 이거 앞뒤가 안 맞네’ 깨닫고 다시 다른 길로 가보고 이렇게 해야만 지금으로서는 AI가 따라할 수 없는 글이 된다는 생각을 해요.
마도:
맞아요. 다이너마이트로 터널을 만들어야 되는데 이제는 그냥 아우토반이에요. 앞으로 쭉 달려 나가기만 하면 되거든.
크으. 게으른 비평가들은 ‘딸깍’하기 바쁠 수밖에 없겠다.
포도: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옛날에는 그런 망설임이 안 보이게 나의 의견이나 논리나 근거를 딱 봉합해서 정합적으로 보이게 하는 게 비평가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였잖아. 근데 이제는 내가 이렇게 바위를 밀었습니다, 이런 실패를 하고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런 걸 알리려면 글에 나의 망설임이나 실패 과정을 전면화해야 하잖아요. 티를 내야만 알 수 있으니까.
마도:
맞아, 노출 콘크리트처럼 해야 돼.
포도:
그쵸. 근데 전 여기서 두 가지 생각이 들어요. 하나는, 그런 실패를 전면화하는 방식의 글쓰기가 글을 되게 쉽게 쓰게 만들기도 한다는 거. 오류를 숨기지 않아도 되고, 멍청하다는 걸 드러내도 되잖아요. 그러면 글을 쓰는 게 쉽고 빨라질 거란 말이죠. 만약 그렇다면 거기서 인공지능만큼은 아니겠지만, 이전의 방식으로는 어려웠던 생산성이 있을 것 같단 거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두 번째, 아 뭔 얘기 하려고 했지? 두 번째… 어, 그것도 사실 인공지능한테 먹이를 주는 거야.
마도:
뭐가요?
포도:
우리가 만약에 오류나 실패를 전면화하는 노출 콘크리트 비평을 쓴다고 해봐요. 그럼 그게 데이터가 될 거 아니에요. 데이터가 되면 AI가 또 학습할 거 아니야. 그럼 또 그다음 모델을 우리는 개발해야 하는 거예요.
축음기로 음악을 틀었을 때 모든 음악이 주파수라는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것처럼, AI한테도 그런 인간적 결함? 글의 내용이나, 촌스럽게 표현하자면 감정 같은 것들이 다 주파수처럼 평면화돼서 텍스트 데이터로 다 입력될 거 아니야. 그러면 그것도 걔네가 흉내 낼 수 있다는 거죠.
이게 우리가 AI를 다룰 때 피할 수 없는 근원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만약에 AI가 막 눈물을 흘려. 피지컬 AI가 나와가지고 눈물을 흘려. 피부도 있고, 해리스 디킨슨처럼 생긴 거야. 걔가 우는 거지. 로봇인데. 사람이 측은지심을 안 느낄까요? 막 닦아주고 싶지. 그건 얘가 우는 걸 흉내 낸다는 걸 아는 거랑은 별개인 거예요. 당연히 알겠지, 얘가 슬픔을 흉내 내고 있다는 걸. 근데 그거랑 별개로 측은지심이 들거나 공감하는 건 또 다른 영역이잖아요.
#레퍼런스
#자가포식
#저자성
#네오얼리웹
포도:
창작하고 글 쓰고 할 때 도움받은 적은 없어요? 나는 좀 있긴 하거든요.
유민:
레퍼런스 찾을 때 많이 쓰는 것 같아요.
포도:
저도 진짜 미친 듯이 써보던 시기가 있거든요. 그렇게 막 쓰고 나중에 읽어보니까 내가 원래 쓰고 싶었던 얘기가 (완성된 글에) 하나도 없는 거야. 걔가 주는 레퍼런스에 내가 막 휘둘려가지고 아예 내 주체성을 다 잃어버리고. 그냥 어, 이것도 좋은데 이것도 좋은데 하면서 다 넣고 하니까.
레퍼런스가 다 열린다는 게 한계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뭐라 해야 하지? 내가 사라진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사라지고 그냥 걔가 주는 게 다 좋아 보이니까 막 휘둘리고. 그래서 또 한편으로는, 인공지능이 주는 레퍼런스라는 게 데이터 정규 분포에 영향을 받을 거 아니야. 그러다 보면 사실 모두의 레퍼런스가 비슷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마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나중에 AI가 발전되면 표절 논쟁이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인간의 모든 생각이 그냥 다 데이터화되고, 다 그렇게 외주 주고 하면은 그게 어떤 보편으로 수렴될 거거든요. 그럼 저작권 자체도 없어질 거예요. 사실상 다 AI가 한 거니까.
유민:
어제 본 게 있는데. 제런 레니언의 ‘디지털 마오주의 새로운 온라인 집단주의의 위험성’이란 아티클인데. 옛날 글이에요. 2006년 글인가? 이때는 위키를 패면서 막 ‘이런 집단 지성 필요 없어’ 이런 얘기를 하는데, AI가 여기서 말하는 마오주의 집단 지성의 극단인 것 같아요.
이 집단 지성이라는 게 모두의 생각을 섞어서 거대 레퍼런스 풀로 만들잖아요. 그러면 지금 현재로서는 여기서 뭔가 새로운 걸 뽑을 수 있겠지만, 이 풀 안에서 사람들이 계속 이 안만 참조하다 보면 과연 새로운 걸 만들 수가 있을까?
저 아티클에서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는 비결은 집단지성과 개인 지성의 결합에만 있다고 이야기를 해요. 시장이라는 게 단순히 경쟁에 의해서 가격이 결정되는 것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거죠.
“경쟁에 참여할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업가 정신 또한 필수적이다. 다시 말해 시장의 영웅인 영리한 개인들이 집단행동을 통해 답을 도출하게끔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게 필요하다. 어떤 인풋을 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그러니까 진짜 인간의 어떤 창발을 인풋하는 사람이 없으면 집단지성은 점점 어리석고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변모해 가는 것이다.”
물론 여기선 위키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저는 얼리 웹 시대에 인터넷을 다룬 모든 글들이 지금 더 극단적으로 해석 가능한 글로 바뀌는 것 같아서 재미있어요.
포도:
그런 것도 있잖아. AI가 생성한 이미지를 똑같이 그려줘, 똑같이 그려줘, 오십 번 하면 아예 뭐 추상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이미지로 출력이 되니까.
자기가 자기 꼬리를 먹는 포식이 레퍼런스 풀 안에서 작동했을 때는 완전 망가질 수도 있는 거지. 만약에 레퍼런스가 다 돌고 돌아서 다 똑같은 글만 써. 그러면 뭐가 재미있는 비평이고 뭐가 재미없는 비평이고, 뭐가 논리적이고 아니고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사라지잖아요.
#비평가
#시네필리아
#문화
#플랫폼
#간장게장
포도:
한편으로는 이런 상상도 해. 뭐 글을 쓰고 비평을 하고 이런 건 다 상호참조의 영역이고 레퍼런스를 다 알아야만 좋은 글을 쓰느냐, 그것도 아니잖아. 어떤 건 내가 모르고, 못 읽고, 못 보기 때문에 생기는 영역이 있고. 그래서 더 용감하게 쓸 수 있잖아요.
이를테면 내가 뭐 <군체>는 쓰레기 같은 영화라고 얘기를 하고 싶어. 근데 모든 막 비평가들, 정성일, 유운성, 허문영 다 “<군체> 명작이네요”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걸 알고 있으면 반대 의견을 내기가 힘들잖아요.
예를 들어 내가 <군체>는 쓰레기 영화라고 생각하는 의견이 되게 확실해. 나만의 근거도 있어. 근데 내가 <군체>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데이터를 많이 알수록 용기의 허들이 높아진단 말이야. 쉽게 얘기할 수 없고. 이야기를 하려면 내 에너지를 더 많이 써야 하고. 무언가 새로운 얘기, 기존에 없었던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고. “흥~이게 저예요” 말하는 것 자체가 나르시시스트 같아 보일까봐 걱정되고요. AI 이후에는 레퍼런스의 중력이 더 심해지기 때문에, 이제 비평가들한테는 그런 것까지 극복해야 되는 챌린지가 부가로 주어진 게 아닐까.
마도:
꼭 AI가 아니더라도 플랫폼이 이미 예견한 것 같아요. 뭔가 외부를 만날 기회 자체가 협소해진다는 게. 이게 시네필리아에 대한 주제랑 연결되기도 하는 것 같거든요. 이번에 차지 5호에 쓰신 이야기랑 되게 비슷해요. 옛날에는 영화를 보려면 웹하드 뒤지고, 무슨 어디 이상한 사이트 가서 이상한 제목으로 된 거 찾아봐야 했단 말이죠. 지금은 넷플릭스 시대가 됐잖아요. 넷플릭스가 사실 ‘모든 것이 여기 다 있는 것처럼’ 속이거든요. 근데 전혀 안 그렇잖아요.
그 갭이 더 커져요. 저희는 그런 게 가능했다고 생각하거든요. 뭐, 다른 영화를 막 찾다가 ‘어 이런 영화도 있네’ 하면서 다른 걸 보고. 그게 찾으려던 영화보다 더 재미있을 수도 있고. 그런 우연적이고 미지의 조우 같은 이벤트가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게이트키핑 된 상태인 거죠. 넷플릭스 환경 안에서는 뭔가 무한 속에 있다는 착각을 계속해서 하죠. 안전하고 행복하게 무한으로 즐기고 있다는.
게다가 AI가 내가 좋아하는 걸 추천해 주잖아요. 그럼 이제 더 협소해지는 거죠. 다른 걸 만날 기회가 적어지고. 알고리즘이 랜덤이면 차라리 상관없는데 내가 좋아하는 걸 기반으로 추천해 주니까. 굉장히 쾌적해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문화의 종말 아닌가.
그래서 고전적 의미의 시네필리아는 죽었다고 생각해요. 고난이 없으니까. 사실 인터넷만 있던 시대에는 그래도 고난이 있었어. 검색이라는 과정 자체가 쾌적함이랑은 거리가 있고, 또 내 진짜 욕망을 실현하기까지 가려면 제약이 너무 많거든요.
우리 윗세대 사람들 있잖아요. 비디오 빌려 보고, 막 무슨 부산 사는데 안테나 연결해서 일본 방송 따오고 그런 시대의 사람들. 기술적으로 조금 달라졌을 뿐이지 검색이라는 행위와는 꽤 비슷하거든요. 뭐 조금 쉬워지긴 했겠지만 본질적으로 공유하는 게 있죠. 근데 넷플릭스 세대부터 이게 잘 안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뭐 어떤 영화를 보고 싶어. “야, 그거 어디서 봐?” 이러면 “그거 넷플릭스에 없어,” 그러면 더 이상 안 찾아. 플랫폼에 없으면 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안 보는 거죠. 그러면서 전통적 의미의 시네필리아도 조금 퇴색된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인용맨 등장! 도마도의 1회차 발제문 中
“AI의 발전으로 더욱더 나의 취향에 맞춰 ‘추천 콘텐츠’의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나의 검색 횟수는 그에 비례해서 적어지고 그에 비례해서 나의 욕망은 너무 쉽게 성취되고 그러다 보면 방해와 위반 없는 세계에서 우린 결국 원하는 것만 보고 들어서 좀비와 군체가 되고 말 것이야……
씨네필의 사랑은 지독한 사랑(‘-phile’)이며 그것이 우리가 지독한 줄 알게 되는 건 온갖 장애물이 닥쳐와도 영화를 사랑하는 돈키호테적 순간을 관찰하는 데서 온다. 그러니 씨네필은 결국 위반의 문제를 동반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들의 안전과 행복이 무한히 보장된 인피니트 스크롤의 시대에서, Director가 Creator가 된 시대에서,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시대에서, 핸드폰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핸드폰 하는” 시대에서, 요컨대 여정이 축소된 ‘가짜 우연’이라는 파란 알약의 시대에서 이미 죽은 지 오래된 것이 아닐까…”
인용맨 퇴장! |
유민:
사실 그런 플랫폼을 구독하는 것 자체가 시네필이 되기 위한 어떤 입구로 진입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우리가 어릴 때 케이블 티비 보던 것도 사실은 구독 플랫폼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잖아요. 틀어주는 것만 봐야 된다는 점에서.
근데 거기서 뭔가 기가 막힌, 나의 마음을 찢어버리는 영화를 하나 봤다고 쳐요. 그럼 그걸로 시작해서 내가 새롭게 탐색할 수 있는 어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건데, 요즘은 모든 것이 이미 패키지화 되어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스스로 찾아갈 필요가 없는 거죠. 이미 넷플릭스만 구독해도 영화 한 만 편 볼 수 있잖아요. 그 정도 되나? 이런 리스트가 있으면 다른 데로 노드를 뻗치기가 조금, 엄두가 안 날 뿐 아니라 그럴 생각조차 안 들 것 같아.
포도:
예를 들어서 뷔페에 가. 간장게장이 없어. 그렇다고 나가서 간장게장 집에 가지는 않는 거지.
유민:
간장게장집 가면은 사만 오천 원 내야 되는데, 이 뷔페는 간장게장만 포기하면 다른 걸 다 먹을 수 있어.
포도:
그럼 내 인생에서 그냥 간장게장은 없는 걸로.
마도:
그래서 사람들이 영화 개별 구매도 안 해요.
포도:
맞아. 그래서 네이버 그 구매 페이지 사라졌잖아.
유민:
생각보다 유튜브 개별 구매로 볼 수 있는 레어한 것들이 많잖아요. 천오백 원이면 볼 수 있잖아요. 아무도 안 보는 거.
이만 원을 내면 뷔페에서 온갖 산해진미를 모조리 먹을 수 있다. 당신은 간장게장만을 먹기 위해 사만오천 원을 지불할 셈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씨네필, 아니 게장필이다. 축하한다.
#p2p
#시네필리아
#비디오
#비주류초대석
#멋쟁이씨네필
포도:
옛날 비평들 읽어보면 사실 틀린 거 개 많잖아요. 어차피 다시는 못 보니까. 그래서 잘 본 척하려고 뻥치고. 근데 그로 인해 뭔가 새로운 지점들이 창발하는 영역이 분명히 있는데, 지금은 영화를 다시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가 희미해지는 거야. 근데 여전히 분명 그런 영화가 존재하거든요. 예를 들어서 영화제에 왔다가 수입이 안 되는 영화들. 다시 보려면 그 나라 가서 보거나 뭐, 막 러시아 자막으로 봐야 돼.
분명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영화는 계속 존재하고, 오히려 더 늘어나기도 하는데, 시네필리아의 작동 메커니즘에서 오히려 점점 ‘지금 아니면 못 봐’ 하는 집착적인 감각은 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은 거죠. 옛날에 그 p2p나 이런 데서 잘못 다운받으면, 그 도둑 촬영해가지고, 알죠.
마도:
존나 막 흔들리고, 숨소리 나고 이런 영화들. 추억이 있죠. 근데 이제 요즘 친구들은 그런 거 없다.
포도:
아니, 그리고 애초에 이게 진짜 부산영화제에서 딱 한 번 상영하는 거고 수입도 안 된다는 걸 안다 해도 몰래 찍어야겠다는 생각 안 할 것 같아. 왜냐하면 애초에 영화를 소유하고 내 걸로 만든다는 감각 자체가 낯설 것 같아.
사실 대여 서비스라는 건 잠시라도 소유한다는 감각을 주잖아요. 내가 어디 비디오방에 가서 비디오를 빌려. 그러면 대여한 기간 동안은 그 영화가 내 것 같거든. 근데 넷플릭스, 막 영화가 만 개 있어. 그렇다고 내가 만 개의 영화를 소유했다는 감각은 전혀 안 들잖아요. 비디오방에서 비디오를 막 천 개씩 빌려주지 않으니까. 그래서 세 개를 빌려와. 근데 하나 못 봤어. 그래서 연체해. 막 이런 식의 어떤, 한정되어 있을 때의 감각. 그게 꼭 비디오라는 물성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닌 거죠.
마도:
이제 오디언스(audience)가 없고 그냥 커스터머(customer)밖에 없다니까요. 그냥 다 고객이야. 관객이 아니고, 관중이 아니고 그냥 완전 커스터머고. 모두가 서비스를 제공받는 느낌이에요.
제가 왜 그게 씨네필이 아니라고 생각하냐면, 여기 (발제문에) 쓰긴 했는데 필(-phile)이 완전 뭐라 해야 되지? 약간 미친 사람 같은, 그런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다 뚫고서 “그래도 난 봐야 돼” 막 이 지랄하고 있는 거지. 그걸 봐야 ‘야, 저 자식 씨네필이다’ 이게 되는 거니까. 이젠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데 왜 그게 ‘필’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 거죠.
뭐 취향이 저렇구나 정도는 인정할 수 있어도. ‘이 새끼 돈키호테처럼 미친놈이구나’ 이런 건 안 느껴지잖아요. 그게 씨네필이 맞나? 싶어요.
포도:
라이카시네마 가고 비주류 초대석 좋아하고 그리고 뭐 그런 영화를 많이 본다고 쳐. 하 근데, 아 이게 사실 나는 좀 싫어. 저는 아트시네마나 이런 데 최근에 다시 다니면서 느낀 게, 사람들이 너무 멋져요. 예전에는 이상한 사람 존나 많았는데.
마도:
근데 그건 좀 씬이 쾌적해진 거 아니에요? 여기 썼어요, 저도. 쾌적한 게 좋다고.
인용맨 등장!
도마도의 1회차 발제문 中
“나도 쾌적한 게 좋다. 영화 보는데 옆에서 오줌 싸는 걸 누가 좋아하냐고.”
인용맨 퇴장! |
포도:
아니, 근데 그니까, 하, 근데 몰라. 내가 힙스터 공포증이 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너무 기죽고 그리고 막 향수 냄새 존나 나고.
유민:
체크 셔츠 땀 냄새보단 좋지.
포도:
그래 맞아. 쾌적하고 좋은데 그냥 나는 좀 쪼그라드는 거야. 그럼 막 욕해요. 저 새끼들은 패션 씨네필이야, 하면서.
마도:
애니메이션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 넷플릭스에 이제 애니가 엄청 막 올라오잖아요. 걔가 그런 얘기를 해요. “아, 내가 옛날에 막 볼 때는 씹덕이다, 막 이러고 놀던 새끼들이 지금 막, 아, 애니 좋다, 막 이러고 있다”고. 개 짜증난다고.
나만 아는 음지의 가치를 유지해야 하니까 더 깊게 파고들어. 더 씹덕이 되는 거지. 근데 힙스터들은 양지에 있는 것들을 점점 키우는 거예요. 그래서 씹덕은 더 씹덕 되고. 그런 갭이 생겨요. 소통이 안 되는 거죠.
포도:
나는 이걸 또 인스타그램이랑 떼놓을 수가 없다고 보는 게. 사실 옛날에는 내가 막 장 뤽 고다르라는 이름이 어떤 무게인지 알려면 너무 많은 절차가 필요했어. 일단 한국 소도시 출신 1990년대생으로서 장 뤽 고다르를 안다? 그 자체가 너무 힘들었어요.
뭐 도서관에 가서 영화사 책을 읽어. 영화사 책을 처음 펼치면 이해가 안 되는 건 둘째 치고, 모두가 모르는 사람인데 이 중에 장 뤽 고다르가 위대하다는 걸 어떻게 알아? 누벨바그 한두 명이야? 존나 많잖아. 그중에서 장 뤽 고다르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고 쳐. 그래도 안 되거든.
수많은 거장들, 그 인명의 무게에 짓눌려서 뭐부터 봐야 되지? 뭐부터 봐야 되지? 하면서 사금 같은 정보들을 채취해야만 알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인스타에서 “스물한 살 패션 전공 씨네필인데요. 제 인생영화는요,” 하면서 이야기하고 그걸 또 받아서 볼 수 있고. 인스타만 켜도 그런 역사를 되게 압축해서 알 수 있으니까. 암튼 존나 뭔가 쉬워졌어.
조회수를 봐라. 컬트가 아니다...
마도:
요약 영상 보고 영화 봤다고 하는 애들 있다니까요. 진짜로. 제가 볼 땐 거의 80프로예요. 그게 한 3, 4년 전만 해도 진짜 영화는 아니지, 생각하는 분위기였고, 최소한 그걸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이젠 너무 당연해진 거지.
포도:
젊은 애들은 다른 걸 찾잖아요. 뭔가 남들이 안 하는 걸 찾고 싶으니까. 비록 거기에 이미 힙스터들이 몰려 있다 해도 주류가 아닌 걸 찾아가고. 그러니까 비주류 초대석이 비주류 초대석인 거지. 뷰가 100만, 200만 뷰가 나와도 어쨌든 비주류라는 거야.브라이언 이노가 무슨 비주류야. 존나 위대한. 비주류 취향으로 언급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 브라이언 이노만큼 성공하면 된다. 옛날에는 비주류면 조회수 450 정도인데, 그걸 보는 건 씹덕이지 힙스터가 아니거든.
아 좀 쉴까요. 뒤질 것 같네.
#저자성
#아방가르드
#포스트모더니즘
#네오얼리웹
#라이프박스
#AI조수
유민:
저자성 관련해서 좀 재미있는 게 있는데. 《문예비창작》이라는 책에서 소개하는 사례인데요. 익명의 작가 세 명이 어느 날 인터넷에 갑작스럽게 공개한 3,785쪽짜리 시집이에요.
이 앤솔로지에 총 3,164명의 시인이 쓴 시가 담겨 있는데, 이 시들은 가짜예요. 다 컴퓨터로 만든 거예요. 이때는 AI가 없었겠죠. 컴퓨터로 어떻게 막 그 시인들의 말 같은 걸 조립해서 만든 거고. 그냥 여기에 실제 시인 3천 명의 이름을 가져다 붙인 거예요. 이게 뭐 전통적인 시인 이름이 엄청 급진적인 시에 갖다 붙어 있을 때도 있고 또 그 반대도 있고. 이게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대요.
일단 시인들이 ‘어, 이게 뭐지?’ 하고 메일을 확인했는데, 자기 이름으로 자기가 쓰지 않은 이상한 시들, 말이 안 되는 시들이 공개가 됐어요. AI는 그럴듯하게 생성이라도 하지만 이건 진짜 말이 안 되는 조립들인 거죠. 그래서 문학계 전체에 ‘내가 왜 이 선집에 들어가 있지?’ ‘왜 나는 포함되지 않았지?’ ‘왜 내 이름을 이 시와 연결했을까?’ 이런 반응이 퍼져 나갔는데 여기서 너무 웃겼던 게,
“기고자들 중 절반은 포함됐다는 사실에 기뻐했고 나머지 절반은 격분했다. 포함된 시인 중 몇몇은 자신이 썼다는 시를 다음 시집에 넣겠다고 말했다. 일부 저자들은 이 선집이 자신들의 천재성과 진정성에 대한 명성을 실추시켰다고 언짢아했다.”
근데 이때 제일 격하게 화를 낸 사람이, 창작자는 저자성에서 해방되어야 된다고 십 년 동안 주장해 온 어떤 모더니즘 시인이었대. 이 사람이 “어떻게 내 이름으로 이런 걸 썼냐” 그렇게 말을 했다는 거예요.
포도:
꼰스럽네.
익명의 작가 세 명이 2008년 인터넷에 갑작스럽게 공개한 3,785쪽짜리 시집, ‘ISSUE 1’의 커버 이미지. 일부 시인들의 대노를 이끌어냈다.
개념미술가(개념이 있단 소리가 아니다) 솔 르윗이 1967년에 고안한 ‘조리법 미술’의 스케치. (출처: Krakow Witkin Gallery 홈페이지)
유민:
그걸 보면서 아, AI 시대의 예술가들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자성 잃기, 인간성 잃기를 계속 시도해 왔으면서, 이제 드디어 인간성과 저자성을 완전 잃어버릴 수 있는 기술이 발명되니까 갑자기 다들 분개하는 느낌? 아방가르드, 개념 미술, 포스트모더니즘 내내 저자성을 잃자고 주장하더니만 LLM이 마침내 저자성을 박살내니 갑자기 저자성에 목숨을 건다, 이게 저의 어떤 충돌하는 생각들의 핵심이거든요.
그리고 이건 또 다른 사례인데, ‘라이프박스’라는, 당시에는 미래 개념이었던 건데요. 데이터로 축적된 누군가의 일생이 강력한 소프트웨어와 결합하면 그 사람이 죽어도 살아있는 사람처럼 행세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여기서 매피어슨이라는 사람이 한 말이 있는데요.
“나의 죽지 않는 클론은 일관성이나 관련성이 없을 수도 있지만 정확히 내가 내뱉는 개소리를 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근데 이게 완전 이젠 가능하잖아요. 이때만 해도 이 라이프박스라는 것은 어떤 실험 예술, 저자성과 인간성을 제거하는 실험의 최전선처럼 받아들여졌던 거죠. 근데 포도가 세미나 기획안에 썼던 것들, ‘배우의 얼굴을 AI 복제로 쓴 장면은 그 배우의 연기인가?’ ‘감독의 스타일을 학습한 이미지로 만든 쇼트는 그 감독의 쇼트인가?’ ‘시나리오를 학습시켜서 만든 씬은 작가가 쓴 씬인가?’ 이런 문제와 정확히 같은 이야기 같아요.
같은 책에 소개된 미술가 중에 솔 르윗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조리법’ 미술을 요구했대요. 아마 레시피를 말하는 거겠죠. 건축가가 사실 직접 삽을 들고 기초공사를 하거나 벽돌을 쌓지 않잖아요. 설계하고 지시하지. 그렇다면 미술도 사실 생각을 고안해 낸 사람이 작품의 조립법을 어떤 사회계약 식으로 상연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거죠.
근데 이제는 사람 조수가 아니라, 나의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AI 조수한테 넣어서 조립 기반으로 창작을 하거나 글을 쓸 수 있는 시대가 됐잖아요. 그러면 이제는 어떻게 될 거냐는 거지.
포리도리의 닫는 프롬프트
여기까지 이야기하다가 녹취가 끊겼습니다. 제4종위키의 에디터스 레터에 실린, 수상한 중학생의 방문을 예견하듯… 실종 경보 알림이 울렸기 때문이죠. 물론 이때쯤엔 이미 첫 회차 세미나가 마무리되던 즈음이었습니다.
그즈음 포도는 배가 고파 도마도가 사 온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유민은 김병우 감독이 티아라 함은정의 남편이라는 것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포도는 <대홍수>를 보며 오열했다고 말했고, 도마도는 거기에 자신은 울지는 않았다 덧붙였죠. 찔려버린 포도는 혼자 술을 마시며 봐서 오열했을 수 있다고, 또 제 살 깎아 먹는 소리를 했지 뭡니까.
어찌되었든 AI+영화 소용돌이 세미나는 계속되었습니다. 유민이 제기한 마지막 질문에 관해서는 2회차와 3회차에서도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전혀 계획된 것이 아닌데도 말이죠. 이것이 소용돌이의 매력 아닐까요? 다음 회차에는 누가 올까요? 우리는 어떤 해시태그 블록들을 붙이며 거대 구조물을 만들게 될까요? Coming soon…
① 우따필스의 에티오피아 필터 커피는 정말 맛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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