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말잇기 –  기성세대 –  대련 –  연기수업 – 업무일지 – 지뢰찾기 – 기립박수 – 수요일 – 일등석 – 석관동 – 동거 – 거수 –  수다쟁이 이민  민원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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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수요일엔 버섯을
신포도
2026년 3월 15일





수요일마다 소년은 뒷산을 올랐다. 버섯에게 사죄할 것이 컸기 때문이다.

소년이 다니는 중학교 학관 뒤편에는 작은 산덩어리가 있었다. 멍울진 건물이 산의 절반즈음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소나무로 그늘진 언덕은 항상 습했다. 8시부터 6시까지, 학생들이 머무는 시간에만 간헐적으로 들리는 떠들썩한 소리들은 기분 좋은 정도의 진동을 주곤 했다. 균류들은 행복하게 자라나는 듯했다.

수요일마다 사죄 의식을 벌인 지 언 1년. 작년 초까지만 해도 소년은 버섯의 그늘이 되어주는 학교 건물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소년은 여느 학생들처럼 매일 학관에서 공을 차며 놀았고, 종이 울리면 엷은 초록빛을 띠는 플라스틱 천장으로 감싸진 다리를 건너 교실로 돌아갔다. 그는 학관 3층 동아리방에서 매주 화요일마다 흑인 음악을 들어야 했는데, 그나마 경쟁이 적었던 흑인 음악 동아리에 입부 신청서를 냈기 때문이다.

회장은 선교 활동을 펼치듯 적극적으로 이름 모를 흑인들의 음악을 틀었다. 동아리방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후마다 각종 흑인 음악이 울려 퍼졌다. 블루스, R&B, 힙합, 소울, 훵크, 레게, 디스코… 매일 먼 곳의 음악을 들으며 소년은 정체 모를 특권의식 같은 걸 피워냈다. 그러나 이따금씩 회장은 좋은 음악은 음악 그 자체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침을 튀기며 이야기했고, 우리는 학관과 청소년기의 저주를 받아, 사실 제대로 된 음악을 들은 적 없다며 화를 내곤 했다.

진짜 흑인 음악은 폐업 전날의 허름한 술집에서, 가랑비가 내리고 난 뒤 밤의 쓰레기장 뒤편에서, 주말의 쨍쨍한 낮, 자위를 끝마친 뒤 서늘한 마음으로 컴퓨터 앞 의자에 앉아 듣는 것이라 했다. 중학생으로서 술집에 출입할 수도 없거니와 갈 수 있는 쓰레기장이라 해봤자 분리수거 섹션을 세세히 나눠둔 아파트 단지 내 쓰레기장일 테니, 이번 주말만이라도 컴퓨터 의자에 앉아 고요하고 헛헛한 마음으로 음악을 듣길, 동아리 회장은 매주 강조하고 강조했다.

소년은 매주 화요일마다, 여느 때와 같은 회장의 충고를 들었다. 여느 날처럼 집에 돌아갔다. 아주 평범한 저녁을 보냈다. 그날은 조금 일찍 잠에 들었나? 몇 가지 원인을 추리자면 추릴 수 있었겠으나, 한 점을 추적해 선을 긋는 것이 그닥 중요하지는 않았다. 소년은 그날 저녁 평생 잊지 못할 잠을 잤기 때문이리라.

낮 빛이 드는 창, 커다란 버섯이 소년의 컴퓨터 앞에 앉아, 본인 몸에 자라난 작은 버섯을 마구 비비는 순간을 마주한 것이다. 몇 번의 손짓이 끝나자 버섯은 오로라 빛의 포자를 펑 터트렸고, 소년이 누운 침대, 흰 벽 모두 형형색색의 작은 버섯으로 뒤덮였다. 버섯은 축 처진 채 노래를 틀었다. 어떤 풍의 노래였는지, 가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 나는 건 하나 없다.

따지자면, 소년은 버섯이 듣던 음악을 훔쳐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도둑질 같지는 않았는데, 꿈에서 들은 음악과 오로라 빛의 포자, 이름 모를 버섯으로 잔뜩 둘러싸여 있었던 상태가 아주 편안하고 황홀했기 때문이다. 소년은 이것이야말로 정말 음악을 듣는 행위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고, 그제야 회장의 철학을 이어받았을 뿐이라는 얄궂은 열등감이 씻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그 누구도 듣지 못할 음악을 들었다는 것에 만족했고,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음악을 듣는 자의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버섯의 수음을 목격한 그날로부터, 소년은 매주 화요일마다 버섯의 황홀을 훔쳤다. 어느 날 버섯은 자신의 방에 피어오른 다른 버섯을 떼어내 먹어버리기도 했으며, 때로는 버섯과 위액이 뒤섞인 토를 소년의 이불 위에 쏟아내곤 했다. 한번은 오로라 빛의 포자가 퍼질 때를 노린 버섯이 자신의 포자를 흡수한 적 있는데, 그때는 온 방에서 굉음이 들렸다. 소년은 악몽을 꾼 듯 화들짝 놀라 깼다.

버섯 꿈을 꾼 지 열 번이 넘어가던 때, 소년은 처음으로 동아리방에서 회장의 추천 음악에 반기를 들었는데, 이런 음악을 그저 소비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며, 수음 따위를 하며 음악을 듣는다는 당신의 철학은 진실의 황홀함을 겨냥하는 태도가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회장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눈을 피했던 것 같다.

그 의기양양했던 화요일의 동아리 활동 시간 이후, 고양감에 가득 찬 한 주를 보낼 작정이었다. 그날의 버섯을 기다리며 눈을 감았으나, 버섯은 그제야 소년의 존재를 인지한 듯했다. 버섯은 소년에게 균류의 말을 쏟아냈다. 겁쟁이라느니, 나의 청취 경험을 훔쳐 간 도둑이라느니, 비겁하고 더러운 피지 냄새가 진동하는 인간과 이 방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둥 큰 소리를 쏟아냈다.

버섯은 외쳤다. 다시는 네 꿈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앞으로 음악을 제대로 듣는 것만은 상상도 하지 말라고. 버섯은 협박도 덧붙였다. 자신은 꿈속 존재만이 아니며, 당장 네 학교를 침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네가 흑인 음악 동아리에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나오지 않는 순간 그 황홀함의 몇 배가 되는 악몽으로 되갚아줄 것이라 했다. 소년은 그 꿈을 꾸고 난 뒤 땀을 뻘뻘 흘리며 일어났고, 그 주의 수요일은 학교에 가지 못했다.

학교에 가지 않는 수요일 하루 동안 소년은 계획을 세웠다.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까지는 닷새가 남았다. 닷새 내에 소년은 자신이 훔친 버섯의 황홀한 경험을 어떻게든 되돌려주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일단 동아리 부원들에게는 자신이 그동안 이렇게 수준 높은 음악들을 그저 즐기는 체했을 뿐이며, 그것이 후회스러워 동아리를 옮기는 것으로 처벌받겠다고 공언할 계획이었다.

문제는 소년이 그 공언, 자신에게 처벌을 가하기로 한 약속을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불안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꿈속 버섯과 들었던 음악이 지나치게 황홀했기 때문이다.

소년은 꿈속에 찾아오지 않을 버섯을 기다리는 대신, 직접 버섯을 찾아 나서야겠다는 결론에 닿았다. 동아리를 빠진 화요일 오후마다 소년은 학교 근방을 수색했다. 버섯이 자랄 만한 곳들을 찾았고, 겨우 찾은 것이 건물 뒤편에 가려진 학관 뒤쪽의 동산이었다. 그곳에는 음습한 버섯들이 자라고 있었다. 소년은 이어플러그로 자신의 귀를 틀어막은 채, 블루투스 스피커로 버섯에게 음악을 들려주었다. 밀도 있는 스펀지 구멍으로 새어드는 답답한 음악 소리. 그것이 그의 죗값이었을까?

부식토, 낙엽이 뒤섞인 냄새가 음악 위로 고였다. 소년은 자신의 코를 찌르는 그 냄새를 일종의 응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짓을 해온 지 1년이 넘어가던 때, 겨우 소년은 펑펑 터지는 음악을 들어도 황홀감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흑인 음악도 버섯이 자라는 산을 언급하는 교가의 가사 한 줄과 비슷한 감동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학생이라면 누구나 기계적으로 부르는 교가처럼, 소년은 모든 음악에 더 이상 황홀감을 느끼지 못했다.

황홀의 온전한 상실. 그것으로 소년은 버섯의 황홀경을 훔친 자신을 용서할 수 있었다. 비어 있던 화요일 밤도 다른 것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오로라 빛의 포자, 버섯의 작은 버섯 같은 것을 배제한 꿈들로. 여기까지가, 소년의 수요일이 마침내 평범해지기까지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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