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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민
2026년 3월 16일
내 크롬 북마크 바의 클리핑 폴더나 핀터레스트 보드, 유튜브 검색 기록을 훔쳐본 사람이 있다면 내가 아마 엄청난 부자에다가, 조만간 떠날 초호화판 신혼여행을 준비하느라 신경쇠약 직전의 상황에 놓여있는 예비 신부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의 아주 오래된 관심사 중 하나가 바로 결혼식에 딸린 유료 옵션들, 즉 스드메① 문화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높은 티어를 가진 사람들의 비행 문화인 탓이다. 이상한 점이라면 나는 해외여행을 그렇게 즐기는 타입도 아니고, 결혼도 그다지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겠다. 즉 이런 것들을 수년에 걸쳐 찾아보고 디깅하는 건 실로 순수하게 두 가지 문화가 내 흥미를 끌기 때문이다. 뭘까? 인류학적 호기심일까? 나는 결혼식과 일등석 탑승이 부조리하다거나 멍청한 문화라고 얕잡아본 적이 없다. 그저 극강의 커스터마이징 게임이라고 생각해 이를 파악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오르는 것뿐이다.
티베트 승려들은 색모래를 사용해 무시무시하게 정교하고 아름다운 만다라를 만든다.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본 것이다.
이 의식은 2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티베트어로는 ‘뒬촌 킬코르(དཀྱིལ་འཁོར)’라고 불린다.
음력 4월 15일 사가다와 축제에 맞춰 작업을 시작한다.
대리석, 진주, 마노, 청금석과 같은 진귀한 보석들을 곱게 빻아 가루로 만든다.
거기에 다섯 가지 꽃과 뿌리에서 추출한 안료를 물들여 색을 낸다.
금속관을 두드리며 한 달 내내 허리를 굽힌 채 우주의 모습을 그리고 모래로 채워 넣는다.
작업이 완성되면 빗자루를 들어 모래를 전부 싹싹 쓸어낸다.
항아리에 채우고, 흐르는 강물에 전부 쏟아버린다.
이는 무상의 진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엄격한 채식, 힌두식, 동양 채식, 당뇨식, 해산물식, 과일식, 글루텐 제한식, 코셔 푸드, 할랄 푸드를 포함한 수십 가지의 사전 신청 옵션이 있는 특별 기내식이라든가, 아시아나에서는 라면에 북어와 건표고를 잘라서 넣어주고 대한항공에서는 햄을 토핑해 준다는 사소한 차이의 재미. 아랍에미리트 A380 일등석에는 불가리 어매니티가 딸린 샤워실이 있으며, 스위트클래스 1A석과 2A석 사이의 파티션을 내리면 더블베드가 완성된다는 팁. 불리니, 사워크림, 달걀 노른자, 멜바 토스트, 싱가포르 항공의 ‘북 더 쿡’ 제도를 활용해 꼬냑과 디종 머스터드로 풍미를 더한 랍스터 테르미도르를 먹을 수 있고, 잠옷 가운데 JAL의 일등석 승객에게 제공되는 것이 특히 포근하며, 대만 EVA 항공의 TPE-ORD(타이베이-시카고) 구간에 탑승하면 헬로키티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나, 여기에서 받을 수 있는 헬로키티 리모와 키트가 이베이에서 불티나게 팔린다는 재테크 정보는 또 어떠한가. 네덜란드 KLM에서 매년 10월 7일마다 파란색 델프트 미니어처 하우스를 만들어 승객들에게 기념품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이름에 델프트가 들어간 이유는 델프트 도자 공법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하잘것없는 이야기는 얼마나 흥미로운가. ‘마일런’②이라는 이름의 사치스럽기 짝이 없는, 나 같은 서민이 평생 시도도 못 해 볼 작전은 또 얼마나 짜릿한 낭비벽일 것인가.
결혼식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웨딩 문화라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유닛을 일일이 조합해 만드는 일생일대의 변신 로봇 같다. 호텔식, 채플식, 뷔페가 아닌 코스 메뉴를 택했을 때는 서브 수량을 파악하기 위해 모바일 청첩장에 RSVP를 달아야 한다는 상당히 IT적인 지점이라든가, 웨딩 슈즈, 본식 1부 드레스, 2부 드레스, 촬영 드레스, 풍성1, 슬림1, 유색1의 구성이라든가 헤어 변형, 띤또레또와 랑데뷰, 금박, 은박, 형압을 비롯한 인쇄 기술 총체로서의 실물 청첩장들, 무엇보다 플래너 문화, 아이폰 스냅 작가의 동선이 메인 스냅 작가와 겹치면 곤란하다는 사정이나 파티식 하우스웨딩에 적합한 서울 근교의 새롭고 감도 높은 베뉴들, 야외 홀들이 비 오는 날에 대비해 어떤 플랜B를 가지고 있는지를 검색하고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은밀한 즐거움인지에 대해 나는 소개하고 싶을 뿐이다. 서울의 하우스 웨딩 공간들은 대개 끔찍한 주차난을 수반하며, 화이트와 핑크 색조로 장식된 밝은 홀에는 실크나 레이스 드레스가, 어두운 컨벤션 홀에는 비즈 드레스가 어울린다는 공식을, 소르아, 클로드유, 아이브, 노마 스튜디오가 어떤 미세한 무드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를, 핑크 세피아 톤의 보정이 이제는 조금 올드-패션드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여전히 굳건한 지지층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이걸 알아서 뭘 할 건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냥 아는 것에 그치기 위해 아는 것이다. 우표를 모으고 태어난 해의 동전을 수집하는 사람들의 두둑한 즐거움, 결코 우주에 갈 일 없는 사람들이 NASA의 도킹 매뉴얼을 달달 외우며 느끼는 순수한 기쁨과 닮은 것이다. 나의 삶에 어떤 실용적인 도움도 주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장 취미다운 취미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 이름을 불러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그동안 내가 구태여 그리고 덧없이 인용해 온 그 어떤 날보다도 적절한 방식으로 여기에 벤야민을 빌려오며 소명을 마친다. “수집가는 사물들과 일정한 관계를 맺는다. 물론 이때 그가 맺는 사물과의 관계는 그 사물들이 지닌 기능 가치, 즉 그것들의 실용성 내지 쓰임새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그 사물들을 그것들이 갖는 운명의 무대로서 연구하고 사랑하는 그런 관계이다.”③
p.s. 흥미로운 웹페이지 추천. ‘에어라인 밀스’(https://www.airlinemeals.net/)에서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세계의 진귀한 기내식 사진을 구경하세요.
② 항공사 마일리지 확보와 티어 유지를 위해 특별한 목적 없이 오로지 ‘비행’만을 하는 행위를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10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을 한 뒤 공항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입국 수속도 하지 않은 채 다시 환승 카운터에서 돌아가는 티켓을 받아들고 타고 온 비행기로 다시 집으로 간다. 수하물도 없이 배낭 하나가 전부다. 시간이 조금 있으면 라운지에서 샤워를 하고 다시 탑승한다. 승무원과 파일럿보다 더욱 ‘고된’ 비행을 하고, 멀리까지 와서 일반적인 의미의 ‘여행’도 하지 않은 채 다시 돌아가는 이 기괴한 사람들은 새로운 형태의 항공 여행을 하고 있다. 이른바 ‘마일런’(Mileage Run)이라고 한다.” (「마일리지를 쌓아라 ‘항공여행 대작전’」, 『한겨레21』, 2015. 1. 21.)
③ 발터 벤야민, 반성완 역, 「나의 서재 공개―수집에 관한 한 강연」,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민음사, 1983), 31-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