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일기
국힙을 사랑하게 된 경위에 대한 교신
유유민 & 신포도
#1.
발신: 유유민
수신: 신포도
2005년 2월에 교통사고를 당했어. 아니, 냈다고 말하는 게 적절할지 모르겠어. 정확히는 내가 타고 있던 차가 사고를 냈어. 좀 더 솔직하게, 사고를 낸 건 엄마였어. 실명까지 밝히게 된다면 그녀에게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하겠지. 카톡으로 몰래 알려줄게. 어쨌거나 그건 4차선 국도에서 일어난 일이었지. 나와 엄마는 자주색 티코를 타고 매일 아침 그 국도를 꼬박꼬박 28.8km씩 달렸어. 집에서 학교까지. 이 수치를 확인하기 위해서 방금 집(영덕군 남정면 양성리)에서 학교(포항시 북구 환호동)까지를 내비게이션 앱에 찍어보았는데, 놀라울 정도로 직선적인 경로였더라. 신호등도 없이 뻥 뚫린 길이니 안전에 불감했던① 나의 엄마가 포르쉐 차주처럼 질주하기에 그보다 더 나은 조건은 없었겠다. 나는 그 국도를 지나는 일을 항상 환상처럼 느꼈는데,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중간지역을 그야말로 ‘통과’ 한다는 인상 때문이었지. 멈추지도 주저하지도 않고, 목적지에 이르기 전까지 하염없이, 시속 80km/h의 속도로, 티코의 뒷좌석에 몽롱하게 몸을 뉜 채로,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스타게이트나 앨리스의 토끼굴처럼…
사실 벌써 이 얘기를 할 필요는 없었는데, 나는 K-드라마의 산업 역군이지 않니? 그리하여 나는 후킹한 구절을 초반에 배치하지 않으면 플랫폼과 채널은 내가 쓴 기획안을 읽어주지도 않을 것이며, 기적처럼 편성이 이루어진다 해도 시청자들이 모조리 이탈할 것이라는 공포에 내내 질려있단 말이지.
위 문단에 낚여서 네가 지금껏 이 편지를 쉼 없이 읽고 있다면 에구구, 성공이구나. 그럼 다시 국도의 토끼굴로 돌아가 보자. 서사의 앞뒤가 뒤섞여 버렸지만 괜찮지? 우리의 두뇌는 이미 쇼츠에 절었잖아. 앞을 먼저 보든 뒤를 먼저 보든 무슨 상관이니? 후킹하기만 하면 되는데. 후킹하기만 하면 편성을 따낼 수 있잖아. 시청자들도 이탈하지 않을 거고. 그렇다면야 그다음은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니?
우리 집은 영덕군과 포항시의 접면에 위치해 있었어. 집에서 차를 타고 3분 정도 달리면 “안녕히 가십시오. 영덕군”이라고 적힌 대게 모양의 흉측한 구조물이 나타났지. 그 경계를 지나기 직전 불과 1km 정도의 구간 동안 최후의 ‘영덕’적 정체성을 마구 토사곽란하듯이, 크고 작은 해안가의 주택들이 따개비처럼 밀집해 있고 고지대에는 청기와횟집, 가고파횟집, 대게회센터, 휴게소, 해물짬뽕집 같은 것들이 기를 쓰고 몰려 있었어. “안녕히 가십시오. 영덕군”을 지나는 순간부터 도로는 요술에 걸린 마냥 고요해졌지. 아마도 앨리스는 그 지점에서 토끼굴로 뛰어들었을 거야. 토끼굴에서 풀려나면 어느새 도심에 진입해 있었어. 랜드마크와 랜드마크 사이를 구성하는 도농복합도시적 읍면리 지역들은 사실 행정구역 내에서 그들이 점유하는 영역이 훨씬 광활함에도 불구하고, 거주민이 아니라면 인식의 범위에 도통 포착되지 않는단 말이지. 송라, 청하, 칠포, 월포, 흥해, 이런 이름들이 환상의 터널에 속해 있었어. (아마 내가 살던 곳 역시 평범한 이들에게는 포항에서 영덕읍으로 가는 국도 사이 알 수 없는 웜홀의 구성요소에 불과했겠지?)
엄마와 나는 (웜홀의 일부인) 흥해읍에 있었던 어느 정형외과 2인실에 입원 수속을 밟았어. 나는 깨진 유리창에 귀를 베이고 인대를 조금 다쳤을 뿐이라 2주 동안 귀를 치료한 뒤에 퇴원 허가가 떨어졌어. 반면 엄마는 거의 6개월간 거동하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으므로 온 가족이 이삿짐을 싸 들고 입원실에 살림을 차린 뒤 엄마의 간병에 전념하게 되었지. 사실상 간병을 한 것은 아빠뿐이었고, 다섯 살배기 동생은 스케치북에 그림이나 그렸고, 나는… 나는…
힙찔이로 진화했어!
물론, 이 모든 게 교통사고의 충격으로 뇌세포가 재배열되어 일어난 돌발 상황은 아니었어. 소나타에 실려 팽이처럼 돌기 훨씬 전부터, 내 귀는 이미 모종의 빌드업을 거쳐왔거든.
바야흐로 2002년, 아빠의 PC통신 친구인 ‘백두 아저씨’의 집에 놀러 갔어. 아빠와 아저씨가 심도 깊은 수다를 떠는 동안 나는 그 집의 차녀, 열여덟 살 은혜 언니의 방에 떠맡겨졌어. 언니도 곤란했겠지. 처음 보는 초등학생을 몇 시간씩이나 책임져야 한다니. 어색한 공기 속에 침대 모서리만 만지작거리던 나에게 언니가 툭 던진 한마디. “너... 알앤비 좋아하니?”
나는 엉겁결에 “약간요” 라고 대답했고, 그건 실수였어. 휴화산 같던 진성 알앤비 오타쿠를 자극하고 만 거지. 언니가 CD 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누르자 블루Blue의 ‘One Love’가 흘러나왔고, 우연히도 들어본 적이 있는 노래였고, 내가 홀린 듯 싸비를 따라부른 순간부터 그 방은 더 이상 평범한 여고생의 방이 아니었어.
‘블루’를 아는 초등학생을 만나 고무된 은혜 언니는 선반에서 자기가 구운③ 컴필레이션 CD들을 왕창 꺼내서는 별안간 청음회를 개최했어. 1번 트랙 블라크Blaque의 ‘As If’가 끝나고, 2번 트랙 레미 션드Remy Shand의 ‘Burning Bridges’가 시작되던 순간을 나는 잊을 수가 없어.
Another time, another space
Mark my words, I can't fake another day of sadness–
비윤리적일 정도로 끈적하고 뜨거웠던 그 도입부. 목덜미 뒤쪽으로 닭살이 돋다 못해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어. 달팽이관에 ‘본토’의 그루브가 다이렉트로 꽂히는 최초의 순간이었지. 언니는 헤어질 때 그 보물 같은 해적판 CD들을 몽땅 내 손에 쥐여줬어. 백두 아저씨는 개척교회 목사였으면서도 아빠에게 섣불리 전도한 적이 없었는데, 그의 자식은 나에게 알앤비의 복음을, 그 뜨겁고 축축한 흑인 음악④의 세례를 퍼붓고야 만 셈이지.
이후로 거의 일년 동안 매일매일 그것들을 돌려 들었어. 하루도 빠짐없이. 블루, 레미 션드, 베이비페이스Babyface, 보이즈 투 멘Boyz II Men,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 브라이언 맥나잇Brian Mcknight을, 귀에서 피가 날 만큼 말야.
은혜 언니가 뿌린 씨앗은 이듬해인 2003년에 새로운 밭으로 모종되었어. 반 친구였던 예지를 따라 휘성을 좋아하게 된 것이었지. 카세트테이프와 CD가 혼재하던 과도기적 시대, 우리는 쉬는 시간만 되면 교탁 옆에 있던 어학용 카세트 플레이어에 휘성 2집을 집어넣고 노래를 따라 불렀어.
휘성은 은혜 언니가 알려준 이들의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는데, 당시 내 귀에는 감히 그들보다 휘성이 더 대단하게 들렸어. 나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고(그 사랑은 무려 15년간 지속되었다), 휘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빅마마, 거미, 시스코Sisqo와 크렉 데이빗Craig David을, 급기야는 그의 SNP⑤ 동료였던 버벌진트와 피타입의 앨범까지 찾아 듣기 시작했지.
다시 2005년. 입원실 천장에는 500원을 넣으면 2시간인가 동안 전원이 들어오는 텔레비전이 달려 있었는데, 나는 수시로 엠넷과 KMTV 같은 음악채널을 켜놓곤 했어. 그런 채널은 대개 최신 뮤직비디오만 줄창 틀어주면서, 실시간으로 문자를 받아서 화면 최하단에 랜덤으로 송출해 주었거든. 내가 보낸 문자가 나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뮤직비디오를 보는 게 낙이었단 말이지. 그 겨울의 인기 차트에는 유난히 힙합 음악이 많았어. 지누션의 ‘전화번호’, 드렁큰타이거의 ‘편의점’, 이현도(a.k.a. D.O.)와 조PD, 김창렬, 에픽하이, 주석, 바스코, Young GM, 에릭의 ‘힙합 구조대’까지. 사실 그런 것들이 나에게 엄청 새로운 건 아니었어. 그런데 어느 날 난생처음 보는 스타일의 랩퍼가 등장했어. 그는 다름아닌 ‘더블케이’였는데... – 투 비 컨티뉴드…
불 꺼진 방에서 유민.
P.S. 본문과는 아무 관계가 없긴 한데, 편지를 쓰기 직전까지 내내 골몰해 있던 문제가 있어서 공유하고 싶네. 너는 쿠엔틴 두피유, 캥탱 되푀유, 캉탱 뒤퓌외 중에 뭐가 맘에 드니? 법적으로 이 작자의 명칭을 통일해 주었으면 좋겠어. 검색하는 거 진짜 성가셔. 너무 짜증 나. 답장할 때 이거 꼭 말해줬으면 좋겠어.
② 비엘만 스핀Biellmann Spin: 등 뒤로 유연하게 다리를 들어 올린 뒤, 손으로 스케이트 날을 잡고 정수리까지 바짝 당겨 물방울 모양이 된 채 고속으로 회전하는 기술. 1970년대 후반 스위스의 피겨 선수 데니스 비엘만Denise Biellmann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김연아 선수가 프로그램 후반부에서 어김없이 보여주던 시그니처 동작이다.
③ ‘네로 버닝 롬Nero Burning ROM’을 위시한 광디스크 레코딩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공CD(CD-R)에 MP3 파일을 기록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700MB라는 한정된 용량 안에 최적의 트랙을 꽉꽉 채워 넣기 위해 곡 순서를 고민하고, 오류가 나지 않기를 기도하며 구워진 CD를 케이스에 곱게 넣어 지인들에게 선물하던 낭만의 시절. 오늘날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 링크를 툭 던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물리적 헌신이었다.
④ 사실 엄밀히 말해 레미 션드Remy Shand는 백인이다. 하지만 흑인에 버금가는 기막힌 음색과 가창력으로 블루 아이드 소울Blue-eyed Soul의 대표주자로 인식되었다. 쉽게 말하면 알앤비계의 에미넴Eminem이었던 셈이다.
⑤ 나우누리 흑인음악 동호회. 데프콘, 버벌진트, 피타입, 정인, 4WD, 비솝, 휘성 등이 회원으로 활동했다.
#2.
발신: 신포도
수신: 유유민
아니 엄청나게 큰 사고였잖아… 내 기억에 남은 사고는 미친 듯한 속도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다가 넘어져 보도블록에 살갗을 갈아버린 것, 가족끼리 태안 바다로 캠핑을 갔다가 생선구이 석쇠에 허벅지를 태운 것, 김치를 잘 먹었다고 아버지에게 칭찬받고 신나서 뛰어 들어가다 의자 바퀴에 새끼발가락을 부딪쳐 발가락을 휘게 만든 것 정도인데. (새끼발가락 올려두기 놀이를 했던 업보일까?)
내게 힙합 청취의 첫 경험은 티코와 토끼굴, 사고의 충격과는 거리가 멀어. 그보다는 ‘사건’이 아니라고 해야 하겠다. 물론 네 일기는 아직 힙합 언저리에서 머물고 있으니. 그래, 나도 거기서부터 시작해 볼게.
중학생 때의 나는 힙찔이보다는 락찔이에 가까웠어. FT아일랜드를 좋아하는 소녀팬을 ‘락찔이’라고 부를 수 있을 때의 정의겠지만 말이야. 난 사실 이홍기의 목소리를 좋아했거든. 멜론 탑 100을 장식하는 타이틀곡이 아닌, 앨범의 수록곡을 찾아 듣는 것도 일종의 고양감을 주었고. 지금은 추억의 이름, 혹은 추악한 간판이 되어버린 기타리스트와 드러머에게도 나는 공평하게 나의 작은 사랑을 배분하려 애썼어. 사실 밴드의 생리상 보컬이 많은 이목을 빼앗아 가잖아. 나는 모두에게 같은 정도의 사랑을 주지 못한다는 것에 꽤나 괴로워했던 것 같아. 이것도 일종의 자의식 과잉일까? 공평한 사랑을 주기 위해서 나는 보컬리스트의 벽을 넘어야 했어. 잘 들리지도 않는 베이스는 어떤 소리를 내는 악기인지, 기타 2대와 베이스 1대, 드럼셋 하나와 한 명의 보컬이라는 구성은 평범한 밴드의 문법인 것인지…
서부평생학습관에 가서 FT아일랜드를 통과해 밴드에 관한 갖가지 잡소리들을 수집했어. “FT아일랜드는 정말 밴드가 아니다! 이들은 락을 하는 이들이 아니다!”① (침묵) 나는 어린 마음에도 그저 아이돌 팬이 되고 싶지는 않았거든? 그보다는 그루피가 더 멋있는 수식이라고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지. 그런 내가 가장 모욕적이라고 느꼈던 사건이 있었어. 언젠가 FT아일랜드가 밴드 뮤즈의 음악을 커버했었거든. 그 영상에 외국인들이 “코리안 퍼킹 쉣”이라는 류의 댓글을 남겼다는 거야. BTS도, 블랙핑크도, 골든과 <케데헌>과 <오징어 게임>도 없던 시절의 한국 문화 팬들에게는 너무도 모욕적이지 않았을까?
“와 작곡도 안하고 핸드싱크하는 가짜 밴드, 아이돌 찌끄래기가 한국의 실력 있는 수많은 인디밴드도 비하하고 있네요. 미로밴드보다도, 버즈보다도, 문희준보다도 최악입니다.” …그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던 상황이었어.
뾰로통. 그놈의 진짜 밴드라는 게 뭐길래? 락의 정신이 뭐 얼마나 대단하길래,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남으려는 이들을 이렇게까지 모욕하는 거지? 스멀스멀 올라오는 억울함을 바로 풀지는 못했어. 그것은 연예인을 실제로 만나면 급속히 관심이 식는 나의 특성 때문이기도 했지. 사춘기를 지나면서 나는 FT아일랜드에 대한 관심을 끊었어. 그때부턴 ‘진짜 밴드’건, 핸드싱크건, 아이돌이건, 그루피, 락스타, 인디밴드건… 어찌 되든 상관없었어. 괜찮아! 나한테는 자비에 돌란이 있으니까. 저 먼 퀘벡에서 찾아온 또 다른 사랑의 상대. 서울까지 올라가 자비에 돌란이 연출한 <마미>를 봤는데, 아주 중요한 순간에 오아시스의 ‘원더 월(Wonderwall)’이 나오더라고. 정방형이던 화면비가 와이드하게 넓어지던 그 순간에. 주인공은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길을 질주하고.
아주 미약한 해방감을 느낀 것 같기도 해. 비유하자면, 1945년 8월 15일의 해방감이 아닌, 30년 동안 이따금씩 반복된 폭탄 던지기의 순간과 비슷했지. 그때의 결단과 성공이 독립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변화의 문턱을 넘었다는 감각은 분명 존재하잖아. 오아시스의 노래도 들어보고, 영화를 보면서 데이빗 보위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지. 보위의 여러 페르소나를 통과하며 머릿속에서 재조합한 서사들.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엄마에게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의 가사 의미를 설명해 주던 순간. 기스로 가득 찬 기차 창에 비쳐 들어오던 빛. 자신이 만든 페르소나를 과감하게 죽여버리는 락스타. 오아시스의 초기 앨범들. 팬들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진짜 락’의 정신…
그런 조각들을 수집하면서도 해결할 수 없었던 갈증이 있다면, 그건 가사의 문제였어. 영어 가사를 하나하나 해석하고 이해하는 건 휴식과 먼 느낌이었고. 멋진 락스타들의 1970년대, 1990년대 이야기는 실상 불가해한 영역이잖아. 가사를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갈 때면 좋다는 감각과 함께 느슨한 탈진이 찾아오곤 했지. 게다가 FT아일랜드도 그 갈증을 해결할 수는 없었어. 전 세계의 진성 락팬들이 공증해 줬듯, 그들은 직접 작사나 작곡도 하지 않는 가짜 밴드잖아. 락의 핵심 정신인 야성과 진정성 사이의 빈 공간을 점유하지 못했지. 나는 영국과 아주 먼 곳에 살고, 시대를 뛰어넘어 단어의 맥락을 이해하긴 너무 과문했고. 나의 락 경험은 소속사에서 만들어준 가짜 노래들이고. 내가 좋아했던 밴드는 그저 잘 길러진 꼭두각시였고. 당시의 내가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갈 수 없었던 건 열등감 때문이야. 그때는 몰랐지. 수채화를 완성한 뒤에 남은 물통 속 물이 무슨 색인지를 정확하게 말하긴 힘드니까.
진정성, 그런 게 음악에서 가능한 건가? 이 질문조차 떠올리지 못했던 상태. 그러다가 마주친 거야. 기리보이를… 직접 문을 열고 닫던 서산의 지식인 독서실, 4인실의 아주 작은 방의 한구석에서. 눈을 뒤집어 까고 분홍색 위에 떠다니던 그 남성을.
앨범의 제목은 ‘성인식’이었어. ‘성인’이라는 제목의 사랑 노래, 사랑을 이제는 잊고 포기하라는 노래, 성판매 여성을 사랑하는 남성에 빙의한 노래, 걸어서 왕복 30분이 걸리는 썸녀의 집… 그 중 두 곡을 뽑아보자면…
‘outro’의 가사: 힙합을 듣기 시작할 때 나는 모든 이유들을 따졌어. 학교에 간다거나 내가 싫은 애들과 친해지는 것. 친해지는 법과 잘나가는 애들 밑을 기는 것. I know, 나는 한국 사람, muthafucka. 땅으로 들어갔다 위로 올라, 디그다 flow. #포켓몬 #디지몬 #원피스 #드래곤볼 #배틀로얄 #블리치 #너무쓴커피.
나는 이 노래의 가사들이 왜 좋았을까? 이유를 따지며 노래를 듣는 것. 학교에 가거나 싫어하는 애들과 친해지는 것. 친해지는 법. 잘나가는 애들 밑을 기는 것. 불안과 혐오로 응축된 교실 풍경을 이렇게 정확히 묘사할 수 있을까? 객관을 흉내 내거나, 지나치게 멋을 부리지 않고도? 기리보이는 자기가 래퍼가 아니래. 사람들이 자신을 래퍼라고 잘못 알고 있어서 힙플에서 너무 거친 평가를 받는대. 그런데도 무대를 내려가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냥 음악을 한다는 거야. 신화와 김동률, 휘성과 거미, 브로콜리너마저와 버벌진트, 앤덥과 스윙스의 자장 위에서.
나는 기리보이가 래퍼가 아니어서 좋아했을지도 모르겠어. 랩과 락은 팬들에게 FUCK YOU를 날릴 수 있어야 하고, 구린 노래여도 직접 작사와 작곡을 해야 하고, 몇 년간 쌓아온 과거의 영광을 자신의 손으로 질식시킬 수 있는 존재의 몫이었으니까. 근데 기리보이는 정상수한테 위협당하고, 신화와 김동률을 인용하고. 쿠폰을 모아 커피를 사 먹고. 잘나가는 애들 밑을 기어다니고. 잘난척하면서도 어딘가 뒷걸음질 치고 있었거든. 나는 기리보이가 겁쟁이어서 좋아했을지도 모르겠어.
‘좀 해’의 가사: 나는 너무 컸네, 머리에 피가 말렀네. 나를 깔보던 형들은 방금 제대로 말렸네. Paper에 내 음악을 담아서 말었네. 내 음악이 마약이면 만 그람 팔었네. 이제 지나간 추억들과는 안녕. 다가올 날들을 맞이하며 나는 감동, uh. Take over, 너네는 이제 game over. 오늘 나는 다시 태어났지, 케익 썰어. 초는 꼽지 않아, 나는 아직 young. 그래서 떡은 입 말고 다른 곳으로 삼키고. 술 좀 따라 봐, 잔이 부서질 듯이. 돈 많이 벌어, 지갑 무너질 듯이. 엉터리 래퍼들은 상황 파악 좀 해. 난 이제 너무 커 버렸어, 좀이 아냐, 좀 해.
지하철도 못 탈 정도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는 기리보이의 애티튜드는 허세라는 래퍼의 바이브로 설명할 수 있겠지. 어떤 허세는 거짓말 같은데, 막 래퍼로 불리기 시작한 기리보이의 허세는 연민과 더 가까워 보여. 동물들은 위험에 처하면 강한 척하려고 몸을 과하게 부풀리잖아. 그 부풀린 몸을 볼 때야 그 존재의 나약함이 비로소 드러나고. 예전의 나는 누군가를 동경하기만 했거든? 근데 기리보이의 저 앨범을 듣고 있자면, 은밀한 연민을 느끼곤 해.
그 노래를 듣고 독서실에서 뛰쳐나간 것은 아니었어. <마미>의 주인공처럼 화면비를 과감히 넓히지도 못했고. 잘나가는 애들 밑을 계속 기었지. 여전히 지금도. 그럼에도 한 줄 한 줄에 깃든 연민이 나 자신을 위로했던 건 맞아. 물통에 담긴 괴이한 색의 물을 보면서, 내가 어떤 색을 써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를 조용히 되짚어 보는 일. 그것도 해방이라면 해방인 걸까?
나한테 힙합은 눈을 뒤집어 깐 기리보이의 얼굴로 기억돼. 독서실에서 가사를 스크롤 하며 두근두근했던 심장 소리와 함께. 다행히 거기서 멈추지는 않았어. 저스트뮤직 콘서트를 간 다음에도 기리보이 음악을 즐겨 들었으니까. 2015년에 나온 그 앨범에서 시작해 2013년으로도, 때로는 2011년으로, 스윙스와 바스코, 앤덥, 트럭뮤직, 우주비행, 쇼미더머니, MC기형아, 새로운 얼굴들. 키드밀리와 오르내림, 코스믹보이. 저스트뮤직과 기리보이에서 방사형으로 뿜어져 나가던 나의 힙합 여정은 이렇게 시작됐어.
생각해 보니, 2015년의 나는 19살이었네. 성인식을 코앞에 둔….
내 아기 고양이의 중성화를 기다리며, 포도가.
P.S. 나는 캉탱 뒤퓌외가 마음에 드네. 입을 옹졸하게 모으고 있다가 살짝 풀어주는 그 감각이 좋아서. 이름을 왜 이런 식으로 지은 거야?
#3.
발신: 유유민
수신: 신포도
빌스택스는 시대의 양심이다
그래. 중요한 건 해방감이야.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말 잘 듣고 예의 발라야 한다는 강박 속의 유년기. 게다가 서양 고전음악과 Hi-Fi 오디오의 광이었던 아빠가 꾸린 거실에서 내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바흐나 생상스, 베토벤 정도였으니. 돈 받고 파는 음반 속에 쌍욕을 쓰고 꼰대들을 욕하고 사회를 비판하고, 그런 행위 자체가 선언처럼 근사해 보였어. 19금 딱지 붙은 앨범을 듣는다는 게 너무 쿨해서 자랑스러울 지경이었지.더블케이는 잘생겼어. 그것이 부정할 수 없는 첫 번째 임팩트였어. 대충 걸치고 나온 듯한 군밤 장수 모자에 패딩을 입고, 멋있게 보일 필요 없다는 듯한 무심한 걸음걸이로 무대를 어슬렁거리면서 노래를 했지. 그 모자를 따라 샀어. 앨범은 시내에 있던 신나라레코드 바로 옆, 참새방앗간처럼 들러 CD를 사던 작은 음반 가게에서 샀어. 자주색과 곤색의 타탄체크 무늬 교복 치마를 입고, 파나소닉의 흰색 CDP를 책가방에 끼워넣고, 지퍼 틈 사이로 빼낸 이어폰 선을 귀에 꽂은 채.
엄마가 와병하는 동안 나는 혼자 남겨졌어. 하교하면 병원 어귀의 허름한 독서실에서 CDP로 더블케이 1집을 돌려 들으며 낙서를 했어. 스카이 독서실. 공부는 하지 않았어. 시간을 때우고자 했을 뿐이지. 늘 내 옆자리에 앉던, 항상 열심히 공부하던 언니가 있었어. 유성여고 교복을 입고 있었고, 단발머리에, 지금 생각해 보면 이유영을 닮았네. 어느 날 그 언니는 자리에 엎드려서 한참 동안 울기만 했어. 그러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서, 눈물에 지저분하게 얼룩진 얼굴로 나한테 말을 거는 거야.
“너 중학생이지? 모의고사가 뭔지 알아?”
그러더니 다 구겨진 성적표를 펼쳐서 보여줬어. 너무 복잡하고 빽빽한 표였기 때문에 나에게 아무 정보값을 제공하지 못했지만 짓이겨진 종이의 구김과 홈에서 그 언니의 분노가 느껴졌어. 진짜 죽어라 공부했는데, 어떤 영예도 그 언니에게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오늘은 정말 공부 못 하겠다. 잘 있어라.”
그날 이후 이유영을 닮은 그 언니를 보지 못했어. 정말 끝의 끝까지 애썼기 때문에 포기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 독서실의 터가 안 좋다고 생각해서 옮긴 것뿐이었을까? 어쨌든 내가 힙합에 처음 몰두하던 그때를 더듬어 보면 엄마의 병상, 더블케이의 데뷔앨범, 겨울 편의점 호빵의 맛과, 허름한 독서실 건물의 외관과 파리하던 백열등, 그리고 그 언니의 얼굴이 꼭 같이 떠오르는 거야.
더블케이의 데뷔앨범 9번 트랙은 ‘씨티 헌터(City Hunter)’라는 곡이었어. 바스코와 길성준이 작곡자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지.
돈, 권력, 명예, 영광, 그 모든 게 있는 겉으론 화려한 이 도시 정상, 그거 하나만 보고 여기 왔어. 그때 난 어려 내 눈은 속았어. 실제론 낯선 이곳의 실체를 난 봤어. 실제 실패, 부패, 비리, 무시가 판쳐. 가로등 불빛 밑을 헤엄쳐 난 숨이 막혀. 빌딩들의 숲속 그 속을 걸어…
이걸 계기로 바스코의 음악을 듣게 됐고, 지기펠라즈, 와썹크루 같은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팬이 됐지.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나에게 자유를 주었던 국힙의 가사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이루 말할 수 없으나, 그 당시에는 솔직하게 말해서 그런 구시대적으로 마초적인 가사마저도 나에게 해방감을 주었어.
이후 나는 이름하여 ‘본토힙합(물론 나의 본토는 미대륙이 아님)’에도 맛을 들이기 시작했고, 문화를 이해해야 음악을 제대로 듣는 것이라는 소신 아래 A4 사이즈 화일에다가 힙합 용어나 배경지식 같은 것들을 스크랩해서 들고 다니며 틈틈이 공부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어. 쨍하니 파란 색에 도트무늬가 빼곡한 미키마우스 파일철이었는데. 사우스 코스트와 웨스트 코스트의 특징에서부터 라이벌 관계, 누가 누구에게 총을 쐈는지, 호미(homie)나 인 다 하우스(in da house)는 무슨 뜻인지 달달 외우려 했어. 투팍과 비기를 익혔고, 칸예, 나스, KRS-ONE을 좋아하게 됐어. 공부하다 보니 더 많은 소울 음악도 알게 되었지. 인디아 아리, 맥스웰, 트레이 송즈, 본 석스 앤 하모니를 좋아했고, 왜인지 디안젤로는 싫었어. 그렇지만 가장 많이 들은 것은 단연 DMX였어. 다 부숴버리고 싶었던 어린 나의 니즈에 부합했던 거야. 그렇게 나는 그 꺼끌꺼끌한 언어들을 경전처럼 받들어 나가고 있었지.
다시, 중요한 것은 해방감이야.
지난 회차 ‘풍요의 바다’ 낭독회에서 내가 소리 내 읽어야만 했던, 기요아키가 사토코에게 쓴 쓰레기같은 편지 있잖아. 당시의 내가 사토코였다면 나는 기요아키의 편지를 보면서 어떤 흥분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어. 음란하며, 몰가치하며, 정숙하지 못하다고 나를 간주하는 시선에.①
아니요! 결단코 아닙니다. 소생은 그 하룻밤에서 (틀림없이 발전은 발전입니다만)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나아가 아무도 찾지 않는 광야로 달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거기선 게이샤와 귀부인, 여염집 여성과 화류계 여성, 교육받지 않은 여자와 청탑사패들 간의 구별도 전혀 없습니다. 여자란 여자는 모두 거짓말쟁이에다 ‘음란한 육체를 가진 작은 동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전부 화장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의상입니다.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소생은 지금, 당신까지도 확실히 원 오브 뎀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음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봄눈』에서 발췌)
지금의 나라면 당연히 기요아키를 고소하고 접근금지 신청을 했겠지? 고위층 자제가 저딴 짓을 하고 다닌다고 인터넷에도 올릴 거야. 다시 읽어도 기요아키는 진짜 나쁜 자식이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저런 모멸감이 싫지만은 않았어. 착한 딸, 착한 어린이, 착한 학생이어야만 한다는 강박, 고상하고 예의발라야 한다는 그 숨막히는 껍데기를 찢어발겨 주는 것 같았으니까. 이러니 어린이들에게,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세상의 몰지각을 재생산하지 않을 의무란 얼마나 중요하니. 하지만 그 객기를 사랑하는 데 조건이 있었다면, 그들이 진짜 바닥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지.
당시에는 국힙이라는 말조차 없었어. 있었다 해도 그렇게 자주 사용되는 말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해. 오늘날의 ‘국힙’이라는 기표에는 미미한 조롱과 자조의 기의가 젖어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이미 힙합이 부르조아의 맛을 보았기 때문이야. 00년대의 힙합은 처절한 언더그라운드의 세상이었잖아. ‘Gravity’②의 가사에서 스윙스가 부르짖듯이,
그럼 왜 만드냐고? 하고 싶으니까, 음원차트에 올리고 싶으니까, 힙합을…
힙합 차트 1위를 찍어봤자 멜론 종합 탑 100에도 들지 못하던 험지였으니까. 무엇을 부르고 무엇을 주장하든 그것은 장르의 투사로서 ‘어그로라도 끌어보자’라는 심정으로 내지르는 발악 같은 맛이 있었지.
국힙의 가사에는 본디 날것의 분노, 비주류가 주류에게 뱉는 쿰쿰한 침이 묻어 있었어. 비열한 사회와 자본주의의 노예가 된 문화 일체를 욕하고, “네가 쓰레기처럼 놀고 먹고 더러운 유흥 거리나 좇는 동안, 나는 땀범벅이 된 채 마이크로폰 앞에 서 있어” 빈정댈 수 있는 정신적 우월감이 앞섰다고나 할까? 열심히 살고, 뭔가 다른 걸 추구하는 나와 그들을 동일시해 볼 수 있었어. 혹은, 그들처럼 고매해지리라 다짐해 볼 수 있었어. 그런데 메이저가 된 힙합은 상대의 나태나 썩어빠진 정신을 조롱하는 대신에 이런 소리나 하잖아.
너는 돈이 없지. 너의 한달 월급은 내 하루 벌이지. 내 시계는 AP, 너는 카시오나 차지. 나는 마세라티, 너는 라세티나 몰지. 혹은 뚜벅이지. 우리 집에는 지폐랑 금 엄청나지. 이 거지 새끼들아. 나는 여자들을 노예처럼 부리네. 니 여친도 나한테 DM 보냈네. 우리 레이블은 완전 대기업. 너는 월 200에 빌빌대다 뒤져버려 Hol’up.
(유민이 급조해낸, 실제로 세상에 없는 노래이며,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음…)
가난과 비주류적 패배감을 땔감 삼아 타오르던 작지만 시뻘겋던 불꽃에 성공과 음원차트 1위와 플렉스라는 기름을 철철 붓자 거대하고 느끼한 캠프파이어가 된 게 아니겠어? 그 와중에 다들 연기하듯 형형한 눈빛과 투사의 자세만 유지하니 우스울 따름이었지.
‘본토’의 래퍼들은 진짜로 80년대에 게토에서 시작해서 억만장자가 되었고, 롤리와 AP, 금덩이와 지폐 다발을 휘두르면서 승전고를 울리고 있다는 어떤, 신화적인 실화를 기반으로 가사를 썼잖아. 초창기 한국 힙합 시장에서 ‘부’만은 수입해 올 수 없는 어떤 것이었어. 왜냐하면, 부유하지 않았으니까. 비주류 중의 비주류였으니까. 그래서 본토 힙합의 구성요소 가운데 ‘돈’ 얘기만큼은 차마 따라 할 수 없었고, 그 빈자리를 결국 곤조로 채운 거거든. 돈은 없지만 내 정신은 고고해, 방송국 놈들에게 고개 숙이지 않고, 타협하지 않아, 같은. 물질적인 결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신적인 지점을 공작새 꼬리처럼 악착같이 펼쳐야 했던 그 시절의 한계가 역설적으로 국힙만의 독자적인 멋을 만들어냈던 게 아닐까 싶어. 돈 없고 인정받지 못해도 내 음악과 태도에 대한 확신이 펄펄 끓어오르던 활화산 같은 동세를.
그러나 결국 힙합은 돈을 벌기 시작했지. 수년 전, 자신을 투사로 정체화하던 누군가에게, 어떤 방식으로 루트를 만들어 나갔냐고 경외하며 물었더니 “부모님이 교수였거든” 따위 답이 되돌아왔을 때의 기분 같은 것… 그런 배꼽 냄새를 힙합에서 느낀 이후로 나는 빠르게 국힙에서 멀어졌어.
그러다 바스코가 쇼미더머니에서 준우승했다는 소식을 들었어. 저스트뮤직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로 ‘말 달리자’③의 뮤직비디오를 봤어. 가슴팍에 안중근의 손바닥을 새기고, 늘상 야구 유니폼에 볼캡을 뒤집어쓴 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자신을 출연시켜 준 ‘하늘이 형’에게 고마워서 눈물을 보이던 바스코가 갑자기 아래위로 화려한 퍼코트에 금목걸이를 두르고 나타난 것도 그 바닥의 생리가 도출한 필연적 결과였겠지. 그 자신뿐 아니라 동생들에게마저 ‘부’를 누리게 만들어준 이 바닥 OB로서의 자긍과 기쁨을 차마 감추지도 못하고.
그럼에도 ‘말 달리자’의 가사에서, 바스코는 자신의 가난하고 형형하던 과거와 현재의 ‘달라진 돈벌이’ 사이를 잇는 다리를 성실하게 놓고 있어.
Show Money 나간 뒤에 달라진 돈벌이, 부정하고 싶진 않아. Biggie가 한 말이 맞더군. (...) 나보다는 내 아들 섭일 위해 뭐든 사고픈 걸 사는 것. 내가 돈맛 보고 변하길 바라지? 돈만 보고 달려온 삶은 아니기에 (...) 꿈을 팔고 번 돈을 다시 더 큰 꿈에 집중 투자해. 그리고 거기서 번 돈으로 잘 봐, 내 주위 모든 사람...
난 일말의 안도감을 느꼈어. 나는 바스코가 분명히 그 과도기에서 뭔가를 설명해야 한다는, 정당화하고 합리화해 내야 한다는 일종의 켕기는 감정에 사로잡혀있다고 느꼈어. 왜냐하면 2절을 담당한 씨잼의 가사에서는 한국 힙합을 보릿고개부터 이끌어온 큰형님의 고뇌에는 관심도 없이 그냥 벌스 내내 돈자랑만 해대는 철딱서니밖에 보이지 않았거든. 바스코가 이 앨범을 발매하고 얼마 되지 않아 ‘빌스택스’④로 랩네임을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도 나는 그 켕김의 연장선상이라는 생각을 했어. 과거의 바스코에서 현재의 빌스택스의 모습 사이를 잇는 급격한 커브, 그것을 억지로 윤색하는 대신 솔직한 타락을 택하겠다는, 위선을 떠느니 위악을 부리겠다는 모종의 결심.
진짜로 집에 지폐를 쌓아둘 만큼 부유해지지 않았다 해도, 빈지노나 도끼만큼의 돈을 모으지 못했다 해도, 그래도 더 이상 ‘바스코’일 수는 없으니까…
퍼코트를 입고 레이밴을 걸친 뮤비 속 바스코의 제스처에서 공허한 허우적댐을 읽었다고 한다면 너무 과장일까? 내가 동경했던 ‘시티 헌터’가 사냥을 끝내고, 전리품을 철철 두른 채 박제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었다면… 하지만 그 결단이야말로 어쩌면 이 거대하고 느끼한, 사향 냄새 나는 캠프파이어 판에 꼿꼿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양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그런 생각을 하며 ‘말 달리자’를 자꾸만 들었던 거야. 그리고 2016년, 서울에서 너를 만났어.
해피헤비드링커에서, 유민
② 유민과 포도는 노래방 가기를 무척 즐겨 하며, 마지막 곡은 반드시 ‘Gravity’로 장식하는 전통을 십여 년째 고수하고 있다. 주로 유민이 스윙스 파트를, 포도가 매드클라운 파트를 맡는다.
③ 바스코가 빌스택스로 랩네임을 변경한 것은 2016년이다. ‘말 달리자’는 2015년 발매된 앨범 ‘Code Name: 211’에 수록되어 있다.
④ 지폐 뭉치, 돈 무더기라는 뜻.
#4.
발신: 신포도
수신: 유유민
위악과 솔직함, 진정성과 해방감. 이 4개의 단어를 배제하고 힙합을 설명할 수 있을까? 장르를 설명하는 여러 단어들은 존재하겠지. 붐뱁, 트랩, 비트, 래퍼의 울림통 같은…. 사실 나는 그런 장르적 언어들에 익숙지 않아. 대신 한국에서 힙합을 듣는 내게 더 중요한 건 훨씬 더 추상적인, 뜬구름 잡는 저 단어들이지. 위악과 솔직함, 진정성과 해방감을 제외하고 나는 내가 힙합을 듣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 설명하더라도, 그건 거짓말이겠지. 네 일기를 읽으며 나는... 바스코가 '빌스택스'라는 밤티 이름을 택해 부활한 것을 비웃던 내 과거를... 비웃고 싶어졌어.
최근 한 블로그에서 이런 말을 봤거든. 요즘 음지와 양지 사이 어딘가에서 스타로 떠오르는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 그야말로 진짜 힙합을 해야 하는 힙합 인재라는 포스팅 말야. 하나님의 어린 양의 캐릭터를 내세우는 그는 사실 명반을 내는 래퍼들의 필수 코스, 심지어는 래퍼로서의 ‘간지’를 낼 수 있는 조건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는 거야. 이를테면 전우원은 마약 투여와 법적 책임이라는 코스를 거쳤지. 게다가 정신병과 독실한 크리스천, 미국 생활이라는 문화적 배경도 갖추고 있어. 독재자의 손자, 그러나 그 모든 죗값을 (적절한 방식인지는 모르겠으나) 등에 이고지기로 결정한 어린 양. 그 포스팅에는 이런 문장이 적혔어. "서사 한국에서 이 새끼보다 빡센 래퍼 없음. 사실 외힙에서도 없음 걍 미친 새끼임." 경탄을 표할 수밖에 없었어. 너무 맞는 이야기 같아서. 게다가 몽글이에게도, 어쩌면 래퍼가 되는 것이 더 좋은 것 아닐까? 하는 주제넘은 생각에 닿았지.
왜 나는 전우원이 MC몽글로 데뷔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걸까? 사실 힙합이 구원이 아닌, 저주가 된 경우가 훨씬 많을 텐데. 힙합 때문에 인생을 망친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 떠오르는 이름들을 하나씩 나열하지는 않을게. 우리는 이미 호명과 샤라웃으로 너무 많은 걸 잃었으니까... 그 주제넘은 생각에 도달하게 된 건 아마 솔직함을 드러내기 위해 위악을 통과하는 것, 결과적으로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며 해방감을 느끼는 힙합의 경로와 무관하지 않을 거야. 나는 아직도 솔직함을 믿어.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솔직해지는 것이 가지는 힘을 믿지.
실은 그런 이유에서, 나도 너와 비슷하게 자신의 멋에 과도하게 취한 래퍼들의 가사를 별로 즐기지 않아. (그냥 그런 인간이 싫은 건가 싶기도 한데…) 힙합과 허세가 뗄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가끔은 가시처럼 박히는 솔직함들이 있거든. 거짓말을 하는지의 여부와는 무관한 것 같아. 이때의 솔직함은 사소한 행간이나 단어, 이상한 호흡이나 발작 같이 터져 나오는 음가 같은 것들에서 감지되는 “켕기는 감정”에 가까우니까. 그것을 발견할 때면 나는 능력 좋은 정신분석학자가 된 것마냥 비밀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지. 그리고는 누가 알아채기 전에 미소를 숨기고, 다시 비겁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을 즐겨.
나의 힙합 연대기에서 가장 강렬했던, 영적인 체험을 떠올려본다면 그것은 ‘그냥노창’이 되어버린 ‘천재노창’과 관련 있어. 네가 언급한 ‘말달리자’라는 노래에서 “암말 말고 수컷말 쉿!”이라는, 충격적인 가사를 쓴 그 사람. 그는 블랙넛의 노래에서 별안간 욕을 얻어먹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갓대웅’을 경배하라는 훅을 수행해. 불결한 순례자이자 전도자처럼….
노창은 2014년에 아주 괴상한 앨범을 하나 내는데, 제목은 ‘마이 뉴 인스타그램(MY NEW INSTAGRAM : MESURECHIFFON)’이야. 괴상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냥 그 앨범에 실린 노래들, 가사들, 그의 목소리가 이상하기 때문이야. 나는 2016년에서 2017년즈음 노래방에 가면 그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행’을 열창하곤 했어. 아마 너도 기억하겠지? 노래방에서 부르기엔 굉장히 이상한 노래잖아. 근데 그 앨범 전체를 들으면, ‘행’은 이지리스닝이 가능한 유일한 트랙이야. '털ㄴ업해야해' '꽃가루' 'CHING CHANG CHONG' 같은 노래를 연속으로 듣다 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나 역시 패러노익해지지.
위악으로 가득 찬 이 앨범. 노창은 한없이 저주하고, 다른 이에 대한 욕을 쏟아붓고, 자신은 아이돌이 아니라고 소리치고, 여자 팬이 아니라 남자 팬이 더 좋다는 이야기를, 간식 따위를 주지 말라는 이야기를① 숨도 쉬지 않고 쏟아내지. 노창중 씨가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났냐고? 잠시 이 앨범의 제목인 '마이 뉴 인스타그램'에 잠시 주목해 주겠어?
이 앨범에 ‘인스타그램’이 들어간 경위는 이러해. 당시 노창중 씨는 자신의 비밀스러운 연애사를 인스타그램에 실수로 올렸었거든. 5분 만에 게시글을 빛삭했지만… 이미 온라인 연예면에 기사가 올라간 뒤였어. 노창중 씨는 분노했어. 나는 연예인도! 아이돌도 아닌데! 내 음악은 제대로 듣지도 않으면서! 왜 본인의 연예를 가십화하냐는 논지였지. ‘행’ 직전의 트랙에서는 그 기사를 쓴 연예면 기자의 이름을 언급하기도 해.
네이버에 노창을 쳐 그 뉴스를 봐 티븨데일리
김한길 기자의 눈웃음 가득한 글이 내 인길 증명하고 있지
무슨 음악 하는진 기사 속에 있긴 너무 재미없어서 그분은 나의 스캔들만 썼지
(...)
나는 잊지 않고 내 모든 고통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어
자살하고 나면 경찰들은 수갑이 모자랄걸
아, 엄마 아빤 슬프겠지만 난 지옥에서 개 통쾌할듯해
나란 인간은 너무도 모자라지만 다 좆까라 내 노랜 가능해
난 모두 행복하고 멋진 하루 보내란 말 따위는 번외로 해, 가능해
아 이대로 죽고 나도 다 엿먹일 수 있었다란 사실에 난 개 행복해 할 듯해
어둑한 겨울의 밤, 나는 서울에서 서산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실려 이 앨범을 들었어. 탈것에서는 잠만 자는 나의 성질 때문에, 나는 1시간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 노래들과 함께 3개의 악몽을 꿨지. 누군가를 압축적인 악몽에 빠트릴 정도의 위악. 미시마 유키오도 말하듯 감정보다는 꿈이 사실에 가깝잖아.②
노창의 위악에는 3가지가 빠져 있어. 통일성, 방향 감각, 그리고 목적의식. 상황에 맞게 몸집을 부풀리는 것처럼 말하곤 하지. 동물의 부풀림보다는 인간의 부풀림에 가깝달까? 노창도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대외적으로 어떻게 말해야 하고 비춰져야 하는지에 관해 잘 모르는 것 같아. 노창이 타블로와 함께 ‘All Day’③라는 노래를 낸 적 있는데, 당시 했던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 혼란과 혼돈이 잘 드러나. 원래는 그 노래를 장기하나 유세윤한테 주려고 만들었는데, 주변에서 노창이 직접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거야. 근데 노창이 조금 망설였대. 본인은 힙합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어, 그래? 그래도 나 힙합하는 사람인데.”④
근데 그 바로 앞에 이렇게 말하거든. “저는 원래 힙합만 하는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평소에 여러 가지 스타일의 곡들을 많이 만들어 놔요.”
인터뷰어가 바로 물어봐. “아니, 아까는 힙합하는 사람이 아니라면서요?” 거기에 대해서 노창은 여태 발표한 곡들이 힙합이고, 힙합을 준비하고 있으니 그렇다고 답변을 뭉개지. 사실 노창은 자기 자신이 힙합을 하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도 잘 몰라.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어.
한 발자국 더 나아가자면, 자기 자신을 ‘힙합하는 사람’ 혹은 ‘힙합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상태가 과연 솔직한 걸까? 그게 정말 진정성, 카리스마, 벌어질 모든 일을 책임지겠다는 진솔한 선언일 수 있는 걸까? 은퇴를 번복하는 사람만큼 멋없는 게 어디 있겠어. 애초에 장르라는 것도, 그 이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둔 장치일 뿐인데. 어떤 사람을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게 아주 힘든 건 모두가 알잖아.
여기에서 또 한 발자국 더 나아가자면, 자기 자신을 ‘힙합하는 사람, 혹은 힙합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과연 솔직한 걸까? 그런 깨달음을 바깥에 전시하는 것에 과연 본인을 포장하거나 납득시키려는 목적의식이 없다고 볼 수 있을까? 나는 노창의 저 통일성 없는 말에서, 한입으로 두말하는 저 문단을 읽으며 과연 진짜 솔직함은 어디까지 건드려야 하는 것인가의 문제를 떠올렸어. 사실 노창은 자신을 정의하는 것도, 자신을 정의하지 못한다고 정의하는 것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않지. 그 실패와 중얼거림이 아주 낮고 단순한 수준의, 그렇기에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솔직함은 아닐까?
그리고 그의 가사들을 훑고 있자면… 굳이 인터뷰를 통과하지 않아도 ‘정의할 수 없음’에서 오는 열패감이 느껴지지.
너와 헤어져도 난 노랠 부를 수는 없어
그건 힙합이 아니니까 나쁜 단어들이 많아야지 힙합
씨발 씨발 씨발 씨발 씨발 씨발 나는 이제서야 진짜 힙합
(...)
넌 절대 내 새 아이폰을 볼 수 없겠지 어라 이건 힙합인 걸
괜찮고 멋지게 산다고 자랑하는 게 힙합이니까
누가 더 잘 지내는지가 이별이나 힙합이나 심판이니까
진짜 지친다 계속 통장이나 나나 말라가
아직 가난한 감정과 통장은 계속 말라가
노창은 이 열패감을 직시하지도, 피하지도 않은 그 애매한 상태에 머무르길 택해. 머물기 위해서 강박적으로 말장난을 하고, 의도적으로 주변인들의 이름을 언급하고, 괴이한 형식을 택하지. 다시 말하자면 노창은 자기 자신이 해야 하는 것에 관해서는 알고 있지만 자신의 열패감을 진솔하게 털어놓지는 못해. 어쩌면 그 용기 없음이 진짜 진정성은 아닐까? 이런 생각에 닿게 된 이유는, 내가, 아직 직시하기를 무서워해서일까? 2021년에 나온 최엘비의 명반을 들으면서 괴로웠던 이유가 바로 그것일까?
최엘비가 낸 ‘독립음악’ 앨범을 자주 들었어. 본인의 비겁하고 무력한 모습을 엄청나게 직선적인 문장들로 표현하거든. 자신의 비겁함과 무력함을 반성하면서도, 때로는 그 과거에서 추진력을 얻지. 기리보이의 크루에 들어간 것이 본인의 넥스트 챕터였다는 걸 인정하고. 친구였던 씨잼과 비와이가 승승장구하는 것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었다는 그때의 감정을.
나는 너를 알아 너도 주인공이 되고 싶어 했잖아
5학년 때인가 아마 용기를 내서 반장 뽑을 때 손들었잖아
결과는 부반장 두 명이 나가서 거의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였고
반장으로 뽑힌 애가 포부를 말할 때 옆에서 넌 생각했지, 이 정도면 잘한 거라고
그렇게 몇 년이 흘러가고 여태까지 내가 살아온 삶이 몇 편의 영화라면
그때 맡은 부반장이 제일 큰 역할이었단 걸
내가 나왔다는 걸 알아보는 사람은 가족밖에 없는 단역으로 이젠 살아
울 엄마는 영화가 끝나도 엔딩 크레딧 제일 끝에 때쯤에 나올 내 이름은 어째 귀신같이 찾아
이 앨범에서 최엘비는 ‘아는 사람 이야기를 한다’라는 아주 투명한 레토릭을 쓰면서 자신의 고백을 열지. 나는 당당하게 ‘천재’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하는 사람보다는 루피의 친구 역할에 만족하는 사람에 가깝다는 생각 때문일까? 나는 최엘비의 이 앨범을 아주 좋아하면서도 듣기 힘들어해. 너무 직선적이고, 진솔하고, 솔직하고, 그에게서는 어떠한 악의나 가장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나 역시 초등학교 3학년 때, 반장이 될 자신은 없어 부반장에 입후보했으면서, 그것을 진심으로 바라는 체한 적 있기에.
나는 요즘 일기를 쓰면서 진솔함을 표현한 과정이, 종국에는 거짓과 과장으로 변모하는 순간을 마주하곤 해. 아주 솔직한 감정의 원형을 언어로 풀어놓는 과정에서, 나의 감정을 타인에게 공유하기 위해 표현을 고르는 과정에서, 내가 느낀 진짜 ‘원형의 감정’이 눈덩이 굴리듯 커지고 심각해지는 상황을 만나지. 물론 일기를 시작하기 직전의 감정에도 좌절이나 자기혐오, 무의미한 결심과 같은 맹아는 분명 존재하지만, 언어를 고르고 발화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그 감정이 무럭무럭 자라는 거야. 내가 정말 이 정도로 이 영화를 좋아했나/싫어했나? 내가 정말 이 정도로 나를 사랑하나/싫어하나?
그렇게 눈덩이를 굴려 가며 내가 생각지 못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언어와 표현이 가진 잠재력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진실한 솔직함에서 얼마간 멀어지는 과정이기도 하거든. 나는 내가 쓴 단어와 문장, 행간을 읽으며 그것이 진짜 내 감정이었다고 착각하곤 하지. 내가 나의, 나에 의한, 나만을 위한 에코챔버를 만드는 거야. 나는 최엘비 역시 이 감정에서 무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자신을 반성하기 위해서는 죄를 묻고 답하는 과정이 필요하기에…
노창은 최엘비가 택한 솔직함을 의도적으로 피해 나가지. 테토노창은 자신을 연민하는 남자가 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가 자기 자신을 연민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수준의 연민에 빠지지 않도록, 표현을 다듬어왔을지 모르겠어. 혹은 그가 에겐노창이라고 해도, 자신이 생각하는 힙합은 그런 게 아니라고 정의하는 것이겠지. ‘마이 뉴 인스타그램’의 모든 노래가 힙합인 것과 힙합이 아닌 것을 구분하면서, 그것을 동시에 조롱하고 있으니까.
노창이 보기에 어쨌든 힙합은 진솔하기보다는 냉소하고, 타인을 마음껏 비웃고, 지긋지긋한 현실이라는 레토릭을 내세우는 것에 가까운지도 몰라. 근데, 사실은 그 불안감과 확신 없음이 정말 솔직함이라면? 그것이 힙합에서 내가 착즙해 온 진정성이라면? 혹은 결단력이 힙합 씬의 진정한 진정성, 해방의 책임감 같은 것일까? 빌스택스가 켕기는 감정을 버릴 수 없어 이름을 바꿨던 것처럼, 노창이 ‘테토’도 ‘에겐’도 ‘천재’도 아닌 ‘그냥’이라는 새로운 수식을 택한 것처럼.
그나저나…. 쓰고 나니까 내가 정말 이렇게까지 노창을 변호하고 싶었나? 하는 생각이 드네. 어쩌면 전우원이 MC몽글이 되는 것이 외려 그의 솔직한 심성을 망칠 수도 있는 건 아닐까, 주제넘은 걱정도 들고. 사실 처음 몽글의 힙합 에너지 이야기를 꺼낼 때만 해도, 나는 그것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여기서도 나는 솔직해지는 데 실패한 건가? 정말 솔직해지려면, 사실 어느 정도의 편집과 거짓말을 뒤섞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현실을 그대로 찍는다고, 현실 같은 영화가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들 하잖아. 모르겠어. 머리가 아프네. 힙합은 일기장과 얼마나 닮아 있다고 생각해?
② “감정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판정할 방법이 없지만 꿈은 적어도 ‘사실’이었다.” – 미시마 유키오, 『봄눈』, 118쪽.
③ 당시 이 노래는 많은 힙합 팬들로부터 “트로트 아니냐?”라는, 조롱 어린 피드백을 받았다. 노창은 분노하여 ‘좆간지’라는 노래에서 “올드락이랑 트로트도 구분못한 병신들에게 개 빨리겠지”라는 가사를 쓴다. 아주 화난 것 같다.
④ 조하나, 천재노창|아름답게 불안정한,
#5.
발신:유유민
수신:신포도
1. 힙합과 일기장의 구분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조차 거짓말을 한다고 하지. 심지어 『데카메론』에서는 유서에도 거짓말을 쓴다고 하잖아. 어린 시절 매일 다이어리에 손글씨로 일기를 쓸 적에, 나는 언제나 이 일기를 볼 가능성이 있는 잠재 독자 가운데 가장 최악의 경우를 상상했어. 세진 언니이거나, 캐리 브래드쇼이거나, 심지어는 박찬욱일 때도 있었어. (‘가능성이 있는’ 이라는 조건에 위배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람 일 모르잖아…) 내가 느끼거나 겪었던 것은 활자화되면서 실제와 조금 다르게 적혔어. 너무 후진 것은 조금 덜 후지게, 너무 비참한 것은 조금 낭만적으로 윤색했어. 또한 나의 의지와 달리 비트겐슈타인적으로 이격되기도 했지.이걸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거짓말보다는 편집에 가깝지 않을까. 편집보다는 인코딩에 가깝지 않을까. 인코딩보다는 번역에 가깝지 않을까. 번역보다는 요약에, 요약보다는 압축에 가깝지 않을까. 압축보다는 손실에 가깝지 않을까. 실재하는 4K, 아니 8K 이상의 나를 언어라는 저화질 포맷에 욱여넣는 다운그레이드에 가깝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깨지고 손실되는 픽셀들은 해마 속에 보존되다가, 운이 좋으면 활자와 함께 마들렌처럼 돌아오고, 운이 나쁘면 영원히 사라지게 되겠지.
내가 일기 속에서 얼마나 솔직해질지 각오해 봤자 일기라는, 언어라는 도구를 사용하기로 채택한 시점에서 그 진실성은 희박해지잖아. 나의 괴로움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서술된 문장이 아니라 “으아아아아아아악!!!!!!” 이나 “꾸에에에에엑—-되에에엑?! 꿰에에엑!!!!” 같은 짐승의 사운드겠지. 단전에서 명치로 끓어올랐다 내려가기를 반복하는 괴로움의 덩어리. 뜨겁고, 물컹물컹하고, 쉬익쉬익 소리를 내는 무형의 에너지, 그리고 그것을 통과시키는 나의 내장 기관과 피부…
역시나 그것을 박제하기란 쉽지 않겠어. 결국 그 울화를 어법에 맞게, 주어와 서술어로 가공해서, 활자로 적당히 기록하는 것만이 이 감정에 대한 기억을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이잖아. 너의 말처럼 원형의 감정이 스노우볼처럼 과장되거나, 반대로 축소된다 할지라도. 왜곡하지 않고서는 기록할 수 없으니까.
그런 것 같아. 나의 카오스를 세상의 코스모스로 바꾸려면 나는 나 자신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감각하는 나, 비명 지르는 나를 서술하는 내가 관찰하고 맥락을 부여해 기록하는 일을 거쳐야만 일기라는 것을, 혹은 가사라는 것을 쓸 수 있으니까. 자기반영적 가사를 쓰는 이상, 힙합 역시 일기장까지는 못 되더라도 최소한 블로그 포스팅이나 인스타그램 피드는 될 수 있을지 몰라. 나를 주시하는 약간 명의 사람들을 흘끔흘끔 의식하면서… 어느 정도의 솔직한 심정을, 상당히 솔직히 내비치겠다는 각오와 함께 써 내려가는 것이니까. 어쩌면 식자(識字)는 스스로를 어떤 서사 속의 배역으로 캐스팅하지 않고서는 단 한 줄의 문장도 쓸 수 없는 족속들인 듯?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나는 스스로의 서사에 축축하게 침잠하는 내가 못견디게 싫었어. 내 감정에 도취되어 허우적거리는 나 자신이, 마스카라를 바르고 울면서 거울 셀카를 찍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꼴 보기가 싫었어. 그래서 그 기간동안 매일 일기 대신 아주 건조한 일지를 썼어. 감정 형용사를 다 쳐내고, 사실과 인과만 늘어놓으면서, 마치 하드보일드 소설의 탐정처럼 무뚝뚝하고 냉정하게 말이야.
71. X와 맥주를 마셨다.
72. 선풍기를 조립했다. 아트나인에서 3D 영화를 보았다. 옆자리 사람과 통성명하고 가지고 있던 관람권을 드렸다.
73. Y와 Z와 같이 점심을 시켜 먹었다. 오후에는 H와 에이미스커피에서 공부를 했다.
74. 탈색하고 베이지색으로 염색을 했다. 머리를 하는 동안 『부바르와 폐퀴셰』 2권을 읽었다.
75. 밤새 장르연구 시험 준비를 했다.
76. 장르연구 시험을 쳤다.
77. 피어싱을 새로 했다. 리포트를 송고하고 Y와 Z와 이야기를 나눴다.
79. 어영부영 하루를 보냈다.
80. H와 코인노래방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폭우가 쏟아져서 비를 쫄딱 맞고 피씨방에 갔다.
81. 한남동 바이닐앤레코즈와 mmmg에서 N의 생일선물을 샀다.
82. 합정에서 U를 만났다.
(당시의 실제 일지에서 발췌. 포도, 자네의 흔적을 찾아보시게나.)
그런데 몇 년을 그런 식으로 기록하다 보니 그게 더 지독한 연극처럼 여겨지더라구. 그 드라이하고 냉소적인 관찰자 또한 내가 만들어낸 또 다른 종류의 배역일 뿐일진대. 결국 ‘거대한 감정의 파고 속에서도 초연한 나’라는 새로운 자의식을 생성해 낸 것에 다름없었지.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 자기 주연의 서사라는 감옥에서 탈출할 수 없는 것인가? 괴롭다, 괴로워. (꾸에에에에엑—-되에에엑?!)
그래서 차라리 양홍원의 ‘오보에’ 앨범이 좋았던 것인지 몰라. 미숙하고 병들고 슬픈 모습을 포장지 없이, 꾸미거나 정제하지도 않고 대충 쓴 다음에, 그마저도 웅얼웅얼 뭉갠 발음으로 노래하는 것이. 그가 떠나간 연인 ‘현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가 자신의 삶을 얼마나 다시 바로 세우고 싶어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고 생각했어. 이모(emo) 래퍼들이① 상처받고 병든 자아 앞에 조명기를 설치한다면, ‘오보에’는 조명기 설치할 기력도 없어서, 암막 커튼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을 피할 힘도 없어서, 라꾸라꾸 침대에 누워 왼쪽 팔로 눈을 가린 채 발화하는 최후의 웅얼거림처럼 들렸거든. 그럴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면 2021년의 양홍원에게 미안한 일일까? 뭐, 괜찮겠지? 지금은 현주 씨 다시 만나서 루아 낳고 행복하게 사니까… 양홍원은 회사도 안 다니잖아… 돈도 많구…
흠…
다음 주에 노래방 갈래?
2. *증보: 스윙스의 비명 비평
[유유민 16:41] 음악 랜덤재생 시켜놨는데[유유민 16:41] 갑자기 스윙스가
[유유민 16:41] 진짜 구라 안 치고
[유유민 16:41] “으아아아아아아악!!!!!!” 이나 “꾸에에에에엑—-되에에엑?! 꿰에에엑!!!!”
[유유민 16:41] 이거
[유유민 16:41] 하는 거야
[유유민 16:41] No Mercy ;;
[신포도 16:43] 아 다시 들었는데 개웃기고 너무 크리피함
[유유민 16:43] 근데 저 일기 쓰고 나서 스윙스의 성정? 캐릭터?에 대해서 생각해 보니
[유유민 16:43] 저 비명이 갑자기 이해되고 마음아픔
[신포도 16:43] ㄷㄷ 그것도 일기에 써 줘
[유유민 16:44] 그래야겠다;;
[신포도 16:44] 존나 웃긴다
[신포도 16:44] 너무 이상한 비명임
[신포도 16:46] 비명비평 가능;; ㄷㄷ
[유유민 16:46] 비명비평 ㄷㄷㄷㄷㄷㄷㄷ
이같은 연유로, 또한, 기존의 일기가 너무 갑자기 끝나버려 당혹스럽다는 신포도의 의견을 수용하여, 본 일기를 증보하기로 하였다.
구글이 사용자 대화를 무단으로 도청해서 광고에 활용한 혐의로 6,800만 달러의 합의금을 지급하게 됐다는 기사를 봤거든. 불과 어제 말이야. 그런데 구글 드라이브에다가 꾸웨에엑, 으아아악 이런 비명 소리를 좀 썼기로서니, 그 즉시 내 애플뮤직에서 스윙스가 정확히 그같은 소리를 지르는 노래를 찾아 틀어줬다는 게 새삼 무서워.
사실 스윙스는 누구보다 언어에 성실한 래퍼라고 생각해. 일단, 본인을 수식하는 a.k.a.부터가 ‘펀치라인 킹’이잖아. 언어유희를 즐기고, 일단 말을 잘 하고, 도치법 남발로 놀림받긴 하지만 조리 있는 사람이잖아. 스윙스는 대중에게 조롱받는 캐릭터가 되더라도 트렌드나 담론의 변화에 맞춰 말을 바꾸거나 정확히 피해 가는 쨉쨉이가 아냐. 청자들을 향해 영원히 증명과 설득을 지속하는 사람이지. 나는 항상 이런 ‘일자유식’한 사람들에게 끌려. 가치관이라는 말이 유명무실해진 시대에 얼마나 소중한 인재들이니. 설령 이행기를 맞닥뜨렸을 때 죽일 놈이 되고 바보, 꼰대, 노인 취급을 받더라도, 자신의 논리를 포기하지 않는 우직함(혹은 미련함)을 가진 사람들 말이야.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언어로 인코딩하려는 사람이기에, 역설적으로 스윙스에게는 언어화되지 않은 잉여가 무지막지하게 많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거대한 댐만큼 많이 쌓였겠지.
그러니 저 비명은, 스윙스가 가진 방대한 어휘력과 논리로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마침내 임계점을 넘어 범람하는 소리가 아닐까? 둑이, 댐이 터져나가는 소리. 스윙스의 목울대에서 터져 나온 비명은 그가 언어로 간신히 지탱하던 세계가 때때로 무너진다는 것을, 또는 도저히 완전한 방식으로는 조형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난 이겨낼 거야 난 이뤄낼 거야
헐크처럼 앞의 벽을 밀어낼 거야
내 뼈를 깎아도 너무나 아파도
하나씩 무너뜨릴 거야
Like dominoes
자전거를 처음 배운 뒤 빠르게 달리는 데 혈안이 된 내 모습을 보고 아빠가 말했었지. 엄청나게 빨리 달리는 것보다 엄청나게 천천히 달리는 게 훨씬 어렵다고, 천천히 달리면서 넘어지지 않는 것은 대단한 고난도 기술이라고 말이야. 느리게 달리려 해보니 과연 그렇더군. 핸들을 잡은 나의 팔과 전신이 마구 흔들렸어. 자전거가 좌우로 미친 듯이 휘청거렸거든. 스윙스의 다짐에서 방점은 아무래도 ‘밀어낼 거야’도 ‘헐크처럼’도 아닌 ‘하나씩’에 있는 것 같아. 도미노만큼이나 빽빽하게 도열한 벽을, 타노스처럼 한 방에 파괴하고 폭파시키는 대신 하나씩 성실하게 차근차근 깨부수겠다는 마음. 수행자의 마음… 그 인고의 과정이 스윙스를 비명지르게 만들었겠지. 그것이 “끄아아아아아악!!!!!”을 노래의 미주처럼 달아놓은 연고일 거야. 마음이 아프다.
비명 비평이라는 제목을 달고 쓸 수 있는 말은 그닥 많지 않은 것 같아. 이 정도로 됐어. 비명이라는 비언어적 파열을 다시 비평이라는 언어의 감옥에 가두는 게 좋은 시도였는지는 잘 모르겠어. 괜히 했나 싶기도… 문 스윙스, 미안해요. 하지만 재미있었죠?
3. 나가며
사실 나 이번 교환일기가 제대로 ‘교환’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 아니 사실은 지금도 확신은 없어. 뭐랄까, 우리 각자가 가장 몰두했던 힙합의 연대가 너무 다른 나머지, 서로 완전히 다른 주제를 가지고 얘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달까. 첫 번째 일기를 쓸 때만 하더라도 나는 와썹크루의 FLOW2S나 VegaFlow, Demonicc, Scorpion, Roy.C 같은 래퍼들, 쌈디의 믹스테이프, 힙합플레이야, 무브먼트와 마스터플랜이 양분하던 국힙 씬, 에픽하이의 Lesson 시리즈, 이현도와 힙합 구조대, 지기펠라즈, 혼란속의 형제들, 소울맨 앤 마이노스에 대해서 잔뜩 이야기하게 될 줄 알았어.
하지만 공교롭게도 나는 네가 힙합을 듣기 시작한 바로 그 시기에 즈음하여 힙합에 냉담해졌던 것 같지. 난 기리보이나 노창에 관해 아는 것이 없고, 너는 소울컴퍼니나 소울커넥션에 대해 잘 모르고. 공명하는 지대가 없으니 각자의 용례를 붙들고 제법 뜬구름 잡는 소리들을 한 것 같은데, 그럼에도 미약하게 핑퐁이 되고 있다는 점이 사실 꽤 재미있기는 했어.
막바지에 오니 이 기획이 우리가 ‘말달리자’와 ‘그래비티’를 좋아한다는 데서 시작됐다는 게 황당할 지경이야. 나의 끝물과 너의 진입점이 겹쳐 지나가는 그 찰나의 지점에 하필이면 빌스택스와 씨잼, 스윙스와 매드클라운이 서 있었다는 말인데. (도대체 하필 어떻게 딱 그 두 곡이 겹친 거지…) 어찌 보면, 그 덕에 이 교환일기는 2005년부터 2025년이라는, 무려 20년에 걸친 국힙의 연대기를 단 한 해의 손실도 없이 포괄할 수 있었지 뭐야?!
어쨌든 다음 주에 노래방 가자. 우리가 노래방에서 이상한 힙합곡을 잔뜩 부르고 서로 더블링을 쳐줄 수 있는 유일한 동무라는 사실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이참에 다음 주에는 노래방 셋리스트에 변화를 좀 줄까.
일단은 나 ‘08베이식’ 부를 거야. 왜냐하면 나 요즘 진짜 “X밥처럼 사는” 거 “지긋지긋” 하거든… ‘말달리자’ 다음에는 바로 ‘그래비티’ 넘어가지 말고 ‘노 머시’ 이중창 하는 거 어때? 후주 나올 때 비명도 같이 지르구. 그… 전에 너가 부른 <이빨, 다리, 깃발, 폭탄>② 비슷한 거, 그것도 외워갈게.
<타짜4>의 흥행을 응원하며, 유민
② 백종관 감독의 2012년작으로, 유민과 포도가 재미삼아 꼽은 ‘95년 이후 최고의 영화 BEST 10’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6.
발신: 신포도
수신: 유유민
사실 차지 유니버스는 구글이라는 거대 테크 기업이 얄팍한 알고리즘 기술로 조형해 낸 백일몽 같은 것은 아니겠지? 만에하나 그렇다 해도 인정할 생각은 없다만….
<이빨, 다리, 깃발, 폭탄> 비슷한 그 노래는 언오피셜보이의 <그물, 덫, 발사대기, 포획>이야. 나는 <이다깃폭>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영화의 제목을 들었을 때 즉시 <그덫발포>를 떠올렸지. 우리가 경험한 것의 선후관계가 뒤섞여있긴 하지만, 그것이 교환될 때① 의 즐거움이란….
네 일기를 읽고 나서 나 역시 스윙스에 관한 생각을 했어. 근데, 생각할 것도 없이 나는 스윙스의 음악에 관해 잘 모르더라고. 첫 일기에 FT아일랜드의 모든 멤버를 동일한 깊이로 좋아할 수 없었다는 것, 그리고 그 편애에 관해 약간의 부채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기억나? 저스트뮤직에 소속된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즐겨듣던 내게 스윙스는 비슷한 맥락의 부채의식을 얹어주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 스윙스 음악의 매력? 같은 걸 잘 느껴본 기억이 없어서. 목소리가 느끼하다, 도치법을 즐겨 쓴다, 저스트뮤직에서 나온 많은 노래에 피처링으로 끼어있다, 정도의 인식이랄까? 솔직히 펀치라인이 뛰어나게 재미있다는 생각도 별로 해본 적 없어. 나는 토종 한국인이기 때문일지도… 혹은, 이 정도의 말장난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거대 자신감이 숨어있는지도 모를 일이지.
그렇다고 나는 스윙스를 모르는 사람일까? 그 질문에 과감하게 “맞아요!”라고 답하기 어려운 것은, 내가 스윙스가 얽힌 밈을 즐겼기 때문인 것 같아. “이리로 와요.” “왜 나한테 왔어요?” 따위의 것. 누구나 이해할 수 없는 정도의 열정으로 연기에 꿋꿋이 도전하고, 욕을 먹어도 그만두지 않는 것. 스윙스는 사람 자체가 단단한 것 같아. 그렇게 단단하다는 것 자체가 너무 이상한 것 같아. 그렇지 않아? 그의 성정이나 욕망이 바르다거나 힙하다거나, 멋있다는 류의 가치판단은 못 하겠는데, 그냥 단단해 보여. 누구도 스윙스를 말릴 수 없다!는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게 가끔은 어색하지. 그렇기에 스윙스는 나와는 너무 먼 사람 같고… 오히려 자신의 스캔들 기사를 쓴 기자를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저주하는 천재노창의 마음이 나와 훨씬 가까운 것 같아서… (신포도는 모든 고통의 이름들을 기억하고 있다.)
사실 나한테 스윙스의 힙합은 스윙스의 노래보다는 그가 해왔던 일, 만나고 떠나보냈던 수많은 사람들, 정신병과 탈영, 뇌절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 돈가스 드립, 짐티피의 실패, 홍대 앞 사거리에 돌아다니는 과도하게 거대한 벤틀리, 지나치게 예쁜 전 여자친구, 기리보이가 스탠다드프렌즈로 소속을 바꾼 것, <타짜4>, <폭싹 속았수다>의 영범이를 따라하는 스윙스의 찡그린 표정, 살이 쪘다 빠졌다 하는 고무줄스러움, 쇼미더머니의 프로듀서였다가, 참가자였다가, 프로듀서였다가, 참가자였다가…. 하는 것들과 더 가까운 느낌이야. 그래서 외려 노래가 재미가 없지. 그의 삶이 언제나 가사와 노래와 재치 있는 펀치라인들을 초과해 버리니까. 내가 기리보이와 천재노창, 씨잼의 노래를 즐겼던 건 그들의 삶이 생각보다 재미없기 때문은 아닐까? 스윙스의 삶은 음악보다 더 재미있는 것 같고.
“나의 카오스를 세상의 코스모스로 바꾸려면 나는 나 자신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나올 수밖에 없”다면 사실 스윙스는 자신의 카오스를 코스모스로 바꾸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아. 그래서 그는 ‘No Mercy’에서 맥락 없는 괴명을 지르다가, 웃다가, 다시 비명을 지른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고. 그럼에도 나는 스윙스의 음악을 잘 모르니,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으니, 스윙스라는 사람을 붙잡고 힙합과 삶, 그들이 어떠한 집합 관계에 놓여있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더 이어나갈 수는 없겠어.
힙합하는 사람들은 이상한 짓을 많이 하고, 또 당하잖아. 정상수, 정상수 앞에서 고기 굽는 기리보이, 김상민그는감히전설이라고할수있다의 몸매 개쩌는 얼굴 없는 여자친구, 키스에이프와 오케이션의 케타민 일대기, 천재노창의 인스타그램, 칸예 웨스트의 진솔한 정신병 고백, 이제는 뭐 때문에 싸우는지도 잘 모르겠는 켄드릭 라마와 드레이크…. 이 수많은 ‘병크’들을 더 나쁘게 포장하지 않고, 혹은 지나치게 매끈한 코스모스의 정갈함을 빌려오지 않으면서도 말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내게는 염따가 냈던 가장 최근의 앨범이 그러한 종류의 것으로 다가와. 비명과 더 가깝지만 어떠한 보편을 건드리는 고백이라는 측면에서.
음악은 처음 즐겨 듣기 시작했을 때의 감각이 가장 솔직할 테니… 내가 일기에 적었던 ‘살아숨셔4’에 관한 감상평을 인용해 볼게.
염따의 신보는 아주… 노스탤직했다. 솔직한 이야기들이라 마음이 동했던 듯. 나는 원래도 염따의 노래들을 좋아했는데, 막 유명해지기 시작할 때의 노랫말들에는 위악이 섞여 있었던 것 같다. 근데 솔직히 염따가 반성해야 할 정도로, 그 위악들이 완벽히 완벽하지는 않았음. 염따는 자신이 아주 유명해졌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걸 은연중에는 알고 있는 사람처럼 가사를 썼다.
염따가 부렸던 위악들은 대부분 “아저씨”라는 자의식을 동반했어. 하지만 모든 핫걸들이 이 아저씨를 좋아하고, 아저씨의 큰 총, 아저씨의 비비빅(oh… ㅠㅠ). 염따에게는 진심일 수도 있었겠지만 염저씨를 열망하지 않는 내게는 위악으로 다가오는 가사들이지. 염따가 막 뜨기 시작했던 ‘돈 Call Me’의 가사도 마찬가지야.
Don't call me
Cash only
어쨌던 봄이
오긴 오지
Flex 난 슈퍼 Flex
알잖아 내 Class
돈 없으면 전화하지마
어 어 그래 어 기리보이니 어 아니
전화하지마 전화하지마 (바꺼) (바꺼)
구라야
돈 없으면 전화하지 말라고 했다가 마지막에 구라라고 덧붙이는 그의 밴댕이소갈딱지미가 느껴져? 근데 실제로 음악을 들으면 ‘구라야’가 거의 안 들리거든. 그 와중에 약간의 자존심을 챙겨본 거지. 너도 알다시피 염따는 이 노래를 낸 이후에 플렉스할 돈을 충분히 벌고, 더콰이엇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쇼미더머니의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하고, ‘아마두’라는 히트한 캐럴 힙합곡도 내고, 티셔츠도 팔고, 도지코인도 샀다가. 그래 티셔츠를 팔다가, 티셔츠를 열심히 팔다가… 마미손이 발굴한 미래 힙합 인재를 가로채려다 나락의 길을 걷게 됐지.
염따가 본격적인 스타 래퍼에 오르기 전이었던 2016년 ‘살아숨셔’ 앨범에는 피처링이 단 한 명도 없어. 그 이후에 냈던 ‘살아숨셔2’, ‘살아숨셔3’에는 차붐이나 던밀스, 뱃사공, 자이언티나 저스디스 같은 피처링진이 참여하기도 하지. 그렇게 나락 이후 개같이 부활한 염따의 ‘살아숨셔4’는 첫 앨범처럼 염따 혼자서 노래해. 아주 고독하게… 다시 내 일기로 돌아가자면…
그리고 염따는 이렇게 돌아오는 게 아주 극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자기 자신의 서사를 만드는 사람… 서사를 만들려면 어느 정도 그 서사를 예견하고, 일본이 타츠키 료의 만화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예지몽에 잠겨서 살아야 극적일 수 있다. 염따의 위악이 완벽했다면 이번 앨범의 가사들이 그리 진정성 있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 같다. 위악을 완벽하게 부리는 사람은 또한 완전히 솔직해질 수 없다.
‘윽!’ 트랙에서 더콰이엇 트랙으로 넘어갈 때가 가장 극적이다. 미숙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과… 그럼에도 피처링 페이 4천을 받고, 빈지노의 맞팔을 받았다고 과거를 자랑한 뒤에(회상한 뒤에?) 네 번 정도 감탄사를 내뱉고 다음 트랙으로 넘어간다. 다음 트랙이 엄청 급하게 나온다. 숨 가쁘게 더콰이엇이 얼마나 자신에게 신 같은 존재였는지 알려주려고 달려오는 것 같아서, 그 속도감이 가삿말 같은 표면이 아니라 진짜 내핵에 숨겨둔 진심 같아서 듣는 도파민이 있다. 아무튼 염따는 참 가사를 잘 쓰는 것 같아. 이 정도의 솔직함은 가장하기도 쉽지 않다.
이 앨범에 수록된 노래 ‘윽!’에서 염따는 마미손과 황세현에게 사과해. 더콰이엇과 동급이 된 줄 알았다는 자기 자신의 쪽팔린 과거를 담담히 이야기하지. 최엘비의 회상이 과거 자신의 비겁함과 겁을 읊어나간다면, 염따의 회상은 그보다 지질하고 사소해. 사람들은 지나치게 겁을 먹는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연민을 느끼지만, 과잉된 자신감과 나르시시즘을 뽐내는 사람은 까내리고 싶어하니까.
나는 염따의 삶과 진심 따위는 잘 모르고, 또 관심도 없지만 그가 83년생 무명의 힙합 뮤지션이었다가 금세 떠오르고, 또 자신을 향한 과도한 믿음으로 인해 나락에 가는 짧은 서사 정도는 알고 있어. 그 서사를 알고 나서 덕지덕지 괄호에 피처링진이 적히지 않은 트랙의 제목들을 볼 때의 감각, 화려한 싱글로 컴백하지 않고, 살아숨셔 연작을 담담히 내놓은 선택, 자신이 화려하게 컴백했다는 허세를 놓지 않은 염따의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잔잔한 감동을 느꼈지. 그 어떤 것도 포장하지 않으려는 것 같아서. 대중에게 용서를 비는 것 같지도 않아서. 더콰이엇한테 다시 인정받고 싶다는 비겁함이 보이지 않아서. 그 앨범 전체가 ‘돈 Call Me’의 가장 끝부분, 의밋값 없는 추임새처럼 들리는 “구라야”의 태도를 담고 있는 것 같아서.
어떤 사람은 이 앨범에서 자신의 서사를 고백하는 염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건 일기장에나 써야지, 이딴 걸 노래로 내냐”라는 댓글을 달기도 하더라고. 물론 수많은 팬들이 “원래 힙합은 그런 건데요 -_-” 라는 대댓글을 달기도 했지만. 나는 그 댓글을 읽고 조금 생각이 복잡해졌어. 일기에 라임과 음의 높낮이, 운율과 비트를 씌우면 그것은 힙합이 되는 걸까 하고. 하지만 스윙스와 염따가 알려주는 것처럼, 일기를 힙합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삶의 노출증을 감행해야 하는 것 같기도 해. 뻔뻔함과 실수와 착오 같은 것들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이상한 짓들과 의미 없는 싸움을 지리멸렬하게 이어오면서.
블랙넛과 지미페이지(구 ‘고어텍스’)도 싸웠다고 하는데. 나는 그 사실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서로에겐 서로밖에 없었을 것 같아서. 사실 고어텍스보다는 블랙넛을 생각하면 조금 더 마음이 아픈데. 그건 내가 블랙넛의 삶을 더 많이 알고 있어서일까? 혹은 블랙넛의 콤플렉스나 괴로움이 나의 삶 어딘가와 맞닿아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인 걸까?
이런 생각들을 이어가다 보니, 10년 전 문법을 그대로 빌려와서 욕먹는 쇼미더머니 12가 생각나네. 나는 제대로 보지도 않았고, 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까지 촌스럽고 한결같을 수 있냐는 이야기가 나오더라고. <흑백요리사> 같이 세련된 서바이벌은 보지도 않는 거냐며. 어쩌면 세련되어질 수 없다는 것, 현대의 문법을 빌려오지 않고 찌질하게 싸우는 게 한국 힙합의 정신인 걸까나? 모두의 일기장에는 자신을 배역으로 만들고자 하는 지질한 자의식이 존재하니까. 어떤 원죄처럼.
네가 힙합에 “맥이 팍! 끊겨” 버린 그때, 나는 힙합을 찾아 듣기 시작했어. 이제는 나도 힙합과 너무 멀어졌고… 이렇게 쓰고 나니 힙합과 가까웠던 적이 있나 싶지만. 나의 진입과 너의 끝물이 겹치던 때는 사실 ‘순간’은 아닌 것 같아. 요즘 엄청나게 두꺼운 인류사 책을 읽고 있는데, 사실 농업이라는 게 손가락을 탁 튕기듯, 한순간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3000년 동안, 아주 서서히 진행되었다고 하더라고. 우리의 힙합 연대기가 겹쳐지는 순간들도 실은 그만큼 흐릿하고 길쭉하게, 여름날의 엿가락처럼 늘어져 있는지도 몰라. 그사이 바스코는 빌스택스가, 매드클라운은 비공식적으로 마미손이, 고어텍스는 지미페이지가, 천재노창은 테토도 에겐도 아닌 그냥노창이 되어버렸네. 염따는 마미손의 누군가를 훔치려다 실패했고, 기리보이는 저스트뮤직을 나섰어. 전우원은 몽글이로 화려한 데뷔를 마쳤고, 블랙넛은 아무와도 친구가 되지 못했을 것 같아. 아아… 힙합의 세계란 얼마나 덧없나.
P.S. 다음 노래방을 위해 ‘No Mercy’를 제대로 들어볼게.
X망한 EK의 ‘쇼미더머니’ 조별 무대를 찾아보며,
포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