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2호 > 연재소설 >
곡예사 보우의 실종 2
👤신포도
5. 세공된 피지
나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얼굴의 특징: 코가 길어 보이거나, 턱이 짧게 눌리거나 측면 광대가 부푼 얼굴들. 사람의 눈은 삼차원의 세계 위에서 멀고 가까움을 가늠하지만, 기계들에게는 렌즈의 평면적 왜곡이 존재한다. 기계는 눈과 코와 입이 대충 어디쯤에 위치해야 하는지를 평균화한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캐릭터는 평균적으로 눈과 눈 사이 거리가 넓다. 코의 하단이 짧으며 턱이 끝나는 점이 작고 날카롭다. 기계는 광원의 반사량과 그림자의 대비, 생생한 인간의 눈에 존재하는 안광을 인위적 삼차원 위에 번역한다.
네가 문제를 잘못 보고 있어. 문제는 렌더링과 평균, 광원 반사 따위가 아니야. 문제는 교육이라고. 기계들은 수십억 개의 얼굴을 학습했지만, 나머지 수십억 개의 얼굴은 학습하지 못했거든. 기계 어떤 얼굴을 넣으려고 시도해도 사람들은 기계처럼 그려진 얼굴을 좋아했다. 기계와 인간의 인지가 하나가 되어버리는 날이 온다면, 인간은 지구 열대화에 적응해 속눈썹을 길게 기르고, 빽빽한 코털을 가진 존재로 바뀌겠지? 낙타의 요소를 학습한 사람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이 달고 태어나는 진짜 얼굴도 내화면에 담긴 수십억 개의 얼굴을 따라갈지도 몰라. 뭉개진 얼굴의 시대가 실제로 도래하는 거라고.
인간의 얼굴은 지나칠 정도로 세공돼 있다. 움푹 들어간 이마의 중앙, 살짝 튀어나온 눈썹 털 부근, 오돌토돌 피지의 결을 따라 내려가는 콧대와 인중. 버선발처럼 솟은 그 우물. 그리고 입술. 나는 인간의 얼굴에서 입술을 가장 좋아해. 말랑말랑하잖아. 입술을 손바닥으로 마구 쳐본 적이 있어? 그때는 고양이 발바닥에 가볍게 눌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중안부와 하관 길이에 미쳐버린 인간-기계들. 걔네가 툭 튀어나온 눈썹뼈나 움푹 들어간 이마 중앙을 알겠어? 인간 피부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그리시한 기름결이나 울퉁불퉁 솟아있는 까맣고 하얀 알갱이의 머리들을 알기나 하겠냐고.
칭얼대는 현의 옆에서 마음을 다잡았다. 세공된 피지 따위를 훑을 때가 아니야. 백악기 공룡 백과를 펼쳐둔 뒤 쥐라기 공룡들의 뼈를 분류하는, 무지하고 고집스러운 고생물학자처럼 굴었다. 옛날 애니메이션들을 다시 봐야겠어. 그런 거 있잖아. 어릴 때 담요를 정수리까지 덮고서는 봤던 것들. 주말 아침에는 이상하게도 눈이 일찍 떠지거든. 부모님이 모두 새근새근, 아기처럼 자고 있을 때 어른이 된 것처럼 혼자 깨있을 때 보는 것들 있잖아. 응. 톰과 제리 같은 것? 그래 톰과 제리. 아니, 톰과 제리는 이미 다들 알잖아. 티미와 수호천사? 지미 뉴트론? 너무 유명하다니까. 지금 내 머릿속에서는 티미가 지미랑 만나서 연말 맞이 케이크 파티도 했어. 세상 모두가 그 얼굴을 안다고. 그런 건 인간에게 허락된 데이터베이스는 아니야. 컴퓨터가 선점했어. 그런 얼굴들은.
주말에 잠시 집에 들러야겠어. 예전에 엄마가 영어 배우랍시고 사둔 이름 모를 비디오들이 있는데, 그런 번거로운 이미지까지 학습하지는 못했겠지. 비디오를 보러 내려간다고? 그 깡시골에? 말을 이상하게 하네. 농담이야. 현은 입꼬리를 올렸다 내렸다, 부산스럽게 웃었다.
6. 16편의 안온함
현의 비웃음 때문인지 비디오를 구하러 가는 길이 편안하지는 못했다. 비포장도로를 굽이굽이 들어가야 하는 길이 왈칵 쏟아져 있었는데, 하필 현의 연장 근무가 확정되는 탓에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해야 했다. 노모는 3년 전부터 운전을 포기했다. 시야각이 무서운 속도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내심 본인에게서 운전을 박탈해 간 원인을 나의 존재로 돌렸다. “네가 하지 말라니까” “네가 걱정하니까”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어머니로서도 본인 신체의 일부인 신경세포를 미워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테니까. 내가 답할 것은 침묵뿐이었다. 자식 된 원죄를 감당하기 위해서…. 그 세인트한 마음을 갖고도 꼬불한 시골길을 내 힘으로 달리는 것은 억울한 일처럼 느껴졌다. 국방 스타트업이 이렇게나 미울 수가 없었다.
8시간 걸려 도착한 집은 서늘했다. 집안 분위기는 항상 비슷했다. 어머니는 슴슴한 된장국을 내어주고, 바깥에는 까마귀 소리가 어스름히 들리고. 지나치게 늦은 밤이었던 탓에 조명도 어둠에 져버리는 듯했다. 시골의 조명은 서울의 것만큼 자신만만하지 않다. 공기에 녹아들지 못하는 모든 것은 시골 바깥으로 튕겨 나온다. 그래서 나도… 합천의 그곳을 등진 것일까? 비디오는 헛간을 닮은 창고에 있다고 한다. 나는 본인이 만지는 것이 사람의 뼈인지, 까마귀의 뼈인지도 모르는 이의 눈을 달고는 헛간을 뒤지기 시작했다. 비디오의 좁은 면에 붙여진 스티커는 이미 빛바래 글자를 알아보기도 힘들다. 그나마 남은 숫자 스티커를 손전등에 비추며 16개의 비디오를 챙겼다. 코를 쓱 훔치며 방으로 들어와서는 조용히 TV를 켰다. 플레이어에 비디오를 넣었다. 그래, 이 안온함. 이제야 집안 공기가 따스해진다. 보일러가 이제야 작동하는 것인지, TV가 발산하는 빛이 부수적으로 열을 내는 것인지. 소리는 들릴 듯 말듯 하다. 어머니가 잔다.
곰인지, 쥐인지, 고양이인지 모르겠는 무언가가 나온다. 꼬리를 보면 고양이 같고, 갈색빛의 털은 곰의 뒤를 따른다. 하지만 그에게 곰을 닮은 둥글고 두터운 귀는 없다. 얇고 팔랑거려 앞뒤의 빛을 투과하는 얇고 동그란 무언가만 달려 있다. 이상한 말을 들으면 그의 귀는 파르르 진동한다. 무언가를 듣기는 하나 보지? 놀란 마음은 금세 시각화된다. 고양이의 것을 닮은 수염이 물결 모양을 그리며 진동한다. 잘 들리지는 않지만, 지르르, 지르르. 낮은 진동음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어를 말할 때는 귀여운 아이의 목소리를 내는데, 영어를 말할 때는 그 누구보다 진지하고 정확한 발음을 낸다.
‘보우’라는 이름의 이 캐릭터는 천진한 성격이다. 먹을 것을 좋아해 겁 없이 거인들의 집에 침입하길 즐긴다. 거인의 방망이를 맞고는 머리에 큰 혹을 만든다. 먹음직스러운 방울 모양의 눈물을 쏟아내며 다음 컷으로 이동한다. 거인의 집에서 쫓겨나 터덜터덜 집으로 가는 사이 혹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보우가 사는 집에는 필수적인 시설들이 구비돼 있지 않다. 식탁과 화병은 존재하지만 싱크대가 없고, 옷을 입고 다니지만 입고 있는 옷 외의 옷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도 당연한 것이, 보우에게는 옷장이 없다. 수납공간을 넉넉히 마련할 만한 공간을 갖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보우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거대한 집에 사는 거대한 이들의 음식을 훔쳐먹는 것뿐이었을 테다. 많은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보우는 이상하게도 음식에 집착한다. 거인의 거대한 포도알을 바지에 숨기려다 바지가 터진다. 꼬리가 펑 하니 나온 것을 부끄러워한다. 뭐가 부끄러워? 네가 인간도 아닌데. 부끄러운 척하는 거지? 인간이 아니라면 옷을 벗어도 괜찮은 거잖아. 그런데도 보우는 부끄러워한다. 무전취식과 도벽은 당연한 속성으로 여기면서, 그깟 꼬리가 나온 것에 심히 절망한다. 나는 어쩌면 이상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보우처럼 살고 싶었나? 아직 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괜찮아.
7. 세계는 난독증이다
비디오를 챙겨 다시 탈 것에 몸을 실었다. 어머니는 조심히 가라며 형식적으로 배웅해 준다. 8시간의 진동. 뭉개지는 풍경들. 보우를 분해해야 했다. 아니, 보우가 아니라 보우와 함께 사는 세계를 조각내야 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이리저리 잘린 세계의 틈을 이어 붙여 그를 하나의 시대로 구성해 내는 것이었다. 고고학자들이 그러하듯.
보우의 귀, 보우를 쫓아다니는 거인의 부릅뜬 눈, 거인의 평온한 눈, 보우의 배꼽, 거인의 머리털 색. 거인을 보좌하는 먼짓덩어리, 그의 이름은 료키다. 어딘지 일본스러운 이름. 그의 생김새에서 아시안의 무언가를 찾을 수는 없었는데. 어쩌면 이 이름도 흐릿해진 비디오는 일본의 어린이를 타깃해 만들어졌을 수도 있겠다. 식민 역사를 기억하는 이들이, 료키를 만수나, 칠수 같은 이름으로 번역할 생각까지는 하지 못한 거겠지. 료키는 우글우글 꽃잎을 닮은 눈동자를 지니고 있다.
료키의 눈은 눈썹보다 길다. 료키는 본인이 왜 거인을 섬기게 되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 자리가 필연처럼 주어진 것처럼 산다. 료키는 보우가 가는 곳을 시시각각 기억한다. 거인이 물을 때만 보우의 행적을 분다. 거인이 보우의 정수리를 내리치거나, 발이 퉁퉁 붓도록 물어버릴 때면 료키는 영사기 앞에 사는 먼지처럼 주변을 흐늘흐늘 날아다닌다. 료키의 표정은 읽기 어렵다. 거인은 그 난독증을 앓지 않는 것인지, 난독을 즐기는 것인지, 보우를 사냥할 때면 료키를 항상 대동했다. 그는 료키의 표정을 살피지 않았다. 거인은 세계였으니까.
보우는 죽는다. 죽지 않는다. 보우는 부활을 예고하지도, 부활하지도 않는다. 죽음은 없었으니까. 보우는 죽은 척한다. 죽음에 수렴하는 무리수 같다. 소수점 뒤 숫자를 무한히 늘려가는 것처럼 달려간다. 쇼트가 바뀌면 금세 살아난다. 다치고 붓는다. 다시 날렵해진다. 눈이 튀어나온다. 튀어나온 눈을 주워 담지도 않는다. 컷트! 소리와 함께 눈은 제자리를 찾을 것이므로. 인공지능이 만든 가짜 크리처들은 매끈하다. 나와 10미터의 거리를 두고 사는 가짜 크리처들! 지나치게 잘생기고 서양적인 그 얼굴들. 파리한 픽셀 입자의 알갱이들조차 무너뜨릴 수 없는 그 매끈함이란. 보우의 부활, 치료, 재활은 빠르고, 민첩하게, 날렵하고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점에서 매끈함의 표면을 훔쳐 오지만 인공지능스러운 뻔뻔한 자연스러움은 없다. 나는 얼핏얼핏 보았다. 보우가 죽음 벼랑의 순간에서 지친 눈빛을 하고 매달린 순간을. 료키의 꽃무늬가 뭉개지는 순간을. 그것은 눈을 뜬 채 감은 것과 유사했다. 살아남기 위해 눈을 뜨지만, 죽음의 순간을 목격하고 싶지 않아 눈을 감는다. 물론 거인은 보지 못했을 거다. 키가 너무 커. 세계의 세부를 광각렌즈로 보는 거지.
플레이어에 삼켜지는 좁은 면은 손때를 탔다. 손에 잉크들을 옮기며 정보지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플레이어의 마찰면은 스파인 스티커를 긁어댔다. 그 잉크들은 손에도, 플레이어의 마찰면에도, 손기름에도, 형광등의 입자에도 묻어났을 터였다. 반면 숫자 스티커는 꽤나 멀쩡하다. 그는 보존됐다. 다른 비디오의 몸통에 가려져서. 빛도 그 숫자들에는 관심이 없었겠지. 매끈한 얼굴들. 어쩐지 현의 갈기갈기 찢긴 가슴살이 떠오르고. 내가 가진 재료는 1회부터 16화까지다. 숫자 스티커를 따라 보우와 료키와 거인의 요소들을 분해한다. 현은 자리에 없다. 타액을 닦으러 갔나? 벤치 프레스를 하러 갔나?
8. 보우의 실종
13화 쯤이었다. 보우가 사라졌다. 정확히는 13화 2분대가 지나면서였다. 2분 8초, 9초? 시간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보우가 어떤 평범한 컷과 컷 사이에서 비디오를 탈출했다는 사실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그 프레임 사이의 공백을 아흔 번은 돌려 봤다. 분명했다. 보우가 사라졌다. 아흔 번을 돌려보는 동안 나는 분명한 메시지를 봤다. 프레임마다 보우의 입모양이 바뀐다. 에-느. 오. 티. 디. 으. 프. 입꼬리가 올라가고. 정지. 혀가 내려간다. 이. 입이 모아진다. 보우가 떠난다. 그 컷을 떠났다. 거인의 세계를 떠났다.
보우의 자리에는 보우와 털색도, 눈동자 색도, 꼬리의 말림도, 귀의 크기도, 얇기도, 눈썹의 길이도 다른, 완전히 다른 얼굴이 서 있다. 그는 마치 보우인 것처럼, 보우의 이름을 하고, 거인의 음식을 훔치고, 바지를 찢고, 료키의 수상쩍은 눈빛들을 받아낸다. 그는 꼭 보우가 된 것처럼 산다. 하지만 나는 안다. 보우는 사라졌다. 보우의 이름을 하고 있는 저것은 보우처럼 참깨 스틱인 줄 착각하고 못을 씹어먹고, 거대한 포도알을 먹기 위해 외줄을 타지만. 그래 나는 알아. 너는 보우가 아니야. 보우는 어디로 갔지? 그 수상한 알파벳들은 대체 무슨 의미지?
어쩌면 보우가 죽었을 수도 있었다. 보우는 이미 죽음을 수도 없이 연습해 온 존재였다. 그러니 일순간 콱 하고 죽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는 죽지 않는 존재인데… 죽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살아왔던 것인데.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어서 살아온 것인데. 죽음은 알맞은 답이 아니었다. 보우는 일종의 모험을, 어쩌면 탐험을, 조금 달리 말하자면 탐구를, 연구를, 탐사를, 채집을, 순례를, 잠행을, 방랑을, 그를 넘어선다면 지뢰를 찾는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비디오의 온기로 덥혀졌던 집이 금세 사그라들었다. 푸른 한기가 방을 채웠다. 나는 보우를 찾아야 했다. TV 화면을 잘게 쪼갠 픽셀 위에서, 사진의 속도를 전기 신호로 바꾸는 세계 안에서만 살 수 있는 보우를 찾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죽지 않는 그 존재를. 쪼개질지라도 죽지 않아. 보우는 쪼개진 얼굴을 두려워하지 않아. 그렇지만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지. 보우는 어디로 갔을까? 그 존재의 행적을 좇으면, 나 역시 뭉개진 얼굴들과 공생하는 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억지스러운 답이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다음의 문제. 난제의 단단함. 그러나 때로는 속눈썹을 잡고 매달려주는 존재들도 필요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