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5호 > 에세이 > 
이문동과 나고야, 그 밖의 다른 모든 곳에 존재하는 젠바에 관하여
👤박귤

이문동에 살던 때다. 당시의① 나는 가벼운 알코올 중독을 앓고 있었고, 대개의 알코올 중독 입문자들이 그러하듯 낯선 자극이 없는 상태를 견디지 못했다. 일평생을 작은 동네, 작은 학교에서 보낸 데다 성정마저 바깥을 향해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내게 낯선 자극이란 결국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았다.

낯선 이를 만나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 중 하나는 새로운 학교나 직장에 가는 것이다. 환경과 조건, 연결의 모양을 바꾸는 것. 매일 등교하는 곳, 매일 출근하는 곳, 하루에 9시간 이상을 보내는 장소를 바꾼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아주 쉽게 부여하곤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소도시, 지역 학교에서 빠져나와 서울로 대학에 가야 한다는 기성의 담론이다. 서울에는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살고 있으니 그만큼 다양한 사람도 많으리라는 것.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그것이 환상임을 알고 있지 않을까?

내가 다닌 학교는 전교생이 2천 명을 넘지 않는 작은 곳이었고, 나를 제외한 학과 동기는 고작 9명이었다. 그중 몇몇은 한 학기를 채 마무리하기 전 자취를 감췄고, 또 시간이 지나며 각기의 사정으로 쪼개졌으니, 실상 그 학교가 내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자극의 장'으로 기능한 건 기껏해야 8개월 정도였다. 큰 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이와 다른 일이 벌어지리라는 보장도 없다. 나 같은 특성의 인간은 아무리 큰물에 던져놓아도 같은 방식으로 살았을 것이다. 커다란 물을 잘게 나누고 나눠 결국 대야 하나 크기 안에서 관계를 만들었을 테다. 넓은 환경에 던져진다고 하여 반강제적인 '새로운 연결'과 '만남'이 저절로 생겨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회사를 바꾸는 것은 인간관계를 넓히고자, 혹은 알코올 중독자의 자극을 추구하고자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다. 선택이라고? 아니, 불경기 시대에 회사를 옮긴다는 건 결코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없지. 신의 키스를 받거나, 운명의 수레바퀴를 정성스레 핥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회사는 직무가 정해져 있으니, 교류의 장에도 불가피한 한계가 생긴다. 관심 분야나 학과, 직무 같은 것이 정해진 이상, 아무리 넓은 세상, 즉 서울이 아닌 뉴욕이나 아프리카 한가운데에 던져지더라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꽤 저주 같이 들리지 않는가?

이렇게 환경과 조건을 바꾸는 것만으로 생기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방법들도 세상에는 많다. 작게는 직무나 분야를 벗어나 관심사 기반의 모임에 나가는 것이 하나다. 독서 모임과 포도주 동호회, 강의 및 행사의 뒤풀이나 당근의 동네 모임 번개 같은 것들. 다만 이 방법의 가장 큰 단점이라 한다면, 그들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힘들다는 점이다.

물론 믿음직한 모임장이 이끄는 동호회는 세상에 아주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직한 모임장이 이끄는 동호회’를 찾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므로… 또한 해당 관심사에 대한 진솔한 관심이 귀찮음과 두려움을 이길 정도로 커야 하는데, 나의 경우 그러한 분야를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인 김에 위스키 모임, 포도주 모임 등에 참석할 수는 있겠으나… 글쎄? 나는 그들을 마시는 것을 좋아할 뿐, 입안에서 요란하게 혀를 움직이며 술을 호로록 흡입하고, 술잔을 빙빙 돌리면 생기는 티어스를 관찰하고 싶던 건 아니니까.

'어떤 사람이 나올지 모른다'는 단점을 만회하는 척하면서 결국은 만회하지 않는, 아주 도파민과 딱 붙은 방법도 있다.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것이다. 틴더 같은 만남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사람은 반도체 공장의 직원이 된 것마냥 눈을 동그랗게 뜬다. 사진과 얼굴②로 1차 검수를, 마치 탐정이 된 것처럼 사진 아래 사금처럼 깔린 사소한 감성과 정보를 긁어모아 2차 검수를 마치고, 운명과 시간과 때와 장소가 맞으면 실제 만남이 성사된다.

대부분 1:1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강점은 있으나, 그만큼의 리스크도 뒤따른다. 쉽게 말해 틴더에서는 마약 중독자를, 스토킹 중독자를, 과도할 정도의 반페미니스트를 만날 수도 있다. 또한 그들 역시 나에게 거는 기대랄까, 관심도가 낮으므로 제대로 된 관계로 이어지기는 아주 힘든 일이다. 틴더에서 만난 이가 하루 어치의 인간관계를 넘어, 지속적인 친구로 남기 위해서는 어느 한 명의 엄청난 열의, 혹은 지우기 어려운 현실 세계의 공통분모가 필요하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수많은 방법, 틴더까지 시도해 본 뒤에는 지울 수 없는 현타가 찾아온다. 나는 왜 이리도 간절히, 낯선 이를 만나고 싶어 하는가? 그저 외로움을 즐기는 방법으로 도파민을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인가? 건강한 방법으로. 이를테면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으로. 그것도 아니라면 방 청소를 하거나 이불 빨래를 돌리는 것으로… 현타에 지치고, 현타에 치이는 모임과 틴더 카우보이의 삶에서 벗어나는 건 이리도 힘든 일인가…

그래서 나는 히키코모리치고는 아주 발칙한 생각을 했는데, 바로 그것은 이문동 근처에 있는 바에 가보는 것이었다. 당시의 나는 위스키를 제대로 먹어본 적도, 혹은 위스키에 대한 호기심도 전무한 상태였다. 그러나 소주를 혼술할 수 있는 곳은 마땅치 않았고, 나 역시 희석 소주 같은 쓰레기 알코올을 처연하게 혼자서 처마신다는 것에 관한 약간의 자격지심이 있던 차였다. 네이버 지도에 ‘bar’을 검색해, 집에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바를 찾아냈다. 이름은 ‘젠바’... ‘이래도 괜찮을까’ 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바 입구를 찾기에 이르는데…

가게 입구는 어두운 골목길에 있었다. 옆에는 곱창인지 삼겹살인지를 파는 가게가 있었고, 나는 멋쩍은 몸짓으로 입구 앞을 서성거렸다. 가게 앞에서는 장발의 남성과 안경을 쓴 남성이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그들이 수문장처럼 느껴졌고, 특유의 찐따 감성이 발현되고, '아, 지금이라도 집에 돌아갈까'를 고민하던 차였다. 발을 동동, 서성거리는 나를 발견한 장발의 남성이 "바 오신 거예요?" 하고 경쾌하게 물어봤고,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렇다고 답했다. “예……” 실제로 그 남성은 수문장이 맞았다! 그는 담배를 다급히 발로 비벼 끈 뒤 나를 바가 위치한 지하로 안내했다. 옆에서 함께 담배를 태우던 안경의 남성은 그 바에 자주 오는 손님이라고 했다. 우리 셋은 입구를 지나, 젠바의 문으로 향하는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바 테이블에 앉았다. 이름을 아는 위스키를 한 잔 시켜두고 장발의 바텐더, 안경을 쓴 남성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특출나게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편안했다. 간만에 위험하지도, 현타가 오지도 않는 술을 마셨고, 그 이후로 몇 차례 젠바를 찾았다.

몇 차례, 라고 썼지만 실상 바의 사람들과 친해지고 난 뒤에는 거의 사랑방 드나들듯 찾았다. 바의 사장은 나와 같은 학교를 나왔지만 학교에서는 절대 친해질 수 없을 정도로 다른 분야를 공부하던 사람이었다. 단골들이 '젠장'이라 부르는 그는 그다지 술을 즐기는 것 같지도 않은데도 바를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낮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젠바의 문을 열었다. 내가 보기에 젠장은 중증의 ADHD 환자다. 주문이 몰리면 우왕좌왕하며 바쁘게 돌아다녔고, 단골손님의 술을 자주 까먹었다. 그러나 바를 차지하고 앉은 단골들은 오히려 그를 즐겼다. 술이 줄어들지 않아도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으니까.③

젠장은 굉장히 담백한 성격으로 사람들을 불편하지 않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선을 넘어 과도한 칭찬을 하는 일이 없었고, 누군가의 고민을 자신의 것처럼 과하게 끌어안거나 공감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단골이 푸념처럼 늘어놓는 고민들에는 적당한 감정적 리액션—분노, 환호, 우려—을 내놨고, 때로는 장황하지 않은 충고를 건넸다. 그 적당한 거리감이 젠장의 편안함을 만드는 가장 큰 요소였다. 잔가지 요소로는 '바텐더'라는 정체성에 잡아먹히지 않아 멋들어진, 심히 멋 부리지 않은 옷차림, 그리고 아르바이트생들이 손님들과 더 친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사려 깊은 습관성 지각 따위의 것들이 있었다. 나는 이문동을 떠나고서야 젠장 같은 바의 사장을 만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임을 알게 되었다. 매일매일 젠바의 편안한 분위기를 그리워하며 잠에 든다.

젠바에서 만난 친구들은 대부분 편안하다. 바에 10년 가까이 다닌 단골이자 내 친구가 된 로안은 젠바에 들른 손님 모두에게 먼저 말을 걸고 쉽게 친해진다. 나의 시선에서 그런 로안의 대가 없는 베풂은 신기한 일이다. 어찌 저리,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방법을 잘 알면서, 사랑받는 것을 편안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와 함께 젠바를 다니던 친구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진 지금도 우리는 로안을 중심으로 간헐적인 만남을 이어간다. 우리는 한번, 젠바에 온 이상한 손님을 가게 앞 횟집에서 놀린 적도 있다. 나는 나의 나이를 12살 올려 로안을 포함한 연상의 친구들에게 '누나' '언니'로 불리는 상황극을 조직했다. 그 연극이 너무도 즐거웠던 탓에, 놀림의 대상이 자리를 떠난 뒤에도 한참 그 상황에 젖어 있었다. 참다못한 로안이

“이제 끝났어 미친년아~”


라고 현실을 일깨워 주기도 했지만…

여튼 로안은 바에 들어갈까 말까를 고민하던 히키코모리 손님들을 젠바에 오랫동안 앉히는 데 일조한 사람이고, 그렇기에 아마 젠장은 로안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로안 덕에 매일 마시던 9천 원짜리 버팔로 트레이스가 아닌 한 잔에 4만 8천 원짜리 위스키도 마셔봤다. 그날엔 알코올이 이토록 부드러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배웠다.

젠바에서 로안과 했던 약속을 기록한 사진. 무엇을 위한 약속이었는지는 기억 안 난다.

로안은 주얼리 디자이너로 일한다. 가끔 가게에 금가루를 가져왔고, 친구들의 수많은 커플링을 디자인해 준다. 로안이 끼고 오는 목걸이와 팔찌는 아주 화려하고 조화롭다. 그것들을 지켜보는 것도 로안의 친구가 된 이후로 생긴 재미다. 작년 초봄에는 로안과, 또 다른 젠바의 친구 준보, 래철과 상암 하늘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긴 적 있다. 약한 비가 내리고 아주 추운 날. 피크닉이라는 말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날씨였기에 더욱 즐거웠던 기억이 선명하다.

바에서 친해진 친구 중에는 성준도 있다. 성준은 처음 만날 당시 경찰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시험을 포기한 이후로는 목공을 배워 젠바 근처 카페의 책상 등을 디자인해 제작하기도 했다. 현재는 공간 디자인 회사에서 PM으로 일한다고 한다. 성준과는 연애와 관련한 다양한 고민을 풀어놓은 적이 많은데, 서로의 정신병 주파수가 비슷했기 때문에 구차한 설명 없이도 각자의 곤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완전히 이해하거나, 이해받지 않더라도 괜찮다. 이해의 영역에 서 있다는 믿음만으로 솔직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까.

성준은 자기 원할 때가 아니면 절대 연락을 읽지 않고, 연락을 씹는 것은 부지기수지만 마음이 따뜻하다. 위악적인 테토남의 말투로 말하기를 즐기지만, 사실 성준은 반골 기질을 사랑할 뿐 진짜 나빠지는 것에는 본성 자체가 브레이크를 건다. 우리는 서로의 도파민 추구 기질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알기 때문에–본인의 것과 아주 유사한 형태임을 짐작하기 때문에–서로의 삶과 정신의 안정을 진심으로 빌어주는 사이다.

몇 가지 TMI로, 성준은 구수한 여수 말씨를 사용하며, 키가 10센티미터만 더 컸어도 알파남이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며, PM으로 일하며 남들에게 지시하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이야기했으며, 이틀에 한 번씩 빨래를 돌리는 또 다른 정신병을 앓고 있다. 유비쿼터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딜리셔스라는 단어를 좋아하며 희한하게도 포름알데히드는 선호하지 않는다고.

간헐적으로 연락하는 친구 중에는 준보도 있다. 준보는 나를 항상 "누님"이라 부르고, 나를 굉장한 예술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이 진심인지 일종의 유희 장치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압생트를 즐기는 것도 아니고, 미술이나 음악 같은 것을 하지도 않고, 그냥 회사 다니는 알중일 뿐인데 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어진다. 하지만 준보의 특성상 그런 질문은 능구렁이처럼 넘어갈 것이 뻔하므로 진지하게 물어본 적은 없다.

준보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한 이후 아주 이른 나이에 사회 선생님이 되어 이문동 근처 고등학교에서 몇 년간 일했다. 준보는 성실하고 바른 사람이다. 낮에는 학교로 출근하고, 대학원을 다녔으며, 소일거리 개념으로 방통고에서 강의도 했다. 한편으로 준보는 글 쓰기를 즐겨 내게 단편 소설들을 몇 편 보내주기도 했는데, 이상했던 건 대외적으로는 아주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반면, 그의 소설들은 죽음이나 성애 등의 자극적인 소재를 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준보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여튼 준보는 몇 년간 선생으로 일하다가 올해 갑작스레 의과대학에 입학하면서 다시 대학생이 됐다. 현재는 대전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준보처럼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공부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진지하게 물어본 적은 없는데 아마 준보가 능구렁이처럼 넘어갈 것이 뻔하니까… ④

이외의 만나면 좋은 친구들로는 게임 회사에서 일하는 래철, 지휘자로 일하는 지수, 9월 제대를 앞둔 현우, 현재는 새로운 바를 열고 바텐더로 일하고 있는 태현, 경영학과 학생이자 미시마 유키오를 아주 좋아하는 종민, 영화감독이자 젠의 바텐더로 일했던 예훈, 대학원에 다니는 지훈, 그리고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던 나의 첫 젠바 방문에 기꺼이 함께 술잔을 기울여 줬던 영석과 대윤이 있다. 영석은 락 페스티벌의 전문가이며, 대윤은 음악가로 일한다.

지금은 멀어진 친구들도 있지만 나는 젠바가 아니었다면 초록 머리의 음악가를, 안경을 쓴 락 페스티벌 전문가를, 타 전공의 대학원생을, 영화감독을, 경영학과 학생이자 미시마 유키오 애호가를, 어린 나이에 바를 연 바텐더를, 건축학과 출신 군인을, 지휘자를, 게임을 좋아하는 게임 회사 직원을, 성실한 선생에서 의대로 진학한 능구렁이를, 여수말씨를 쓰는 공간 회사의 PM을, 온 힘을 다해 사랑을 주고 받는 주얼리 디자이너를, 편안함과 소탈함이 귀한 자질임을 알려주는 바의 사장과 이야기를 나눠 볼 수도,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와의 연결이 지나치게 쉬워진 시대라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사는 삶의 모습에 대한 상상을 넓히는 것, 그 가능 영역을 키워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알고리즘은 자극적이거나 이상하거나 핫한 사람들을 추천한다. 그들이 아무리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하도록 강요한다. 알고리즘의 함정이다. 게다가 전문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 미덕이 된 시대인 탓에, 미덕이 아닌 것을 추구하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한편으로 이런 일을 해결하는 건 아주 쉬워질 수도 있는데, 살고 있는 동네의 한 가게를 찾으면서,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가까운 장소에 마음과 정을 붙이면서, 낯선 사람들을 직접 만나 보는 것이다. 물론 그 장소의 첫인상이,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아주 개인적인 소회가 되어버린 이 글의 막바지에, 나의 나고야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소를 공유하고자 한다. 여행 마지막 날, 술 한잔하러 미리 찾아둔 이자카야에는 자리가 없었다. 일본의 이자카야는 공간이 넉넉하지 않기에 신의 키스나 부지런한 사전 예약 없이는 자리를 잡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그제야 깨달았다.

구글맵을 돌리다 3천 엔에 술과 음식을 무한정 내어준다는 술집을 찾았다. 가게는 아주 허름했으며,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리는 잡동사니 가득한 방, 특히 하울의 방과 아주 닮았다. 먼지 쌓인 장난감들, 아직 술이 남아 있는지조차 예측하기 힘든 술병들, 곳곳에 붙은 우키요에 액자, 다찌 앞을 빼곡히 채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의 인쇄된 사진들, 음식 놓을 곳이 부족해 보일 정도로 채워진 수많은 향신료, 다 먹은 낫또 통, 먹지도 않았는데 내어준 음식들로 안 그래도 좁은 가게가 꽉 들어차 있었다. 처음 들어갔을 때 내 옆에는 60, 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 세 분이 있었고, 그들과 더듬더듬 파파고와 영어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자신을 마담이라 부르는 가게 주인 할멈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우리를 반겨주었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단골손님들이 작은 가게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곳은 일본 나고야에 있는 젠바 같았다. 모두가 모두를 알고 있었고, 모두가 모두의 방문을 즐거워했다. 한 부부는 그 술집의 단골이었고, 그 좁은 다찌에서 만나서 결혼했으며, 내가 들른 날 저녁에는 신혼여행을 마친 뒤 마담에게 전할 꽃다발을 들고 가게를 찾았다. 퇴근 후 매일 이 가게에 들른다는 아재는 시종일관 “카라오케니 이키마쇼”,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타국에서 찾아온 초면인 나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고, 선물로 주머니 속 귤을 주었고, 먼지 쌓인 기타 모양 장난감, 분홍색 마법봉 장난감을 주었고, 일본의 밑반찬들을 원 없이 내주었다.

나고야에서 들른 이자카야 전경

나는 그곳에서 웃고 마시며 ‘젠바라는 것은 또 세상 어디에나 있는 것이구나’ 생각했고, 그 순간에도 나의 가능 영역은 팽창하고 있었다. 나고야가 아니더라도, 이문동이 아니더라도, 그래, 세상에는 이런 곳들이 또한 역시 아주 많이 있겠구나. 가끔은 그 가능 영역이 나의 알코올 탐닉을 합리화해 주기도 하지만, 알코올을 마시며 취기를 제외한 또 다른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① 당시의… 라고 한정할 수 있는가?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② 물론 얼굴보단 젖꼭지 사진이 많다. 슬픈 일이다.
③ 물론 젠바의 단골 리스트에 들어가면 굳이 술을 시키지 않아도 머물 수 있었다. 근처 술집에서 소주를 마시다 취하면… 젠바에 들어와 잠을 청하는 단골들도 많았으니 말이다.
④ 놀랍게도 준보는 이 글을 미리 읽어보고 공부를 잘하는 자신에 대한 기이한 열등감(다소 재수가 없었다), 자신이 왜 “누님(나)”을 예술가로 생각하는지에 관한 답신을 써서 보내주었다. 이런 글에 답신을 써서 보낸다는 것이 또한 이상하여 나는 한번 더 생각했다. ‘준보는 참 이상한 아이야…’


Tags: 박귤 5호 지정학 탈플랫폼


Updated 26.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