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4호 > 영업합니다 > 
칸예 웨스트에게 선글라스를 팝니다
👤유유민

◆ 칸예 웨스트, 2006년 미국 일리노이
스타일을 방패로 삼을 것인가, 상실을 막아볼 것인가.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은 칸예였던 예(ye)는 촬영 장소에 조금 늦게 도착하는 쪽을 택했다. 정전기 오른 풍선들이 천장에 잔뜩 들러붙어 있었다. '스윗 식스틴'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당첨된 아론의 열여섯 번째 생일 파티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떠들썩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칸예는 자기가 들어서는 순간 2부가 시작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와 함께 아론의 집을 급습한 MTV 카메라, 샴페인 타워, 비명을 질러대는 아이들, 붐박스. 칸예는 기분이 좋다. 아주 조금 우쭐하고, 아이들을 다정하게 대할 여유도 남아 있다. 데뷔한 지 고작 3년이 지났다. 그의 명성은 조금도 소모되지 않을 것 같고, 무한한 성공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는 낙관만이 가득했다. 훗날 그의 이름 주위에 들러붙게 될 수치심과 과대망상과 가족사진들, P-Diddy의 추문과 몰락이 미국 전역을 초토화시킬 미래도, 나찌가 될 미래도 아직 오지 않았다.


아론의 생일 파티에 등장하는 당신을 나는 중학교 방송실의 기계실에 앉아서 보았습니다. ‘스윗 식스틴’①이라는 MTV 프로그램을 종종 시청하던 때였죠. 당신이 저보다 연장자이니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 시절은 유튜브나 IPTV는 고사하고 케이블 채널의 개수조차 한정되어 있어, 사실상 주는 대로 받아먹어야 하는 세상이었습니다. 자아를 의탁할 채널 번호만 몇 개 외우고 있으면 됐습니다. 27번(엠넷), 43번(KMTV)... 네. MTV는 채널 번호도 기억이 안 나요.

저는 열여섯 살이었고,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일대 다수로 싸우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긴 했지만 사실은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점심 음악방송을 명분으로, 밥도 먹지 않고 곧장 방송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채 한 시간씩 틀어박혀 있고는 했습니다. (방송반에 입부한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요.) 때로는 그들이 방송실로 몰려와 잠가놓은 문을 억지로 열고, 방음이 되는 스튜디오로 저를 밀어 넣은 뒤 소리를 지르며 저를 괴롭히기도 했죠. 그런 저에게, 대부호의 자제들이 단지 열여섯 살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슈퍼 카를 선물 받고 그들의 페이보릿 뮤지션을 만나는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받는다는 사실은 마치 판타지처럼 느껴졌습니다. 반도 시골 마을 중학교의 방송실에서 바라본 뉴욕은…

칸예, 당신은 굴지의 프로듀서 L.A. 리드②의 아들 아론③의 16세 생일 파티에 어떤 마음으로 참석했나요?

알아요. 칸예, 당신도 래퍼가 되기 전에는 프로듀서였잖아요. 그것도 꽤 잘나가는 프로듀서였죠. 비트메이커로 이미 충분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음에도 굳이 20대 후반의 나이에 신예 래퍼가 되겠다고 나서면서, 수많은 의심의 눈초리와 ‘후려치기’를 당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사실 저는 더 자세한 일화도 알고 있어요. 루페 피아스코가 래퍼로서의 칸예 웨스트 계약을 검토해 달라고 아리스타 레코드의 임원이었던 L.A. 리드에게 당신을 데려갔다는 것을요. 때려 맞추지 말라고요? 아니요. 그 자리에는 스택 번들즈도 함께 있었잖아요. 그렇죠? 당신은 긴장한 채 랩을 선보였고, 잠깐의 침묵이 이어진 뒤, L.A. 리드가 이렇게 말했잖아요.

“야. 그냥 비트나 계속 만들어.”

당신의 젊고 팽팽한 모골이 송연해질 것이 눈에 선하네요.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시겠지만 설명할 방도가 없군요. 제가 미래에서 왔고, 2021년에 《리볼트》 지에서 이 이야기가 보도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당신이 믿어줄 리 없으니까요.

리드가 당신을 무시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당신은 리드 아들놈의 우상이 되었네요. 축하해요. 그런 증명의 순간은 얼마나 짜릿하고 가슴 벅찰까요? 콧방귀를 픽픽 뀌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잖아요.

“비트나 찍으라며? 네 애새끼 생일잔치에 내가 왜 가야 되는데?”

하지만 당신은 생각보다 너그러웠던 모양이에요. 분명 당신은 리드가 자존심을 내려놓고, 아들의 행복을 위해 당신을 섭외해달라고 제작진에 요청하던 순간을 상상했겠죠. 그리곤 좀 져 줘야겠다고 마음먹었을 거예요. 잘했어요, 칸예. 이 제안을 수락함으로써 당신은 이제 리드의 우위에 서게 된 거예요. 이제 다시는 리드가 당신을 깔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미 발매 첫 주에 미국에서만 86만 장을 팔아치우며 데뷔한 슈퍼 루키지만, 이로써 칸예 웨스트, 당신은 진짜 상징적인 대스타가 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칸예, 저는 당신에게 왕관을 팔 생각은 없습니다. 왕관 같은 건 당신 같은 슈퍼스타가 쓰기에 너무 촌스럽고, 무엇보다 당신은 그런 금속 덩어리 없이도 이미 충분히 왕처럼 행동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팔 물건은 그릴즈도, AP도, 모피도 아닙니다. 저는 당신에게 검은 선글라스를 팔겠습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이런저런 일들로 충분히 들떠 있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이 파티에 참석한 모두가 당신을 알아보고, 당신을 향해 열광할 거라구요.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아이들의 걸걸한 비명과 MTV 카메라맨의 황급한 핸드헬드 카메라, 차에서 내릴 당신을 향해 한껏 줌인된 캠코더들, 당신의 등장을 자축하며 부딪힐 샴페인 잔들의 쨍그랑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아론의 감격할 눈빛… 아론이 환호하고 대리석 바닥에 발을 구르는 모습을 보며 먼발치에서 리드는 생각하겠죠. 팔짱을 끼고, 아, 내가 졌다. 하지만 방심하지 마세요! 그 모든 것을 감지한 당신의 눈꼬리에 조금이라도 우쭐한 미소가 포착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워질지를 경계하세요! 오늘의 파티는 당신 인생의 정점이 아닙니다. 이건 시작일 뿐입니다. 당신은 더 큰 스타가 될 사람인데, 벌써부터 이렇게 손쉽고 흔해빠진 셀러브리티가 되어서는 안 된다구요.

무엇보다 방송실에 숨어 ‘스윗 식스틴’을 시청하는 열여섯 살짜리 시청자들은 신예 스타의 눈꼬리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왕따와 패거리 싸움으로 가득한 삶 속에서 그런 낌새를 파악하는 건 일도 아니거든요. 우리는 금세 커서 몇 년 안에 당신 앨범과 굿즈의 주된 소비자층이 될 것이고요.

그래서 당신에게는 선글라스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새까맣고, 반사광으로 온통 번들거리는 선글라스. 당신은 남들을 훤히 볼 수 있지만, 남들은 결코 당신의 눈을 읽을 수 없도록. 카메라에 찍힌 당신의 얼굴에 우쭐한 눈이 아니라 환호하는 관중들과 카메라 렌즈가 거울처럼 비치도록. 오늘의 칸예 웨스트는 충분히 친절합니다. 아이들과 부모들의 손을 잡아주고, 웃어주고, 적당히 너그럽게 굴 만큼 여유가 넘칩니다. 물론 대중은 스타의 호의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스타가 적나라하게 해석 가능할 만큼 소탈해지면 이내 싫증을 낼 것입니다.

더구나 이건 L.A. 리드를 상대할 때도 더없이 유리한 조건을 점하게 해 줄 것입니다. L.A. 리드는 렌즈 너머 당신의 눈을 단 한 번도 똑바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즐거운지, 우쭐한 지, 통쾌한지, 오랜 스케줄에 피로해할 뿐인지, 혹은 과거에 당신을 무시한 자신을 비웃고 있는지 끝내 확신하지 못할 거라구요. 확신하지 못한다면 L.A. 리드는 당신을 통제할 그 어떤 전략도 만들지 못하겠죠. 당신은 이미 차트 1위이고, VVIP이고, 아론의 우상이지만, 선글라스를 쓰는 순간 한 가지 지위를 더 획득하게 됩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머나먼 나라의 슈퍼스타.” 아 이 얼마나 화룡점정인지요!

저는 당신을 자제시키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아직 젊고 충분히 승리에 취할 만하니까요. 다만 지금 당신에게는 안전바가 필요합니다. 당신은 앞으로도 계속 이상한 옷을 입고, 테일러 스위프트를 괴롭히고, 자아도취하고, 결혼하고 이혼하고, 또 결혼하고, 신발을 디자인하고, 이름을 ye로 개명하고, 신이 어쩌고, 천재가 어쩌고, 아디다스랑 계약을 했다가 해지를 당했다가, 유명세와 망신살에 시달리며 평생을 소란스럽게 살게 될 테니까요.

어떠신가요, 칸예 웨스트. 아론 리드의 생일 파티에 맨얼굴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아니면 15년 뒤에 비로소 출시될 젠틀몬스터의 선글라스를 쓰고 입장하시겠습니까? 한편 한국에서는 곧 이런 노래가 나옵니다.

“까만 안경을 써요…
아주 까만 밤인데 말이죠…”


① ‘MY SUPER SWEET 16’은 2005년부터 MTV에서 방영된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부유층 자녀들의 호화로운 16세 생일 파티를 취재했다. 2006년에 방영된 시즌3 에피소드2에 L.A. 리드의 아들 아론 리드가 주인공으로 출연했으며, 칸예 웨스트와 P-Diddy가 게스트로 깜짝 등장했다. 유민의 기억이 맞다면, 한국 MTV에서는 ‘스윗 식스틴’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② L.A. 리드(L.A. Reid)는 미국 음악산업의 대표적인 A&R 및 레코드사 경영인 겸 프로듀서로, 라페이스(LaFace)를 공동 설립했고 아리스타레코드, 아일랜드데프잼의 CEO직을 역임했다. 저스틴 비버를 데뷔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③ 아론 리드(Aaron Reid)는 L.A. 리드와 가수 페블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현재 프로듀서 겸 송라이터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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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