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9호 > 왓츠인마이백 > 
첫인상과 끝인상이 같은 가방
👤신포도

일시: 9월 28일 월요일 오후 7시 10분
장소: 스타벅스 홍대입구역사거리R점

인터뷰어: 신포도
인터뷰이: 김주은 (포도가 사는 현재 집의 전 세입자. 세상 알아주는 마당발도 아닌 주제에 전 세입자까지 친분을 쌓는다고? 기이한 인연의 전말은 이러하다. 당근 부동산에서 집을 알아보던 중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한 포도. 계약을 확정짓고 입주 전까지 가구 배치를 위해 전 세입자 주은이 올린 사진을 이리저리 확대해 보다가 당시 포도가 다니던 회사에서 냈던 책을 발견한 것. 알고 보니 주은은 해당 미디어 매체의 유료 구독자였으며 심지어 포도가 썼던 글에 몇 차례 선플까지 달아주었던 제1등 독자였던 것이다. 그렇게 우연히 맺어진 인연이 2년째 이어지는 중. 치즈색의 포근한 고양이 ‘장고’를 키우며, 포도가 집을 비울 때면 돌꽁을 돌보러 와주는 최고의 보모다. 현재 망원소재 공간 디자인 회사에 다니며 포도 집에 있는 책장 역시 주은이 만든 것이다.)


❶ 아이패드 프로 11 3세대
❷ 로지텍 아이패드 키보드 폴리오 케이스
❸ 아이패드 파우치
❹ 삼성이 만든 괴물, 중저가의 좀비 스마트폰
❺ 잡다한 메모 노트
❻ 버지니아 울프 산문집 『런던 거리 헤매기』
❼ mmmg 필통 패밀리: 조잡한 펜과 올드스쿨 홍보용 펜, 간지 나는 스케일자
❽ 주전부리 2종: 다이제씬과 밸런스 너츠 한 봉지
❾ 미친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자랑하는 artek 줄자
❿ 우연찮게 구매하거나 얻었으나 꽤나 마음에 드는 다이소 쿠션 팩트와 어매니티 빗
⓫ 르라보 핸드크림(히노키) 
⓬ 3CE 캐시미어 허그 립스틱과 유리아쥬 립밥 파란뚜껑
⓭ 핫트랙스에서 구매한 재생펄프 가방

공간을 디자인하고 가구를 만드신다니. 수학을 엄청 잘하시겠네요.
아뇨. 저 수포자예요.

아뇨. 진짜 수학을 못하는 사람은 실측이라는 걸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줄자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는 거죠.

아뇨. 분명 줄자로 똑같이 재잖아요. 근데 막상 도착하면 안 들어가요. 그게 진짜 수포자입니다.
너무 웃기다.

저는 공간지각능력이 아예 없기 때문에…
근데 또 사람은 잘하는 분야가 있는 거고…

위로해 주지 않으셔도 돼요. 다 극복한 아픔입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가방을 열어 볼게요. 첫 번째로 소개해 주실 물건은 뭔가요?
아이패드입니다. 정말 기본 아이패드(❶)… 모델이 뭐였는지도 기억이 안 나요. 4년 전쯤 구매했네요.

설정 - 일반 - 정보 - 모델명 경로로 접속하여 확인했다. 확인 결과 아이패드 프로 11 3세대로 밝혀짐.

왜 구매하셨나요?
노트북 대용으로 쓰려고 했어요. 노트북은 충전기 없으면 전원도 안 켜지고…

오. 노트북으로서의 역할을 잘 하나요?
많이 하긴 했어요.

대단하다. 포도는 항상 ‘노트북 대신 아이패드를 써야지!’ 꿈에 부풀어 구매한 후, 그것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속단해 버리고는 당근해 버리고 만다. 얼마 전 아이패드 미니 7세대를 구매한 포도. 노트북 대용으로 아이패드를 쓰겠다는 꿈은 깔끔히 버린 듯하다.

근데 사실 뭐 대단한 작업을 한다기 보다는… 주로 뭘 끄적거리고. 타이핑을 해요.

어떤 걸 끄적거리세요?
그냥 제 상념이나, 잡념 같은 것들을 많이 써요. 지금은 일하니까 일 관련 메모가 많지만. 제가 이 노트앱을 좋아해요. 업노트라고. 유료로 사서 쓰고 있어요. 인터페이스도 간단하고 기능도 딱 필요한 기능만 있어요. 윈도우 메모장 같은 걸 가장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연간으로 계속 구독해야 하는 게 아니고, 한번 사면 평생 써요.

아. 최고네. 아니 다 구독화돼서 개 빡칩니다. 업노트. 참고하겠습니다.

얼마 전 아이패드를 사고 굿노트를 깔아 본 포도. 신형 버전을 쓰려면 백만 원을 주고 연간 구독을 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앱 삭제’를 눌렀다. 똥에게 자비는 없다.

그리고 프로 크리에이터도 신나게 썼어요.

오. 어떤 그림을 자주 그리시나요?
이게… 그림일기인데.

미쳤네요.
그 하루에 있었던 인상적인 장면을 그리고, 제 상상을 덧붙인 거예요. 이런 식의 만화를 몇 개 그렸어요.

눈물나게 욕심나는 재능. 인스타그램 @doridori.capture 에서 더 많은 그림일기를 확인할 수 있다. 텍스트도 일품. 최근 일기도 올려주세요.

그냥 이런 그림을 그리면 기분이 좋아져요.


공간차지에서 그림일기 원데이 클래스를 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진짜요?

네. 그냥 1회성으로 저렴하게 받고, 주은 님이 설명도 잠깐 해주시고, 이런 그림일기를 그렸던 과정은 어땠고. 또 실제로 하다 보면 저 같은… 그림을 진짜 못 그리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그런 사람들도 도와주고. 제가 듣고 싶어서요.
좀 알아봐야겠네요. 재미있겠다. 근데 너무 간단한 툴로 그린 거라서요.

에이~ 큼. 이 아이패드 케이스(❷)도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키보드가 있는…
네. 맞아요. 어?

ASDF의 실종


되게 알차게 쓰셨네요. 잘 쓰셨다. 되게 잘쓰셨다.
이거 키감이 너무 좋아가지고. 제가 이걸 많이 쓰나봐요. 미음, 니은, 이응, 리을.

저 한 번 쳐봐도 되나요?

(타닥… 토독…)

아. 그냥 노트북이네요.
네 맞아요. 가볍고, 기분 좋고. 이건 로지텍 거예요.

상당히 값이 나가 보이는데요.
맞아요. 근데 애플 것보다 쌌어요.

세상 천지 그것들보다 비싼 건 본 적이 없어요.
맞아요. 너무 비싸죠.

저는 주은 님을 보면서 항상 그런 생각을 했어요. 좋은 걸 하나 사서 되게 오래 쓰시는 분이구나. 저의 경우엔 그것이 불가능한 꿈 같은 것이거든요. 그래서 물건 하나를 구매하실 때 대체로 어떤 것을 고려하시는지.
생각보다 뭐 살 때 되게 즉흥적이에요. 뭘 많이 안 사기는 하는데. 돈이 많으면 많이 살 수도 있겠는데. 아이패드 같은 것도 엄청 고민해서 산 건 아니었고, 갑자기 너무 사고싶다. 그래서 샀어요. 고양이도 안 되겠다, 데리고 와야겠다. 이런 마음에서.

그 지점만은 저와 유사하네요. 근데 왜 저는 금방금방 버리고, 더러워지고, 못 쓰게 되는데 주은 님은 이렇게 잘 쓰시죠?
그건, 제가 재화가 없어서.

그건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주은 님께서는 물건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시잖아요.
그건 맞아요. 마음에 드는 걸 오래 쓰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오래, 많이 쓸 것이라 생각하는 건 좀 고민하고 사요. 예를 들어서 컴퓨터도 조립으로 직접 맞췄거든요. 3D 프로그램을 돌리고, 영상 작업도 하고, 렌더링도 할 거니까 사양을 좋게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걸 맞추려고 공부를 되게 많이 했어요. 조립 커뮤니티 들락날락거리면서.

제가 쓰는 건 제가 다 알고 컨트롤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 있긴 해요. 그래서 그냥 남한테 “맞춰 주세요” 하는 것보다는 공부하고 조합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모니터도 뭐… 삼성 거 사면 되는데 너무 비싸잖아요. 그래서 스펙 다 비교해 보면서 성능 괜찮은 중소기업 것 샀어요. 그건 되게 오래 썼네요.

부업 하나를 제안드려도 될까요?
왜요?

진짜로 저 같은 사람은 돈 내고 살 법한 서비스입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조립 컴퓨터를 맞추고 싶어요. 그럼 주은 님께서 딱 질문지를 보내 주시는 거죠. 뭘 많이 할 건지, 어디다 둘 건지, 가격은 얼마 정도인지 등등. 그래서 그것에 맞게 딱 주은 님께서 물건을 택해 주시고. 그걸 그냥 아저씨처럼 결과만 보내는 게 아니라 설명과 글, 공부한 과정과 선택한 이유 등을 함께 정리해서 주은 님스럽게 보내주는 거죠. 일종의 퍼스널 쇼퍼인데. 조금 더 감성이 있는. 저처럼 공부하기 싫어서 항상 쓰레기 물건을 사는 사람을 위한 서비스인 거죠. 얼마 정도 받으시면 할 거 같으세요?
음. 반대로 얼마까지 낼 수 있으세요?

저는 만약 200만 원 컴퓨터를 산다. 그러면 10만 원까지. 억만장자가 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데 GPT가 다 해주지 않나요?

그 자식은 말을 제대로 못 하잖아요. 믿을 만한 놈이 아니에요. 제가 주은 님을 알아서 그런가. 신뢰가 너무 가요. 어쨌든 진짜 쓸모 없는 이야기를 해봤고요. 이 아이패드 파우치(❸)의 정체도 알려 주시죠.
이건 정말… 아이패드 넣을 파우치가 필요한데 제 마음에 드는 게 없는 거예요. 조금 더 디깅을 했으면 찾았겠지만 조금 급하게 필요했고. 그래서 그냥 쿠팡에서 만 원도 안 하는 가장 깔끔한 걸로 샀어요. 캐릭터 그림 그려진 걸 정말 싫어해서.

정말 안 어울리는 조합이긴 하다.

그리고 저는 또 급하게 필요해서 산 걸 오래 쓰기도 해요.

물건들이 운명처럼 다가오는 듯합니다. 그 다음 물건으로는…
핸드폰(❹)을 일단 소개해 드릴게요. 이 핸드폰. 일단 언제 샀는지 기억이 안 나요. 제가 항상 아이폰을 쓰다가 별 생각 없이 갤럭시로 바꿨어요. 또 고급 모델도 아니었어요. 6, 70만 원 정도 하는 정도의 모델이었어요.

170이요?
아뇨. 6, 70.

아. 깜짝 놀랐습니다.

변명을 해 보자면 스타벅스는 너무 시끄러웠다. 그리고 주은 님의 이미지가 고급져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저는 휴대폰 케이스 씌우는 걸 안 좋아해서 그냥 생폰으로 들고 다녀요. 액정도 세 번 갈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최근에… 비가 되게 많이 온 날. 장고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급하게 갔거든요. 그때 정신이 없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없어진 거예요. 집에 돌아와서 보니까 택시 탈 때 밖에 떨어뜨리고 병원에 다녀온 거죠. 다행히 누가 안 가져갔고요. 그래서 다 침수돼 있고. 깨져 있고. 지금 액정과 렌즈가 다 나갔…

아이고.

삼성 기술이 유출될 것만 같은 주은의 휴대폰 뒷면 상태.


근데 이게 어쨌든 작동은 한다는 거죠?
네. 튼튼하다 보니까 버리기에는 정이 많이 들었고. 이 정도로 버텨준 게 고맙기도 하고. 근데 이 다음에는 아이폰으로 가려고 해요.

이 핸드폰의 장점은 뭔가요?
일단 그립감이 좋다. 그리고 전 추억 남겨 놓고 싶어서, 상대방한테 동의 안 구하고 통화 녹음할 때 많거든요. 그게 가능한 게 또 갤럭시의 장점이죠.

위험하네요. 법원에 가져갈 일이 없길.

왜냐하면 동의 없는 녹취는 증거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무뢰한과 통화할 때는 참고.

아, 그리고 그냥 얘깃거리를 꺼내 보자면. 컬러별로 어플을 정리해 놨어요.

오. 저도 옛날에 한 번 해봤다가. 금방 또 어질러져서 포기한. 파란색이 되게 많네요. 신뢰를 주는 색이라 그런가봐요. 근데… 잠깐만. 이 CJ ONE 어플은 다른 색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건 핑크색 존으로 가야할 것 같은데.
아 근데 또 거기 가면…

(옮겨 보았다.)

아…
어울리나요?

흠. 이 어플은 지우시는 거 어떤가요? 저 같은 경우에. 이런 상황에선. 지웁니다.
아 재미있다. 이걸 맞추기 위해 어플 사용을 포기한다.

넌 자격 없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소개해 주시겠어요?
이건 노트(❺)입니다.

아니. 왜 이렇게 예뻐요?
아주 예전에 다녔던 직장 동료가 생일 선물로 준 것이고요. allright라고, 연희동에 매장이 있어요.

주은 님과 너무 잘 어울려요. 이 노트에는 어떤 걸 쓰세요?
사실 처음에는 단어장으로 썼어요. 책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 보면 적어서 뜻 찾아보고. 그런 단어장으로 만들었는데 잘 유지가 안 되다가… 단어만 써놓고 뜻은 안 적어놓고 하다가… 그냥 다 이것저것…

아. 최고의 노트입니다. 저는 딱 일관된 컨셉이 있는 노트보다 이런, 아무거나 쓰는 노트를 다 썼을 때 최고의 뿌듯함이 있더라고요.

놀랍게도 살면서 포도 생애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즉, 방금 언급한 뿌듯함은 상상된 감각인 것.

일 관련된 스케치도 있고요.

아니 그리고 주은 님. 어제 또 생일이셨잖아요. 어제 생일 선물로는 뭘 받으셨어요?
아. 그것을 가져왔는데. 오늘 아침에 하우스메이트가 생일 선물로 준 책(❻)을 가져왔어요. 『런던 거리 헤매기』라는 버지니아 울프 산문집인데. 제가 산책을 좋아해서요. 친구가 버지니아 울프 책을 읽으면서 책을 소개해 준 적이 있거든요. 그걸 오늘 선물해 줘서 가져왔어요.

정말로. 주은 님과 정말 잘 어울리는 책이네요.

솔직히 버지니아 울프보다 김주은한테 잘 어울리는 책 같다.

그럼 가장 좋아하는 책은 뭔가요?
『스토너』...

아니 『스토너』. 주은 님 덕분에 읽었잖아요. 정말 미친 명작.

주은과 한 번 책 교환을 했던 포도. 『스토너』를 받고 『성스러운 동물성애자』를 줬다. 물론 좋은 책이지만 너무 바이브가 극과 극으로 달라서 조금 민망하다. 머쓱.

근데 또 최근에는 한국 현대 소설을 많이 읽게 됐어요. 남자친구가 소설, 시나리오 쓰는 일을 했기 때문에 집에 소설책이 많아서요. 2025년 김승옥 문학상 전집도 잘 읽었고요. 2014년 젊은작가상… 대상 받은 『상류엔 맹금류』. 이 소설도 좋아했어요. 또 그거 아니더라도 수록된 글이 다 재밌었어요.

감사합니다. 참고하겠습니다. 또 하나 소개해 주실 것은 뭔가요?
네. 제 필통인데요.

아. 너무 예뻐요. 주은 님이랑 너무 잘 어울려요.
이건 mmmg에서 샀어요. 진짜 옛날에. 근데 제가 필통에 들어 있는 펜(❼)들은 너무 조잡한데요.

오우. 세월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맞아요. 원래 예쁜 펜을 채웠다가 이제 어쩌다 보니까 막 막 넣어 가지고. 근데 저는 이 플러스펜을 정말 좋아해요. 필기감이 좋고 뾰족해서 또 좋고. 뭉툭해지면 뭉툭해져서 좋고. 생긴 것도 깔끔해서 마음에 들어요.

아니 근데 저는. 이게 쓰다 보면 터지잖아요.
아? 터진다고요? 어디가?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포도. 나만 터지는 거였구나. 또 나만…

아니. 이게요… 그 끝에 펜촉이 살짝 말랑한 플라스틱이잖아요. 그래서 이걸 꾹 눌러서 글씨를 쓰다 보면 가끔 잉크가 툭 튄다고 해야 하나? 제가 너무 꽉꽉 눌러 써서 그런 걸까요?
그런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주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던 당시 그린 그림. 역시나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할 독자를 위해 첨부한다.


저와 같은 세계에 사시는 게 맞나요? 알겠습니다. 너무 글씨를 꽉꽉 쓰지 않는 걸로. 근데 이건 뭔가요?
이건 어떤 분이 선물해 주신 스케일자(❼)예요. 도면 볼 때 쓰는 건데.

아. 멋있다고 살 수 없는 물건이군요.
1대 100, 1대 500 이렇게 써있거든요.

아. 축척이 있는 거예요?
맞아요.

그럼 1대 100이면… 이 1이 100cm인 건가요?
오. 네 맞아요. 잘 아시네요.

하하. 찍은 건데. 좋네요.
이건 제도용 샤프(❼). 이것도 되게 오래됐다. 학교 다닐 때부터 썼겠네요.

어떤 학교요? 초등학교?
아니요. 대학교 다닐 때.

포도야. 생각을 좀 하고 말해.

근데 샤프가 참 내구성이 좋아요.

맞아요. 저도 샤프는 오래 씁니다.
샤프심은 제가 진한 거 좋아합니다. 0.7mm 이런 거 좋아해요. 펜도 사실 두꺼운 거 좋아해요. 플러스 펜도 꽤 두꺼울 걸요? 펜도 0.7 정도 씁니다. 이 펜은 집에 있던 펜인데…

생긴 게 되게 귀엽네요.
어디 펜이지?

운수노조 펜인데요.
운수노조가 왜 있는 건지.

운수노조 굿즈. 되게 그리고 디자인이 아름답습니다. 삼색 볼펜도 있네요.
아. 이거 좀 부끄럽다.

좋은데요. 사람 냄새가 납니다. 신용산 소니 서비스 센터.
그럼 소니 로고를 박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했을까요?

또 지점 영업 KPI가 있으니까요.
제가 카메라 고치러 여길 자주 갔거든요. 소니 사이버샷 DSC-RM100M5를 쓰는데. 고장나면 고치고. 고장나면 고치고. 그러다가 고치길 포기한 카메라예요. 그때 받은 펜이네요.

네. 서비스 센터 홍보펜. 참 이런 게 좋아요. 옛날에는 이렇게 펜으로 홍보를 했었는데. 그쵸?
맞아요. 지금은 안 그래요?

요즘 다 인스타그램 광고비 태우느라 바쁘죠. 물론 이런 올드 스쿨 가게들은 또 느좋 전통을 이어갈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음은요?
아 이건. 과자(❽)입니다. 다이제 씬과 견과류. 이런 간식을 들고 다녀야 마음이 좀 놓여요. 든든하달까.

주전부리에서 안정을 찾는군요. 다이제를 좋아하세요?
다이제 씬은 특별히 좋아한다기보다는 그냥 어쩌다 사게 된 것 같아요.

전 다이제를 되게 싫어했어요.
아 진짜요? 너무 달아서?

네. 그리고 뭐라 해야지? 참을 수 없는 포만감? 그리고 아시죠. 무슨 둔기처럼 나오잖아요. 그것만 봐도 부담스럽고 책임감 느껴지고. 그래서 씬을 낸 것 같아요. 저 같은 사람을 위해서.

왜 이렇게 말을 많이 한 걸까?

그리고 견과를 드시네요.
네. 밸런스 너츠. 이건 집에 있길래 가져왔어요. 추석에 가족 집에 갔다가 집어온 것 같아요. 사실 평소에는 이런 섞여있는 견과류가 아니라… 구운 캐슈너트, 구운 피스타치오를 봉지로 크게 사서 하나를 쭉 먹거든요.

와. 근데 주은 님은 뭐라 해야 할까요? 그 뚝심? 너무 신기해요. 저는 이 안에 최대한 많은 배리에이션을 원하거든요. 그래야 안 질리니까. 좀 인생을 잘못 사는 거 같아.
아니요. 아니요. 사실 이렇게 섞어 먹어야 건강한데. 캐슈너트랑 피스타치오는 열량도 되게 높거든요. 그걸 계속 먹으면 배가 아픈 거예요.

맞아요. 견과류는 또 위험하니까 조심하셔야 합니다. 밸런스 너츠를 드시는 걸로 정리하시죠.
네.

그리고 이건. 와. 이건 뭔가요? 이건 미쳤네요. 이게 무슨.
이건 제 줄자(❾)예요.

너무 예쁜데요. 너무. 너무 예쁘다.
이것도 오래됐어요. 애정하는 아이템이긴 해요. 2020년쯤 선물 받은 건데… 6년 됐네요. 3m 정도까지 가는 줄자입니다. 실용성도 좋고 튼튼해요.

와. 제가 산 쓰레기 줄자들은 잡아준다고 해놓고 기분 나쁘면 그냥 줄 놔버리거든요. 이건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군요.
요즘은 또 펜코에서 예쁜 거 팔더라고요.

절대 바꾸지 마시고. 제발 이 줄자를 평생 써주세요. 다음으로… 파우치를 공개해 주시죠.
네. 이 파우치는 공개하기가 좀 민망하네요. 좋은 게 있어야 하는데… 되게 튼튼한 것들만 있어서.

일단 수박을 닮은 파우치. 이것부터 예쁜데요?
이게 예뻐요?

예쁜데요.
그래요? 이건 그냥 교보문고 핫트랙스에서 산 것 같아요. 여기 지금 있는 게… 이 다이소에서 산 5천 원짜리 쿠션 팩트(❿)인데요. 그냥 급해서 주변 다이소에서 산 건데요. 그냥 계속 잘 쓰고 있어요. 잘 맞나 봐요. 나쁘지 않아요. 그리고 제가 늘 빗(❿)을 갖고 다녀요. 주워서 많이 쓰는 사람인데.

어. 이거 뭔가 호텔 같은 데 가면 있는 어매니티 빗…
맞아요, 맞아요. 한 번 쓰고 버리기 아깝게 생겼더라고요. 실용성이 좋잖아요. 그래서 잘 쓰는 거 같아요.
그리고 이거는 얼마 전에 선물 받은 핸드크림(⓫)이네요.

엇. 르라보 핸드크림. 저는 바질 향을 썼는데, 이건 히노키군요. 이게 리치해서 겨울에 쓰기 좋아요.
리치하다는 게 뭐죠?

뭐라 해야 할까… 음. 기름지다. 굉장히 보습감이 좋죠. 근데 이게 너무 비싸가지고.
얼마예요 이거?

한 4만 원 했던 것 같은데.
되게 비싸구나.

네. 그래서 저는 이거 쓸 때 화장실 참았어요. 갔다오면 손 씻고, 그럼 또 발라야 하니까.

주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활짝 웃었다.

하지만 주은 님은 선물 받았으니. 막 쓸 수 있죠.
다행이네요. 이 립스틱은 3CE 립스틱, 옆에는 정말 매일 쓰는 유리아쥬 립밤(⓬)입니다. 이 립밤 없으면 전 안 돼요. 무향이고 파란 뚜껑이 참 좋아요. 코팅이 잘 되고, 이것도 되게 기름져요.

좋네요. 곧 겨울이라 이런 보습템 추천이 또 필요하거든요. 이건 저도 구매하겠습니다.
아니 근데. 포도 님 집에도 예쁜 게 많던데. 돌꽁이가 쓰는 음수대는 뭔가요? 되게 예쁘던데.

근데 그게 조금 비싸요. 예뻐서 비싼 게 아니고… 돌꽁이가 하루 동안 먹는 물의 양을 측정해 줘요. 먹으면 알람도 주고 닦으라는 잔소리도 하고. 그래서 데이터로 쭉 음수량을 측정할 수 있어요. 한 10만 원 했던 것 같아요.
너무 좋네요.

제가 링크를 보내 드릴게요. 아, 그리고 이 립스틱. 3CE.

립스틱 색을 보려고 뚜껑을 열던 포도. 대참사 발생. 3, 2, 1.



아니. 아니 잠깐만. 제가. 너무 죄송해요. 아니. 잘못 열었나?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너무 죄송해요. 아니.
괜찮아요.

주은은 덩그러니 놓인 립스틱을 다시 통에 넣고 결합시켰다. 마법같은 손길로 치유된 립스틱. 도파민 중독자의 손길을 참을 수 없던 립스틱이 침묵 시위를 벌인 듯하다.

아. 됐다. 요 컬러입니다. 이런 컬러가 저한테 맞더라고요.

약간. 가을 웜이실 것 같아요.
맞아요.

생일도 가을이실 것 같아요. 알아서 그런 게 아니라.
맞아요.

가을 좋아하시고.
네.

정말 가을여자 그 자체입니다. 아니 근데 제가 립스틱 너무 죄송해서. 나중에 꼭 새로 하나 선물해 드릴게요.
진짜 괜찮아요. 이제 다 나왔네요.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가방(⓭)을 소개해 주세요.
이 가방은 그냥 정말 아이패드 넣고 다니기 좋은 가방인데요. 아무 생각 없이 핫트랙스 돌아다니다가…

핫트랙스요? 되게 아페쎄 제품 같아요.
너무 좋게 봐주시네요.

되게 재질이 특이해 보이네요.
아, 그래서 샀어요. 이게 재생 펄프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좀 환경 생각을 했어요. 에코 프렌들리 제품들을 구비하려고 시도했던… 그래서 샀어요. 되게 잘 쓰는 것 같아요.

가방을 뒤집어 흔드는 주은. 이 역시 포도가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행위이며. 더욱 놀라운 것은…

아니. 어떻게 가방을 뒤집어서 흔들었는데 쓰레기 하나가 안 나오네요.
가방 정리를 매일 합니다.

가방 정리를 매일 하신다고요?
네. 집에 가면 다 빼고.

매일매일이요? 대단하다. 사이코패스이신가?

왜 이렇게 무례하지? 근데 칭찬입니다.

푸하하.

웃어주신 걸로 기억해요, 주은 님. 착각일 수도 있지만요. 감사합니다.

근데 항상 들고 다니는 것들이 있잖아요. 정리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가방이 어딘가에 그냥 놓인 것보다 정리가 돼서 걸려 있어야 마음이 조금 편하더라고요.

정말 닮고 싶습니다. 그나저나 이 가방도 참 예쁘네요. 이것은 언제 샀는지 기억이 나시나요?
이것도 잘 기억이 안 나네요. 한 5, 6년 되지 않았을까?

너무 길이 예쁘게 들었어요.
되게 실용성이 좋아요.

좋습니다. 이제 다 소개는 끝났네요. 공통 질문을 몇 가지 드리겠습니다.
근데 너무 재미있네요. 아무 생각 없이 왔는데.

사실 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데. 피곤함 이슈로 좀 참았습니다.
아 그래요?

일단 지금 가방에서 단 한 가지 물건을 꺼내서 당신을 소개해야 한다면 무슨 물건을 꺼내시겠어요?
이 가방 자체가 좀 저 같긴 한데.

맞아요. 정말 맞는 말입니다.
그래도 하나를 고르자면 이 노트. 메모하고 기록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이런 끄적거릴 게 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매트한 질감의 종이나 펜 같은 것이요.

매트한 질감의 종이를 좋아하시나요?
네. 미끌거리는 건 정말 싫어합니다.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좋습니다. 그다음은 음, 이 가방에서 가장 오래 들어 있던 물건은 뭔가요?
다 어제 정리했다가 다시 넣은 것이긴 한데… 항상 들고 다니는 것이라 한다면 유리아쥬 립밤으로 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만약 모르는 사람이 이 가방을 주웠다면 주인이 어떤 사람이라고 추측할 것 같나요?
음… 실용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같고. 정적인 사람? 메모나 책의 주제 같은 것이 있어서요.

하지만 또 반전 매력이 있죠. 스케일자와 줄자. 수학을 잘하는 사람.
너무 웃겨. 알겠어요. 그렇게 생각해 주면 또 좋고.

근데 정말. 주은 님스러운 가방 같아요. 저희가 엄청 오래 만나거나 자주 보지는 않았잖아요. 근데 제가 집 보러 갔을 때. 딱 주은 님을 처음 만났을 때 느껴진 첫인상이 지금까지 똑같아요. 이 가방까지도요. 단 한치의 오차도 없어요. 그게 너무 신기해요. 어떻게 이렇게 한결 같은 사람이 있을까.
신비함이 없네요.

아니에요. 그 일관성이야말로 가장 신비로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가방이 너무… 화려한 게 없어서 좀 걱정했어요.

저희는 화려한 가방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무시무시한 강도를 만났습니다. 이 가방에서 강도를 죽여서라도 빼앗길 수 없는 단 한 가지 물건을 뽑아 주신다면요?
딱히 없는데… 굳이 뽑자면 핸드폰?

오. 근데 곧 아이폰으로 바꾼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푸하하. 그러네요. 근데 정말 없어요. 죽일 것까지야. 그래도 제일 주기 싫은 것이라면 아이패드 아니면 핸드폰이겠죠. 사실 그런 거 같아요. 생각해 보니까 제가 갖고 다니는 것 중에 귀중품이 없다. 그래서 좀 마음 편한 가방인 거 같고.

좋아요. 그러면 허약한 강도를 만났습니다. 이 가방에서 한 가지 물건을 꺼내서 주면 귀찮지 않게. 지나갈 수 있는데요. 뭘 주시겠어요?
너츠.

아, 너츠. 동의합니다. 저도 그거 줄 거 같아요. 아니면 그… 고무줄? 아니면 1회용 인공눈물.
아 너무 웃기다.

너무 나쁜 사람 같나요?
귀엽네요. 머리핀도 얹어 줘야지.

그리고. 이 질문은 조금 무의미한데요.

이 질문을 기획한 포도. 수차례 실패를 맛보고는 잔뜩 풀이 죽은 상태였다.

이 가방과 닮은 사람을 뽑아주시면 돼요. 자신을 제외한… 유명인이나 가상 인물도 좋고요.
진짜 모르겠다. 혹시 생각나는 거 있으세요?

흠. 주은 님 인상 깊게 본 뭔가 영화나 드라마 있으세요?
최근에는 <퍼펙트 데이즈>를 잘 봤어요.

아 잘 어울려요. 하지만 거기서 찾긴 힘드네요. 제가 찾고야 말겠습니다. 지금 저는 떠오른 게 약간… <리틀 포레스트>. 근데 또 딱 맞는 건 아닌게. 그런 과장된 느낌이 없거든요. 제가 추가 서치를 해서라도 꼭 찾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생뚱맞은 질문인데요. 무인도에 갈 때 챙겨갈 노래 한 곡을 골라 주세요.
음. 저는 존 브라이언이라는 작곡가의 ‘Little Person’을 뽑겠습니다. 이 노래를 정말 좋아해요. 되게 예전에 어떤 좋았던 어떤 때나 그런 상황으로 되게 소환되는 느낌. 특정한 기억이 아니라 특정한 어떤 냄새라던가 특정한 바람 같은 게 느껴지거든요. 그게 굉장히 저를 안정시켜주고 가라앉혀줘요. 근데 살짝 고민한 게 또 무인도에서 너무 처지는 노래를 들으면… 위험하지 않을까 해서 활기찬 노래를 뽑을까 했는데. 그냥 좋아하는 노래를 뽑았습니다.



한 곡만 들어야 하기 때문에 좋은 선택인 듯합니다. 신나는 노래는 질리니까요.
가사에 또 고즈넉하고 외로운, 차분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 자신 같은 리틀 펄슨을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 있거든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너무 좋네요. 듣다 보니까 이 가방을 닮은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오. 뭔가요?

『월든』.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비스 소로.
안 읽어 봤어요.

꼭 읽어 보세요. 너무 잘 어울려요. 에세이거든요. 오두막을 짓고 4년인가 숲 속에서 산 이야기인데. 정말 주은 님 가방을 닮았고, 주은 님을 닮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꼭 읽어 볼게요.

마치 다른 세계를 엿본 듯한 1시간 30분이었습니다. 주은 님만큼 첫인상과 끝인상이 같은 정도의 좋은 느낌을 주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 같습니다. 주은 님은 ‘신비함이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했지만… 거듭 말합니다. 첫인상과 끝인상이 같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신비스럽고 놀라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주은 님께 주은 님의 것 같은, 주은 님의 것이 아닐 수 없는 것 같은 물건들을 선물해 주는 것이 아닐지요? 저도 까치처럼, 파손한 립스틱을 주은 님께 딱 어울리는 립스틱으로 갚겠습니다. 늦었지만 생일을 축하해요.

차분하고, 평온하고, 담백하고, 과한 멋을 부리지 않은 가방. 주은 님도 그런 사람이라서 제가 미친 광대처럼… 과도하게 많은 말을 지껄인 것 같습니다. 퇴근 후의 기쁨이 밀려온 탓이라 생각해 주세요. 주은 님의 퍼스널 쇼퍼 부업 시작과 그림일기 원데이 클래스를 열어 주실 그날을 기다리며…



Tags: 신포도 9호 왓츠인마이백 김주은


Updated 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