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5호 > 교환일기 >
인스타그램을 변기에 넣고서 내려 #4
👤유유민
“그때부터였습니다. 모두가 소상공인처럼 자기 자신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①
인스타그램이 모든 기능을 집어삼키자, 모든 사람의 피드가 쇼윈도이자 명함이자 매대가 되고 말았어. 이제는 유명인만이 브랜드가 되는 게 아니라, 살아서 쏘오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발을 담근 인간의 대부분이 소규모 브랜드처럼 행동해야 하는 저주받은 시대가 열린 거야. 그래. 나는 정말로 “느낌 있는 피드를 가꾸라” 따위를 조언한 일을 깊이 후회하고 있어. 이 흐름에 적응하다 못해, 급기야는 모든 말과 사진이 홍보, 기록, 자기 증명, 취향의 전시, 관계의 관리 감독, 알고리즘에 대한 대응으로, 제각기 복수의 목적/의도를 가지고 음흉하게 업로드되는 이 세태를 촉진해 버렸다고.
사람들은 이미 도망치고 있어. 그러한 세상이, 양태가 지긋지긋해진 사람들은 이미 친한친구, 수많은 부계정 트리, 셋로그, 디스코드로 숨어들고 있단 말이야.
이제야말로 탈플랫폼을 논할 때야. 그러나, 우리가 정말 플랫폼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어? 플랫폼의 앞에 d와 e를 붙이고 하이픈으로 간신히 연결할 수 있어? 인스타그램을 삭제하거나, 계정을 폐쇄하고 비활성화하는 따위의 결단은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잖아. 플랫폼으로 소통해 온 모든 자들이 여전히 플랫폼 내부에서 어울려 다니고, 그들만의 밈을 생산하고 재생산하고 전유하고 변주하며 즐거움을 누리는 동안 나는 어느 볼품없는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삶의 고독을 예찬하며 중얼거리겠지. 나로서는 지상에서의 모든 것은 끝났다고. 알잖아. 때로는 정말 루소가 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알잖아. 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 고작 ‘비활성화’ 같은 버튼을 누르고, 뾰로통하거나 침울한 얼굴로 핸드폰 액정을 꺼버리는, 그런 일을 해내는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얄궂고도 궁색해 보이는지를. 그 행위가 수차례 번복될수록 얼마나 우리는 수척해지는지…
어쨌거나 나는 탈플랫폼 하고 싶은 것이지 고립되거나 인사이드 조크를 포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거든. 즉, 플랫폼에서 나가는 것은 이 시대에 자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선언적인 분풀이에 그치는 것일지도 몰라. 나오려면 다 같이 나와야지. 그래야 플랫폼 바깥에서 친구들과 새로운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상황주의자들처럼 말이야. 그러나 그것은 쟁의이고 운동이며, 우리는 그런 것을 조직하기에는 너무 피곤한 데다, 그런 거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려면 혁명의 단초가 될만한 큰 사건이 필요할 텐데, 그 사건은 결국 누군가를 희생해야 하므로 내키지조차 않아. 메타는 각성하라. 무슨 SNS 하나 그만두기 위해 혁명에 준하는 계기가 필요할 정도로 몸집을 불렸단 말이냐.
‘친한친구’ 기능을 적극 활용하거나 수많은 부계를 만들어 나 스스로를 호크룩스화②하는 것은? 인스타그램의 개방성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인스타그램 속에 임시 칸막이를 치는 일이지. 플랫폼 내부에 진을 치고 벙커를 차리는 일. 그것이 언제든 플랫폼의 관리자에 의해 손쉽게 철거될 수 있음은 너무나 명백한 일이고. 셋로그는? 비리얼은? 비정기적으로 불쑥 솟아나는 그러한 신흥 강자들은? 안타깝게도 거기에서 도모해 본 재미있는 경험을 인스타그램에 다시 아카이빙하고 소회를 남기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 같더라고. 나 역시 그런 피드를 올렸고.
그렇다면 뉴스레터는 어떨까? 사실 고만고만한 서버, 지메일과 드라이브를 위시한 구글 생태계, 익숙하기 짝이 없는 회사들의 인프라를 경유해야만 받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역시 불완전하지. 플랫폼 밖의 탈출구는 정녕 없는 것일까? 사실 나는 예전에 뉴스레터를 조소했지. 청자를 선택하는 것은 폐쇄적이고, 그 무엇과 공명할 수 없는 안전제일주의자의 방법론일 뿐이라고. 그러나 이 시대에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어. 보다 구체적으로는 2023년에 ‘신포도의 하루추천’을 구독하며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지. 다대다가 아닌 상상 가능한 다수, 혹은 선별된 다수, 감이 잡히는 다수를 향한 소통, 그것은 아주 인간적인 소통의 방법인 것 같아. 모든 것이 피드에 디스플레이되고, 모든 말이 PR의 일부로 흡수되는 세상에서 특정인에게만 도착하기 위한, 나의 이미지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말과 사진이 더 온전하고 멋질지 몰라. 공개 게시, 나아가 알고리즘이라는 측정 불가능한 수로에 게시물을 쏟아붓는 일은 청자를 확정할 수도 없게 하고, 심지어는 청자의 종류를 확장할 수 있게 해주지만… 그것은 때때로 공포가 되기도 하거든. 나는 나를 모두에게 게시하고 싶지 않으면서, 동시에 많은 사람에게 게시하고 싶은데, 플랫폼에의 전체 공개 업로드는 그런 욕구에 적합한 방법은 아닌 것 같아.
그러고 보면 한때 나는 그런 말도 했었잖아. 공적인 필드로 들어가는 문의 개수가 너무 적고, 문지기가 너무 늙었으며, 문의 크기가 너무 좁은 것이 문제라고.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문제가 도래한 것 같아. 모두가 자기 계정이라는 동일한 규격의 몰개성한 문을 일제히 열어두고, 누굴 들일지, 무엇을 진열할지, 어떤 말투를 사용하여 손님을 환대할지, 어떤 손님에게 특별히 잘해주고 단골 관리를 시작할지 끊임없이 생각해야만 한다는 문제. 나의 사적인 사진을 잔뜩 올릴 때조차, 과자를 먹는 기분이나 친구에게 받은 아주 개인적인 선물, 이를테면 레너드 코헨의
『에브리바디 노우스』를 기록하며 큭큭댈 때조차…
굳이 해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나는 문을 열고 자신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프리랜서든 작가든 배우든, 자기 PR은 에이전시가 없는 한 자기 자신의 몫이잖아.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업장으로서의 자신을 운영하는 능력에 대한 평가가 자기 자신, 그 자체에 대한 평가를 압도하기 시작했다는 것 같아. 또한 더욱더 문제가 되는 일은, 내 말과 사진과 일상이 전부 그 문을 통과하고 업장에 진열되어야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태, 그 피로에 모두가 줄곧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겠지.
어떤 말은 그냥 특정한 사람에게만 전달되어도 좋으며, 어떤 글은 검색되지 않아도 좋으며, 어떤 사진은 내 취향을 암시하지 않아도 유의미하며, 혹은 무의미해도 좋으며, 어떤 일상은 피드에 올라오지 않아도 좋을 텐데 말이야.
내일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릴 공간차지 홍보 포스트를 고민하며,
늦은 밤 작업실에서, 유민
①
『개념 없음: 메타의 업보에 관한 17가지 비밀』, 유유민, 출간된 적 없음 (2026)
②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볼드모트가 자신의 영혼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숨겨둔 물건들. 호크룩스가 남아 있는 한 볼드모트는 완전히 죽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