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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차지 5호 > 교환일기 >
인스타그램을 변기에 넣고서 내려 #3 👤신포도
인스타그램을 변기에 넣고서 내려 #3 👤신포도
네가 쓴 이야기를 읽다가 불현듯 전생 같던 기억이 떠올랐는데, 맞아… 원래 인스타그램은 1:1, 정방형 사진만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이었어. 그 철학보다는 아집에 가까워 보이는 불편함 때문에 인스타그램은 힙스터 플랫폼이었지. 라이브 뷰를 피사체에 맞추는 게 아니라, 라이브 뷰의 프레임을 생각하며 피사체를 그 정방형 비율 안에 어떻게든 욱여넣으려 노력하게 된 것.
사실 인스타그램에서 우리가 하게 된 최초의 가장, 혹은 위장은
인기 많다고 뻐기기
가슴 큰 여자 찾기 위해 (…생략…)
이미지 관리
가 아니라, 사실 고객에게 납작 기어야 했던 플랫폼 따위가 정해둔 규칙에 납작 기기 시작한 것일지도 몰라. 아냐 아냐… 사실 아주 부정적으로 표현하게 됐는데, 사실 그들의 규칙에 납작 엎드려 기어갈 때야 다다를 수 있는 마조히즘적 즐거움이 있잖아. 타율성의 쾌락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라카미 류 선생이 말하듯, 사실 SM 플레이를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이 마조히스트의 즐거움①이자 특권인 것이고. 표현하자면, 당시의 인스타그램은 아주 츤데레 같은 거지…
“참, 우리는 정방형밖에 안 돼. 뭐… 딱히 네가 그게 싫다고 떠나거나 하는 게 슬프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정방형이라는 기이한 집착을 가진 그때까지만 해도 인스타그램에는 수줍음, 고집, 초조함 같은 게 묻어났어. 지금의 인스타그램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되고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되고자 그런 인간적인 감정들을 다 가져다 버린 지 오래지. 메타가 인스타그램을 집어삼킨 뒤에는 셀 수도 없는 기능들이 생겨났어.
페이스북 연동, 연락처로 사람 찾기, 비공개 계정, 친한친구, 인스타그램 스토리, 릴스, 온갖 비율의 사진을 올릴 수 있게 됨, 사진과 영상을 20개까지나 올릴 수 있게 됨, 링크트리와 같은 인스타그램을 위한 부가용 서비스가 생기며 곁가지 기능들도 사용 가능해짐, 미칠듯한 알고리즘의 집착, 이외의 내가 기억하거나 사용하지 못하는 수많은 기능까지.
그 기능들에 대한 한줄평을 해볼까? 왜냐하면 나 지금 대놓고 인스타그램에 대한 불평불만 늘어놓을 수 있는 게 너무 신나서…
페이스북 연동: 사실상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플랫폼을 어떻게든 살리겠답시고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올릴 때마다 “Hey! 페이스북에도 올리실래요?!”라고 슬픈 눈으로 애써 웃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유쾌하게 묻는 게 슬프면서도 짜증남.
연락처로 사람 찾기: 내가 알아서 할게, 라고 외치고 싶음. 그리고 내 연락처에 누가 있는 줄 알고 이런 발칙한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음.
비공개 계정: 대표적인 정신병 유발 및 정신병 노출 장치로서 기능하고 있음. 갑작스레 삶에 위기가 닥치면 공개와 비공개 계정 사이를 오가는 행위가 대표적.
친한친구: 사실상 ‘친해서 하는 경우’보다는 ‘보면 안 되는 사람을 막기 위한 용도’로 쓰임. 친한친구 기능이 아니라 꺼져친구제외 기능이라고 이름을 바꿔야 함. @meta
인스타그램 스토리: 사실 아직도 뭔 맥락에서 나온 기능인지 잘 모르겠음. 박음질– 스토리를 개많이 올려 촘촘하게 나눠진 바를 형상화한 말–하면 내 거 넘기는 데도 손가락 아픔. 내 스토리를 제일 많이 보는, 대표적인 나르시즘 충전용 기능. 또한 나를 지켜보는 수많은 알계정들의 존재를 알 수 있기에 한층 더 관음 정병을 강화해 줌.
릴스: 내 인생을 구원하러 온 내 인생의 적이자 원죄요, 내 삶을 10초의 즐거움으로 갉아먹는 도파민 빈대 같은 존재.
온갖 비율의 사진을 올릴 수 있게 됨: 이와 더불어 근래의 인스타그램이 피드 화면비 정병을 앓게 되면서 피드 노출 화면비를 바꾸기 시작함. 인스타그램 피드를 포트폴리오, 명함, 메뉴판, 뉴스레터 등등의 목적으로 쓰는 기업/조직의 디자이너들은 매일매일 울며 ‘오늘의 피드 화면비’를 확인하고, 그에 맞춰 텍스트와 사진을 미세 이동하는 가짜 노동을 수행하고 있음.
사진, 동영상을 20개까지 올릴 수 있게 됨: 솔직히 이건 좋음. 근데 너무 내 삶 노출하게 됨. 근데 나는 노출증이라 괜찮음.
링크트리와 같은 인스타그램용 부가 서비스들이 생겨나게 됨: 인스타그램이 포함시킬 듯하며 실은 배제시킨 수많은 기능을 충족시키는 부가 서비스들이 그 바깥에서 버섯처럼 피어난다는 것이 꽤나 크리피함.
미칠듯한 알고리즘의 집착: 뭐 광고하는 제품 하나 실수로 잘못 누르기라도 하면, 해당 브랜드, 해당 카테고리, 해당 제품에 관한 모든 정보를 나한테 가져다 바치기 때문에 그 순간 손가락을 잘못 놀린 나 자신을 원망하게 됨.
이외의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사용하지도 못하는 수많은 기능: 몰라서 할 말이 없음.
알거나 알지 못하는 기능들의 총집합으로 인해 인스타그램은 이제 ‘개인 일상을 정방형 사진으로 올리는 츤데레 플랫폼’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는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 개인의 포트폴리오이자 기업의 전광판이자 미래 먹거리를 걸고 싸우는 인플루언서의 앞마당이 되었어. 그것들이 네가 표현한 “사진첩이 아니고 포트폴리오, 명함, 카카오톡, 블로그, 웨딩 박람회, 복덕방, 팬카페, 고객센터, 동창회, 고객센터, 서점, 큐레이터, 메뉴판, 부고장, 청첩장, 플리마켓, 뉴스레터, 정신병 유발 장치 등등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겠지. 그러니 각종 말실수를 너무 괴로워하지는 말아… 우리가 메타의 짐까지 이고 지지는 말자고.
사실 초기의 인스타그램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해시태그라는 기능을 통과했던 것 기억해? 이제는 캡션 본문에 해시태그를 다는 것이 ‘쿨하지 않은 룩’이 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포스팅에 이모지 댓글을 달고, 그 댓글의 대댓글에 해시태그를 숨겨 두고 있지만. 예전에는 #운동 #친구 #영화 같은 해시태그를 타고 들어가면 해당 해시태그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했던 운동이나, 그들이 친구를 만나는 순간, 그들이 본 영화들을 알 수 있었다고. 나는 가끔 그런 해시태그를 타고 온갖 모르는 사람들의 정방형 사진을 염탐하기를 즐겼는데…
이제는 오히려 인스타그램이 ‘해시태그’라는 경로를 타지 않고도 너무 많은 이들, 너무 많은 정보들, 너무 많은 콘텐츠를 마주칠 수 있게 만들어졌지. 모든 걸 할 수 없기에 드러나는 특정 플랫폼만의 매력이었던 것들이 점차 변두리로 숨어 들어가고 있어. 대신 우리가 지켜봐야 하는 것은 인스타그램의 게걸스러운 식성, 그리고 그 사이에서도 피어나는 은근한 편식 기운을 살펴야 하지. 인스타그램이 취사선택하며 흡수하는 카카오톡스러움, 트위터스러움, 유튜브스러움, 틱톡스러움 등등. 점차 시꺼먼 베이글이 되어가는 인스타그램을 지켜보는 나의 슬픔이란… 아아, 그 슬픔이란…
단순히 정방형의 사진으로 일상을 기록하는 인스타그램은 죽어버린 뒤, 지금 태어난 베이글 인스타그램은, 내가 위에서 아주 장대하게 이야기했던 것들에서 반복되듯, 아주 거대한 정신병 유발 장치가 되어가고 있으며, 그뿐 아니라 나의 유발된 정신병을 영원히 되풀이하게 만들고, 되풀이되고 되풀이된 정신병을 정신병적인 형태로 노출하도록 만들고 있어. 솔직히 나는 베이글 인스타그램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의 주의력 결핍 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정신병 유발, 정신병 되풀이, 정신병적 형태의 정신병 노출의 가장 첨단에 서 있는 기능이라 한다면, 역시 릴스가 아닐까? ‘비행기’를 눌러 친우에게 전송하는 TMI라는 네 표현을 읽고 나서 생각한 건데, 내가 사실 릴스를 아주 다양한 층위에서 분류하고 있더라고.
아마 너는 여러번 목도했기에 알고 있겠지만, 나는 릴스 집착 중독자야. 지금껏 릴스를 발굴하는 데 얼마의 시간을 들였는지는 가늠조차 할 수 없지만, 내 플랫폼 생활 중 많은 즐거움을 인스타그램의 릴스가 차지하고 있지. 그 즐거움만큼의 현타도 함께 느껴지지만, 현타가 너무 심해서 현타를 느끼는 것자체가 릴스의 자연적 속성인 것 같기도 해. 릴스는 전 세계의 이상한 사람들, 전 세계의 괴이한 생각들이 한 곳에 뭉쳐져서 서로의 괴이함과 이상함을 뽐내는 거대한 무대 같거든…
나는 릴스에 꽤나 엄격한 기준이 있어. 좋아하는 릴스를 선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의 선정 결과를 어디에, 어떻게 발표할 것인지의 문제에 관해서도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지. 나의 릴스 분류법은 크게 3가지야.
(1) ‘좋아요’를 누른다. 근래의 릴스 탭은 친구가 ‘좋아요’를 누른 릴스를 구경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철저한 검열이 들어간다. ‘이 릴스는 쿨한가?’ ‘지나치게 음지인 것은 아닌가?’ ‘(나의 기준 하에서)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비뚤어진 내용, 혹은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의 요즘의 생각과 맞닿아 있는가?’ 등.
(2) ‘비행기’를 누른다. ‘좋아요’를 누른 릴스 중 일부, 혹은 위에 언급한 여러 조건 중 몇 가지가 과락되어 아쉽게 ‘좋아요’ 목록에서는 탈락했으나 웃기거나 흥미로워 친구에게 공유하고 싶은 릴스들. 친밀한 친구와의 맥락이 개입하는 경우가 많으며 무의미하게 주고받는 것으로 쓸모를 다한다.
(3) ‘북마크’를 누른다. 이 릴스야말로 심연 중의 심연. 누구에게도, 아무에게도 들킬 수 없는, 감히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릴스들이 모여 있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물었다. 자네, 무덤까지 지키고 싶은 것이 있나? 나는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수백 번 외쳤다. 하나는 대화 생성형 AI와의 대화들이요, 또 하나는 북마크된 릴스 모음집이라네.”
사실 인스타그램에 릴스라는 것이 없었다면. 아주 깔끔하게 릴스 같은 숏폼 영상을 틱톡의 몫으로 남겨두었다면. 혹은 친구와의 메시지 기능이 없었다면. 친구에게 릴스를 보낼 수 없었다면. 적어도 릴스를 친구에게 공유하는 것이 불편했다면. 내가 좋아요를 누른 릴스의 목록을 다른 이에게 공개하지 않았다면. 북마크가 없었다면. 그래… 그랬다면 내 인생의 가늠조차 되지 않는 시간이 도파민 빈대에게 씹어 삼켜지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그 많던 박중훈들이 모두 잡아먹힌 뒤에, 나는 심지어 나 따위가 제니가 된 것 같은 환상통에 시달리며 내가 보는 릴스를 어떻게 전시할지 따위를 고민하고 있어…
초기의 플랫폼에서는 현직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이전의 사람들이, 짐캐리나 자비에돌란, 박중훈과 노회찬, 김주하, 박용만, 김진표가 직접 “무대장치를 철거하고, 기꺼이 객석을 차지하고, 틀림없이 해방감을 맛보”던 세계였는데. 지금의 인스타그램에는 신포도 따위가 코첼라 무대에 오르고 싶어 자기 검열을 하고, 나의 릴스 취향을 3가지 갈래로 쪼개고 있지. 그러니… 그러니 현타가 안 올 리가 있겠냐고. 근데 또 즐겁단 말이야… 진짜 내 마음은 뭘까?
작은 노트북 화면에 인스타그램 피드를 켜놓고는, 포도가
① “분대장이 소년의 머리카락을 잡고 일으켜 세워, 소년은, 싫엇! 하고 외쳐, 싫엇 하고 외쳐, 싫엇! 그 순간에 소년과 나는 위치가 바뀌어, 게임 오버의 순간에 나는 소년이 되는 거야, 알겠지? 싫다고 외칠 때까지 궁지에 몰아넣는 방식이 SM이란 거야, 그건 사소한 놀이건 동유럽의 역사건 마찬가지야, 싫다고 외치며 일어서는 순간 게임은 끝나, 넌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어, 대단한 여자라고 게이코가 감동하더군, 너는 늘 완벽했어, 결코 싫어라고 외치지 않아,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는 거야.” – 『타나토스』,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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