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3호 > 끝말잇기 > 
인력개발실 장씨의 업무일지
👤유유민

[2026. 03. 09.]
장씨는 자신의 이름을 몰랐던 대신에 파리한 백열등 아래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는 엑셀의 귀재였다. 또한 아래위로 검은 옷을 차려입곤 했는데 그 검정은 대개 채도도 온도도 없고, 검푸르고 검붉고를 따질 것도 없는 완전한 #000000의 헥스 코드를 띠고 있었다.

08:30, 출근
아침에 그는 보통 가장 먼저 출근하는 직원이었으며 텅 빈 탕비실에서 커피 같은 사약을 내려 마시고 여과된 찌꺼기를 꼼꼼하게도 털어 말렸다. 그가 지나간 싱크대에는 물 자국 하나 남지 않아서 때때로 동료들은 그의 섬세함에 경탄하곤 했다. 그는 공무원이자 저승차사였으며 인외의 존재였다. 생전과 사후를 통틀어 도합 무려 56년 동안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프로그램을 썼다.

09:00, 공식 일과 시작
그는 탁월한 사무 역량 덕에 새로 들어오는 저승차사의 OJT를 자주 도맡고는 했다. 신참들은 할머니의 얼굴이거나 아저씨 혹은 여드름이 수북하게 난 중학생일 때도 있었고 텅 빈 눈빛의 성인 여자인 적도 많았다. 어쨌거나 연령에 관계 없이 대부분의 신참은 장씨만큼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했기에 온보딩의 내용에 큰 차이는 없었다.

10:00, 신입사원 OJT
이날 신입으로 입회한 차사는 동그란 얼굴에 온몸이 다부진 스무 살 남짓의 여학생이었다. 사망 즈음에 학생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겉보기에는 그랬다. 눈은 서슬이 퍼렜다. 염을 하고 곧장 올라왔는지 온통 누렇고 흰 삼베옷을 입고 있었다.

“이름을 말해야 하나요?”

장씨는 여학생의 물음에 잠시 침묵했다.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을 복창하라는 것이 조금 부당하게 느껴졌다.

“몇 년생이야?”
“99년생이요.”

윈도우즈 98이 나온 때에도 태어나지 않았던 자다.

“왜 오게 됐니?”

왜 죽었냐고 묻지 않는 것은 장씨의 배려였다. 대개 이런 나이의 죽음은 갑작스러운 일이 많기 때문에, 계속해서 죽음의 이미지를 환기시키며 겁에 질리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

“잘 모르겠어요.”

장씨는 고개를 조금 들어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기본적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점점 더 구체적이고 불필요한 것을 물어야 한다. 장씨는 그런 일을 사실은 바라 마지않았지만, 그런 일을 바라는 이로 보이는 것은 경계했다.

“그러면 너의 직업을 물어보는 수밖엔 없어.”
“......”
“학생?”
“무당이요.”

장씨는 놀라지 않은 척 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눈을 크게 뜨시네요.”
“놀랐어.”
“그럴 수도 있겠어요.”

여학생, 아니 무당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여 보았다.

“귀신의 소행은 아닌게야?”
“아니에요. 업무 외 시간에 일을 당해 오게 되었어요.”

무당은 잠깐의 침묵 끝에 덧붙였다.

“아마도요.”
“그럼 혹시 친분 있는 차사가 있는가?”
“의사차사 나리요.”
“아무래도 그럴 테지.”

이번에는 장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차사는 목을 매어 죽은 망자를 담당하는 저승사자였으며, 물론 그 역시도 공무원이었다. 현대라 부를 수 있는 세대에 즈음하여 가장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이였다.

“따라와. 우선 저승을 소개해 줄 테니…”

장씨가 몸을 일으켰다.

“이거, 차사님께 주라고 하던데.”

엉거주춤한 자세의 장씨에게 무당이 손에 쥐고 있던 흰 소지 두 장을 건넸다. 소지에는 ‘김창주, 인력개발실로 배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음 소지에는 ‘장씨에게 전해줄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장씨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것 참 불합리한 일이네.”

무당, 아니 창주가 까닭을 되묻지 않았기에 장씨는 잠자코 소지를 품 안에 넣은 채 앞장섰다. 창주가 조용히 뒤를 따랐다.

10:30, 부서 배정
장씨가 이끈 곳은 본관 3층의 인력개발실이었다. 복도에 파티션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도열해 있고, 공기 중에는 미세먼지와 오래된 복도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떠다녔다. 장씨는 구석 자리에 앉아 모니터 전원을 켰다. 부팅 음이 짧게 들렸다. 그는 자리에 앉은 채로 창주가 건네준 흰 소지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그저 규격에 맞게 인쇄된 갱지 한 장이었다. 상단에는 굵은 돋움체로 ‘업무협조전’이라고 적혀 있었다.

수신: 인력개발실 장씨
발신: 자살예방관리TF
내용: 최근 이승의 급격한 사망자 증가로 본 TF팀의 초과근무 시간이 저승 법정 한도를 초과함. 이에 망자의 사망 원인 중 조금이라도 타살 의심 사례로 분류될 여지가 있는 건에 한하여 귀하에게 실무 인계를 요청함. 반려 시 노조에 제소하겠음.


요컨대, 과로사 직전의 자살예방관리TF가 자신의 업무량을 덜어내기 위해, 엑셀만 치고 있는 장씨에게 하청을 떠넘기겠다는 통보였다. 장씨는 미간을 찌푸리며 새하얀 검지로 책상 위를 두드렸다.

“아주 맡겨놓았군.”

그리고는 파티션 너머에 우두커니 서 있던 창주를 보며,

“결재선을 무시하고 이런 식으로 문서를 보내는 건 규정 위반인데.”

하고 불평하는 것이었다.

“제가 다시 돌려드릴까요?”

장씨는 모니터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런 삼베옷을 입은 스물 남짓의 무당. 전생의 직업이 무엇이었든, 지금 창주는 근로계약서조차 쓰지 않은 무급 인턴에 불과했다.

“됐어. 까짓거, 해 주지. 그 양반, 과로로 탈모가 왔다더군.”

장씨는 서류를 캐비닛 맨 아래 칸에 대충 쑤셔 넣었다. 증거에 대한 확실한 인멸이야말로 관료 사회의 미덕이지 않은가.

11:30, 중식 시간
구내식당 메뉴는 제사상에 올렸다 물린 백설기와 밍밍한 나물무침, 뚜껑을 저며낸 사과나 배 따위의 과일이었다. 장씨는 식판의 각도를 책상 모서리와 평행하도록 맞춘 뒤, 젓가락으로 단단히 엉킨 고사리들을 분리해 내며 식사를 시작했다.

창주는 맞은편에 앉아 밥알을 깨작거리고 있었다. 삼베옷 소매가 스테인리스 식판에 닿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무당이었다고 했지.”
“네.”
“그럼, 굿판에서 수금도 해봤겠군.”
“현금이나 계좌이체로요. 세금 계산서는 안 끊어줬지만요.”

창주의 대답에 장씨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엑셀로 수입 지출 장부는 쓸 줄 아나?”
“간단한 함수 정도는 할 줄 알아요. VLOOKUP 같은 건 못하고요.”
“훌륭해. 우리 부서의 핵심 역량은 그런 고차원적 함수가 아니라, 퇴근 시간 전까지 어떻게든 빈 셀에 뭔가를 오류 없이 채워 넣을 수 있는 지구력이니까. 오후에는 TF팀에서 요청한 업무의 대조 작업을 끝내고, 내일부터는 과거 명부를 데이터베이스로 이관하는 단순 타이핑 작업을 할 거다.”

창주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저기, 선배님? 아니. 차사님?”
“말해.”
“저, 꽤 용한 무당이었습니다. 당장 내년 8월까지 예약이 꽉 차 있었다고요. 기왕 죽어서 차사가 되었으니 당연지사 악귀를 때려잡거나 원귀의 한을 풀어주는, 그런 일을 하게 될 줄 알았는데요.”
“그래서?”
“엑셀이나 치려고 죽은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장씨가 도라지나물을 입에 넣고 느릿느릿 씹었다. 창주의 눈에 그것은 흡사 소의 저작 활동처럼 보였다.

“죽음에는 아무런 차등이 없어. 네가 무당이었든 장군이었든, 여기 온 이상 그냥 배정받은 부서의 부품이 될 뿐이야.”
“명색이 저승차사인데, 각자 타고난 소명 같은 게 있지 않습니까?”
“소명 같은 소리 하네.”

장씨가 냅킨으로 입가를 반듯하게 닦아냈다.

“나를 봐. 이름이 뭔지, 생전에 뭘 하던 인간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아. 명부에 데이터가 완전히 누락되어 있어서, 내가 쓰러지기 전에 무슨 직무를 맡았던 차사인지조차 알 길이 없지. 그래서 인력개발실에서 56년째 네 말처럼 잡무나 보고 있는 거고.”

장씨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비애나 분노나 빈정거림도 섞여 있지 않았다.

“기억이 없으면 오히려 편해. 고민할 것이 없으니, 퇴근 시간 전까지 눈앞의 자료에만 집중하면 그만이거든.”
“죄송합니다.”
“그런 소릴 듣자고 한 얘기가 아냐.”

장씨는 배식받은 것들이 거의 그대로 놓여 있는 창주의 식판을 바라보았다.

“어릴 때 엄마한테 그런 말 들어봤어? 죽어서 지옥에 가면 그동안 남긴 밥들을 다 비벼 먹어야 한다고. 여기가 어디인지 알지?”

아차차, 창주는 서둘러 남은 반찬들을 입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13:00, 타 부서 이관 서류 검토 및 분류
오후 일과가 시작되었다. 장씨는 오전 10시 30분에 캐비닛 맨 아래 칸에 쑤셔 넣었던 의사차사의 업무협조전과 서류철 뭉텅이를 다시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자살예방관리TF팀에서 떠넘긴 타살 의심 건들이다. 지금부터 전산망에 입력된 1차 사망 사유와 현장 보고서의 텍스트가 일치하는지 대조해.”

장씨가 서류 더미의 절반을 떼어 창주의 자리로 넘겼다. 창주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서류를 대조하기 시작했다. 일각 정도 흘렀을까, 창주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입을 뗐다.

“이 망자요.”
“왜, 오타라도 있나?”
“사인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인한 자살’이라고 되어 있는데, 첨부된 현장 사진을 보면 목 뒤쪽에 주삿바늘 자국으로 의심되는 것이 보입니다. 사진만 봐도 억울하게 죽은 원귀의 탁한 기운이 느껴지는데요. 이건 백 퍼센트, 누군가 고의로 약물을 투여해 타살한 게 분명해요.”

창주가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당장이라도 이승으로 뛰쳐나가 범인의 목이라도 조를 기세였다. 장씨는 마우스를 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모니터만 뚫어져라 응시하며 대답했다.

“기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앉아.”
“수사해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수사관이 아니라 행정직이야. 그건 그냥 현장 수거 직원이 드롭다운 메뉴에서 약물 주입 대신 약물 복용을 잘못 클릭한 멍청한 입력 오류일 뿐이지.”

장씨가 말을 이었다.

“우측 상단 비고란에 써. 사인 불일치, 사법심사본부 형사교정팀 이관 요망. 빨간색 펜으로 체크 표시 해놓고. 그게 우리가 할 일이야.”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빨간 펜으로 그림이나 그리라구요?”
“그래. 오분류를 바로잡아서 올바른 부서로 토스하는 게 네 일이야. 범인을 잡고 한을 풀어주는 건 저기 5층에서 할 일이지, 기억상실증 걸린 잡무 담당자나 인턴이 나설 일이 아니거든. 규정 위반으로 시말서 쓰고 싶지 않으면 잔말 말고 대조나 계속해.”

16:00, 전산망 데이터 기입
백열등 아래서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 타자 치는 소리, 서류 넘기는 소리, 사인펜과 종이가 마찰하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창주는 입을 꾹 다문 채 서류의 바코드 번호를 전산망에 입력하고 분류표를 갱신하는 단순노동을 반복했다. 신가물의 영적 기운은 이 기운 없는 관료주의 성벽 앞에서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씨는 엑셀 창 여러 개를 띄워놓고 능숙하게 Alt+Tab을 누르며 셀을 채워 나갔다. 타살, 자살, 타살, 자살, 삶과 죽음의 비극적인 대소사가 장씨의 손끝에서 두 글자짜리 카테고리로 납작하게 분류되어 갔다.

자신의 진짜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장씨에게 망자들의 사정은 급히 처리해야 할 데이터 값에 불과했다. 이 단순노동에 가까운 업무는 장씨에게 안성맞춤의 도피처였다. 서류를 분류하고, 타이핑하고, 대조하고, 파쇄기에 밀어 넣는 동안만큼은 그 지긋지긋한 질문의 목록에서 유보될 수 있었으니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였는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는가?

Tags: 유유민 3호 끝말잇기 소설


Updated 26.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