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9호 > 왓츠인마이백 > 
이 작은 가방에 어떻게 30호 캔버스가 들어갔을까?
👤유유민

일시: 9월 26일 오후 6시 20분
장소: 향동 카페 웨인

인터뷰어: 유유민
인터뷰이: 김유리 (월간차지 2호 ‘직업탐구’ 코너에서 퇴사 후 구직 중이었던 바로 그 패션 마케터. 반 년전 이직하여 건실한 중견 의류기업의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❶ 르페이스 레더 백
❷ 휴대용 빗
❸ 귀여운 집게핀 
❹ 차키와 키티 키링
❺ 샤넬 카드지갑
❻ 새 명함
❼ 별모양 스팟패치
❽ 스컬프터 카드지갑
❾ 화장품들
❿ C타입 유선 이어폰
⓫ 치실 키링
⓬ 민티아 레몬맛
⓭ 르라보 떼누아
⓮ 디지털 카메라와 애니포트
⓯ 키티 헤어핀
⓰ 고무줄과 실핀
⓱ 반지들: 크롬하츠, 쇼파드, 베르트
⓲ 아이폰과 케이스

이 가방(❶)은 언제 어디서 구매하셨나요?
올해 6월에 샀고, 르페이스라는 브랜드 제품입니다. 29cm에서 구매했고요. 저렴한 가방입니다. 요즘 데일리백으로 간편하게 매고 다니고 있어요.

스트랩에도 찡이 박혀 있군요.
맞습니다. 스트랩이 넓어서 어깨가 편해요.

근데 뭐, 이 조그만 가방에 꽉 채운다 한들 어깨가 아플 정도로 들어가겠습니까?
그렇긴 하죠. 원래는 제가 이걸 작년 겨울에 사고 싶었어요. 스웨이드 버전이었거든요. 근데 계절이 좀 애매해서 그냥 안 사고 넘어갔다가, 이 레더 버전이 나왔길래 샀습니다.

이제 물건 하나씩 꺼내서 소개해주시면 됩니다.
그럼 일단 휴대용 빗(❷)부터 하겠습니다. 탱글엔젤 제품입니다.

왜 이런 거대한 빗을 들고 다니나요?
거대한가요?

가방 크기에 비해서 상당히 큰 부피를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머릿결이 아주 안 좋아서, 잘 엉키고 숱도 많고 정리가 안되면 굉장히 부해 보여요. 그래서 이런 좋은 빗으로 빗어줘야 좀 차분해집니다. 머리가 좀 지저분해졌다 싶을 때 한 번씩 빗어주고요.

케이스가 있으니 깔끔하겠네요.
네. 근데 이게 좀 오래돼서 케이스가 헐거워져가지고 가방 안에서 자꾸 빠져요.

그럼 아침에 머릿결을 위해서 추가로 바르는 제품 같은 게 있나요?
헤어 에센스를 머리 말리기 전에 항상 바릅니다. 두 가지를 쓰는데, 하나는 일본에서 사온 거예요. 돈키호테에서 되게 유명한 에센스가 있거든요. 우루리스라고요. 보라색 병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올리브영에서 할인할 때 산 건데, 뿌리는 트리트먼트예요. 사용이 간편할 것 같아서 샀는데 별로예요. 쓸데없이 펄이 들어 있어서 그걸 바르고 나면 손에 반짝이가 잔뜩 묻는 게 최대 단점입니다. 우루리스가 훨씬 좋고요. 지금 빨리 써서 없애자는 마음으로 그냥 막 쓰고 있어요.

저도 뿌리는 트리트먼트들은 영 별로더라고요. 다음 아이템도 소개해 주시죠.
집게핀(❸)입니다. 귀엽죠? 이건 뭐 머리 묶을 때도 쓰고, 옷을 집을 때도 써요.

집게핀으로 옷을 집어요?
네. 이렇게 살짝.

요즘 유행하는 느낌인가요?
그렇습니다.



전혀 몰랐어요.
기장이 애매한 상의들을 싹 집어줍니다. 그럼 핀터레스트 느낌이 나죠.

역시 직업이 직업인지라 개꿀팁이 나오네.
다음은 차키(❹)고요. 키링이 두 개 달려 있습니다.

둘 다 키티네요.
네. 솔직히 하나는 어디에서 샀는지 잘 기억이 안 나고요. 이건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소품샵에서 산 건데, 제가 알기로는 일본 맥도날드 해피밀 한정판이에요. 만져보면 맨질맨질한 느낌이에요. 귀엽죠?

키티를 좋아하시나 봐요.
키티 좋아합니다.

얼마나 키티를 좋아하는 건지 감도 안 온다.


지갑(❺)도 설명해 주실래요?
네, 이건 그냥 카드랑 신분증 넣어 다니는 지갑이고 샤넬 겁니다. 이 지갑은 남편이 예전에 남친이었던 시절에 사줬습니다. 명함이랑 이렇게 들고 다닙니다.

새 명함(❻)이군요. 하나 주시죠.
여기요.

김유리의 새 명함은 접어서 세울 수 있는 신비로운 디자인이었다. 나는 명함에 돈을 팍팍 쓰는 회사들을 매우 좋아한다.


그리고 이건 별모양 여드름 패치(❼)예요. 전 회사에도 이걸 하고 다녀요. 부장님이 한 번 “뭐야, 얼굴에 그거?” 했는데, “유행하는 패치예요. 그것도 모르세요?” 라고 했어요.

용감하고 멋진 직원이다.

그리고 여기에 카드지갑이 하나 더(❽) 있습니다. 스컬프터라는 브랜드 제품인데요. 아파트 출입 키를 넣어 다녀요. 그리고 이것만 갖고 외출할 때가 가끔 있기 때문에 혹시 몰라서 여분 신용카드 하나도 같이 넣어놨습니다.

이건 화장품을 넣는 파우치군요.
맞아요. 필요한 것들(❾)만 조금 넣어서 다닙니다. 카멕스 립밤은 제 입술이 너무 건조해서 꼭 갖고 다니고요. 이건 하트퍼센트 립라이너. 그리고 이 컬러그램 틴트는 유민 씨 거 보고 따라 산 거예요. 컬러는 다르지만요. 제일 자주 쓰는 제품은 힌스 글로우 젤 틴트 베어 컬러입니다. 두 통째 쓰고 있어요. 좀 글로우한 제형이고요. 색깔이 좀 바뀐 것 같아요. 원래 이정도로 핑크가 아니었는데.

그리고 이건 아이라이너인가요?
네. 클리오 킬브라운 아이라이너입니다. 아이라이너로도 쓰긴 하지만 사실 점을 찍을 때 주로 써요. 화장하고 나면 원래 있던 점이 연해지잖아요. 그 위에 이걸 콕 찍어서 진하게 만들어 줘요.

점을 덧바르는 이유는 뭐죠?
그냥 덜 심심해 보여서? 얼굴의 여백이 좀 더 줄어드는 느낌이라서? 아, 모르겠어요. 그냥 없는 게 심심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좋아요. 다음 아이템을 소개해 주세요.
이건 그냥 쿠팡에서 산 C타입 유선 이어폰(❿)인데 컬러가 귀여워서 샀습니다. 음질도 괜찮은 것 같아요. 에어팟을 잃어버려서 어쩔 수 없이 샀지만 만족합니다. 헤드폰도 있긴 하지만,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헤드폰을 쓸 수 없잖아요. 그리고 이건 치실 키링(⓫). 귀여워서 샀고요.

키링이라면서 왜 아무 데도 안 달려있죠?
아, 왜냐하면 뺐다 끼웠다 하는 게 너무 귀찮기 때문이죠. 어딘가에 달아 놓으면 가방을 바꿔 들 때마다 계속 옮겨 달아야 하니까요. 그리고 이건 민티아(⓬)입니다. 일본에서만 파는 맛이고요. 우루리스 살 때 돈키호테에서 같이 샀어요.

어, 못보던 맛인 것 같아요. 하나 먹어보겠습니다.
네네. 두 개 드세요.

맛있었다.

다음은 르라보의 떼누아 향수(⓭)입니다. 선물 받은 건데, 7ml 용량이에요. 작아서 가지고 다니기 좋더라고요.

평소에 제일 많이 쓰는 향수는 뭔가요?
딥티크 롬브르단로입니다.

그거 진짜 오래 쓰시네요.
처음에는 오드뚜왈렛을 쓰다가 지금은 오드퍼퓸을 쓰고 있어요. 근데 사실 저한테는 거의 비슷하게 느껴져요. 물론 지속력이 좀 다르긴 하겠죠.

롬브르단로는 습한 날에 뿌리면 오래 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비오는 날 뿌리는 향수로 유명한가봐요.

이 파우치에는 뭐가 들어있나요? 여기에도 키티가 달려 있네요.

아, 이건 무인양품에서 산 파우치인데요. 여기에는 디지털 카메라(⓮)를 넣어 다닙니다. 캐논 익서스 75 제품이고요. 인플루언서 디카로 유명한 빈티지 카메라예요. 회사에서 화보 촬영할 때 이걸로 현장 스케치를 하곤 합니다.

아, 일 때문에 가지고 다니는 거군요.
일로도 쓰고, 개인적으로도 써요. 최근에는 룩북 촬영할 때 콘텐츠를 이걸로 좀 찍었고, 여행가서 찍은 것들도 있네요. 그리고 이 애니포트를 써서 핸드폰으로 바로 옮길 수 있어요.

우와. 아이폰으로도 되나요?
그럼요. 아이폰으로도 바로 옮길 수 있고, 다른 핸드폰이나 컴퓨터로도 돼요. 여기 이렇게 꽂아요. 그러고 나서 카메라에 들어가면 바로 임포트 버튼이 뜨거든요. 누르면 바로 촤르륵 사진이 옵니다. 아주 많은 사진들이 들어 있어서 가져오는 데 시간은 좀 걸려요.


정말 유용한 제품이네요.
쿠팡에서 샀습니다. 아, 그리고 이건 키티 헤어핀(⓯)입니다. 왜 있는지는 모르겠는데요. 아무튼 있네요. 아마도 화장할 때 앞머리에 꽂아 놨다가 급하게 나오느라 딸려온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고무줄 머리끈과 실핀들(⓰)이 있고요.

다음은 반지들(⓱)을 소개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일단 이건 크롬하츠 반지예요. 제일 오래된 거고요. 2022년에 남편이랑 사귈 때 맞춘 커플링이에요. 그리고 이건 결혼반지. 쇼파드 겁니다.

생각보다 유리 씨 치고 무난한 결혼반지를 골랐다고 생각했어요.
맞아요. 저 치고 진짜 무난한 거였죠. 사실 저는 무조건 샤넬이었거든요. 근데 결혼반지니까 왠지 다이아가 있어야 될 것 같긴 한 거예요. 그리고 이게 당시에 일본에서 사면 너무 싸게 살 수가 있었어요. 다이아가 박혀 있는데도 100만원 대였단 말이죠. 샤넬은 나중에라도 사고 싶으면 살 수 있으니까 결혼반지로 꼭 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걸로 했어요.

이 반지도 제품인가요? 아니면 빈티지?
아, 제품이에요. 면세점에서 샀던 것 같은데, 베르트라는 브랜드 겁니다.

마지막은 핸드폰 케이스(⓲)군요.
네. 이게 마지막입니다. 마이페이브아카이브(myfavarchive) 제품입니다.

좋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고정 질문을 할 건데요. 우선 첫 번째 질문.
당신은 이 가방을 들고 길을 걷다가 무시무시한 강도를 만났습니다. 절대로 뺏길 수 없는 단 하나의 아이템은?


오, 쉽지 않네. 음. 지갑 하겠습니다.

왜요? 재발급 받기 귀찮아서?
아니요. 선물받은 것이기도 하고, 가장 고가이기도 해서요.

선물받았다는 점이 특별한 건가요?
그렇죠. 저를 위해서 힘들게 파리에서 샤넬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사다준 거니까.

그 얘기 해 주세요. 유리 씨가 이 제품을 갖고 싶어 했나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살 수 없는 제품이었던 건가요?
아, 몇 년 전에, 결혼 전이니까 남자친구였죠. 남자친구가 자기 지인들과 한 달동안 유럽여행을 가겠다고 했어요. 보내주면서 제가 조건을 걸었죠. 가서 샤넬 지갑 하나를 사와라. 블랙이나 실버였으면 좋겠고, 대충 이러이러한 디자인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그걸 구하러 여행 중에 여러 매장을 돌아다닌 거예요. 힘들게, 저랑 영상통화까지 하면서 구해온 제품입니다.

승훈 씨의 노고가 들어가 있군요.
그렇죠. 잘 쓰고 있기도 하고요.

당시 파리 전역을 돌아다니며 유리의 컨펌을 구하던 유리의 남편 승훈 씨. 현장감이 느껴진다.

그럼 이제 허약한 강도를 만났다고 해봅시다. 얘는 하나만 주면 먹고 떨어진다고 합니다. 뭘 주겠습니까?
명함이요. 아니다. 이건 너무 나의 개인정보인가?

보고 전화번호 저장해서 계속 연락하면 어떡해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핀이랑 머리끈을 주겠습니다.

전부 다요?
다 줘도 돼요. 그 정도는.

좋습니다. 그럼 이제 다음 질문입니다. 당신은 가방을 잃어버렸습니다. 누가 주워서 가방 안을 봤어요. 당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까? 명함에 너무 확실히 회사와 직책이 적혀 있으니, 가방 속에 명함은 없다고 가정하도록 하죠.
음, 가방만 본다면 꾸미기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20대 중반 대학생 정도로 유추하지 않을까요?

대학생이 쓰기엔 고가인 아이템이 좀 있지 않나요?
아니, 샤넬 지갑 말고는 고가가 없어요. 아, 아니다. 차키가 있구나.

맞네. 그러네. 그럼 집이 좀 사는 대학생?
아니요. 대학생으로 안 볼 것 같네요. 음, 30대인데 뭔가 좀 요즘 유행을 쫓아가기 좋아하는 친구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키티도 좋아하고.

좋습니다. 그렇다면 가방 속 물건 가운데 딱 하나만 뽑아서 당신을 소개해야 한다면 뭘 고르시겠습니까?
딱 하나로 저를 대변해야 하는 건가요? 어, 좀 어렵네. 뭔가 나 자체를 소개하려면 저는 디카를 고를래요. 평소에 사진 찍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나의 직업이랑도 어느 정도 연관이 되어 있으니까. 디카를 켜서 사진첩을 열어보면 나의 사진도 있고 내가 일하는 사진도 있기 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것이나 일상의 모습이나 어떤 일을 하는지까지 다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방 속 물건 가운데 가장 비싼 것은요?

아무래도 결혼반지겠네요.


그럼 가방 속에 가장 오래 있었던 건 뭔가요?
지갑이요. 꽤 오래됐어요. 2023년에 받은 거거든요.

마지막으로 가방이랑 다소 상관이 없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당신은 갑자기 무인도에 가게 되었습니다. 언제 구출될지는 모릅니다. 그곳에서는 한 곡만 반복 재생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떤 노래를 배낭에 넣어 가시겠습니까?
단 한 곡이요?

네.
구출이 언제 될지는 몰라요?

운 좋으면 일주일 만에 나올 수도 있는 거고, 운 나쁘면 몇 년 있게 될 수도 있는 거죠.
일단 가수는 정했어요.

보나마나 백예린일 것이다.

백예린의 ‘Another Season with you’로 하겠습니다. 신곡이에요.



인터뷰가 끝나고 김유리는 유민을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차에서 무인도에서 듣게 될 노래를 들려주겠다고도 했지만, 갑작스럽게 그녀의 카플레이에 오류가 생겨 노래는 듣지 못하게 되었다.

사실 김유리가 유민의 동네로 온 이유는 인터뷰만이 아니었는데, 그건 바로 김유리의 남편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이승훈의 작품 <REAL NAKED>(⓳)를 전달해주기 위해서였다. 언젠가 유민이 그 그림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부부끼리 의논을 해서 그림을 선물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판매 중인 포스터를 주는 줄 알고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덥썩 받겠다고 했는데, 이날 김유리가 나에게 준 것은 거대한 원본 캔버스였다. (트렁크에서 나온 캔버스를 보고 놀라 자빠질 뻔 했다!)



이렇게 커다란 선물을 아무렇지 않게 툭 건네주고 별달리 그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대단한 리액션을 바라지도 않는 것. 나는 이 일이 김유리의 성정을 무척 잘 설명해 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김유리는 겉보기에 아주 무심해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놀라우리만치 기억력이 좋다. 친구들이 지나가듯 한 말을 꼼꼼히 기억해 두었다가, 상상도 못한 타이밍에 완벽한 선물을 대뜸 건네곤 한다. 나는 그녀만큼 대단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감사의 표시로 조만간 부부에게 거나한 식사를 대접하려 한다. 그 날을 고대하며…



Tags: 유유민 9호 왓츠인마이백 김유리


Updated 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