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3호 > 끝말잇기 > 
월세가 저렴한 석관동
👤신포도

[2026. 03. 17.]

“뉴욕이라는 구성체, 그리고 그것이 내어준 기묘한 약속이자 내재한 안전인 임대료 안정화라는 엄청나게 근사한 사실은 그 무엇보다도 보편적인 시선으로 나를 보았고, 나를 알았고, 그래서 오랜 세월 내 임대료를 대체로 낮게 유지해 주었다.

그러니까 내 월세는 정말 낮다. 포르노그래피라고 느껴질 정도로 낮다. 상상해 보라.”

– 아일린 마일스, 『낭비와 베끼기 : 자기만의 현재에 도달하는 글쓰기에 관하여』, 28쪽


석관동에서 약 8년 머물렀다.

첫 3년은 학교의 기숙사에서. 그곳의 화장실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진하게 우려낸 유자차 같은 녹물이 나왔다. 여름이면 녹슨 철제 라디에이터에서 에어컨이 나왔고, 찬 공기는 얄궂게도 아래로 내려앉기에. 나는 여름마다 2층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 잠을 청하곤 했다.

한 학기 내내 50만 원을 내면 살 수 있었다. 방학에 한 번, 기숙사 짐 전체를 빼야 할 때면 과방 깊숙한 곳에 빼둔 짐을 넣어두었다. 딱 필요한 짐만 갖고 일주일간 떠돌았다. 과방으로, 동아리방으로, 친구 집으로, 애인 집으로, 가까운 모텔로, 본가로, 캐리어를 하나 들고, 커다란 강아지 인형을 캐리어 위에 올리고, 천안으로, 서산으로, 때로는 만취하여, 때로는 슬픈 마음을 엷게 흩뿌리고….

여름날, 친하게 지내던 동갑내기 룸메이트가 갑작스레 죽었다. 그 해를 넘기고 나는 LH의 지원을 받아 첫 자취방을 구하게 된다.

첫 자취방은 상월곡이라는 작은 동네에 있었다. 처음으로 자취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부풀어 작은 평수의 복층 집을 구했고. 1층에 에어컨이 있지만 2층에서 잠을 자기로 결정하는 바람에 나는 기숙사의 여름을 2년간 똑같은 형태로 반복하게 된다. 찬 공기는 얄궂게도 아래로 내려앉기에.

국가의 지원을 받았던 첫 자취. 덕분에 내 한 달 월세는 8만 5천 원이었다. 관리비 5만 원, 보증금 100만 원 정도를 더한다면 약 300만 원에 2년간의 첫 독립을 무사히 마친 셈이다. 첫 자취에서는 아주 많은 것을 배웠다. 가장 인상 깊은 배움이라면, 초파리의 번데기가 참깨를 닮았다는 것? 실제로 그를 알고 나서 한동안 불닭볶음면의 후레이크를 뿌리지 못했다.

하지만 여름마다 잠을 청하기 위해 침대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 종이 벽을 세운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수준의 방음력, 분리수거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예민한 집주인으로 인해 집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키울 마음으로 보호하던 아기 고양이도 그 복층 집에 잠깐 살았다. 고양이는 내 첫 자취방에 온 지 꼭 한 달 만에 죽었다. 그 해를 넘기고, 나는 석관동에 두 번째 자취방을 구했다.

기숙사를 중심에 두고 상월곡과 반대 방향으로 걸으면 나오는 동네. 신이문역과 돌곶이역의 중간 지점에 방을 잡았다. 신이문은 동대문구 이문동에 속한 곳으로, 나는 매번 지하철을 탈 때마다 성북구와 동대문구를 횡단했다. 그즈음에는 이미 학교를 졸업했지만, 돌곶이역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신이문역을 통해 통학했을 것이라는, 먼 역사를 전해 듣기도 했었다.

그 집을 구한 이유는 간단했다. 역시나 저렴한 임대료. LH의 지원을 여전히 받고 있었기 때문에 월 10만 원대에 열 평 남짓한 구옥 빌라를 빌릴 수 있었다. 거실과 침실이 분리된 넓은 집. 세면대도 없는 화장실, 그러나 수상하게 벌레는 없는 빌라. 위층에는 글씨를 쓰지 못하는 할머니가 집주인으로 살고 있었다. 명절 때마다 할머니는 몇 번이고 전을 부쳐 1층에 내려다 주셨다.

어느 날은 할머니가 엉엉 울며 “언니, 언니. 우리 할아버지 못 봤어?”라고 물어왔는데. 할머니와 함께 살던 치매 할아버지가 말없이 집을 나간 것이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찾았으나, 할머니는 며칠 되지 않아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야 했다. 아마 그날인 것으로 짐작되는데, 나는 침대에 누워 집주인 할머니가 온 건물이 떠나갈 듯 오열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 집에서는 4년을 살았다. 아무도 죽지 않았지만, 그 집을 나오며 나는 석관동을 떠났다. 지금 나는 석관동과 어떠한 속성들을 공유하는 동네에 살고 있다. 미디움 사이즈 규모의 아파트 단지 몇 개가 중첩되어 있는 동네. 근처에 그리 크지 않은 대학을 하나 두고 있는 동네. 제철과일과 해산물을 파는 트럭이 돌아다니는 동네. 전신주 지하화를 실행하지 않은 동네. 시장이 위치한 곳. 어르신과 대학생이 서로를 의식하지 않으며 돌아다니는 곳.
       
버스를 타고 5분 정도, 조금 더 나가면 있는 건물의 간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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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관동은 낡고 보잘것없는 동네이기에, 아마 나는 석관동에 방문할 핑계를, 어쩌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낡은 동네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다. 구속되어야 할 이유를 잃으면, 구속될 수가 없는 동네.

성수, 강남, 홍대, 합정, 연남, 연희, 영등포, 여의도, 상암, 명동, 종로, 서촌… 그 동네들에는 싫어도 가야 할 핑계가 생기는데. 석관동에는 그럴 만한 핑계가 이리저리해도 잘 생기지 않는다. 사실 그래서 석관동은 포르노그래피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낮은 월세를 지불해야만 진정으로 향유할 수 있는, 뉴욕을 닮은 도시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린 마일스가 들으면 반박하려나?

뭐… 그냥 가면 되지 않느냐고? 맞아, 사실 그냥 가면 될 일이다.

Tags: 신포도 3호 지정학 끝말잇기


Updated 26.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