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7호 > 에세이 >
용배의 비밀노트, 후일담.
👤금동현
나서서 잊히려는 사람은 어리석거나 미심쩍다. 나서지만 않으면 누구든 잊힐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당신이 유명인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낌새도 없이 조금만 지내보라. 전쟁이 일어나고, 비리가 폭로되고, 범죄자의 신상정보가 알려지고, 매수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가 몇 차례 발동되고 나면 당신의 보도 가치는 지리산에 출몰한 담비, 사라진 러브버그보다도 없어질 테다. 이제 은둔의 자유를 양껏 즐기시라. 《근황올림픽》이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끼리만 나누는 비밀이지만 실은 《근황올림픽》은 대중매체가 파편화되는 시대에 한국-전체를 유지하기 위해 비밀 공작원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제작진은 나라의 녹을 받고 중요한 일을 하는 비밀 요원이다. 한국의 원로원은 각각의 에코챔버로 흩어진 한국인들이 공동체 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저런 사람이 있었지!”라는 방식으로 과거의 기억을 공유하는 수밖에 없음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아! 나라님.)
반대로 나서서 잊히려고 하면 결코 잊히지 않는다. 모두가 주목을 갈구하는 이른바, ‘주목경제’ 시대에 그것을 적극적으로 거스르는 것은 하나의(a)-긴장(tension)으로 그 자체로 주목(attention)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내게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3년 전 여름 장난삼아 쓴 소설 「░▓▒의 비밀 노트」의
░▓▒이다.
후술하겠지만 그는 잊히고 싶은 사람이므로 그의 성명을 거꾸로 한 다음 잘라내어 여기서는 그를 용배라고 부르자. 알다시피 용배는 한국 영화사에 드문 은둔 감독이다. 불후의 영화 두 편을 연출한 다음 용배는 사라졌다.
들은 바에 의하면 용배는 수차례 접촉 시도를 다양한 방식으로 피했다고 한다. 주소지를 알아내고 약속을 잡으면 그날 집이 비어 있고,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어 쾌활한 인사를 나눈 후에는 번호를 바꿨다고 한다.
그런 독특한 행동 탓(혹은 덕??)에 용배의 존재감은 우리 영화에 더욱 두터워졌고 이런 기반 위에서 나는 ‘용배의 비밀노트’를 픽션의 소재로 채택했다. “실은 용배가 썼던 비밀노트가 있대……”
존재하지 않는 ‘용배의 비밀노트’를 꾸미려고 나는 그의 말과 글을 찾아보고 자주 사용하는 표현과 어투를 빌려 썼다. 『굳빠이, 이상』(김연수)의 서혁민이 『오감도』에 사용된 단어들을 빈도수에 따라 끼워 맞춰 「오감도 시제 16호」를 쓴 것처럼 말이다.
서혁민의 「오감도 시제 16호」가 세간의 주목을 잠깐 끌고 다른 학자에 의해 위작임이 밝혀진 것처럼, 나도 (물론 연재 중간에 대놓고 ‘용배의 비밀노트’가 거짓임을 밝혔지만) ‘용배의 비밀노트’가 거짓임이 곧잘 드러나리라 생각했다. “░▓▒의 문체로 글을 써줘!”라고 하면 LLM이 중간 값을 찾아 적당히 꾸며낸 글… 실은 그보다도 얄팍하게 베낀 글이 사람을 속일 리는 없다.
속여진다면 너무도 허탈한 일이다. 하인츠 슐라퍼에 의하면 18세기 말엽 숫자가 말을 압도하자, 말의 힘에 의존했던 지성인들의 가치가 무색해졌다고 한다. 이렇게 숫자가 말을 압도할 때 그 대응으로 발견된 것이 문체였다. 문체는 양量을 축출하는 정신의 표지였다. 문법은 정확함을 보증하지만 문체는 고결함을 보증했다. 당신에게 문체가 있다면, 당신은 양화(量化)를 위해 나눌 수 없는 개인(in-dividual)이란 것이다.
금동현이 입수한
░▓▒의 사진. 금동현은 사진에 부쳐 이렇게 말했다. “다시 보니 수비학(數秘學)적인 사진이다. 노태우 이어령
░▓▒의 머리를 선으로 이으면 밑변이 7 높이가 5, 각도가 91도의 직각삼각형이 될 것 같다. 91년 7월 5일”
그러나 사태는 생각과 다르게 전개되었다.
그 날은 한겨울 평일 오후였다. 대구 모처의, 오늘날 드물게 자율 좌석제를 운영하는 극장으로 요실금 기저귀 광고가 나오는 실버영화관에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영화를 보러 간 날이었다. 사담이지만 그날이 똑똑히 기억나는 이유가 있다.
평일 오후. 실버영화관. 그리고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영화. 이런 데 오는 사람은 뻔하다. 그런데 ‘갓반인’ 대학생 커플이 들어왔다. 들어올 때부터 키득거리던 커플은 시종 시끄러웠다. 젊음 혹은 가능성을 뽐내는 웃음소리. 그러던 차 남자친구가 팝콘을 사 오겠다고 자리를 비웠다. 처음 튀긴 후 누구도 사지 않아 더는 팝(pop)이란 말과 어울리지 않는 그런 것을 사러가는 마음. 이런 것도 일종의 조롱이 될 수 있단 생각을 곱씹던 와중, 거한의 남자가 방금 나간 남자친구의 자리에 앉았다.
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다니는 남자가 자리에 앉자 여자는 당황했다. 여기 자리 있어요. 거한은 묵묵부답. 그러던 차 갓반인 남자친구가 돌아왔다. 부쩍 왜소해 보이는 경량 패딩의 남자친구는 처음에는 거들먹거리며 비키라 했지만… 거한의 일관된 무시에 점점 당황하기 시작했다. 거들먹거리던 태도는 누그러지고 양 옆의 관객들 사이에서 우왕좌왕, 나중에는 거의 울면서 애원하더니, 결국 여자친구와 함께 건물 밖으로 나갔다. 건물 밖에서 다시 생겨날 그의 우쭐함 혹은 낭패의 낯빛을 구경하러 나도 극장을 나섰다.
그런데 그때 메일이 와 있었다.
“뭐하시는 분인데 용배 감독님의 노트를 기사화 했는지?”
양(量)이 원래의 주인을 내쫓았다.
그리고 나는 그 메일의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것은 용배의 비밀노트가 아니고 사실은 소설이라고. 그나저나 당신은 누구냐고. 그는 자신이 용배의 두 번째 영화의 조감독이라고 했다. 나는 그를 직접 인터뷰하고 싶었다. 도대체 용배는 어딨습니까. 도저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그러나 그 메일에 대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메일을 보내자 이런 회신이 돌아왔다.
“고객님께서 보내신 메일이 전송되지 못했습니다. 아래 실패 사유와 해결 방법을 참고 부탁드립니다. / 실패 사유 :받는 사람이 속한 메일 서버의 문제로 메일이 전송되지 못했습니다.”
.
.
.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흘렀다. 용배의 조감독이란 사람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용배의 비밀노트」의 앞부분만 읽고는 용배의 비밀노트 소식을 들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해명을 하기도 했고, 보여드릴 수 없다고 우울한 농을 부리기도 했다.
그때 쯤 나는 한국 최고의 평론가인 LIM과 교분을 맺었다. LLM과 달리 LIM은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동의해 주지 않았고, 중간값이 아니라 항상 극한값을 이야기했다. 그 차이가 재밌다고 생각하던 차에, 나는 거의 LLM적 사고방식으로 꾸며낸 ‘용배의 비밀노트’ 이야기를 LIM에게 들려줬다.
LIM은 말했다.
“그 메일 용배가 보낸 걸걸? 용배가 원래 그런 식이야.”
용배는 오늘도 검색을 하고 있을까? ‘써방’을 한 이 글도 찾아낼 수 있을까? 또 다시 나에게 메일이 올까?
나는 용배의 글을 타이핑 해둔 문서를 모두 LLM에 학습시킨 다음 가상의 용배를 만든다. 그리고 용배에게 물었다.
“너라면 이 글을 읽었을 때 어떤 기분일 것 같아”
… Reading ‘Yong-Bae’ Dataset
⁖ Constructing ‘Yong-Bae’ Identity
⁛ Decision Making
⁛ Processing...
⁛ Process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