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6호 > 스테이플스 > 이달의 컴필레이션
외계인과 함께 듣기 좋은 노래
👤월간차지 편집부

안녕하세요, 외계인 씨… 한국에는 이계인이라는 이름의 코미디언이 있는데, 알고 계신가요? 아마 모르시겠지요… 이처럼 지구는 참으로 촘촘히 짜인 세계랍니다. 당신이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당신의 문명이 은하급으로 에너지를 이용하는 제3 유형, 혹은 그 이상이라도… 아마 이계인 씨의 존재처럼 모르는 것이 많을 테지요. 당신에게 지구의 여러 진실 조각, 파편들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컴필레이션 ‘외계인과 함께 듣기 좋은 음악’을 음미하다 보면 언젠가 지구 척척박사가 되실 거예요. 아… 척척박사도 뭔지 모르시려나요? 암튼, 시작합니다. (추신. 그렇다고 지성인들끼리 납치나 해부 따위의 일을 벌이지는 맙시다! 우리 지구 푸르게, 푸르게.)

포도’s Pick!


빌스택스 - 너는 너무 이뻐 (Ft.Coogie)
『뜻대로 하세요』에서 로잘린드는 “사랑은 그저 광기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외계인 씨는 사랑,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가족과 친구, 연인 따위의 관계… 데이트나 스킨십 같은 행동 양식… 무엇보다도 좋은 건 나를 사랑하는 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나를 향한 상찬이지요. (이런 어리석은 존재를 납치해서 무얼 하려고 합니까?) 빌스택스의 은퇴 앨범에 실린 ‘너는 너무 예뻐’는 아주 지독한 상찬 덩어리입니다. 물론 로잘린드의 말처럼, 사랑은 광기의 일종이기 때문에 앞서 이야기한 관계 지정이라든지, ‘행동 양식’만 쏙 빠져 있기는 어렵네요. (빌스택스에 관한 글이 월간차지 2호 ‘국힙을 사랑하게 된 경위에 대한 교신’에 실려 있습니다. 물론 이미 힙한 외계인들 사이에선 월간차지가 인기라 하니, 알고 계시겠군요.)


Jim Sullivan - U.F.O.

제4종위키
작업을 할 때까지만 해도 1975년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뉴멕시코주로 떠난 설리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데뷔 앨범 제목 때문인지, 혹은 뉴멕시코주의 다사다난한 피랍 의심 사례 때문인지, 그가 외계인에 의해 피랍당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더군요. 미리 알았다면 제47차 데이터 대전을 막기 위해 총력을 다했을 텐데요… 당신이 납치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외계인 씨의 반응이 더욱 궁금하더군요. 제가 외계인이었다면? 짐 설리번의 수상한 앨범 제목, 징가징가 끊길 듯 이어지는 포크 기타 소리, 꼬장한 설리번의 인간적 외형이 탐났을 것 같긴 해요.


Lô Borges e Milton Nascimento - Trem Azul
외계인 씨에겐 태양 같은 작은 별이 그닥 중요해 보이지 않겠지만 사실 지구촌에 있어 태양은 거대한 존재랍니다. 부디 의심스러운 표정을 거두어 주세요. 인간 사회에게 태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 드릴게요. 저는 이 노래를 자주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해한 단어는 단 한 가지도 없죠. 당연합니다. 브라질에 갈 여유도, 시간도, 돈도, 담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2026년의 브라질은 가챠 수준으로 치안이 불안정합니다.) 브라질 말을 알아 들을 리도 없죠. 그저 “보쎄~ 페가 트레마줄…”이라는 한 줄만 더듬더듬 따라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외계인 씨, 당신에게 이 노래를 소개하기 위해 가사를 찾아봤는데요. 아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바로 ‘Sol’. 그래요, 그것이 태양입니다. 여유도, 시간도, 돈도, 담력도 없는 지구 정반대편의 제가 ‘Sol’을 알아보고 뜨거운 태양열을 느끼는 것. 그게 바로 지구촌에 흐르는 우정입니다.


David Bowie - Lady Stardust
전 사실 사람들이 데이빗 보위더러 평생 외계인이라고 부르는 게 싫었어요. 보위가 죽었을 때마저 “아아, 외계인이 자신의 별로 돌아갔다. R.I.P.”라고 하더군요. 아니, 보위가 왜 외계인입니까? 그는 기껏해야 외국인입니다. 자자, 외계인 씨 한 번 저 뮤직비디오를 같이 보십시다. 저런 외계인이 있나요? 있다면 조용히 저와 검지손가락 끝을 맞댑시다. 당신이 검지손가락을 내민다면 저는 바로 자의적 피랍을 택하겠습니다. 앞서 소개한 빌스택스의 “너는 너무 예뻐”의 “너는 너무 예뻐” 부분을 읊조리며 다가갈 겁니다. (그 외의 부분은 부르지 않겠습니다. 젠틀한 휴먼으로서 외계인 분들이 부담스러워 하시는 건 원치 않습니다.)


이상은 - 프롤로그
미국이 1977년 쏘아올린 보이저 골든 레코드에 실린 음악은 들어 보셨나요? 한국의 노래는 실려있지 않더군요. 만약 제가 당장 내일 한국 대표로 딱 하루 초빙되어, 골든 레코드에 실릴 음악을 선정할 수 있었다면… 그리고 출근으로 인해 딱 3일의 연차를 낼 수밖에 없어 고민에 긴 시간을 들일 수 없다면 이상은의 ‘프롤로그’를 당당히 추천하겠습니다. 노래에서 나열되는 13가지의 사물 이름을 듣고 있노라면, 어딘가 도식적인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래요, 그래요… ‘금붕어’나 ‘노을’, ‘분필’이나 ‘눈사람’ 같은 노래입니다.

유민’s Pick!


Glue Trip - La edad del futuro
외계인 씨, 당신의 별에서는, 아니 당신의 은하, 아니 당신의 국가, 젠장, 어쨌든 그곳에는 미래의 개념이 있나요? 우리는 종종 우리에게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당신의 세계에서 이미 쓰고 있다고 상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노래가 시간선의 틈을 찾아 미래로 떠나버리게 된 누군가가, 지구에 남겨둔 소중한 사람에게 남기는 편지 같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그 역시 미래에 도착할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전제로 말이에요. 내가 사라진 뒤에도 자유롭게 살아가라고, 그러다 보면 나와 같은 곳에서 결국 다시 만날 것이라고…


S.E.S. - めぐりあう世界 (하나가 되는 세계)
이 언니들은 저의 첫사랑. 이들이 노래한 모든 말은 저의 경전이었지요. 사랑은 곧 용기라는 말, 처음 느낀 사랑의 감정은 영원할 수 없고 색이 바래져간다는 것, 그럴 때는 처음의 순간을 다시 기억해내면 된다는 말, 어른도 어른인 척 하려 애쓴다는 사실 같은 것을 지금까지도 떠올린답니다. 일본에서 발매된 이 곡의 가삿말은 이러합니다. “지구본을 돌리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길이 있어요. 우리는 반드시 만날 거예요. 슬픔과 눈물로 저무는 밤에도 세상은 계속 돌아가고 있어요. 상처를 두려워 말고 용기를 끌어안고 계속 걸어나가요. 온 세상에 흘러 넘치는 사랑의 언어…” 저는 어떤 순간에는 결국 모든 세상이 언어의 장벽과 관계 없이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아마도 이 노래에 대한 기억이 믿음의 근간이 아닐까 합니다. 대책 없이 낙관적이라고 생각하실까봐 좀 건조하게 해명해 보자면, 당신네들의 언어 체계는 인간의 것을 한참 뛰어넘잖아요. 우리가 영어를 하든 중국말을 하든 외계인 씨들의 일족이 찰떡같이 해석하겠죠. 그냥 그걸 좀 아름답게 말해본 거라고요.


브라운아이드걸스 - 오늘은 그대와 하늘위로
당신에게 하늘위로 올라가자고 청한다 해도 당신은 지구의 인간들처럼 그것을 어떤 로맨틱한 시구절로 듣지도 않을 테고, 성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을 것이라 불쾌해하지도 않겠지요. 당신 같은 이들에게 하늘위로 함께 가고 싶다는 말 따위 그저 ‘길을 나서자’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생을 땅에 발붙인 채 살아야 합니다. 전설적인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의 체공 시간은 0.55초, 우리는 그것이 신적이라고 생각하며 경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무 감상에 젖어 어쩔 줄 모르고 주체되지 않는 상태에서 하늘 위로 함께 떠나고 싶다는 말을 뱉고는 3년에 한 번씩 영원토록 이불을 발로 마구 차게 되는 것이랍니다. 이 노래에서 비행이라는 것은 우주선을 타고 솟아오르는 모양이라기보다 그네나 시소 같은 놀이기구의 움직임을 닮아 있습니다. 밀고 당기며 조금씩 높은 곳으로 오르는 것이지요. 한 쪽이 서둘러도, 두 사람의 박자가 달라도 활공할 수 없거든요. 지구인의 사랑은 정말 비효율적이고 엉성하지 않습니까. 불가능할 것을 알면서도 굳이 하늘로 오르고자 시도한다는 점에서.


The Flaming Lips - Do you realize??
저는 제목에 물음표 넣은 노래들을 좋아해요. 그래서 처음엔 이 노래 대신 Kilo Kish의 ‘Fulfillment?’를 추천하려고 했었죠. 그런데 생각해 보니 물음표가 한 개인 것보다는 두 개인 게 더 좋겠다 싶은 거예요. 이 노래는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유한한 것이 인간의 목숨만이라면 너무나 염세적인 노래였겠지만, 사실 그보다도 모든 순간이 결국은 끝난다는 것을 에두르는 것처럼 느껴져서 위로가 되기도 하지요. 작별을 미리 준비하라고 말하는 대신 지금 우리가 함께 우주를 떠다니고 있다는 것, 곁에 있는 사람이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다는 것을 계속해서 얘기하라고 조언하는 걸 보면, 제 해석이 틀리지 않은 것 같지요??


Leonard Cohen - Hallelujah
외계인 씨, 당신에게 단 한 곡만을 들려주어야 한다면 저는 결국은 이 노래를 고르겠습니다. 제목은 신을 찬양하는 외침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줄곧 인간의 나약함을 고백할 뿐입니다. 사랑과 믿음이 무너져도, 실패하고 허황되고 공포에 질리고 엉망이 되었어도, 그래도 결국에는 할렐루야라고 말하리라는 고백. 이 “할렐루야”는 임종 직전 입교하는 어리석은 노인의 사후약방문일지도 모르고, 모든 게 무너져도 삶이 끝나지 않았음을 노래할 수 있다는, 전혀 종교적이지 않은 찬가일지도 몰라요. 저도 근자에 슬픈 일이 많았답니다. 하지만 그 덕에 친구들과 가족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죠. 인간은 이런 것으로 살아갑니다. 그 생각을 하던 날, 이 노래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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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