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3호 > 끝말잇기 > 
연기수업에서 개가 되어보기
👤신포도

[2026. 03. 08.]
2016년으로 돌아간다. 막 상경하여 대학 생활의 꿈에 부풀어 있던 그때 말이다. 대학 생활을 준비하며 내가 가장 기대했던 것은 다름 아닌 ‘수강 신청’이었다. 학교나 선생 같은 이가 정해준 집단적 시간표가 아닌, 내 힘으로, 내가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자율성. 그것은 어쩌면 성인기 이후 처음 마주한, 가장 건전한 날 것의 도파민이었다.

2016년 1학기의 나는 전공필수 수업 세 개–한국영화사연구, 세계영화사연구, 영상이론의 철학적 계보학–와 일반선택 수업 세 개를 신청했다. 일반선택이라 함은, 교양 학점으로 인정되지도, 전공 학점으로 인정되지도 않는 회색지대의 수업들로, 대부분 그저 ‘듣고 싶어 듣는’ 수업을 말하는 것 같다. 물론 이 사실을 그때는 몰랐고, 졸업한 지 6년이 지난 뒤 회상해 보니까 그러하다는 추측을 할 뿐이다.

내가 신청한 일반선택 수업은 다음과 같았다. ‘글쓰기1’. 이 수업에서 나는 에세이와 소설 같은 것들을 처음 써봤고, 당시 썼던 글과 문장은 너무나 끔찍하여 지금은 두 눈을 뜨고 한 줄씩 읽어 나갈 수도 없는 것이다. ‘한국대중예술론’이라는 수업도 들었는데, 수업의 주제조차 기억이 안 난다. 1900년대의 한국 대중 가수들, 대부분은 트로트 가수들의 이름을 훑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 역시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 그것이 이 글의 주제가 되는 ‘연기실습1’ 수업이다.

연기를 하고 싶다는 열정에 업혀 신청했던 건 아니다. 연기 수업을 수강한다는 것은 내가 내 수업을 선택할 수 있다는 스무 살의 도파민을, 가장 효율적으로 누릴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왕 예술학교에 왔으니, 어딜 가서 ‘썰’을 풀 수 있을 정도의 수업을 하나 들어보자는 정도의 가벼운 마음이었다. 연기는 19세 이전의 내가 해본 적 없던 것이었다. 관객 앞에서 몸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다른 이가 된다는 점에서.

인생 내내 그닥 나 자신을 억누르며 살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데도, 왜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겠다’라는 기이한 소명을 받은 건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무 살의 나는, 독립하기 이전의 나와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느껴졌다. 정확히 그 이유에서 나는, 비로소 스무 살이 되었기 때문에 ‘나로서 살 수 있다’고 생각(착각)했다.

사실대로 털어놓자면, 스무 살의 나는 이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청소년의 나와 그저 결별했을 뿐, 다른 어딘가로 환승한 것은 아니었기에. 조급한 성미 때문에 나는 스무 살의 첫 상반기부터 ‘나 자신이 당도할 진짜 나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야만 했다. 스무 살 이후의 나는 그 이전과는 ‘어떻게’ 다른가? 그 다른 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환승역을 찾기 위한다는 무의식. 그것이 어쩌면 내가 ‘연기실습1’을 수강신청한 이유일 수 있겠다.

첫 등교를 하기 직전의 나는 약간, 설렜다. 사실 내가 연기에 특출난 재능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떤 대본을 읽게 될까? 춘향전? 체호프? 어쩌면 셰익스피어를 읽을지도 몰라… 아니면 이제 막 상연되기 시작한 최근의 실험 연극 대본을 읽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 인기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될 수도 있겠어…! 누군가 숨겨진 재능을 발휘하는 나를 보고는 감복하여, 소속사에 스카우트해야겠다고 하면 어떡하지? 나는 배우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걸 포기하면서까지 내가 연기에 도전할 수 있을까?

물론 아주 첫 시간부터,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강의실의 공기를 감지한 찰나의 순간부터,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지하 1층의 어둡고 쿰쿰한 지하 연습실에 빙 둘러앉은 스무남은 명의 학생들. 나는 어색한 ‘일반선택’ 연기 수업의 공기와 분위기를 폐 속 가득 채우며 손톱 옆 거스러미를 뜯고 있었다. 이곳에서 웃고 떠들며 학우들과 자유롭게 말을 이어나간다? 그것은 스무 살의 신포도가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종류의 역할이 아니었다. 나는 아주 미세하지만 굉장히 정확하게, 그 사실을 감각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히키코모리 유령처럼 분위기 위에서 떠도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16차시 수업을 들어 나가며 나는 춘향이나 줄리엣이 되는 대신, 온갖 비체(abject)-되기를 수행해야 했다. 비체-되기? 이것은 신유물론을 다루는 철학 수업도, 퍼포먼스를 가르치는 창작 수업도 아닌데… 그러나 정말이다. 나는 나의 곁에 놓인 동물, 가구, 도구가 되어야 했고, 심지어는 본 적 없지만 알고만 있는 상상의 비체가 되기로 결정해야 했다.

길쭉한 몸을 하늘거리며 연기란 어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던 선생은 이따금씩 ‘일반선택’ 따위를 듣는 학생에게는 너무 무리인 소재들을 들이밀곤 했다.

“다들 엎드려 보세요.
자, 이제 본인이 개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일순간 당황한 네발 기기 자세의 나는, 그래, 멍멍하는 개dog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러한 ‘되기’를 요청받았다는 사실이 너무도 당혹스러워, 어쩌면 게crab일 수도 있겠다는 해괴망측한 농담을 떠올리는 데까지 이르렀다. 물론 이 헛헛한 농담을 발설할 수는 없었는데, 그 뒤에 이어진 연기 선생의 구체적인 ‘디렉션’ 때문이었다.

“본인에게 가장 소중한 걸 떠올려 보세요.
그걸 지키는 개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크게 짖어보세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이 수업을 즐길 수 없는 히키코모리인 나’ 따위가 가장 큰 걱정이었던 3월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늦어버렸다. 타임머신은 SF 서사의 땅콩 따 먹기 소재일 뿐이니까. 그러니까 다른 말로, 그 말을 들은 이상 나는 그곳에서 꼼짝없이 짖어야 했다. 심지어 내가 짖어야 한다는 것만이 유일한 문제는 아니었는데, 더욱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스무 명 남짓한 타 학우들이 짖는 소리도 (네발 기기 자세를 유지한 채로) 들어야 했다는 점이다.

함께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제각기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짖어야 했다. 누군가는 아주 크게 짖었고, 누군가는 약간 망설였다. 약 10번째 순서였던 나는 초라하고 비참한 마음으로 다른 인간들이 짖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순서가 도래하기 전에 핵전쟁이나 지진, 외계인의 침공 같은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제야말로 나는 정말 짖어야 했다.

“왕.. 왈.. 왕...!”

진정한 나를 찾겠다는 기개는 어디 갔는지, 나는 바닷물에 젖은 채 겁먹어 떨고 있는 우리 집 강아지 구름이처럼 작고 소심하게 짖었다.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가장 소중한 걸 지키는 개의 울음소리가 맞나요?”

그래, 아니었다. 그것만은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나 역시 억울했다. 나는 가장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 소리를 질러야 했던 적도 없고, 개가 되어야 했던 적은 더더욱 없으며, 타인들과 함께 짖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탓이다. 게다가 나는 너무도 당황한 탓에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인지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는 정말 그저 허공에 짖어야 했다. 진짜 ‘개’라면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짖을 텐데, 나는 그저 짖기 위해 짖어야 했다.

내가 느낀 일순간의 억울함은 물론 비겁함에 가까웠다. 한입으로 두말하는 것이었으며 앞뒤가 다른 모순이자, 일종의 변절이었다. 브랜 뉴, 완전히 새로운 스무 살 이후의 나를 찾는다면서, 그동안 해본 적 없기 때문에 못 하겠다고 생각하다니! 무릇 멋쟁이라면 해서는 안 될 실수였다.

안타깝게도 한가로이 이런 반추를 하고 있을 때는 아니었는데, 연기 선생이 내 앞을 떠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치 토익 리스닝 문항처럼, 침묵으로 묻고 있었다.

“그게… 가장 소중한 걸 지키는 개의 울음소리가 맞나요?”

(a) 그녀는 당신의 울음소리가 ‘개의 울음소리’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b) 그녀는 당신이 흉내 낸 개가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지 묻고 있다.
(c) 그녀는 당신이 아주 크고 우렁차게, 사납게 다시 짖기를 기다리고 있다.


정답은 (c)였다.

선생은 아직 내 앞에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다시 짖어야 했다.

“왈..!! 왈..!!”

아주 약간 더 크게 짖었다. 선생님은 만족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내 옆 학우의 개소리를 들으러 내 앞을 떠났다. 나는 아주 잠깐 안도하고, 아주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했다.

그것은 내가 짖었다는 사실에서만 기인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연기라는 행위 자체에 몰입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라는 깨달음. 항상 유체 이탈한 채 사는 유령의 시선으로, 나 자신을 검열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 보이는 것에 너무도 예민해 큰 소리를 내는 것조차 괴로워하는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 그렇기에 큰 소리를 내고 싶을 때면, 친구나 애인, 혹은 술과 같이, 나를 검열과 유체 이탈의 상태로부터 풀어내어 줄 아주 가까운 동료가 필요하다는 것.

스무 살 이후의 나는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아주 느릿하게 알아갔다. 사실 진짜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환승보다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유에 가까워서, 나는 아직도 그 방법을 찾아나가는 중이다.

그나저나, 나는 그 수업에서 개가 되는 것을 넘어서, 때로는 마리오네트가 되어야 했고, 때로는 술래잡기를 해야 했다. 술래잡기를 아주 열심히 한 덕분에 연기 선생은 압구정에 위치한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내게 소고기를 사주었다. 그래, 나도 어느 순간에는 소고기를 먹기 위해, 술래잡기를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근래의 경유에 필요한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추신. 유민은 나의 ‘마리오네트 되기’를 항상 ‘괘종시계 되기’라고 기억한다. 그러나 정말 괘종시계 되기를 주문받았다면, 나는 정말로, 중도 하차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Tags: 신포도 3호 교육 끝말잇기


Updated 26.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