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9호 > 왓츠인마이백 >
시큼하고 달콤한 외출 가방
👤유유민
일시: 9월 26일 오후 2시 30분
장소: 향동 카페 웨인
인터뷰어: 유유민
인터뷰이: 춘자 (월간차지의 최고 영상 책임자. 그밖에 자세한 내용은 함구하려 했지만, 인터뷰에서 너무 많은 것을 보여줘 버린 것 같다.)
❶ 캔버스 백
❷ 이미스 볼캡
❸ 햄만이
❹ 테크 파우치
❺ 작은 파우치
❻ 포지타노 레몬 사탕
❼ 살균 소독 티슈
❽ 휴대용 양치 세
❾ 북커버와 <아무튼, 술>
❿ 필통
⓫ 수첩과 펜: 선정적인 미피 수첩, 자투리 가죽 수첩, PD수첩, 이색 볼펜
⓬ 톤핏썬 선쿠
⓭ 지방시 핑크 크림 벨벳 틴트
⓮ 코치 지갑
⓯ 양산
⓰ 에어팟과 평양냉면 키링
⓱ 이클립스
⓲ 여우 모양 빗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가방부터 보여주세요. 언제 어디서 구매한 제품이죠?
작년 생일 선물로 친구가 준 캔버스 백(❶)이에요. 어디 거였더라? 뮤즈드? 카톡 선물하기로 받았기 때문에 지금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니, 이상한 이름으로 바뀌었네요. ‘더달콤’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뭔가 후지네요.
이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더달콤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 알겠습니다.
아니야. 그게 아닙니다.
친구가 왜 가방을 줬죠? 생일선물로 가방은 흔치 않은 선택인데요.
제가 위시리스트에 담아두었기 때문입니다.
가방에 달려있는 그건 뭐죠? 모자와 키링 인형이 달려 있는 것 같군요.
맞습니다. 이 모자는,
그 모자는 제 것 같군요.
네. 강탈해서 쓰고 있는데요. 이미스 볼캡(❷)이고 네이비 색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카라비너를 달아서 가방에 달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씁니다. 오늘 제가 나오면서 같이 살고 있는 동거묘에게 모자 3개를 들이밀고 하나 골라달라고 했더니 요 놈을 선택해 줬습니다.
아주 똑똑하네요. 그 인형은 뭐죠?
아.
춘자는 인형을 황급히 은폐하려 시도했다.
들고 나왔으면 소개해 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춘자는 체념한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요즘 푹 빠져 있는 아이돌이 있는데요. 바로 아일릿입니다. 이건 원희 인형(❸)입니다.
원희가 직접 디자인한 캐릭터인가요?
아, 팬메이드입니다. 너무 귀여워서 공동구매했어요.
이름이 뭔가요?
‘햄만이’입니다. 햄스터 만두라는 뜻이에요.
귀엽네요.
만져 보실래요?
재미있네요. 말랑말랑합니다.
쑥쓰럽네요.
그럼 이제 아이템을 하나씩 소개해 주시죠.
일단 이건 각종 전자기기 관련 물품을 넣어 놓은 파우치(❹)입니다. 원래는 친구가 사준 보울의 북파우치인데요. 책을 안 넣고 이런 것들을 넣어 다니고 있습니다. 이건 위시리스트에 넣어놓은 게 아니라 친구가 직접 골라서 준 것이고요. 오늘은 노트북 없이 핸드폰만 들고 나왔기 때문에 간단하게 보조배터리랑 고속충전기 정도 들어 있어요. 아, 이 충전기도 유민 씨에게 강탈했는데요. 아주 빠르게 충전이 되어 좋습니다. 그리고 제가 손목이 약해서 이걸 갖고 다니는데, 다이소 제품입니다.
보조배터리도 제 것 같은데요?
하하하.
춘자는 그저 웃음으로 무마하려 했다. 뻔뻔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파우치(❺)가 하나 더 있는데요. 아주 귀엽죠. 자잘자잘한 조그만이들을 넣어 다닙니다. 이건 다이소에서 샀어요. 여기에는 요즘 턱이 좀 아파서 이렇게 진통제를 가지고 다니고 있고요. 제가 비누 없는 화장실을 극혐하기 때문에 종이비누를 들고 다닙니다.
냄새 좀 맡아보겠습니다.
그러세요.
그렇게 좋진 않았다.
그리고 이건 안약입니다. 렌즈를 끼는 날에 쓰고요. 원래는 핑크색을 쓰다가 이걸로 한 번 바꿔봤는데, 민트가 들어 있어서 아주 화합니다.
이건 사탕인가요?
포지타노 레몬사탕(❻)입니다. 제 인생의 필수품인데요. 이제는 이것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왜죠? 임신하셨나요?
원인이 없기 때문에 결과가 생길 수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원래 굉장한 멀미쟁이였습니다. 인생을 통틀어서 그냥 모든 시간을 멀미하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 아이를 만난 뒤부터는 시내버스도 그냥 막 타고 다니고, 택시도 탈 수 있습니다.
원래는 시내버스도 못 탈 정도였군요.
탈 수 있지만 구역질을 참으면서 타야 했죠. 근데 이 레몬사탕을 먹으면, 이걸 녹여먹는 동안에는 멀미가 완전히 가라앉아요.
왜 그런 것 같아요?
아무래도 너무 새콤해서? 너무 시기 때문에 여기에 감각이 다 집중되는 게 아닐까요?
그럼 굉장히 쓴 약 같은 걸 먹어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쓴 것보다는 왠지 이렇게 신 게 좀 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지 않을까요. 이런 새콤한 제품들이 다 비슷한 효과가 있는 것 같더라구요.
레몬이 아니어도 되는군요.
해본 적은 없지만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치만 이 제품이 맛있고 해서, 얘를 거의 뭐 생필품처럼 구비해 놓고 있습니다. 레몬사탕 없이 집을 나서면 그날 하루가 너무 불안해요. 그래서 얘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 가방에서 얘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가장 중요합니다.
알겠습니다. 진정하세요.
단점은 제가 거의 매일 이걸 먹다 보니까 치아 건강이 조금 안 좋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렇지만 필수품이죠.
네. 작은 것들을 위한 파우치였습니다. 다음은요?
살균 소독 티슈(❼)입니다. 제가 특정한 몇몇 군데에서만 좀 깔끔을 떨어요. PC방에 간다든지 할 때 키보드랑 마우스를 이걸로 한번 싹 닦고 시작하면 기분이 좋고요. 그리고 이건 양치도구(❽)인데, 예전에 한강 강변 음악회에 갔다가 설문조사를 하고 받은 판촉물입니다.
다음 아이템은 어떤 건가요?
페팃에서 나온 북커버(❾)로 하겠습니다. 이것도 선물받았어요.
굉장히 센스 있는 사람이 줬나 보다.
네, 뭐.
내가 줬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생일선물로 북파우치를 두 개나 받았어요. 그래서 하나는 북 파우치, 하나는 다른 파우치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건 원래 용도에 맞게 사용하고 있어요. 사실 요새 책을 잘 안 읽어서 예전에 끼워놓은 책이 들어 있는데요.
어떤 책이죠?
<아무튼, 술>입니다. 김혼비 작가가 쓴 에세이인데요. 술을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님이 술을 예찬한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에요.
김혼비 작가님은 주로 어떤 주종을 드시는 것 같던가요?
주로 소주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읽은지 좀 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그래도 절반 이상 읽으셨네요. 힘내서 완독하시기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하세요?
제가 혼자 여행을 가면 꼭 서점에 들르는 편인데, 왠지 그때마다 ‘아무튼’ 시리즈를 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조그맣고 들고 다니기 편하고, 술술 읽혀서요.
궁금한 게 있는데요. 제가 선물하긴 했지만, 북커버는 왜 쓰는 건가요? 저는 사실 대중교통 안에서 책을 읽으면, 오히려 내가 읽는 책을 보여주고 싶을 것 같거든요.
과시하고 싶다?
그보다는, 왜 이걸 굳이 숨기는지 모르겠어요. 아저씨들처럼 야설 보는 것도 아닌데.
야설 읽은 적 없습니다. 글쎄요. 저는 오히려 반대로 책을 많이 읽기 때문에 “나는 이런 독서 용품까지 갖고 있어” 같은 걸 보여주고 싶은 것 같기도요. 그리고 예쁘지 않아요? 선물해 주신 분이 센스 있게 예쁜 걸 사 주셔가지고요.
우하하.
그리고 지갑이 있는데요. 다이소 지갑이고요.
이게 지갑이라고요?
아, 지갑이란다. 필통, 필통(❿)이다. 잘못 말했네.
깜짝 놀랐습니다.
네, 필통이고요. 여기에는 수첩들(⓫)과 펜 한 자루, 그리고 납작한 화장품 몇 개를 넣어 다닙니다.
왜 수첩이 세 개나 있나요?
원래 두 개를 들고 다니는데, 얘는 너무 최근에 다 쓴 제품이라 기존에 잘 쓰던 걸 한 번 보여드리면 좋을 것 같아서 가지고 나왔습니다.
할 일을 기록하는 용도인가요?
하나는 일정 같은 걸 관리하는 거고요. 하나는 을지로의 한주다이어리? 이름이 뭐더라? 여튼, 다이어리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 가죽으로 수첩을 만드는 곳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산 수첩이에요. 잡다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하면 메모하고 있습니다.
멋지군요.
사실 기존에 쓰던 이 수첩은 굉장히 숭합니다.
왜죠?
모르고 샀는데요. 미피가 그려져 있거든요. 착한 미피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뒤로 돌리면, 이렇게, 이렇게 노출증에 걸린 미피가 나타납니다!
너무 섹시하네요.
처음 알고는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이건 최근에 유민 씨에게 추천받아서 산 피디수첩90입니다.
피디수첩90은 정말 좋은 제품이죠.
크기도 딱 좋아요. 미피 수첩을 다 써갈 때쯤 새로운 수첩을 구매하려고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이정도 사이즈의 수첩이 정말 없더라고요. 너무 크거나 너무 작거나 해요.
이번 ‘왓츠 인 마이 백’ 특집 인터뷰를 하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사이즈의 수첩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다들 각자의 대안을 이미 찾았지만, 제가 모두에게 피디수첩90을 권하고 있죠. 사실 작은 수첩일수록 잘 만드는 회사의 제품이 많기 때문에 가격이 비싼데 얘는 저렴하기까지 하지 않습니까?
맞아요. 그리고 가름끈이 있는 게 정말 정말 좋습니다. 제가 한 3개월에서 4개월 전부터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어요. 유용하게 잘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여주실 수 있는 페이지가 있을까요?
네.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보여줄 수 있는 페이지는 전혀 없었고, 결국 습득시 연락달라는 메모를 적은 첫페이지만 공개 가능하다는 결론이 났기에 생략한다.
그리고 이건 펜인데 그냥 삼색 볼펜입니다. 문구류에 그렇게 큰 욕심이 없어서 대충 있는 거 들고 다녀요. 초저점도 볼펜이고요,
잠깐. 삼색이 아닙니다.
그렇네요. 이색이네요. 세상에.
필통 다음은 뭔가요?
선쿠션(⓬)입니다. 어디 거더라? 톤핏선? 찾아보고 괜찮다는 걸로 샀고요. 제가 화장을 잘 안 해서 출근할 때도 대충 이런 걸로 두드리고 가거든요. 얘는 지방시 틴트(⓭)인데요. 친구들이랑 괌 여행을 다녀오면서 면세점에 갔는데, 이걸 2+1에 판매하고 있는 거예요. 저희가 마침 세 명이었거든요.
그럼 사야지.
그래서 샀습니다. 핑크 크림 벨벳 색상입니다. 그리고 이건 지갑(⓮)입니다. 언젠가 집에 굴러다니는 걸 제가 주워서 쓰고 있습니다.
나는 춘자를 노려보았다. 이조차 내가 쓰던 지갑이었기 때문이다. 춘자는 못본 체하며 태연하게 답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건 양산(⓯)인데요. 햇빛을 너무 싫어해서 가지고 다닙니다.
우산 겸용인가요?
비가 갑자기 오면 이걸 쓰기도 하는데요. 비가 오는 걸 미리 확인한 날에는 따로 제대로 된 우산을 챙겨요. 그리고 에어팟(⓰)입니다. 여기 달린 키링이 평양냉면 굿즈인데요.
저랑 공동구매 했었죠.
우리 사이가 들통나겠어요.
제가 잘 얼버무려 볼게요.
네. 어쨌든 평양냉면 매니아라는 사실을 뽐내기 위한 아이템입니다.
잘 얼버무려지지 않아 대충 썼다. 대충 뭐 룸메이트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다.
그리고 이클립스(⓱)가 있습니다. 이클립스 광인인 친구가 있는데 만날 때마다 나눠주거든요. 그 친구의 영향을 받아서 언젠가부터 저도 들고 다닙니다. 그리고 이건 다른 친구가 여행 갔다가 사다준 여우 모양 빗(⓲)입니다. 귀엽죠?
어디에 갔길래 여우 모양 빗을 샀을까요?
여우와 관련된 곳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제주도에서 사다준 것 같은데. 그냥 귀여워서 기념품으로 주는 거라고 했어요. 매일매일 잘 쓰고 있고요. 음, 이제 가방 속에 있는 건 끝난 것 같은데.
그럼 후속 질문으로 넘어가죠. 당신은 길을 걷다가 무시무시한 강도를 만났습니다. 가진 걸 죄다 내놓으라고 합니다. 죽어도 뺏길 수 없는 단 하나의 아이템이 있다면?
강도를 지금 어디서 만난 거예요?
처음 받는 질문입니다.
집에 빨리 갈 수 있는 거리인가요?
아니요.
집과 먼가요?
집과 조금 떨어져 있는 지역의 뒷골목입니다.
뒷골목? 택시는 빨리 잡히나요?
상상해 보지 못했습니다.
도주할 수 있는 수단이 뭔가요?
이 강도가 당신을 죽이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무섭긴 합니다. 때릴 수도 있고요.
택시가 잘 잡히는 곳인가요?
대로변까지 뛰면 1분 30초 정도 걸린다고 설정하죠.
그렇다면 레몬사탕을 고르겠습니다.
정말 충격적인 선택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대체 왜요?
도망을 가면서 토를 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상상도 못했습니다. 정말 소중한 물건인가 보군요.
그럼요.
이번에는 허약 체질의 강도를 만났습니다. 이 강도는 하나만 넘겨주면 먹고 떨어집니다. 뭘 주시겠습니까?
이 경우에도 레몬사탕을 주겠습니다. 여기서 제일 저렴한 거라서요.
좋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이 가방에서 가장 비싼 물건을 알려주세요.
제일 비싼 거요? 에어팟이지 않을까요?
그럼 이 가방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지고 다닌 물건을 알려주세요.
매일 꺼내면 그건 리셋되나요?
아니, 아니죠. 그러니까 가장 오랫동안 지참하던 물건을 고르면 되겠습니다.
그것도 에어팟입니다.
이 사람은 질문의 깊이에 비해 대답이 다소 허무한 편인 듯하다.
자 다음 질문입니다. 당신은 이 가방을 잃어버렸습니다.
있을 법한 얘기군요.
누가 주워서 안에 있는 것들을 본다면, 당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같나요?
햇빛을 싫어하는 사람?
선글라스도 없는데, 햇빛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정체화할 수 있을까요?
그러네요. 그렇게 싫어하는 것 같지도 않네요. 그럼 뭔가 청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살균 소독 티슈나 이클립스, 종이비누까지 있으니까요.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뭐, 엄청 두드러지는 특징은 아니지만요.
네, 그러면, 저는 이 질문은 고정으로 하지는 않는데 아직 대단한 특징이 안 나온 것 같아서 이것까지 해 볼게요. 이 가방은 당신이 알고 있는 유명인 중에 누구를 닮았습니까?
정말 희한한 질문이네요.
대답하세요.
유명인 중에? 정말 어렵네요. 특색 없는 연예인 없나?
특색이 없으면 연예인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네.
별로 안 떠오르면 그냥 넘어갈까요?
네.
확실히 추가 질문의 규모에 비해 답변의 영양가가 없다.
그럼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가방에서 단 하나의 물건만 꺼내서 당신을 설명해야 한다면 뭘 고르시겠어요?
대표해서 설명하라고요?
네. 당신과 가장 닮은 물건이 될 수도 있고요. 가장 애착이 가는 물건일 수도 있겠고, 다른 아이템들을 집약하는 물건일 수도 있겠죠.
정말 어렵네.
이것만은 대답을 해 주셔야 됩니다.
흠. 역시 레몬사탕이겠지요.
왜죠?
제가 레몬사탕으로 멀미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가방을 들고 외출할 수 있게 된 거라서요. 레몬사탕을 만나기 전에는 저는 차를 타야 하는 상황을 웬만하면 만들지 않았거든요.
외출을 가능하게 해준 아이템이라는 거죠.
그렇죠. 이 가방을 싸들고 다닐 수 있는 계기 자체를 만들어준 아이템이다.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을 바꿔준 아이템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러면 이제 거의 끝났습니다. 마지막으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기 위한 억지 질문이 하나 남아있는데요.
해보세요.
당신은 갑자기 무인도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가방이랑 전혀 상관 없잖아.
그, 그래서 무, 무인도에서 탈출, 구출되기 전까지 단 한 곡의 음악만 들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왜 갑자기 무인도냐고요.
빨리 한 곡 고르세요.
언제 탈출할 수 있는데요?
랜덤입니다.
탈출을 못할 수도 있습니까?
할 수 있을 겁니다. 최대 연한은 5년으로 하죠. 운이 좋으면 일주일 만에 구출될 수도 있는 거고요.
무인도의 날씨는 어떤가요?
이런 건 설정한 적조차 없다.
뭐, 사계절이 다 있겠죠.
쉽지 않네. 왓츠 인 마이 백이랑 플레이리스트가 무슨 상관이 있죠?
마음대로 하세요.
갑자기 딱 떠오른 곡이 있는데요. 샤이니의 ‘히치하이킹’으로 하겠습니다.
기우제처럼 듣는 건가요?
그런 의미도 있고요. 무인도에 갇히면 너무 우울해질 수 있는 여지가 많으니, 그런 여지를 주는 곡을 고르면 안될 것 같습니다. 이 곡이 엄청 고음으로 지르는 신나는 노래거든요.
미쳐버리진 않을까요?
하지만 어차피 미칠 거라면 울증보다는 조증에 걸리는 게 낫지 않을까.
좋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춘자가 온갖 것을 꼬치꼬치 캐물은 덕분에 나는 있지도 않은 뒷골목의 교통편과 무인도의 기후까지 설정해야 했다. 그렇게 조건을 꼼꼼히 확인한 춘자는 매번 어김없이 레몬사탕을 고르고는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면 춘자는 처음부터 줄곧 이야기해 주었다. 이 가방에서 레몬사탕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걸 먹어야 차를 탈 수 있고, 차를 타야 이 가방을 들고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대답을 해줘도 듣질 않으니 질문이 길어질 수밖에.
아무튼 앞으로도 춘자가 레몬사탕을 잘 챙겨 다니길 바란다. 강도를 만나면 하나 주고, 본인도 하나 먹고, 택시를 타고 무사히 돌아오면 좋겠다. 가방에 내 물건이 많이 들어있으므로. 그리고 춘자가 무인도에 떨어지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다. 샤이니의 ‘히치하이킹’을 5년 동안 반복해서 듣고 조증이 온 춘자는 별로 만나고 싶지 않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