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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차지 3호 > 끝말잇기 >
수다쟁이 기사 열전 👤유유민
수다쟁이 기사 열전 👤유유민
[2026. 03. 21.]
이야기꾼
22/06/26 02:00 AM
야근을 마치고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으로 카카오택시를 호출했다. 오늘의 마지막 손님으로 같은 동네 주민이 콜을 부를 때까지 양화대교를 배회 중이었다던 기사님은 엄청난 수다쟁이였지만, 왠지 허투루 듣고 싶지는 않게 하는 언변이 있었다. 카카오택시에 새로 생겼다는 단골 등록 기능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부품 수급이 어려워져 신차 발주가 늦어지고 있다는 이야기, 그래서 이전에 운행하던 그랜저XG를 보내줘야겠다 싶어 쏘나타 신형을 계약해 놓고도 7개월이나 기다려야 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이 쏘나타는 받은 지 나흘 된 새 차 중의 새 차인데, 요즘 자재가 좋아졌는지 새 차 냄새가 나지 않아서 좋다는, 중고차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다는, 쏘나타가 올 7월 1일 계약분 이후로 생산이 중단된다는, 그래서 재고 떨이를 위해 서비스 옵션을 빵빵하게 넣어준다는 후문이 돈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흥미롭지만 또 아주 약간은 피곤한 기분으로 들었다. 내부순환로를 다 지날 때까지. 이 모든 잡담들은 마지막 하나의 에피소드를 위한 빌드업에 불과했으니.
“아저씨가 며칠 전에 그랜저로 모신 마지막 손님에 대한 얘깃거리가 있어요. 해가 엄청 쨍쨍 내리쬐는 날이었어요. (기사님은 내가 만난 이 중에 가장 문어체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내 또래 아주머니였는데, 여자분들은 보통 뒷자리에 타시잖아요? 근데 앞에 타시더라고. 수락산으로 가자고 그래요. 그러더니 제 이름표를 보고, 어머 기사님 제 국민학교 동창이랑 이름이 같으네요? 하는 거야. (기사님 성함이 특이한 편이세요?) 하나도 안 특이해요. 내 이름이 OOO인데. (엄청나게 특이한 이름이었다.) 그래서 동명이인일 거라고 했더니, (동명이인이 있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자기 고향 동네랑 졸업한 국민학교 얘기를 하는데, 아니 내가 나온 학교가 맞더라고. 그래서 모른 척을 하고 물었어요. 졸업한 지가 수십 년인데 이름을 기억하시는 걸 보니 좋아하는 친구였나 봐요? 라고요. 그랬더니,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계속 급장을 했던 친구라 기억을 하고 있대요. 그 손님이랑 다른 여자애랑, 둘이서 동시에 나를 좋아해가지고 나도 모르는 삼각관계를 만들어서 경쟁을 해대구 그랬대는 거예요. 그래서 졸업하고 그 앨 만난 적이 있느냐고 했더니, 서울 가서 방송국에 취업했다고 들었는데 어째 같은 서울에서 한 번을 못 봤다고 하더라고. (방송국이요? 무슨 일 하셨어요? 여쭤봤더니, 아주 유명한 회장 비서실에 작년까지 있으셨다고!) 그래서 내가, 손님 연락처를 저한테 주시면 제가 그 동창 분 연락처를 며칠 안에 구해서 전해드릴게요, 그랬지. 그랬더니 얘가 눈치가 빨라가지구선, 고개를 홱 돌리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야.
아저씨. 선글라스 좀 벗어봐요.
그래서 서로 얼굴을 보고, 반갑다고 인사를 인사를 하고. 그러더니, 수락산에 내려주고 가지 말고 같이 내려서 커피나 한잔 마시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커피 드셨어요?) 마셨지!”
아쉽게도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이다. 하필 이 지점에서 집 앞에 도착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내리지 않고 뒷좌석에 미적대면서 남은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다고 말했지만, 기사님은 은근한 표정으로 “거의 끝이에요” 말했다. 언젠가 후속편을 듣고 싶다는 생각에 이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기사님 다시 만나기’에 체크를 해봤다. 후일에 양화대교에서 성북구 가는 손님의 콜을 기다리고 있을 OOO 기사님과 다시 함께 퇴근할 날을 기약하며…
이야기 살인마
26/01/01 02:57 AM
고생스럽고 다난했던 한해를 보내주잡시고 남가좌동의 한 선술집 다찌에 앉아 몇 시간 동안 맹렬히 남은 편집을 마친 뒤 기어코 『월간차지』 창간호를 발행한 역사적인 날이었다. 뭐든 일단 해내고 나면 자랑스러워지고야 마는 성정 탓에 포도와 함께 눈 내리는 골목길 위에서 기쁨의 춤을 추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송구영신의 시간이 찾아왔다. 우리는 기념할 만한 것들을 마저 기념하기 위해 갯바람 노래연습장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두 시간도 넘게 노래를 부르고 또 춤을 추었다. 헤어지고 나니 새벽 2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대목답게 수요는 넘치고 공급은 모자라 도무지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영하 11도에 손과 발과 콧부리가 꽁꽁 얼었다. 이렇게 영원히 집에 가지 못할 것 같아 초조해졌다. 기껏 잡힌 택시는 도중에 다른 콜을 잡았는지 나를 배신하고 떠나버렸고, 코끝이 점점 빨갛게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입김이 굴뚝처럼 피어올랐다.
30분 정도를 추위에 떨었을까, 2시 55분에서야 택시가 배차되었다. 뒷문을 열고 차에 오르자마자,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상의 지긋한 기사님은 지난 십오 년간 나를 찾아 헤매기라도 한 사람처럼 와르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손님,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유, 손님은 행운이세요. 택시 잡기 힘드셨지요? (네. 삼십 분도 넘게 걸렸…) 그러니까요. 나도 종일 콜이 너무 많고 피로해서 퇴근하려고 했는데 마침 우리 집 근처 가는 콜이 딱 뜨더라고. 그게 손님이에요. 아이고, 됐다, 퇴근길에 한 분 더 모시고 딱 들어가면 되겠다 싶어서 잽싸게 잡았지요. 사실 내가 그 동네 사람은 아닌데, 손님 집 근처에 LPG 충전소가 있어요. 알고 있어요? 거기가 무척 싸요. 그래서 요오기 상암 쪽 오면 꼭 거길 들러서 만땅 충전을 하고, 차고지 쪽에서 한 바퀴 돌려서 집에 가고 그래요. (아 그러시…) 오늘 하루 너무 바빴어요. 아무래도 날이 날이다 보니까.
오후 다섯 시쯤 개시했거든요. 저기 응암동에서 손님 태우고 잠실로 넘어갔지. 잠실 쪽에 저그 호텔에 볼일이 있으시다고 그래서. 거기다가 내려드리고 또 손님을 새로 태웠는데, 아 글쎄 일산 중산마을을 가자는 거예요. (아이고, 온 만큼 또 가셨겠어요.) 아이고 그러니까는요. 외국인 손님이었거든. 지리도 모를 테니 뭐라고 할 수가 있나. 그리고 요새 목적지 보고 승차 거부하고 그러면 안 돼요. 그래도 그게 나쁘진 않았던 게, 거리가 하도 머니까 한 방에 5만 8천 원 벌었잖아요. 껄껄껄껄. (와. 그 돈이면 비행기도 타겠어요.) 시외 요금까지 붙으니까 아무래도 많이 나오지요. 외국 손님이라 한국 돈 개념도 없으니 암말 없이 내셨지요. 이제 또 중산마을에서 손님을 태웠더니 노량진을 가자고 하시네. (또 장거리 잡으셨네요.) 그렇죠. 쏠쏠했지요. 3만 8천 원이 나왔어요. 노량진에서 또 여의도 갔다가, 여의도에서 또다시 응암 넘어갔다가, (아이고) 그러고 나서 이제 우리 손님을 마지막으로 뫼시고 딱 집에 들어가서 잘 거예요. 근데 저, 손님은 오늘 같은 날 왜 저기, 종로에 안 갔어요? (네?) 종로에, 보신각 종 치는 거 보러 안 갔어요? 이 동네에서 뭘 했어? (아 일하다가, 친구랑 술도 한잔 하고.) 아이고 그러셨구나. 고생이 많으셨네.”
조금 피곤해서 대답을 재깍재깍하지 않았더니 기사님의 말수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이제 좀 편하게 가려나… 하고 눈을 붙이려는데 기사님의 다급한, 주목과 관심을 요하며 부러 꾸며댄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 손님, 으하하, 하하하, 이것 좀 보실래요. 하하”
티미하게 눈을 뜨고 기사님이 가리키는 핸드폰 액정을 보았다. 롯데타워 위로 터지는 불꽃놀이를 찍은 사진이었다. 펑, 펑… 내비게이션은 왜 끄신 거지.
“아까 잠실 갔다고 했잖아요. 거기 잠실에 롯데타워 있잖어요. 롯데타워가 몇 층인지 알아요? 얼마나 높은지 알아요? 거기서 신년이라고 불꽃놀이 하는 거 봤잖아. 햐, 장관이더라고요. 볼만하더라고요. 차 안에서 손님이랑 둘이 아이고, 멋있다, 대단하다, 하면서 넋을 놓고 구경했다니까. 차 밀리는 틈에 사진도 많이 찍었어요. 이거 보세요. 이거.”
기사님이 신나게 화면을 이리저리 밀며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떠들었다. 너무 피곤하다.
“그런데 손님은 왜 경기도에 사시나? 사실 상암에서 10분밖에 안 걸리잖아요. 그럼 상암에 살아도 됐을 텐데, 왜 경기도로 가셨나? 원래 경기도 살았어요? (아니요…) 지난주에 다른 손님 모셔다드리러 그 동네 가 봤는데, 무슨 저기 별내처럼 주택들을 지어놨더라고. 손님도 그쪽에 살아요? 아니면 아파트에 살아요? 방은 몇 개예요? 화장실은? 아아 그렇구나. 전세예요? 월세예요? 보증금은 얼마나 걸었어요? 아이고, 요즘은 다 그렇더라. 젊은 사람들이 집 구하기 너무 팍팍하지. 팍팍해. 옛날에는 조금 고생하면 집 살 수 있었는데 요새는 그게 안 되잖아. 나는요. 집이 있어요.”
뭐야…?
“아내랑, 노쇠한 부모님 모시고, 넷이 같이 살고 있어요. 아들딸들은 다 제 앞가림하느라 독립해 나갔지. 자랑은 아닌데, 제가 집이 두 채가 있어요. 사는 집이 하나 있고, 그냥 갖고 있는 집이 하나 있고. 사는 집이 방 네 개에 욕실 두 개고, 갈현동에 있어요. 얼마일 것 같아? 한 번 맞춰 봐. 내가 그거 3억 주고 샀는데, 지금 10억 됐잖아. 허허허. (너무 좋으시겠어요…) 그리고 저기 구산동 2층 주택은 어디 세를 놓으려고 부동산에 여기저기 올려달라고 일러뒀는데, 터가 좋은가, 생긴 게 봐줄 만해서 그런가, 그 뭐야, 테레비 드라마며 영화며 광고며, 장소 대여하고 싶다고 방송국에서 그렇게 연락이 와요. 그거 하면 푼돈 받기는 하는데 어휴, 집 더럽게 쓰고 시끄럽고…”
문득, 왜인지 기사님이 기묘할 정도로 차를 느리게 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뻥뻥 뚫린 도시고속도로를 시속 30km로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미터기 요금을 확인했더니 처음 우버 앱에 찍혔던 예상 요금에서 이미 6천 원이나 초과한 상태였다. 나는 알아차리고 말았다. 이 기사님, 계속 떠들고 싶어서… 이 여정을 끝내기에는 아직 할 얘기가 너무 많이 남아서… 스스로 완급조절을 하고 있는 것이구나…
“기사님, 조금 속도를…”
“실거주하는 집은 우리 와이프 명의로 딱 해 놨어요. 너무 좋아하고. 세 놓는 주택은 우리 친아버지 명의인데…”
미터기 요금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을 보고 나니 더 이상 기사님의 얘기가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기사님의 말을 막고, 최단 경로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남자라면은, 명의를 와이프한테 딱…”
“아, 기사님, 저기 앞 사거리에서 우회전이요.”
“그렇지, 우회전 오케이~ 아무튼 그래서 지난주에 또 무슨 촬영팀이라고 연락이…”
“기사님, 저기 편의점 끼고 바로 골목으로 쭉 들어가 주시면 돼요.”
룸미러 너머로 눈에 띄게 섭섭해진 기사님의 표정이 보였지만 독한 마음으로 내비게이션 노릇을 이어갔다. 좀 너무한가,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연고도 없는 초면의 아저씨가 보낸 하루의 세목, 그의 가족 구성원, 거주 형태, 집 위치, 집 명의까지 알았으면 이제 그만 알아봐도 되지 않나… 기사님은 입맛을 쩝 다시며 마지못해 엑셀을 밟기 시작했고, 아라비안 나이트도 마침내 끝이 났다. 집 앞에 도착하자 1만 2천 원 언저리로 예정되어 있었던 요금이 무려 2만 3천 원으로 둔갑해 있었다. 눈물이 찔끔 났다. 그래도 명색이 새해 첫날이 아니던가.
“기사님,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안전 운전하세요!”
“아유, 우리 손님도 새해 복 마않–이 많이 받으세요!”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아저씨는 미련 없이 떠나갔다. 그의 택시가 뿜어낸 하얀 매연이 흩어지는 텅 빈 골목길, 영하의 매서운 새벽 공기를 헤치고 집으로 향했다. 정말이지 양쪽 귀가 모두 곪은 것만 같았다. 무자비한 인포메이션으로 가득했던, 참으로 강렬한 새해의 시작이었다. 올해가 대체 얼마나 알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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