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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민
2026년 3월 24일
인력개발실은 대민 업무를 처리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장직인 특수사망본부나 먹물들인 사법심사본부의 관할이다. 특수사망본부는 우스갯소리로 3D 현장직이라 불리는데, 사고나 재해로 인한 돌발 사망자들을 다루는 곳이다. 시신을 수습할 때 영혼이 다른 곳으로 튕겨 나가거나 불시착하지 않도록 관리감독해야 하기 때문에 현장 출동이 필수이며 육체적으로도 가장 고되다. 사법심사본부는 죄나 원한과 관련된 상해, 살인,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를 관리하는데, 법적·행정적 절차가 복잡하고 감정 노동이 유독 심한 부서다. 현대로 접어들어 업무의 절대량도 과연 압도적으로 과중해졌다 할 만하다. 특히 사법심사본부에 세들어 있는 자살예방관리TF는, 폭주하는 이승의 자살자들을 닥치는 대로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 저승의 빈칸에 밀어 넣기에도 벅차 본연의 이름마저 무색해진 지 오래였다. 예방이라니, 당최 예방할 여유 따위가 어디에서 나올 수 있단 말인가? 현시점 명실상부 기피 부서 부동의 1위라는 사실에 그 누구도 반기를 들지 않을 것이었다.
인력개발실이란 무엇인가? 저승에 왜 이런 의뭉스러운 방이 존재한단 말인가?
저승본부의 행정적 유배지이자 차사들의 무덤, 그 어느 팀에서도 우리 식구로 쳐주지 않는 내놓은 자식, 소속도, 고유 업무도 없는 잉여 인력들을 짬처리할 방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명목상으로는 직무 역량 강화 및 재배치를 위한 부서이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치 순진한 차사는 아무도 없었다. 이곳에는 주로 대형 사고를 쳐서 징계를 받았거나, 담당하던 분야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소멸되어 쓸모없어진 차사들이 소속되어 있다. 복지나 예산 지원이 전무하며, 다른 본부 인력이 펑크(물론 ‘빵꾸’라는 표현이 더욱 실무적일 것이다)났을 때 땜빵으로 투입되거나 청사 내 잡무나 처리하는 깍두기 신세다. 대기발령 기간이 100년을 넘어가면 소멸되거나 명예퇴직 처리되어 비로소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즉 가만히 앉아 낡아빠진 사무실 의자에 파묻혀 있는 것이 곧 일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인력개발실에 실제로 업무 협조 이외의 불만이나 요구 사항이 접수되는 일은 지난 반세기 동안 단 한 건도 없었으며, 점심시간 전에 간단히 솔리테어나 하며 예열을 할 심산이었던 장씨는 별안간 나타난 팝업창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악성 민원 발생
분류: 사인에 관한 진상 규명 (F30)
접수자: 김시양
접수처: 인력개발실
단순 시스템 오류라 생각해 팝업을 닫으려던 찰나, 맞은편 자리로 누런 삼베옷을 펄럭이며 창주가 걸어와 앉는 것이 보였다. 벌써 죽음을 깨끗이 받아들인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생사여탈권에 미련이 없었던 것인지 모를 반듯하고 의문 없는 얼굴이었다. 장씨는 실마리를 찾은 탐정처럼 파티션 너머로 외쳤다.
“외부 접속망을 열어놓은 게 너야?”
“네? 무슨 말씀이신지.”
창주가 시선을 피하며 부러 자리를 정돈하는 시늉을 했으나, 이틀 차 신입사원의 책상에 정리할 만한 비품이 있을 리 만무했다.
“어제 쓰잘데 없는 소리를 잘도 했지 않아. 원귀의 탁한 기운이라느니, 억울한 타살로 의심된다느니 하면서.”
“그리고요?”
“수사를 해 봐야 한다느니, 주삿바늘이라느니.”
“귀담아들으셨군요?”
엣헴! 머쓱해진 장씨가 헛기침을 했다.
“다이렉트로 민원이 들어왔어. 인력개발실에는 없는 일이야.”
“김시양 씨가요?”
“이거 봐! 내 진작에 알았지!”
“아차차.”
“뻔뻔하긴!”
“그래요. 퇴근 전에 김시양 씨 영가랑 잠깐 얘기를 좀 했어요. 너무 억울해하면서, 구천을 요란스레 떠돌고 계시길래.”
“구천의 원귀와 당최 무슨 방도로 연락을 한 게야?!”
하다가 장씨는 문득 신입사원이 이승에서 신가물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는,
“저승에 와서도 죽기 전처럼 접신을 할 수 있다고?”
물었다.
“되던데요.”
“골치 아프네.”
“여튼 큰일 벌일 생각 하지 마시고, 정 못 견디겠으면 정식으로 이의 제기를 해 보셔라, 뭐 그런 얘길 하긴 했는데.”
“무슨 수로 해, 이의 제기를?”
“VPN을 깔아서, 구천의 IP 주소를 저승본부 사내 인트라넷으로 우회 연동시켜 줬어요.”
장씨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승에서의 민원이란 이승의 구청이나 동사무소 복도에서 벌어지는 악다구니나 소란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을 품은 영혼의 상당수가 저를 옭아매는 디지털 클라우드나 시스템 자체를 교란시켜 문제를 해결해 보리라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에 얼굴에 시퍼런 조명을 달고 이히히, 하는 곡소리를 내며 원한을 드러내는 구시대적 원귀는 이제 거의 멸종했으며, 각자가 생전에 가졌던 기술들을 활용하여 이승으로 돌아갈 틈을 찾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고전적인 귀신의 특질 역시 어느 정도 남아 있어, 물리적인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동반하여 사무용품을 망가뜨린다.
때마침 복도 끝에서부터 형광등이 타탓, 파바밧, 하는 소리를 내며 깜빡이기 시작했다. 공기 중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원귀 특유의 매캐한 먼지 냄새가 진동했다. 소실점 부근으로 두둥실 떠오른 검은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비행해 오고 있었다. 민원인이었다.
“인력개발실이, 인력개발실이 어디야!”
그녀의 상반신 곳곳에 회녹색과 보라색의 멍 자국이 보였고, 입술은 희끗희끗했고, 목덜미 께에는 주삿바늘 자국이 마고 로비의 이목구비만큼이나 선명했다. 어제 자살예방관리TF 업무 협조 시 형사교정팀으로 이관을 요청하며 빨간 펜으로 체크해 넘겼던 오분류 건이 틀림없었다.
“내 억울함을 풀어줘!”
김시양이 퀭한 눈으로 외치며 허공에 멈춰 서더니, 삼베옷과 검은 도포 차림의 두 저승사자를 목격하고는 이내 어미를 고쳤다. 저승이라고는 하지만, 이곳 역시 관공서임을 자각한 듯이.
“풀어주시오!”
난생처음 써보는 고릿적 말투가 어색했는지 김시양의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에 민망함이 스쳤다.
“귀신이 되었다고 전설의 고향에서 본 걸 흉내 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풀어주세요.”
김시양의 몸에서 떨어지는 검은 원한의 찌꺼기가 아스팔트처럼 방울지며 장씨가 깨끗하게 닦아 놓은 책상 모서리를 더럽히고 있었다.
“누가 날 죽였는지 똑똑히 봤어요! 그 새끼가 내 목에 주사기를 꽂았다고! 그러고 나서 파란색 니이트릴 장갑을 끼고 알약을 엄청 깠단 말이야. 내 주변에 그걸 마구 늘어놨어. 촬영 소품을 세팅하는 것마냥. 나 정말로 약물 중독이 아니야! 보장할 수도 있어요!”
창주가 두 주먹을 쥐고 분연히 일어났다.
“걱정 마세요! 제가 그 쓰레기 같은 새끼 명줄에 살을 날려서 당장 삼도천으로 끌고 오겠습니다. 장 차사님, 저 이승 출장 기안 하나 올리겠습니다! 즉시 결재해 주십시오!”
창주가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로 키보드를 쾅쾅 두드리려 할 때, 장씨가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그러고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서랍을 열어 위생티슈를 한 장 뽑았다. 그리고 압을 주어 망자가 흘린 원한의 검은 얼룩을 슥슥 닦아냈다. 책상이 말끔해질 때쯤 장씨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민원인. 우선 목소리 낮추시고요. 여기는 행정지원팀 산하 인력개발실입니다. 번지수를 잘못 찾으셨다는 뜻이에요."
"뭐라고? 어제 저 삼베옷 입은 아가씨가 이쪽으로 오라고 불렀는데!"
"저 인턴이 아직 수습 기간이라 업무 파악이 덜 되어서 실수를 좀 한 모양입니다."
장씨는 모니터 화면에 떠 있는 엑셀 창을 망자 쪽으로 돌려 보여주었다.
“자, 보이시죠? 민원인께서 원하시는 업무는 사법심사 5관 소관입니다. 형사교정팀 말이에요. 하지만 현재 민원인 분 전산 코드가 자살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해당 부서에 현재는 접수조차 불가능하실 겁니다. 시스템이 자동으로 튕겨내거든요.”
“그럼 난 이대로 개죽음을 당하라는 거야?! 다시 구천으로 꺼지라는 소릴 돌려 하는 거야? 재미있네. 이승에서 애초에 억울하게 죽으면 저승에서도 바로잡을 방법이 없다는 거잖아요?”
희번덕대던 망자의 눈에 기어코 피눈물이 맺혔다. 장씨가 서둘러 책상 위의 티슈 갑을 김시양 앞으로 툭 밀어주었다.
“비품에 피가 묻으면 곤란하니까요.”
“진짜 정떨어진다.”
“그래서 제가 지금부터 사망 사유 정정 및 이의신청서를 작성해 드릴 겁니다.”
전 직원 공용 서식 드라이브를 켠 장씨는 56년간 숙달된 솜씨로 능숙하게 더블클릭을 연타한 끝에 신청서를 인쇄하고는,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걸 들고 본관 2층 접수처로 가셔서 번호표 뽑고 대기하세요. 현재 대기 인원이 4천4백 명 정도 되니, 산술적으로 대략 3년 후에는 첫 심문 기일을 잡을 수 있겠네요.”
순간, 김시양을 두르고 있던 차가운 냉기가 푸스스 식는 것이 보였다.
“3년이요…?”
“네. 조금이라도 대기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용의자 인적 사항, 당시 현장 상황, 주장하시는 바를 육하원칙에 맞게 작성해 두시고요. 사인란에 정자체로 서명하시고, 2층으로 가세요. 접수가 어려우면 청원차사한테 도와달라고 하시고요.”
장씨가 턱짓으로 복도를 가리키자, 얼떨결에 서류를 받아 든 김시양이 터덜터덜 뒤돌아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형광등의 이상 현상도 멈추었다. 창주가 놀랍기도, 허탈하기도 한 표정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발이… 생겼네요.”
“그렇네.”
“저렇게 보내면 끝입니까? 진짜 3년 대기해야 하고요?”
“김창주, 귀신을 제압하는 데 복숭아나무 가지나 부적보다 효과적인 게 뭔지 알아?”
창주가 장씨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순서가 까마득하게 남은 번호표야. 기다리다 지쳐서 원한 자체가 휘발되거든. 밥이나 먹으러 가지.“
오늘 구내식당의 식단은 불어 터진 팥죽과 차게 말라비틀어진 동태전이었다. 창주는 아침의 사태를 곱씹으며 숟가락으로 팥죽의 새알심을 공연히 짓이겼다. 그러다가 귀신들에게 팥을 주다니, 이곳 영양사도 참으로 괴짜로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오후에는 뭐 하면 됩니까?”
“저승 보안망을 조작하고, 민원인을 사무실에 무단으로 출입시키는 사고를 쳤으니, 자네는 오후 내내 경위서를 써야지.”
“하!”
“함초롬바탕체 11포인트에 행간 160퍼센트, 자간과 쪽 여백은 건드리지 말고, hwpx 파일로 저장되지 않게 주의해.”
창주의 서슬 퍼렇던 눈에서 일순간 무당의 독기가 쑥 빠져나갔다. 그 모습이 소용돌이치던 거품이 순식간에 배수구로 꿀꺽 내려가는 것처럼 갑작스러웠다. 공무원적 관료주의는 원한으로 요동치는 영혼의 기운을 무화시킬뿐 아니라, 진실로 그 어떤 퇴마 의식보다도 지독하게 강한 것이었다.
(언젠가 먼 미래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