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4호 > 영업합니다 >
마리 퀴리에게 파리 디저트 기행 코스를 팝니다
👤유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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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퀴리, 1911년 프랑스 파리
새로운 길을 개척할 것인가,
달콤한 것으로 기분을 전환할 것인가
마리 퀴리는 방금 막 거절당했다. 프랑스과학아카데미는 그가 여자라는 이유로 사실상 입회를 거부했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지 벌써 여덟 해가 지났는데도, 남자들은 여전히 마리 퀴리의 성별을 업적보다도 큰 문제로 여겼다. 마리는 아카데미의 복도를 지나 야외로 걸어 나가며, 자신이 모욕당했다는 사실보다도 그 모욕이 너무나 저열하다는 사실에 깊은 피로를 느꼈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디에 화를 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광장 계단에는 수백 마리의 비둘기 떼가 먹이 주는 노파를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마리는 외투 깃을 여며 쥐고는, 저토록 번듯한 건물 안에 저토록 초라하고 변변치 못한 두뇌들이 모여 있음을 잠시 생각했다.
저는 선생님의 이름에 ‘부인’ 같은 후진 존칭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면 저 또한 프랑스과학아카데미의 머저리들과 다를 게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실 테니까요. 저는 선생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당신을 위대한 학자로 인정하는 것이 남성성의 상실을 초래하기라도 하듯 구는 대머리 과학자들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겠습니다. 그들은 죄다 미셸 푸코나 장 뤽 고다르처럼 생겼겠지요. 물론 푸코 선생이나 고다르 선생이 그런 사람은 아니겠습니다. 단지 생김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벗겨진 머리로 말미암아 이미 남성성이라는 것을 상당량 잃어버렸으니, 남아 있는 한 줌의 권위라도 소중히 그러모아 쥐고 놓지 않는 것이지요. 마치 소갈머리로 스타일링을 하듯… 그만두죠. 머리숱으로 모욕하는 일은 저열했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들이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선생님 같은 우수한 과학자보다 크고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너무 화가 나서, 가장 비열한 방식으로 치욕을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는 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방금 홧김에 예약해 버린 불도저 렌트도 취소하겠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브리태니커 어린이 위인전집을 통해서였어요. 물론 어린이 독자를 고려하여 쉽게 쓰여진 책이었지만, 조국 폴란드에 대한 당신의 사랑과 헌신, 피에르를 향한 사랑, 그리고 여성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에 대해 분명히 읽을 수 있었지요. 그리고 결혼하기 전 당신의 첫 번째 이름이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라는 사실도… 훗날 중학생이 된 뒤에 어느 잡지에서는 술에 만취했는데도 집에 가지 않는 후배들을 세워다 놓고 “마리 퀴리의 아명이 뭐야” 라고 윽박지르고는, 혀가 꼬이는 놈들을 차출하여 택시 태워 보내곤 했다는 어느 작가의 이야기를 본 적도 있답니다. 처음으로 참가한 과학 백일장에서 장영실이나 파브르가 아닌 선생님에 대해 적어냈습니다. 존경하는 인물을 물어보면 반드시 선생님의 이름을 외고는 했구요. 그러나 이후로는 선생님에 관한 생각을 하지 않고 지냈군요. 근 25년 만에 선생님에 대한 글을 남기게 되는군요.
당신이 프랑스를 비롯한 전 지구의 과학계에 이바지한 공로와 업적에도 불구하고, 단지 염색체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받고 모욕당하는 일이 너무나도 화가 납니다. 선생님이 그런 부당함을 겪은지 백 년하고도 십오 년이 흘렀습니다. 당신을 도울 방법이 있을까요? 과학자로서, 당신은 2026년에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이라 상상하세요?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수륙양용 로봇이 거리를 활보하는, 알약 하나로 하루치 영양소를 모두 섭취할 수 있는 세상? 기차로 국경을 건너듯이 우주를 여행하는 세상? 인공 태양과 구름으로 기후를 조작하는 세상? 책상 위에서 수만 명의 친구와 국경을 넘어 대화하는 세상?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선생님, 바른대로 말하겠습니다. 저는 선생님에게 무엇을 팔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미래의 일로 위로받을 분이 아니시라는 사실을 압니다. 선생님은 어차피 방사능의 단위가 되실 분이고, 11개월 뒤에 두 번째 노벨상을 받으실 분이며, 사후에는 얍삽한 프랑스가 허겁지겁 팡테옹으로 모실 분입니다. 제가 보험 견적서마냥 멋없게 주워섬겼던 미래의 풍경은 선생님의 업적 없이는 도래하지 않았을 일들입니다. 제가 감히 보태드릴 게 없습니다. 뭘 해야 할까요? 처음에는 저 어리석은 파리과학아카데미의 남자 과학자들을 골탕 먹일 비장의 무기, 이를테면 ‘입회 조건은 고환이란다’ 따위의 저급한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나 타일 대신 도배할 남자 화장실 문패 같은 것을 잔뜩 준비해 왔습니다만,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이런 얕은 수들을 돈 내고 사실 리 없다는 것을요. 오늘의 치욕을 죽을 때까지 입에 올리지 않겠지만, 연구를 그만두거나 삶을 저버리지도 않으실 테니까요. 그냥 묵묵히, 대범히, 거리낌없이 나아가실 테니까요. 코뿔소와도 같이.
저의 영업으로 선생님의 과거나 미래가 조금도 바뀌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저는 그냥 오늘의 구겨진 마음을 조금이나마 펴줄 다리미 같은 산책 코스를 준비했습니다. 이 코스는 1911년 1월 24일 오후 반 나절동안 진행되며, 프랑스과학아카데미 건물에서 시작해서 선생님 댁 문 앞에서 끝납니다. 이른바 ‘파리 디저트 기행’입니다!
PARIS, FRANCE, Arrondissements- 1911 Map by Emery Walker (출처: History On Paper)
1. 광장에서 동편으로 다섯 걸음
광장에서 너무 멀리 가지 마시고, 노파와 비둘기들이 아직 보이는 곳에서, 골목 안쪽에 있는 적당한 빵집에 들어가십시오. 거기에서 갓 구운 마들렌 한 봉지를 사십시오. 아니, 두 봉지로 나누어 달라고 하세요. 마들렌은 다 먹지 마시고 한 입만 베어 드세요. 그리고 코트 양쪽 주머니에 한 봉지씩 넣고 손을 집어넣어 보세요. 네. 산책하는 동안 날이 과히 쌀쌀하여 서둘러 지치실까 해서요. 마들렌을 손난로 삼아볼 요량으로 들어왔습니다. 1년 반 뒤에 마르셀 프루스트가 이 과자로 대단한 책을 펴내게 될 거예요. 미리 보여드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자, 이쪽으로요.
© Abigail Gordon (출처: www.parisweekender.com)
2. 퐁 데자르
고약한 프랑스과학아카데미의 정문이 정확히 정면에서 보이는군요. 다리 한가운데까지 천천히 걸어오세요. 마차는 다니지 못하는 길이니 안심하세요. 네, 거기예요, 선생님! 멈춰서 좌우를 바라보세요. 동쪽으로는 노트르담, 서쪽으로는 콩코드가 보입니다. 1891년 11월, 처음 파리에 당도해 보았던 바로 그 풍경이네요. 선생님은 고작 스물넷이었고, 폴란드어로 불법 자연과학 교육을 받고 이제 막 러시아 제국령을 빠져나오신 직후였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테지요?
오늘 선생님에게 모욕을 안겨준 저 문 너머의 사내들은 사실 열등감에 찌들어 발악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은요. 가운뎃손가락을 내밀어 보세요, 선생님. 저 치들에게 엿 한 번만 먹이자고요. 아니, 이런, 이렇게나 완강하게 거부하실 줄이야… 알겠습니다. 제가 대신 먹이도록 하죠. 이 머저리들! 이거나 먹어라! 평생 별 볼 일 없는 업적에 목매다가 죽어서는 후대에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하리라! 아니, 선생님, 방금 웃으신 것 같은데요? 제가 분명히 봤습니다. 좀 더 먹일까요? 알겠어요. 이 정도만 해두죠. 이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해 볼까요. 다리 건너편은 우안입니다.
Rumpelmayer's (출처: restaurant-ingthroughhistory.com)
3. 226 Rue de Rivoli
다리 건너 튈르리 정원을 왼편에 끼고 동쪽으로 15분 정도 걸으면 룸펠마이어라는 이름의 살롱드떼가 나옵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으신 1903년에 개업한 가게이지요. 워낙에 입소문이 자자하다 보니 들어는 보셨겠지만, 오늘이 아니었다면 선생님께서 평생 한 번도 안 들어가 보실 만한 그런 곳이지요. 부잣집 여인들이 공작새처럼 꼬리를 펼치고는 마카롱, 타르트 타탕, 밀푀유를 썰어 먹으며 우아한 티타임을 즐기는 곳이요. 이런 꿀꿀한 날에는 안 해보던 짓을 저질러 보는 게 기분 전환에 도움을 줄 거예요. 오늘 몽블랑이라는 것을 한 번 먹어보죠. 이곳의 시그니처라고 하니까요. 제가 주문 한번 해 봐도 되겠습니까? 오는 길에 시간의 터널에서 『론리 플래닛 프랑스 편』을 읽었거든요. 원래 배운 것을 선보이고 싶은 것이 여행자의 마음이랍니다. 큼큼. 무슈, 앙 몽블랑 에 되 떼, 쥬 부 프히. (Monsieur, un Mont-Blanc et deux thés, je vous prie.) 제 발음 좀 괜찮았나요? 저 자식이 고개를 약간 갸우뚱하면서 어깨를 올린 것 같았는데, 인종차별은 아니었겠지요? 콱 저 코쟁이 놈을 그냥…
선생님, 영업사원으로서 재미난 이야기 하나를 보고드리죠. 이 가게는 5년 뒤에 상호명이 바뀔 겁니다. 주인장 며느리의 이름인 ‘앙젤리나’로 말이에요. 시아버지의 가게를 며느리 이름으로 부르는 그런 일이 곧 일어난답니다. 아아 맞다, 무슈! 되 쇼콜라 쇼 아 앙포흐테 푸흐 레 프티트, 쥬 부 프히. 당 스 터흐모스. (Monsieur, deux chocolats chauds à emporter pour les petites, je vous prie. Dans ce thermos.) 이 보온병은 광장에서 선생님이 표결을 마치고 나오시는 걸 기다리다 하나 샀어요. 아세요? 마침 작년에 독일인들이 진공 보온병을 상용화했잖아요. 룸펠마이어에서 몽블랑 다음으로 유명한 것이 핫초콜릿이래요. ‘쇼콜라 라프리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푸딩만큼이나 진하다지 뭐예요. 여기에 담아서 댁에 가져가세요. 몽블랑과 홍차는 저랑 함께 이 자리에서 드시고요.
아! 마침 메뉴가 나왔군요. 몽블랑은 너무너무 달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요. 하지만 오늘은 이런 들쩍이 달콤이들이 분명 도움이 될 걸요. 음음, 홍차 맛 기가 막히네요.
4. 골목 카페
몽블랑이 죄다 소화가 될 만큼 많이 걸었네요. 날씨가 쌀쌀하긴 하지만 사실 저는 파리에 와보는 게 처음이라 좋아요. 그리고 선생님과 걸어서 우쭐합니다. 내가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한 희대의 탑티어 과학자와 산책을 하고 있다니. 내 어린 시절 가장 존경하던 인물과 어울리고 있다니. 우하하하. 퐁 뇌프와 퐁 생미셸을 건너 좌안으로 돌아오는 내내 미래의 이야기를 예언처럼 떠들어 댔더니 턱 근육이 얼얼할 지경이네요. 선생님이 재미있어하시는 것 같아서 멈출 수가 없었답니다. 계속 입버릇처럼 “그래요. 믿거나 말거나” 라고 말씀하시긴 했지만, 그래서 아주 약간 서운하기는 했지만, 사실은 저였어도 믿지 못했을 테니까요.
자, 거의 다 왔습니다. 다시 노트르담이 보이네요.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믿거나 말거나’ 하나 더 말씀드리고, 진짜 입 닫아볼게요. 1911년 11월, 그러니까 9개월 뒤에 말입니다. 어떤 독일계 스위스 청년이 선생님께 편지를 부칠 거예요. 편지를 받기 몇 주 전에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는 자일 것입니다. 브뤼셀 솔베이 회의에서요. 편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쓸 말이 변변찮은데 편지를 한다고 비웃지 말아 주십시오.
너무 화가 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중이 당신을 다루는 방식은 너무나 저열합니다. 당신이 그들을 경멸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저는 당신의 지성, 추진력, 정직함을 얼마나 존경하고 있는지, 브뤼셀에서 당신을 알게 된 것을 얼마나 행운이라 생각하는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들 같은 비열한 부류가 아니라면 그 누구든,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당신이나 랑주뱅 같은 인물들이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할 것입니다. 그 시정잡배들이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당신을 괴롭힌다면, 그냥 무시하세요. 그런 쓰레기 같은 말들이 그들에게만 속하도록 내버려 두세요.
큰 사랑을 담아, 알버트 아인슈타인
올해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리, 당신에게 영예로우면서도 가혹한 해가 될 것입니다. 가을께 랑주뱅과 당신에 대한 선정적이고 비열한 보도가 쏟아질 것이고, 스웨덴 과학원에서는 건방지게도 사생활 문제가 있으니 노벨화학상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할 것입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콧방귀도 뀌지 않고 냉철하게 해야 할 일을 하겠지만요. 겉보기에 흔들림 없고 고상할지라도, 그래요, 속이 말이 아니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인슈타인의 편지 내용을 미리 알려드리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가 편지에서 당부한 것들을 지금부터 명심해 주세요. 당신같은 멋진 학자가 여성이라서, 여성을 존경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너무 치욕스러워서, 끊임없이 건들거리며 당신에게 모멸감을 주려 하는 시정잡배들이 파리에만도 한 트럭입니다.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사람의 말을 하는 벌레라고 생각하세요. “그런 쓰레기 같은 말들이 그들에게만 속하도록 내버려 두세요.”
The Café du Dôme opened in 1898 (출처: www.mondrianroute.com)
카페에 도착했군요. 창가 자리에 앉으시지요. 저는 다른 테이블에서 원고를 정리하고 있겠습니다. 커피 한 잔을 시키고,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선생님이 앉아 계시고 싶은 만큼 앉아 계세요. 선생님께서 몸을 돌려 저를 찾고, 손을 들어 신호를 주시기 전까지는 아무 말도 걸지 않겠습니다. 생각이 많은 날은 말없이 카페에 앉아 있는 게 최고거든요. 스물둘, 바르샤바에서 비밀 교육을 받던 어느 날, 스물넷, 퐁 데자르 위에서 바라본 파리의 풍경, 행복하거나 고되었던 나날들… 이상하지요. 창문이라는 것은 그저 눈앞에 투명한 유리벽 하나를 덧댄 물건일 뿐인데, 왜 눈앞의 현실이 아닌 과거의 회한과 기억을 불러오는 것일까요…
5. 선생님 댁 앞
해가 지니 많이 쌀쌀하네요. 이제 댁으로 가시지요. 두 따님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이렌이 열 세살, 에브가 여섯 살이던가요? 집에 들어가시기 전에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는 미래에서 온 영업사원이지 방문판매원이 되고 싶지는 않으네요. 여기 아까 포장했던 핫초콜릿입니다. 와우, 1910년대 독일의 기술력이 대단하네요. 아직 따뜻해요. 스탠리 못지않군요. 들어가시면 외투를 벗으시고, 손을 씻으시고, 그다음에 이 보온병을 열어 컵에 나눠 따르고는 따님들 손에 한 잔씩 쥐여주세요.
선생님, 이상 제 영업은 종료입니다. 기분이 조금 나아지셨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어요. 가능한 한 자주 행복하시고, 알아서 위대해지세요. 선생님, 저 같은 잡상인에게 반나절의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른 들어가세요. 날이 추우니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