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3호 > 끝말잇기 > 
동거의 역사
👤유유민

[2026. 03. 19.]
제1기. 양성리 체제 (1991 ~ 2006)
문(門)은 인간이 공간의 일부를 떼어내어 자신만의 구역으로 정리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문은 닫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열어젖혀 외부와 연결되기 위해서도 존재하는 것이라고 게오르그 짐멜①은 말했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 분만실 문을 열어젖히고 그야말로 난생처음 균과 이산화탄소로 가득 찬 세계를 만끽한 뒤 어느 집 문을 열고 들어가 오랜 나날을 보냈다. 30대의 남자 한 명과 20대의 여자 한 명의 보살핌을 받으며 그들과 함께 살았다.


그로부터 9년 뒤 새로운 동거인이 등장한다.


동거인은 너무 작고 의사불통의 존재였기 때문에 동거인이라기보다는 동거…아기? 그래, 그런 것에 가까웠지만 곧 무럭무럭 자라 금세 아동이 되었으며 세 사람과의 동거 체제는 그로부터 약 7년간 유지되었다. 너무 평범해서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제2기. 함박생활관 체제 (2007 ~ 2009)
열일곱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3년간 나에게 할당된 거주지의 기본 형태는 가로 4미터, 세로 5미터, 높이 2미터가량의 콘크리트 직육면체였다. 여섯 명이 한 방을 같이 썼다. 이 공간의 체적은 약 40세제곱미터. 이 수치를 6으로 나누면 1인당 6.67세제곱미터로, 불과 한 평도 되지 않는다.

ⓒ 영양여자고등학교

방의 구조는 적당한 비대칭으로 양쪽 벽면에 바짝 붙어 있는 목재 2층 침대 3개, 현관 앞에 놓인 대형 거울과 한 사람당 한 칸씩 배당되었던 서랍장이 있었고, 그 옆으로 외투를 걸 수 있는 공용 붙박이장이 두 칸 있었다. 방마다 여섯 명의 사춘기 여자아이들이 밤낮없이 옹색한 시간을 보냈다. 구조물들을 제외하면 온전한 여유 공간이라 할 만한 부분은 사람 하나 제대로 눕기도 어려울 정도로 좁았는데, 심지어 여기에다 빨래 건조대까지 두어야 했기 때문에 일과를 마치고 세신도 끝나면 단체로 곡예를 하듯 이부자리로 향해야 했다. 우선 현관에 무질서하게 놓인 다섯 켤레의 삼선 슬리퍼를 피해 세 걸음을 직진한다. 그다음 빨래 건조대의 왼쪽 모서리를 향해 몸을 45도로 비틀어 회전한다. 마지막으로 침대 아래 칸 동거인이 아무렇게나 걸어둔 축축한 체육복 바짓가랑이 밑으로 고개를 숙여 통과한 뒤, 목재 사다리의 두 번째 칸을 밟고 성큼 도약해 눕는다. 누우면 코앞에 천장이 있다. 먼발치 창문 너머로 희미하게 달무리가 보인다. 쌕쌕거리는 동거인들의 숨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나는 자주 눈을 감고 우주로 접속하는 일을 상상했다. 그러면 작은 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넓어졌다.

전국 단위에서 신입생을 모집하는 학교였던 탓에 각 방을 구성하는 인원들 역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들쭉날쭉했다. 출신 지역, 생활 습관, 잠버릇, 정리정돈 방식, 실내 온도 취향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평서문의 끝을 올려 의문문처럼 발화하는 이, 단어의 첫음절에 엄청난 악센트를 부여하는 이, 모음을 길게 빼어 발음하는 이, 어떠한 등락도 없이 일정한 어조로 평평하게 말하는 이. 매일 밤 좁은 방 안에서 각기 다른 지역의 방언과 억양들이 부딪히고 섞이고 깔깔댔다. 흡사 군부대 같은 초라한 공동 샤워실에서는 클렌징폼으로 풍선만 한 크기의 거품을 만드는 비기나 샴푸와 린스를 동시에 해치우는 방법, 머리 빨리 말리는 노하우 같은 잡기술들의 전수가 이루어졌다. 호랑이 사감이 자리를 비우는 주말 밤이면 다들 어떻게든 밤새워 놀아보겠답시고 007 작전을 벌였다. (‘정아분식’ 사장님은 배달 음식이 금지된 기숙사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각종 천을 엮어 라푼젤의 머리처럼 내린 끈에다가 떡볶이와 순대가 든 봉지를 군말 없이 묶어주시곤 했다. 그럼 우리는 그것을 우물물처럼 길어올렸다.) 월 1회로 제한된 외박 날이면 가능한 가장 화려한 차림을 하고 시외버스, 고속버스, 무궁화호를 연계하여 전국으로 흩어졌다가 사흘 뒤 맨송맨송한 얼굴로 다시 모였다. 에어컨도 공기청정기도 없었던 산자락 시골에서 자아도 채 형성되지 못한 아이들이 당최 어떻게 복작복작 살아남았던 것인지 모른다.

기숙사 사칙에 따라 룸메이트는 한 학기 주기로 강제 교체되었고 그리하여 총 6학기의 거주 기간 동안 서른 명의 동거인이 나를 거쳐 갔다. 매트리스를 햇볕에 열두 번 말렸다. 모의고사를 열여덟 번 쳤다. 네 명과 절교했고, 일곱 명과 척을 졌다. 화장실, 진학지도실, 그리고 기물이 없는 공실에서 도합 여섯 명의 귀신을 목격했다. 좋은 날도 많았다. 야간자율학습 3교시와 4교시 사이 쉬는 시간마다 매일매일 달빛 아래 산책을 했다. 독서실에서 옆자리 사람과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 끼고 각자가 좋아하는 음악을 잠자코 들었다. 생일이라서, 우울해 보여서, 책에서 좋은 문장을 발견해서, 추천하고 싶은 과자가, 노래가, 잡지가 있다는 이유로 무지막지하게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주말이면 삼백여 명의 사생 전원이 체육관에② 모여 ‘무한도전’과 영화 한 편씩을–이터널 선샤인, 황후화, 타인의 삶, 블러드 다이아몬드, 1번가의 기적 등등을–보았고③, 홈마트에서 산 파스타 소스에 나초를 찍어 먹었다.

제3기. 레이크 힐 하우스 체제 (2014 ~ 2015)
스물네 살에 나는 대학교 2학년이 되었다. 절친한 학과 동기들과 나는 한 해 동안 자취나 기숙사 생활이나 통학 등을 각자 전전해 본 참이었다. 다음 집 계약은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마음으로 다 같이 부동산을 돌아다니고 매물 정보를 공유했다. 금액 대비 평수가 널찍하고 현관과 방이 구분되어 있고 수압이 충분하며 벽 색이 흰④ 빌라가 딱, 하나 있었다. 사나운 몰티즈를 기르는 성마른 사람이 주인으로 있는 곳이었다. 서류상으로는 각자의 이름으로 임대차 계약서를 썼지만 사실상 그것은 동거와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찜닭집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이 빌라는 고작 여덟 개의 호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중 나와 내 친구들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202호에, 그리고 친구들이 203호, 302호, 402호에, 앞집, 옆집, 윗집으로 각기 입주했다. 빌라 자체가 커다란 공동 주택이었고 각자의 현관문은 칸막이에 불과했다.

203호에서는 겨울이면 문을 활짝 열어둔 채 거대한 곰솥에 샹그리아를 끓였다. 그러면 나를 비롯한 친구들이 복도를 타고 퍼지는 알코올과 사과, 포도, 자몽, 팔각과 정향 냄새를 따라 집결했다. 매일 밤 무작위로 누군가의 집이 거실의 지위를 획득했다. 우리는 돌아가며 다른 호실을 점령해 배달 음식을 시켜 먹거나, 간이 네일 숍을 열어 서로의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라 주었다. 남자아이들도 아세톤 향을 맡으며 노닥거리곤 했다. 각자의 방 창문에 딸린 위태로운 테라스가 유용했다. 나갈 준비가 다 되었는지를 단톡방에 묻는 대신 창문에 대고 물어볼 수 있었다. 나긋나긋 소리를 내어도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의 동선은 대개 늘 일치했다. 아침이면 한 무리가 되어 학교로 갔고, 주말에도 떼를 지어 카페를 찾았다. 빌라 바깥의 공간에서도 우리는 항상 만났다. 맞은편 건물에서 밤낮없이 격정적인 신음소리가 창문을 타고 들리던 시기, 참다못한 우리는 민원을 넣거나 포스트잇을 써 붙이는 대신 주차장에 모여 그들의 지속시간(?)을 재고 야유를 보냈다. 슬프고 괴로운 일이 있으면 1층 주차장에 모여 서로를 달랬고, 서로의 귀가 시간을 챙겼다. 남의 연애, 아르바이트, 동아리, 교수, 크고 작은 사건들로 골머리를 앓았다. 생일이면 누군가의 집에 모여서 초를 불고 노래를 불렀다. 주말에는 시집을 읽고 담배를 태웠다. 겨울에 함박눈이 내리면 집 앞에서 눈싸움을 했다(정말이다). 길이 얼면 투다리에서 김치우동에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는 만취해서 썰매를 탔다(진짜다). 어찌 됐건 그 모든 일은 레이크 힐 하우스의 안팎을 둘러 이루어졌다. 이 시기, 우리는 각자의 도어록을 갖고 있었지만 한 번도 완벽하게 닫힌 집에 살지 않았다.

제4기. 2인 1묘 체제 (2019 ~ 현재)
스물여섯 이후 나는 비로소 현관문이 온전한 통제력을 발휘하는 1인용 요새를 쟁취했으나, 짐멜의 예언처럼 그 문은 기어코 다른 무언가를 끌어들이기 위해 다시 열리고 말았다.

스물아홉, 털북숭이 고양이의 반려 인간이 되었다. 서른 둘, 내 인생의 세 번째 동거인이었던 아기가 집채만 한 캐리어를 끌고 상경해 왔다. 집은 이제 3인분의 짐들로 그득히 채워졌다. 공기 중에 버섯 포자처럼 흰 털이 날리고 거실에서는 오독오독 사료 씹는 소리, 곧이어 찹찹 걷는 동물의 발소리, 후루룩 물 마시는 소리, 그리고 이제 학교 선생님이 된 아기가 무언가를 부글부글 끓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의 요새는 다시금 무기한 개방 상태로 전환되었으며, 언제 다시 닫히고 열릴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①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1909년에 에세이 「다리와 문(Brücke und Tür)」을 통해 건축물로서의 문(Door)이 지니는 폐쇄성과 개방성의 이중적 물리력을 분석했다.
② 율호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며, 야간자율학습이 이루어지는 도서관 위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③ 나는 방송반 기술부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짬이 차기 전까지는 체육관 꼭대기에 달린 조정실에서 영화를 영사하는 역할을 맡았다. 야한 장면이 나오면 빨리감기를 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도 갖고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엄청난 비난을 받곤 했다. 얘들아,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의 뜻은 아니었어.
④ 2010년대 초중반은 괴이한 컬러와 문양의 포인트 벽지가 지배하던 공포의 시대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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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6.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