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3호 > 끝말잇기 >
대련으로 가는 화물열차
👤유유민
[2026. 03. 07.]
대련의 중심부는 거대한 홀케이크 같다. 일정한 간격으로 칼선 낸 듯한 거대한 원형 광장 때문이다. 이 중산광장을 따라 둥글게 도는 외곽선 같은 도로가 있고, 그 도로에서 또다시 무려 열 개의 도로가 방사형으로 이리저리 뻗쳐 나간다. 뻗쳐 나간 열 개의 도로들이 마치 칼선처럼 보이는 것인데, 이때문에 하이테크 산업구인 이 도시 곳곳이 조각난 케이크 꼴로 저마다 금융, 벤처, IT 회사들을 밀집해둔 모양새가 된 셈이다. 구주국제호텔 쪽으로 걸어나가면 노면전차 정류장이 나오는데, 201번이나 202번 전차를 타고 38광장, 대련역, 27광장, 민주광장 등에 갈 수 있다. 미츠코가 미쓰코시 백화점에 갈 때나 타던 바로 그 노면전차의 원형 그대로가 지금도 운행되고 있는 것이다.
중산광장(中山广场) (출처: wikimapia)
사실 나는 아직 대련에 가본 적이 없다. 위에 나열한 대련의 풍경은 웹서핑과 유튜브 영상들을 통해 습득한 풍경을 묘사한 데 불과하다. 올해 늦가을께 근속 5주년에 대한 포상으로 발생할 100만 원의 지원금과 열흘짜리 리프레시 휴가를 대비하고 있을 뿐이다.
대단한 결심이나 기대하는 바는 없었다. 그저 비행시간이 한 시간 남짓으로 짧았으며, 놀랍도록 낮은 물가, 왕복 항공권이 15만 원인 데다 바이레도 어매니티를 구비한 오션뷰 힐튼에 1박 10만 원이면 묵을 수 있다는 사실이 대련행을 결정하게 된 요인이었다. 마침 중국에 무비자로 드나들 수 있는 기간이니, 가서 양꼬치에 병맥주나 마시고 이국의 정취 속에 파묻혀 볼까 하는 아주 느슨한 생각으로. 이전에 내가 대련에 대해 알던 것이라고는 중국 어딘가에 붙어 있는 항구 도시라는 것 정도였고, 지도를 켜고 근사한 5성급 호텔들을 아고다로 대충 훑어보며 4박 5일을 갈까, 7박 8일을 갈까 하는 것 따위를 고민했다.
그러나 조사를 거듭하다 보니 바라지 않았던 사실들을 알게 됐다. 러일전쟁, 만주 수탈의 전초기지, 식민의 역사, 관동군사령부.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대련과 여순을 빼앗고 관동군을 주둔시켰다. 낭만을 가중해 줄 노면전차 역시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깔아둔 것이었다. 제국주의 열강들은 이 항구를 통해 만주 벌판의 석탄과 대두를 수백만 톤씩 집어삼키고 실어 날랐다. 그 엄청난 집념의 스케일이라니. 그들은 무엇을 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파내고 싣고 나르는 데 몰두했던 것일까.
무언가를 끊임없이 실어 나르며 배를 불리려는 그 맹목적인 집착에 기가 질린다, 라고 생각하며 크롬 브라우저를 끄려다 빽빽하게 열려 있는 수십 개의 탭으로 시선이 옮겨갔다. 구글 맵에 박아둔 수십 개의 식당, 카페, 케이블카며 관광지의 좌표들, 다시는 볼 일 없을 영수증 리뷰 캡처본들, 카카오맵을 수놓은 수백 개의 깃발들, 클리핑 폴더에 처박혀 영원히 클릭 되지 않을 아티클과 이미 화석화된 채 핀터레스트 보드에서 썩어가는 레퍼런스들. 나는 대체 뭘 쓸어 담고 있는 거지? 여행은 아직 반년도 넘게 남았는데. 시딩의 성게만두나 꿔바로우가 다 무슨 소용이라고.
남만주철도가 실어 나른 석탄이며 군수물자가 아이클라우드에 전송되는, 영원히 소화해 내지 못할 정보들과 대단히 다른가? 나는야 즐겨찾기 호더. 그렇지만 이 추레한 운송에의 강박은 내 아이폰 안에만 있는가?
스물네 살때인가, 당장 이번 달의 전기세를 충당할 돈이 없어 심야 택배 아르바이트에 지원한 적이 있었다. 번화가 오피스텔 앞의 통근버스를 타고 말로만 듣던 옥천 허브에 끌려갔다. 무시무시하게 웅장한 물류센터 안에서 애호박 한 조각 들어있지 않은 허무한 된장찌개에 머슴밥을 밀어 넣은 다음 ‘반장’을 따라 정신없이 몸을 옮겼다. 그날 여덟 시간 동안 경험한 것은 지옥이었다! 내가 배정된 곳은 중분류 작업 라인이었는데,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몇 초에 하나꼴로 마구 밀려오는 택배 박스의 바코드를 찍은 다음 지역별 마대자루에 알맞게 던져넣어야만 했다. 자루가 적당히 차면 빠르게 끝을 매듭지어 뒤로 밀어내고 새로운 자루로 갈아 끼우는 일도 업무에 포함되어 있었다. 꽉 찬 마대자루는 상상 이상으로 무겁고 까칠까칠해서 온몸이 땀으로 젖고 손바닥이 다 헐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마지막으로 휴식한 지 최소 세 시간은 되었지 싶어 시간을 확인해보면 고작 15분이 지나있곤 했다. 도대체 하루치 택배가 왜 이 지경으로 많단 말인가? 내가 그날 분류한 택배만 해도 천 개는 되었을 텐데, 그럼 전국 물량은 도대체 몇 개였다는 소리야? <모던 타임즈>는 양반이었구나! 생각하면서 그 괴로운 밤을 보내고 현금 6만 5천 원을 벌어온 다음, 친구들에게 앞으로 CJ에서 택배를 시키면 죽여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기까지 했다.
창밖에 거대한 물류의 스펙터클이 365일 24시간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다. 전 국민의 도로명 주소를 모두 외울 때까지 골목을 달릴 듯한 오토바이 행렬이 그토록 필사적으로 운송하는 것은 제국의 명운을 건 군수물자가 아니라 볼품없는 플라스틱 용기에 처박힌 1인용 마라샹궈와 두쫀쿠와 해장용 스파게티다. 혹은 연회색 비닐에 담긴 수억 개의 로켓 택배이거나, 조잡한 오백 원짜리 잡동사니로 가득 찬 탐욕의 테무 장바구니다. 인류는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정교한 인프라를 구축해 놓고, 새벽 세 시에 고작 당근라페 샌드위치 한 봉지를 야작하는 대학생의 작업실 문 앞으로 실어 나르는 데 이 엄청난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 태평양 건너편에서 몇 달러짜리 플라스틱 쪼가리들을 내 우편함까지 데려오기 위해 거대한 화물선과 비행기와 트럭이 유기적인 시스템하에서 움직인다. 맙소사. 너무 부담스러워. 죄다 거기서 거기인 통관고유번호 하나로, 그것들은 도대체 어떤 기막힌 노하우에 따라 유실되지 않고 나를 찾아오는 거지? 이 글을 쓰다 보니 다시는 해외직구를 하지 못할 것만 같다. 어찌 됐거나 무언가를 싣고 달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시스템의 광기는 몇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 주체가 식민지를 수탈하려는 악마 같은 전범국들이든, 염경환이 광고하는 홈쇼핑이든 간에…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나는 화물이었던 것이다.
리프레시 휴가란 표면적으로는 “그동안 고생했으니 푹 쉬고 오라”는 달디단 포상이다. 그러나 좀 삐딱선을 타서, 현대 사회의 이성적인 문법으로 이를 번역하려 든다면 이는 유지보수 절차에 다름아니다. 완전히 방전되어 아주 못쓰게 되기 직전의 노쇠한 설비를 잠시 반출하여 냉각수를 붓고 열을 식히고 말리고 기름칠까지 해서 다시 공장라인에 장착하면 완료. 나는 정확히 여기에 포섭되어 있다. 일본이 대련에 쾌적한 서양식 인프라를 깐 것도, 조선을 근대화시킨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자원을 실어 나르고 잇속을 챙길 자이언트 시스템 유지를 위한 투자라는 점에서, 나는 화물이었던 것이다.
이국행 남방항공에 오르는 것이 나의 의지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정비소에 가는 것이었다. 컨베이어 벨트에 탄 것이었다. 배송되는 것이기에 지원금도 주는 것이었다. 내 팔뚝에 자외선 라이트를 비추면 비밀 잉크로 이렇게 적혀 있을지도 몰라.
취급 주의, 절대 던지지 마세요! 5년 근속자입니다.
꽤나 괜찮은 복지를 누리면서 너무 배은망덕한 거 아냐? 라고 못마땅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면 당신도 이 미친 현대 사회에서 너무 오래 일했다. 그렇다고 당신을 비난하거나 더러운 사측 앞잡이라고 흘겨볼 생각은 없다. 고백건대 사실 나도 이 휴가를 제법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기름 쳐 주고 비용을 들여 정기 점검해 주는 공장이라면……… 로봇 노동자들에게 안락한 환경이긴 하니까…… 자본주의가 지구촌을 하나의 촘촘한 물류망으로 환원해 버린 이상 결국 나도, 나를 정비소에 보내는 인사총무팀 직원들도, 정비소에서 나를 맞아줄 호텔리어들도 모두 벨트 위를 굴러가는 1인분의 화물에 불과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