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4호 > 영업합니다 >
기형도에게 비디오가게 뒷방을 팝니다
👤신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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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1985년 서울 순화동
흐트러진 머리를 고정할 것인가,
빈 방에 몸을 뉘일 것인가
부스스한 곱슬머리, 회색 외투 차림의 기형도는 이제 고작 스물다섯 살이었다. 중앙일보의 문화부 기자로서 신참 딱지를 막 뗀 무렵이었다. 그가 입사하던 1984년만 해도 회사는 서소문동에 있던 J빌딩에 적을 두고 있었으나 이듬해, 인근의 순화동에 번듯한 신사옥이 완공되면서 전 사원이 부산하게 책상이며 서류철을 옮겨야 했다. 대리석과 유리로 번쩍번쩍 광을 낸 건물에서 밤늦게 교정을 보고 나오면 안양의 집까지 가는 일은 너무 고되게 느껴졌다. 불 켜진 명보극장 간판 아래서 그는 잠시 걸음을 늦춘다. <깊고 푸른 밤>이 개봉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기에는 피곤했다. 독산동의 친한 동생네 집에 하룻밤 신세를 질까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달만 해도 그 집에 벌써 여섯 밤을 묵었다는 것을 떠올리니 더는 면목이 없었다.
어찌하여 당신은 퇴근길을 그리도 괴로워하십니까. 본래 출근길은 괴로워도, 퇴근길은 즐거워야 하는 것인데요. 이 상품 설명 카탈로그는 바로 그 불가사의에서 출발해 보려 합니다.
당신은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글을 씁니다. 주말에는 문예인이 많이 모이는 다방에 앉아 두터운 노트를 펼 테고요. 이리저리 흔들리며 달려가는 대중교통에 앉아서도 글을 쓰겠죠. 상사와 밥을 먹거나 담배를 태우는 틈새 시간에도 머릿속 만년필을 굴리고 있을 수 있겠네요. 그리하여 당신은 어디에서나 글을 쓰고 있지요? 당신은 참, 글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다만 회사에서는 당신의 글을 읽고, 또 간섭하는 누군가가 있을 거예요. ‘형도야, 그래, 이 표현은 조금 그렇지 않니’ 같은 말을 아주 거칠거나 부드럽게 건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죠. 혹은 그것이 사람이 아닌 거대한 시스템이나 구조, 대리석과 유리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아녜요, 중앙일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큰일 납니다. 당신이 택한 회사가 특히 나빠서, 혹은 당신이 함께 일하는 상사들이 특히 비열해서 그러한 짓을 저질렀다는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회사라는 게 그러합니다. 당신이 사는 1985년이 그러합니다. 2026년도 그러할 겁니다. 2080년까지 지구라는 게, 기업이라는 게, 국가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때도 그럴 겁니다. 우리는 이 거대한 무시간성 위에 개인의 역사를 포개어 살아가죠. 당신의 과거도 그랬을 겁니다. 권력과 폭력의 한가운데, 계속해 배반당하고 우울해야만 했던 당신의 과거. 그런데도 권력과 폭력이라는 힘의 단어는 은유나 직유, 환유로도 상기시키면 안 되겠지요. 그것이 대리석과 유리로 감싸진 사옥과 시대의 규칙입니다.
회사에서의 당신은 권력의 그림자도, 혹은 권력이 만들어낸 곰팡이들도, 아주 상관이 없어 보이는 것들까지도. 쓰기에 앞서 겁내야 할 겁니다. 혹시 이 단어, 구두점 하나가 어떠한 얼굴을 빌린 권력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아닌가에 관해서요. 이제 막 신참 딱지를 뗀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 ‘겐세이’가 들어오겠습니까. 당신처럼 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는 더더욱 참기 힘들 거예요. 마침표를 찍어버린 글의 첫 줄로 돌아가라는 타인의 명령이란, 얼마나 괴롭습니까.
그러한 상황을 살아야 하는 당신에게, 출근과 퇴근은 단지 공간을 옮기는 일이 아닐 겁니다. 당신은 글이라는 걸 처음 배웠을 때부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으니, 글을 쓰고 활자를 다루는 장소에 따라 거의 다른 자아로 이동하는 수준의 이탈감을 느끼겠죠. 당신도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겁니다. 회사에서 쓰는 나 자신과 회사 밖에서 쓰는 나 자신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다고요. 당신이 퇴근길을 괴로워하는 진짜 이유는 순화동과 소하동이 멀기 때문이 아닌 것이죠.
출근길보다 퇴근길이 더욱 괴로운 까닭은, 당신이 세상을 아직 사랑하기 때문일 겁니다. 권력을 신경 쓰며 활자를 다루는 자신을, 그보다 다채로운 가능성을 가진 야생의 세계에 데려다 놓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요. 당신은 당신 자신이 조금은 비겁하다고 느끼고, 어떻게든 그 두 자아를 화해시키고 싶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돈을 벌어야 하고, 무엇보다 활자를 다루는 일이라는 소중한 지면을 포기하기 싫을 거예요.
사실 문제의 많은 부분은 당신이 활자를 너무도 사랑한다는 것에서 비롯합니다. 당신은 글을 과도하게 사랑합니다. 글이 가진 힘을 의심하는 방향으로는 애써 눈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쓴 활자에 적잖은 위로를 받았을 겁니다. 당신이 쓴 글이 당신을 살렸을 겁니다. 당신이 지금 쓴 글이 당신의 과거를 구원했을 겁니다. 그래서 당신은 보도라는 것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럼에도 그 구원들이 괴로워, 당신은 도피하듯 <깊고 푸른 밤> 앞에 멈춰 섰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파악한 당신의 내밀함입니다.
밤 11시에 문을 닫는 비디오방을 하나 빌려두었습니다. 당신이 사는 동네 이름과 아주 닮은, 소화동에 있는 작은 비디오방이에요. 사옥에서는 천천히 걸어 12분 정도가 걸립니다. 적당한 정도의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산책하다 보면, 금세 도착합니다. 그 비디오 방을 운영하는 주인은 그닥 큰 꿈을 꾸진 않습니다. 비디오 대여로 전 세계에 영상을 송출하는 미디어 기업을 만들어 보려 한다거나, 해외 도피 자금을 모을 수단으로 영화를 팔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장은 그저 도매가로 좋아하는 영화를 사 모으고 싶어 비디오방을 열었다 합디다.
그래서인지 비디오가 줄지어 선, 손님들의 공간은 어찌 보면 음습하고, 또 소란해 보입니다. 스릴러, 로맨스, 코메디, 액숀, 같은… 카테고리 분류도 자세히 보면 엉망입니다. 알프레도 히치콕의 <사이코>가 코메디 섹션에 있거나,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가 액숀 섹션에 있는 식이죠.
그런데 사실 이 비디오 방의 백미는 사장이 낮에 머무는 뒷방입니다. 약간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주 푹신한 소파와 꽤 커다란 브라운관, 중상급의 스피커가 마련된 작은 1인 영화관이 마련돼 있지요. 영화관처럼 꾸며진 덕분에 잠도 아주 잘 온다고 합니다.
바깥에 알려져서는 안 될 1900년대 소련의 정치 영화나 수입이 금지된 일본의 포르노 영화도 아주 많다고요. 그래서인지 이 뒷방에 출입한 사람도 아주 적습니다. 소문만 무성한 존재이지요. 사장은 그 방에 꿀이라도 발라놓은 듯, 아주 경계가 심합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저잣거리에서 소문이 돌더군요. 밤 11시부터 아침 6시까지, 그 뒷방을 지킬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비디오방 주인이 밤마다 영화를 보기에는 노안이 심해졌다는 소문도 있고요, 비디오방을 닫아두던 셔터가 고장 나는 바람에 뒷방이 누군가에게 도난당할까 심히 두려워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함께 영화를 보던 남자와 사랑에 빠져 도피를 준비하고 있다는 풍문도 돌고요. 뭐, 진실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중요한 건 회사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당신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글 바깥으로 도피할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죠. 그곳에는 방세가 없습니다. 봉급이 없고요, 관계도 없습니다. 도란도란 대화할 친구도, 몸을 하나 뉘는 데 눈치를 볼 타인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활자가 없습니다. 기이한 취향을 갖고 있는 주인장 덕분에, 굳이 자막을 읽어 내려가지 않아도 트랜스 상태에 빠질 수 있는 도구가 널려있지요. 활자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꽤나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을 거예요.
문제가 있다면, 뒷방이 열린 기간은 끽해야 한 달 정도일 것이란 사실입니다. 그리 결정된 건 아니지만, 아주 자명한 결말이죠. 사랑의 도피는 오래 지속되기 힘들고, 셔터를 수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고요. 노안이 있다고 그 기이한 양반이 영화 보기를 포기하겠습니까? 그러니 결국 당신은 활자로 돌아가야 해요. 돌아갈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주 나쁜 일은 아닐 거예요.
당신은 아주 아름다운 문장으로 보도하곤 하잖아요. 당신도 알지 않습니까? 가끔 당신이 쓴 기사의 문장들은, 당신의 시만큼이나 감동적이라는 것을요.
오늘 쓰고 나온 기사를 생각해 보세요. 야간학교 출신 여공이 선생님이 되어 돌아왔다는 그 소식이요. 주경야독의 만학 끝에 교사의 꿈을 이루고, 모교에 돌아온 여공 학생 서정옥 교사를 묘사한 당신의 문장을요.
“단상의 교사와 단하의 제자는 서로 자신들의 과거와 미래를 비추어 보면서 뜨거운 공감으로 마음의 손을 맞잡고 있었다”①고 쓰지 않았습니까? 주경야독으로 서 교사가 이룬 뜨거운 공감을 떠올려 보자고요.
한 달의 도피면 충분할 겁니다. 그 이상의 도피는, 중앙일보에게, 세상에게 너무 가혹해요.
① 야간학교 출신 여공이 "선생님"되어 돌아왔다|서울 영등포여상 부설학급 6명에 겹친 경사, 1985년 3월 16일, 기형도, 중앙일보 정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