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4호 > 영업합니다 > 
기요아키에게 미부 아키노부의 연애편지를 팝니다
👤유유민

◆ 마쓰가에 기요아키, 1912년 일본 도쿄
잘못을 수습할 것인가, 내면의 평화를 찾을 것인가

“아니요! 결단코 아닙니다. 소생은 그 하룻밤에서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나아가 아무도 찾지 않는 광야로 달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거기선 게이샤와 귀부인, 여염집 여성과 화류계 여성, 교육받지 않은 여자와 청탑사 패들 간의 구별도 전혀 없습니다. 여자란 여자는 모두 거짓말쟁이에다 ‘음란한 육체를 가진 작은 동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전부 화장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의상입니다.” 편지를 이렇게 마무리한 것은 아니다. 게이샤와 귀부인, 화류계 여성을 만난 하룻밤도 거짓이다. 하지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을 ‘귀여운 기요 님’이라 생각하는 사토코에게 복수하는 것, 이제 자신도 게이샤를 돈 주고 사는 ‘진짜 추한, 진짜 남성’이 되었음을 선언하는 것만이 중요했다. 야생마처럼 펜촉을 놀려 순식간에 쓴 편지는 금세 사토코의 집으로 배달됐다. 편지가 사토코의 손에 쥐어지는 순간, 기요아키는 무언가를 느낀 것이다. 그 거짓말, 그 활자들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한순간의 실수로 사랑하는 사토코를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음을. 사토코는 그 편지를 읽었을까? 아마 방금 막 받았을 텐데, 사토코가 편지를 읽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기요아키 군. 참으로 어리석군요. 당신은 구제불능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 수백 가지의 방법 가운데 가장 저열한 선택지를 골랐습니다. 어려서 오판했다는 핑계는 대지 마세요. 대개 어린 남자들은 단순히 경솔할 뿐이지만, 당신은 그 경솔함으로 타인을 괴롭게 한 것입니다. 하물며 그 타인이 연모하는 여인이라니, 최악입니다! 사토코에게 그 편지가 도착할 순간을 상상해 보세요. 아야쿠라 백작가 저택이 아자부 맨 끝자락에 있으니 우편배달부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편지 더미를 들고 있는 손의 악력도 놀라울 만큼 약해져 있겠지요. 늙은 하녀 다데시나는 골짜기 같은 주름과 등이 굽은 노파의 육체 뒤에 숨겨진 매서운 동체시력과 노련한 몸놀림으로 그의 손에서 편지봉투를 낚아챌 것입니다. 다데시나처럼 평생 판을 읽어온 하녀가 편지의 내용을 사전 검열하지 않을 리 없겠지요. 다데시나는 품속에 숨겨둔 주머니칼을 꺼내 봉투를 예리하게 긋고, 접혀 있는 편지를 둘둘 펼쳐 그 끔찍한 연서를 전광석화와도 같이 속독할 것입니다. 그러고는 생각하겠지요.

‘이건 우리 사토코 아가씨에게서 마쓰가에가 애송이를 떼어낼 절호의 기회다!’

다데시나는 시간이 지체되면 이 편지의 잉크가 휘발된다고 믿기라도 하는 듯이, 한 손으로는 치마폭을 구겨 쥐고, 한 손에는 편지봉투를 든 채 들쥐마냥 재빠르게 계단을 오를 것입니다. 2층 동편에 자리한 사토코의 방을 향해.

요지는, 당신이 보낸 편지를 사토코가 읽지 않을 방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당신은 실수를 저질렀으며, 그 실수는 쏟아진 물이며, 이미 소가 뛰쳐나간 뒤의 외양간입니다. 기요아키 군, 당신이 어떤 발악을 하든 사토코는 반드시 그리고 끝끝내 읽게 됩니다. 게이샤와 귀부인, 여염집 여성과 화류계 여성, 교육받지 않은 여자와 청탑사패들 간의 구별이 없는 ‘상남자의 광야’에 진입했다는 당신의 거짓 고백을. 말해보세요. 그것은 “사토코, 너 역시도 그저 몸뚱아리일 뿐이니, 내게 복종해”라는 으름장이었지 않아요? 이렇게 적극적으로 독해하는 것을 들으니 어때요? 겨울철 언덕배기에 덩그러니 홀로 큰 나무의 가지처럼 볼품없이 떨고 있나요? 수치심에 자결하고 싶을 만큼 눈물이 솟구치나요? 그렇다면 참으로 다행입니다. 당신에게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염치가 남아 있다는 증거니까요. 저는 기요아키 군에게 아직 구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편지에서는 잔뜩 센 척했지만, 사실 당신은 더러운 아버지의 강권에도 게이샤에게 가지 않았고, 그것이 추접하다고 생각하며, 오로지 사토코와의 키스 끝에 울려댈 종소리만을 염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기요아키 군을 돕고자 합니다.

미부 아키노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도 들어보지 못했으니 그런 편지를 썼겠지요. 마쓰가에가처럼 유복한 집안의 자제가 미부 아키노부에 대해 알았다면 그를 부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요. 미부 아키노부 씨는 지금 도쿄에서 가장 이름난 연애편지 대필가입니다. 그의 정체에 관해, 제각기 모두 단편소설처럼 들리는 온갖 소문들이 있습니다만, 저는 미부 씨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말을 아끼려 합니다. 당신이 사토코에게 괴이한 편지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저는 곧장 미부 씨를 찾아갔습니다. 이 가엾고 미숙한 소년은 너무나 빨리 귀공자 되기를 포기하고, 막부에 널리고 널린 시정잡배의 인생을 시작하고 만 것이라며 안타까워했지요. (무례한 표현들에 대해서는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미부 씨는 경멸하거나 괴로운 표정을 짓지 않더군요. 되레 반색하며 저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요아키 군에게 필요한 것은, 지독하게 잘 쓴 다음 편지야!” 라고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부 씨가 대필해준 연애편지로 성혼한 부부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미부 씨의 편지를 전해 받은 모든 사람들은 두 손을 모으고,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달고, 두 귀가 시뻘게진 채로 가슴을 들썩거리다가, 이내 발신인을 벅차도록 끌어안고는 했지요. 그의 편지는 사내와 사내, 여인과 여인도 너끈히 잇습니다. 시도해 본 적은 없지만 호랑이와 가젤조차 그의 편지로 성료될 수 있을 것입니다.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이들조차 미부 씨의 편지로 사면받았습니다.

제가 미부 씨 본인은 아니지만, 아마도 미부 씨의 편지는 기요아키 군을 변호하지 않을 것입니다. 용서해 달라거나, 사실 나는 앞전에 보낸 편지처럼 생각지 않는다거나 하는 변명은 조금도 쓰지 않을 것입니다. 미부 씨가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잘 쓰인 연애편지는 발신자를 꾸며대지 않아. 연민하게 할 뿐이지.”

미부 씨의 연애편지는 결코 첫 문장에서 사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치부를 가장 고통스러운 문장으로 쓰고, 그것이 제 일부가 아니라 자기 몸에서 토해낸 오물인 양 모진 말로 혐오하지요. 그러면 상대방은 그렇구나, 이 자는 적어도 도망치는 자는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미 후진 인간이 되어버린 뒤에는, 그 후짐을 애써 가리며 근사한 척 어깨를 부풀리는 것보다 당신이 스스로의 후짐을 얼마나 날카롭고 통렬하게 적시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 더욱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토코의 마음은 일순 연민으로 동하게 됩니다. 그 찰나 같은 연민은 사토코가 가지고 있던 사랑과 기이하게 들러붙게 되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미부 씨의 연애편지는 문학적이라기보다 차라리 화학적인 원리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물론 너무나 당연하게도 미부 씨의 연애편지는 이가 썩을 정도로 감미로울 것입니다. 그는 절세의 문장가이며, 흔해빠진 도쿄의 문사들과는 무언가 다른 것들을 써낼 줄 압니다. 호사가들은 그것을 두고 미부 씨가 타고나기를 우울한 성정이라거나, 혼인에 한 번 실패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떠들어대지만, 저는 때때로 그가 바다를 건너온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혹은 이 땅에 대해 냉소하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아, 쓰잘데없는 말을 많이도 했군요.

어쨌거나 미부 씨는 아름다운 문장을 쓰기 위해 대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인도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사토코가 편지에 감화될 까닭은 달콤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기요아키 군, 당신이 오로지 사토코에게 용서받기 위하여, 사토코를 향한 사랑으로 인하여, 당신의 손으로 직접 당신의 폐부를 찢어발기고 고뇌했다 믿기 때문입니다. 미부 씨의 펜으로 쓰여질 당신의 연애편지는 한치도 변명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가여워지고, 그러면서도 솔직하다고 우쭐대지 않음으로써 덜 역겨워질 것입니다. 사토코는 당신의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앵두 같은 입술로 속삭이겠지요. 아니, 기요아키 님, 왜 이렇게까지…

모든 허영을 벗어낸 뒤에야 비로소 사랑을 고백하는 연애편지의 말미에서, 사토코는 곧장 울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도 편지지를 한참이나 매만지겠지요. 그러고 나면 숨을 한 번 고른 다음, 다데시나를 불러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할 것입니다.

“마쓰가에가로 가는 마차를 준비해 줘.”

달리는 마차 밖으로는 눈이 내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기요아키 군은 손 하나 까딱 않고도 꿈에 그리던 첫 입맞춤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떠십니까, 기요아키 군. 미부 씨의 연애편지로 첫사랑을 만회해 보시겠습니까?

Tags: 유유민 4호 영업합니다 문학


Updated 26.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