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말잇기 –  기성세대 –  대련 –  연기수업 – 업무일지 – 지뢰찾기 – 기립박수 – 수요일 – 일등석 – 석관동 – 동거 – 거수 –  수다쟁이 이민  민원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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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 해킹하기
신포도
2026년 3월 4일



장 뤽 고다르를 잘 알진 못하지만 그를 둘러싼 많은 해석과 추측 가운데 기억에 오래 남았던 것이라면 그가 영화 <만사형통>을 찍게 된 경위, 혹은 마음가짐과 관련한 것이었다.

        고다르는 68혁명쯤부터 이상한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1967년에는 <주말>에서 부르주아의 허위의식을 꼬집고, <중국 여인>에서 문화대혁명을 다룬다. 1968년을 전후로 고다르는 장 피에르 고랭을 만나면서 마오주의에 빠진다. '지가 베르토프 집단'을 결성, 수많은 정치-혁명-비디오 영화를 찍기에 이른다.

        <다른 것과 다를 바 없는 영화> <대영제국의 소리>, <프라우다>,  <즐거운 지식>, <원 플러스 원>, <동풍>, <제인에게 보내는 편지> 등… <제인에게 보내는 편지> 이후에도 많은 작품을 시도했지만 대부분 미완성으로 그쳤다고 한다.

        당시 고다르와 함께했던 장 피에르 고랭은 2004년 인터뷰에서 과거를 이렇게 회상한다.

"당시 모든 것이 해체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시 검토받기 위해 테이블 위에 올려진 상태였죠. 이미지와 사운드의 형식이 사방에서 의심받고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교차로에 서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진정한' 하나의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당시 벌어지던 그 파편화된 질문들 속에서 어떤 대화를 엮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타인의 실험적 성과를 통째로 받아들인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실험이란 각자가 가진 경험의 특수성을 굴절시켜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혁명은 실패로 돌아간다. 그 이후에 고다르와 고랭이 어떻게 싸우고 또 화해했는지, 싸우기는 했는지, 혹은 별생각이 없었는지까지는 모를 일이다. 지가 베르토프 집단은 사라졌지만 고다르는 고랭과 함께 한 편의 영화를 더 찍는다. 더불어, 본격 스타들과 함께한다.

        자신보다 9살 많은 이탈리아 출신의 배우 겸 샹송 가수이자 댄서, 미용사, 방송인인 이브 몽땅, 자신보다 7살 어린 폰다 가문 출신의 여배우 제인 폰다와 함께 찍은 ‘본격 상업 영화’, 제목은 <만사형통>이었다. 조금 더 짭짤한 발음으로는 ‘뚜바비엥’이라 한다.

        고다르는 타협한 걸까? 비디오의 눈으로, 지가 베르토프처럼, 진짜 중요한 철학과 정치 이야기를 나누길 포기한 걸까? 고다르는 도망쳤나? 낙원, 아니, 지옥보다 아주 약간 나을 어딘가를 찾아? 

        고다르와 고랭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발명하려 했다. 모든 것의 해체, 모든 것의 재검토와 함께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했다. 굳이 교차로에 섰다. 그 ‘완전히 새로운 것’은 마오주의의 이름으로 도래했다. 

        그러나 결국 고다르는 과거를 택한다. 창발하기보다는, 다시 인용하기로 마음먹는다. 과거의 등에 업히기. 그것이 고다르가 혁명의 실패를 뒤로하고 나아갈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만사형통>은 타협이나 포기, 도주보다는 윤활이나 점액질에 가깝지 않을까?

        그 미끄덩한 점액질의 본성, 그것은 '기성세대 해킹'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현대 사회를 ‘거대 담론의 종언 이후’라 정의한다. 현대 사회는 거대 담론을 잃었다. 그 원인에 대한 현상으로서 비평과 문예가 위기에 처한 것이다.

        히로키가 말하는 거대 담론의 종말은 교양이 붕괴했다거나 공통된 규범의식이 사라졌다는 수준의 파편적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근본적이고 추상적인 상실에 관한 주장이다. 그는 3가지 축으로 이 상실을 정의한다.

① 동시대의 사람들은 타인이 무얼 믿고, 무얼 신념으로 삼든 별 상관하지 않지만
② 타인이 본인의 신념을 자신에게 강요하거나 설득하는 것은 극도로 혐오하며
③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혹은 타인은 타인, 혹은 나의 신념을 감시하고 제한한다.

이것이 기성세대의 소멸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기성세대라는 단어를 택했지만, 첫 타이핑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기성세대에 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급히 깨달았다. 나는 기성세대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그들 개개인이 공유하는 교집합적 특성은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럴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와는 무관하게 그럴 능력 자체가 없었다. 그래, 나는 기성세대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장년, 중년층이 되면 그들은 기성세대가 되는 걸까? 아주 거칠게 말해 40대, 50대, 60대면 기성세대일까?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에 따르자면 기성세대는 "현재 사회를 이끌어 가는 나이가 든 세대"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로 나이 든 세대가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물론 국회의사당에는 나이 지긋한 남성이 가득하지만, 사회와 세계는 정치판과 의회를 언제나 초과한다.

        외려 내게 기성세대의 정의와 더 가까워 보이는 것은 제니나 로제, 광화문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BTS, 비밀리에 결혼한 톰 홀랜드와 젠데이야인 것 같은데… 어쩌면 이것은 기성세대의 소멸에서 나아가, 세대 자체의 소멸일지도 모른다. 세대가 아닌 개인이 솟구치는 시대. 개인이 주도하고, 개인이 이끄는, 인플루언서가 부르주아를 대체하는 시대. 덩어리로서 묶을 수도 없는, 모두가 너무나도 특별해진 나머지 특별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상해진, 세대 소멸의 시대.

        그래, 예전만 해도 ‘중요한 문제’들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는 덩어리적 표현이 힘을 갖던 때가 있었다. 모두가 골몰하던, 모두에게 중요했던 의제가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이 그랬다. IMF, 인재, 한국전쟁, 식민 시대, 대중운동, 왕의 죽음, 세조의 쿠데타. 그래, 그런 것들은 시대와 세대를 잉여로서 생산하며 ‘중요한 문제’의 자리에 놓여 있었다.

        고다르에게 마오주의는 신대륙이다. 구대륙이 없었다면 신대륙이라는 정의는 불가능해진다. 구대륙에서 떠나온 자에게만 신대륙은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선물이어야만 사람들은 굳이 구대륙을 떠나겠다는 귀찮은 결심을 해낸다. 그것이 결단이고, 그것이 신념인 것이다.

        과거는 떠날 대륙 위에 존재했으며, 고향이 있었기에 실향민이 될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내 옆자리의 누군가가 마오주의를 믿든, 짐 캐리의 안면 거상술 혹은 바이든의 가면 뒤 모습을 믿든 나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은 각자의 현실을 창조한 뒤 그 안에서 안락하게 살아간다.

        고다르의 영화는 로셀리니에서, 마오쩌둥에서, 할리우드 문법에서 시작했다. 그는 과거에 기생했기에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냈노라, 자신의 결단을 주장할 수 있었다. 결단한 자였기에 그는 당당했다. 자신의 실패 앞에서도. 만일 그가 과거에 기생하지 않았더라면, <만사형통>은 그저 개인의 변덕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변곡이 그저 고다르의 변심이었다면, 우리는 그를 거장이라 불렀을까? 우리는 기성세대와 세대를 잃으면서, 그것에 기생할 기회 역시 놓쳐버린 걸지 모른다.

        기성세대가 사라져서, 우리는 그들을 해킹할 수 없다. 해킹이라는 돛과 바람을 비열하게 이용할 수 없다.

        해킹은 대륙을 만들어내는 것과 다르다. 새로운 코드, 문법을 개설하기를 포기한다. 대신 이미 짜인 코드에 변칙성을 만든다. 존재하는 것을 비틀고 뒤튼다. 비틀거나 뒤틀 대상이 없으면 해킹도 할 수 없다. 해커들이 굳이 해킹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빠르고 간단한 길이기 때문이다. 주춧돌부터 세울 필요 없이, 돌을 만들거나 다듬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 없이, 이미 존재하는 힘에 자신의 의지를 덧붙일 수 있다. 그래서 해킹은 약자의 편이다. 약자에게는 시간과 자원이 무한하지 않으므로. 신세대와 신대륙의 출현을 위해 필요한 건 새로움이 아니다. 기성세대의 등, 이미 짜인 코드, 단단히 선 주춧돌, 딱딱한 등과 어깨다. 

        새로이 기성세대를 발굴해서 그것을 해킹하는 것은 그닥 효용이 없다. 무언가를 발명해 내는 것? 그것이 싫어서 굳이 해킹하는 것이므로.

        기성세대의 흔적기관 같은 것이 있다면, 그를 이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제부터 나오는 모든 방안은 어떤 증거도 없는 나만의 상상일 뿐이다.) 영포티의 기이할 정도의 자신감, ‘고나리’질, “그러면 안 돼”라고 굳이 말하는 오지랖, 오지랖을 부리다가 싸우기.

        물론 이것들이 그저 깔깔대는 흉내에만 그치면 안 될 것이다. 그들이 부리는 힘을 해킹적 동력처럼 활용하며, 점유되지 않은 힘을 신세대에, 새로운 대륙에 내어주는 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냉소적인 흉내에서 벗어나는 것. 유튜브에 떠도는 코미디언들의 기성세대 흉내, 가면 쓰기에서 더 나아가는 법은 무엇일까? ‘그런 걸 믿다니 너는 참 이상하구나’ ‘그딴 신념을 갖고 있다니, 너는 참 안 될 놈이구나’라는 이야기를 거칠게 던지기. 캔슬하지 않고 간섭하기. 굽히지 않기보다 잘 굽히는 법을 배우기.

        늙고 힘센 자들을 죽여버리는 게 아니라, 그들의 머리 위에서 세상을 보기. 다만, 광각렌즈는 경계하면서. 





① 글라우버 로샤와 고다르의 벗: 장-피에르 고랭 인터뷰 (https://www1.folha.uol.com.br/fsp/mais/fs2006200404.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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