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2호 > 교환일기 >
국힙을 사랑하게 된 경위에 대한 교신 #6
👤신포도
사실 차지 유니버스는 구글이라는 거대 테크 기업이 얄팍한 알고리즘 기술로 조형해 낸 백일몽 같은 것은 아니겠지? 만에하나 그렇다 해도 인정할 생각은 없다만….
<이빨, 다리, 깃발, 폭탄> 비슷한 그 노래는 언오피셜보이의 <그물, 덫, 발사대기, 포획>이야. 나는 <이다깃폭>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영화의 제목을 들었을 때 즉시 <그덫발포>를 떠올렸지. 우리가 경험한 것의 선후관계가 뒤섞여있긴 하지만, 그것이 교환될 때① 의 즐거움이란….
네 일기를 읽고 나서 나 역시 스윙스에 관한 생각을 했어. 근데, 생각할 것도 없이 나는 스윙스의 음악에 관해 잘 모르더라고. 첫 일기에 FT아일랜드의 모든 멤버를 동일한 깊이로 좋아할 수 없었다는 것, 그리고 그 편애에 관해 약간의 부채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기억나? 저스트뮤직에 소속된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즐겨듣던 내게 스윙스는 비슷한 맥락의 부채의식을 얹어주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 스윙스 음악의 매력? 같은 걸 잘 느껴본 기억이 없어서. 목소리가 느끼하다, 도치법을 즐겨 쓴다, 저스트뮤직에서 나온 많은 노래에 피처링으로 끼어있다, 정도의 인식이랄까? 솔직히 펀치라인이 뛰어나게 재미있다는 생각도 별로 해본 적 없어. 나는 토종 한국인이기 때문일지도… 혹은, 이 정도의 말장난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거대 자신감이 숨어있는지도 모를 일이지.
그렇다고 나는 스윙스를 모르는 사람일까? 그 질문에 과감하게 “맞아요!”라고 답하기 어려운 것은, 내가 스윙스가 얽힌 밈을 즐겼기 때문인 것 같아. “이리로 와요.” “왜 나한테 왔어요?” 따위의 것. 누구나 이해할 수 없는 정도의 열정으로 연기에 꿋꿋이 도전하고, 욕을 먹어도 그만두지 않는 것. 스윙스는 사람 자체가 단단한 것 같아. 그렇게 단단하다는 것 자체가 너무 이상한 것 같아. 그렇지 않아? 그의 성정이나 욕망이 바르다거나 힙하다거나, 멋있다는 류의 가치판단은 못 하겠는데, 그냥 단단해 보여. 누구도 스윙스를 말릴 수 없다!는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게 가끔은 어색하지. 그렇기에 스윙스는 나와는 너무 먼 사람 같고… 오히려 자신의 스캔들 기사를 쓴 기자를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저주하는 천재노창의 마음이 나와 훨씬 가까운 것 같아서… (신포도는 모든 고통의 이름들을 기억하고 있다.)
사실 나한테 스윙스의 힙합은 스윙스의 노래보다는 그가 해왔던 일, 만나고 떠나보냈던 수많은 사람들, 정신병과 탈영, 뇌절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 돈가스 드립, 짐티피의 실패, 홍대 앞 사거리에 돌아다니는 과도하게 거대한 벤틀리, 지나치게 예쁜 전 여자친구, 기리보이가 스탠다드프렌즈로 소속을 바꾼 것, <타짜4>, <폭싹 속았수다>의 영범이를 따라하는 스윙스의 찡그린 표정, 살이 쪘다 빠졌다 하는 고무줄스러움, 쇼미더머니의 프로듀서였다가, 참가자였다가, 프로듀서였다가, 참가자였다가…. 하는 것들과 더 가까운 느낌이야. 그래서 외려 노래가 재미가 없지. 그의 삶이 언제나 가사와 노래와 재치 있는 펀치라인들을 초과해 버리니까. 내가 기리보이와 천재노창, 씨잼의 노래를 즐겼던 건 그들의 삶이 생각보다 재미없기 때문은 아닐까? 스윙스의 삶은 음악보다 더 재미있는 것 같고.
“나의 카오스를 세상의 코스모스로 바꾸려면 나는 나 자신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나올 수밖에 없”다면 사실 스윙스는 자신의 카오스를 코스모스로 바꾸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아. 그래서 그는 ‘No Mercy’에서 맥락 없는 괴명을 지르다가, 웃다가, 다시 비명을 지른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고. 그럼에도 나는 스윙스의 음악을 잘 모르니,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으니, 스윙스라는 사람을 붙잡고 힙합과 삶, 그들이 어떠한 집합 관계에 놓여있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더 이어나갈 수는 없겠어.
힙합하는 사람들은 이상한 짓을 많이 하고, 또 당하잖아. 정상수, 정상수 앞에서 고기 굽는 기리보이, 김상민그는감히전설이라고할수있다의 몸매 개쩌는 얼굴 없는 여자친구, 키스에이프와 오케이션의 케타민 일대기, 천재노창의 인스타그램, 칸예 웨스트의 진솔한 정신병 고백, 이제는 뭐 때문에 싸우는지도 잘 모르겠는 켄드릭 라마와 드레이크…. 이 수많은 ‘병크’들을 더 나쁘게 포장하지 않고, 혹은 지나치게 매끈한 코스모스의 정갈함을 빌려오지 않으면서도 말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내게는 염따가 냈던 가장 최근의 앨범이 그러한 종류의 것으로 다가와. 비명과 더 가깝지만 어떠한 보편을 건드리는 고백이라는 측면에서.
음악은 처음 즐겨 듣기 시작했을 때의 감각이 가장 솔직할 테니… 내가 일기에 적었던 ‘살아숨셔4’에 관한 감상평을 인용해 볼게.
염따의 신보는 아주… 노스탤직했다. 솔직한 이야기들이라 마음이 동했던 듯. 나는 원래도 염따의 노래들을 좋아했는데, 막 유명해지기 시작할 때의 노랫말들에는 위악이 섞여 있었던 것 같다. 근데 솔직히 염따가 반성해야 할 정도로, 그 위악들이 완벽히 완벽하지는 않았음. 염따는 자신이 아주 유명해졌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걸 은연중에는 알고 있는 사람처럼 가사를 썼다.
염따가 부렸던 위악들은 대부분 “아저씨”라는 자의식을 동반했어. 하지만 모든 핫걸들이 이 아저씨를 좋아하고, 아저씨의 큰 총, 아저씨의 비비빅 (oh… ㅠㅠ) 염따에게는 진심일 수도 있었겠지만 염저씨를 열망하지 않는 내게는 위악으로 다가오는 가사들이지. 염따가 막 뜨기 시작했던 ‘돈 Call Me’의 가사도 마찬가지야.
Don't call me
Cash only
어쨌던 봄이
오긴 오지
Flex 난 슈퍼 Flex
알잖아 내 Class
돈 없으면 전화하지마
어 어 그래 어 기리보이니 어 아니
전화하지마 전화하지마 (바꺼) (바꺼)
구라야
돈 없으면 전화하지 말라고 했다가 마지막에 구라라고 덧붙이는 그의 밴댕이소갈딱지미가 느껴져? 근데 실제로 음악을 들으면 ‘구라야’가 거의 안 들리거든. 그 와중에 약간의 자존심을 챙겨본 거지. 너도 알다시피 염따는 이 노래를 낸 이후에 플렉스할 돈을 충분히 벌고, 더콰이엇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쇼미더머니의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하고, ‘아마두’라는 히트한 캐럴 힙합곡도 내고, 티셔츠도 팔고, 도지코인도 샀다가. 그래 티셔츠를 팔다가, 티셔츠를 열심히 팔다가… 마미손이 발굴한 미래 힙합 인재를 가로채려다 나락의 길을 걷게 됐지.
염따가 본격적인 스타 래퍼에 오르기 전이었던 2016년 ‘살아숨셔’ 앨범에는 피처링이 단 한 명도 없어. 그 이후에 냈던 ‘살아숨셔2’, ‘살아숨셔3’에는 차붐이나 던밀스, 뱃사공, 자이언티나 저스디스 같은 피처링진이 참여하기도 하지. 그렇게 나락 이후 개같이 부활한 염따의 ‘살아숨셔4’는 첫 앨범처럼 염따 혼자서 노래해. 아주 고독하게… 다시 내 일기로 돌아가자면….
그리고 염따는 이렇게 돌아오는 게 아주 극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자기 자신의 서사를 만드는 사람… 서사를 만들려면 어느 정도 그 서사를 예견하고, 일본이 타츠키 료의 만화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예지몽에 잠겨서 살아야 극적일 수 있다. 염따의 위악이 완벽했다면 이번 앨범의 가사들이 그리 진정성 있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 같다. 위악을 완벽하게 부리는 사람은 또한 완전히 솔직해질 수 없다.
‘윽!’ 트랙에서 더콰이엇 트랙으로 넘어갈 때가 가장 극적이다. 미숙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과… 그럼에도 피처링 페이 4천을 받고, 빈지노의 맞팔을 받았다고 과거를 자랑한 뒤에(회상한 뒤에?) 네 번 정도 감탄사를 내뱉고 다음 트랙으로 넘어간다. 다음 트랙이 엄청 급하게 나온다. 숨 가쁘게 더콰이엇이 얼마나 자신에게 신 같은 존재였는지 알려주려고 달려오는 것 같아서, 그 속도감이 가삿말 같은 표면이 아니라 진짜 내핵에 숨겨둔 진심 같아서 듣는 도파민이 있다. 아무튼 염따는 참 가사를 잘 쓰는 것 같아. 이 정도의 솔직함은 가장하기도 쉽지 않다.
이 앨범에 수록된 노래 ‘윽!’에서 염따는 마미손과 황세현에게 사과해. 더콰이엇과 동급이 된 줄 알았다는 자기 자신의 쪽팔린 과거를 담담히 이야기하지. 최엘비의 회상이 과거 자신의 비겁함과 겁을 읊어나간다면, 염따의 회상은 그보다 지질하고 사소해. 사람들은 지나치게 겁을 먹는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연민을 느끼지만, 과잉된 자신감과 나르시시즘을 뽐내는 사람은 까내리고 싶어하니까.
나는 염따의 삶과 진심 따위는 잘 모르고, 또 관심도 없지만 그가 83년생 무명의 힙합 뮤지션이었다가 금세 떠오르고, 또 자신을 향한 과도한 믿음으로 인해 나락에 가는 짧은 서사 정도는 알고 있어. 그 서사를 알고 나서 덕지덕지 괄호에 피처링진이 적히지 않은 트랙의 제목들을 볼 때의 감각, 화려한 싱글로 컴백하지 않고, 살아숨셔 연작을 담담히 내놓은 선택, 자신이 화려하게 컴백했다는 허세를 놓지 않은 염따의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잔잔한 감동을 느꼈지. 그 어떤 것도 포장하지 않으려는 것 같아서. 대중에게 용서를 비는 것 같지도 않아서. 더콰이엇한테 다시 인정받고 싶다는 비겁함이 보이지 않아서. 그 앨범 전체가 ‘돈 Call Me’의 가장 끝부분, 의밋값 없는 추임새처럼 들리는 “구라야”의 태도를 담고 있는 것 같아서.
어떤 사람은 이 앨범에서 자신의 서사를 고백하는 염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건 일기장에나 써야지, 이딴 걸 노래로 내냐”라는 댓글을 달기도 하더라고. 물론 수많은 팬들이 “원래 힙합은 그런 건데요 -_-” 라는 대댓글을 달기도 했지만. 나는 그 댓글을 읽고 조금 생각이 복잡해졌어. 일기에 라임과 음의 높낮이, 운율과 비트를 씌우면 그것은 힙합이 되는 걸까 하고. 하지만 스윙스와 염따가 알려주는 것처럼, 일기를 힙합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삶의 노출증을 감행해야 하는 것 같기도 해. 뻔뻔함과 실수와 착오 같은 것들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이상한 짓들과 의미 없는 싸움을 지리멸렬하게 이어오면서.
블랙넛과 지미페이지(구 ‘고어텍스’)도 싸웠다고 하는데. 나는 그 사실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서로에겐 서로밖에 없었을 것 같아서. 사실 고어텍스보다는 블랙넛을 생각하면 조금 더 마음이 아픈데. 그건 내가 블랙넛의 삶을 더 많이 알고 있어서일까? 혹은 블랙넛의 콤플렉스나 괴로움이 나의 삶 어딘가와 맞닿아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인 걸까?
이런 생각들을 이어가다 보니, 10년 전 문법을 그대로 빌려와서 욕먹는 쇼미더머니 12가 생각나네. 나는 제대로 보지도 않았고, 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까지 촌스럽고 한결같을 수 있냐는 이야기가 나오더라고. <흑백요리사> 같이 세련된 서바이벌은 보지도 않는 거냐며. 어쩌면 세련되어질 수 없다는 것, 현대의 문법을 빌려오지 않고 찌질하게 싸우는 게 한국 힙합의 정신인 걸까나? 모두의 일기장에는 자신을 배역으로 만들고자 하는 지질한 자의식이 존재하니까. 어떤 원죄처럼.
네가 힙합에 “맥이 팍! 끊겨” 버린 그때, 나는 힙합을 찾아 듣기 시작했어. 이제는 나도 힙합과 너무 멀어졌고… 이렇게 쓰고 나니 힙합과 가까웠던 적이 있나 싶지만. 나의 진입과 너의 끝물이 겹치던 때는 사실 ‘순간’은 아닌 것 같아. 요즘 엄청나게 두꺼운 인류사 책을 읽고 있는데, 사실 농업이라는 게 손가락을 탁 튕기듯, 한순간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3000년 동안, 아주 서서히 진행되었다고 하더라고. 우리의 힙합 연대기가 겹쳐지는 순간들도 실은 그만큼 흐릿하고 길쭉하게, 여름날의 엿가락처럼 늘어져 있는지도 몰라. 그사이 바스코는 빌스택스가, 매드클라운은 비공식적으로 마미손이, 고어텍스는 지미페이지가, 천재노창은 테토도 에겐도 아닌 그냥노창이 되어버렸네. 염따는 마미손의 누군가를 훔치려다 실패했고, 기리보이는 저스트뮤직을 나섰어. 전우원은 몽글이로 화려한 데뷔를 마쳤고, 블랙넛은 아무와도 친구가 되지 못했을 것 같아. 아아… 힙합의 세계란 얼마나 덧없나.
P.S. 다음 노래방을 위해 ‘No Mercy’를 제대로 들어볼게.
X망한 EK의 ‘쇼미더머니’ 조별 무대를 찾아보며,
포도가.
① 유민은 노래방에서 포도가 부른 <그덫발포>의 제목을 보고 “무슨 <이빨, 다리, 깃발, 폭탄> 같네”라고 했다. 그때 포도의 팔에는 미약한 소름이 돋았다. <이빨, 다리, 깃발, 폭탄>은 카에타누 벨로주의 노래 ‘Alegria, Alegria'에 나오는 가사 중 하나인데, 언오피셜보이가 언오피셜하게 그 노래를 듣고 오마주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안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