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2호 > 교환일기 > 
국힙을 사랑하게 된 경위에 대한 교신 #4
👤신포도

위악과 솔직함, 진정성과 해방감. 이 4개의 단어를 배제하고 힙합을 설명할 수 있을까? 장르를 설명하는 여러 단어들은 존재하겠지. 붐뱁, 트랩, 비트, 래퍼의 울림통 같은…. 사실 나는 그런 장르적 언어들에 익숙지 않아. 대신 한국에서 힙합을 듣는 내게 더 중요한 건 훨씬 더 추상적인, 뜬구름 잡는 저 단어들이지. 위악과 솔직함, 진정성과 해방감을 제외하고 나는 내가 힙합을 듣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 설명하더라도, 그건 거짓말이겠지. 네 일기를 읽으며 나는... 바스코가 '빌스택스'라는 밤티 이름을 택해 부활한 것을 비웃던 내 과거를... 비웃고 싶어졌어.

최근 한 블로그에서 이런 말을 봤거든. 요즘 음지와 양지 사이 어딘가에서 스타로 떠오르는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 그야말로 진짜 힙합을 해야 하는 힙합 인재라는 포스팅 말야. 하나님의 어린 양의 캐릭터를 내세우는 그는 사실 명반을 내는 래퍼들의 필수 코스, 심지어는 래퍼로서의 ‘간지’를 낼 수 있는 조건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는 거야. 이를테면 전우원은 마약 투여와 법적 책임이라는 코스를 거쳤지. 게다가 정신병과 독실한 크리스천, 미국 생활이라는 문화적 배경도 갖추고 있어. 독재자의 손자, 그러나 그 모든 죗값을 (적절한 방식인지는 모르겠으나) 등에 이고지기로 결정한 어린 양. 그 포스팅에는 이런 문장이 적혔어. "서사 한국에서 이 새끼보다 빡센 래퍼 없음. 사실 외힙에서도 없음 걍 미친 새끼임." 경탄을 표할 수밖에 없었어. 너무 맞는 이야기 같아서. 게다가 몽글이에게도, 어쩌면 래퍼가 되는 것이 더 좋은 것 아닐까? 하는 주제넘은 생각에 닿았지.

왜 나는 전우원이 MC몽글로 데뷔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걸까? 사실 힙합이 구원이 아닌, 저주가 된 경우가 훨씬 많을 텐데. 힙합 때문에 인생을 망친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 떠오르는 이름들을 하나씩 나열하지는 않을게. 우리는 이미 호명과 샤라웃으로 너무 많은 걸 잃었으니까... 그 주제넘은 생각에 도달하게 된 건 아마 솔직함을 드러내기 위해 위악을 통과하는 것, 결과적으로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며 해방감을 느끼는 힙합의 경로와 무관하지 않을 거야. 나는 아직도 솔직함을 믿어.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솔직해지는 것이 가지는 힘을 믿지.

실은 그런 이유에서, 나도 너와 비슷하게 자신의 멋에 과도하게 취한 래퍼들의 가사를 별로 즐기지 않아. (그냥 그런 인간이 싫은 건가 싶기도 한데…) 힙합과 허세가 뗄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가끔은 가시처럼 박히는 솔직함들이 있거든. 거짓말을 하는지의 여부와는 무관한 것 같아. 이때의 솔직함은 사소한 행간이나 단어, 이상한 호흡이나 발작 같이 터져 나오는 음가 같은 것들에서 감지되는 “켕기는 감정”에 가까우니까. 그것을 발견할 때면 나는 능력 좋은 정신분석학자가 된 것마냥 비밀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지. 그리고는 누가 알아채기 전에 미소를 숨기고, 다시 비겁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을 즐겨.

나의 힙합 연대기에서 가장 강렬했던, 영적인 체험을 떠올려본다면 그것은 ‘그냥노창’이 되어버린 ‘천재노창’과 관련 있어. 네가 언급한 ‘말달리자’라는 노래에서 “암말 말고 수컷말 쉿!”이라는, 충격적인 가사를 쓴 그 사람. 그는 블랙넛의 노래에서 별안간 욕을 얻어먹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갓대웅’을 경배하라는 훅을 수행해. 불결한 순례자이자 전도자처럼….

노창은 2014년에 아주 괴상한 앨범을 하나 내는데, 제목은 ‘마이 뉴 인스타그램(MY NEW INSTAGRAM : MESURECHIFFON)’이야. 괴상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냥 그 앨범에 실린 노래들, 가사들, 그의 목소리가 이상하기 때문이야. 나는 2016년에서 2017년즈음 노래방에 가면 그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행’을 열창했어. 아마 너도 기억하겠지? 노래방에서 부르기엔 굉장히 이상한 노래잖아. 근데 그 앨범 전체를 들으면, ‘행’은 이지리스닝이 가능한 유일한 트랙이야. '털ㄴ업해야해' '꽃가루' 'CHING CHANG CHONG' 같은 노래를 연속으로 듣다 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나 역시 패러노익해지지.

위악으로 가득 찬 이 앨범. 노창은 한없이 저주하고, 다른 이에 대한 욕을 쏟아붓고, 자신은 아이돌이 아니라고 소리치고, 여자 팬이 아니라 남자 팬이 더 좋다는 이야기를, 간식 따위를 주지 말라는 이야기를① 숨도 쉬지 않고 쏟아내지. 노창중 씨가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났냐고? 잠시 이 앨범의 제목인 '마이 뉴 인스타그램'에 잠시 주목해 주겠어?

이 앨범에 ‘인스타그램’이 들어간 경위는 이러해. 당시 노창중 씨는 자신의 비밀스러운 연애사를 인스타그램에 실수로 올렸었거든. 5분 만에 게시글을 빛삭했지만… 이미 온라인 연예면에 기사가 올라간 뒤였어. 노창중 씨는 분노했어. 나는 연예인도! 아이돌도 아닌데! 내 음악은 제대로 듣지도 않으면서! 왜 본인의 연예를 가십화하냐는 논지였지. ‘행’ 직전의 트랙에서는 그 기사를 쓴 연예면 기자의 이름을 언급하기도 해.

네이버에 노창을 쳐 그 뉴스를 봐 티븨데일리
김한길 기자의 눈웃음 가득한 글이 내 인길 증명하고 있지
무슨 음악 하는진 기사 속에 있긴 너무 재미없어서 그분은 나의 스캔들만 썼지

(...)

나는 잊지 않고 내 모든 고통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어
자살하고 나면 경찰들은 수갑이 모자랄걸

아, 엄마 아빤 슬프겠지만 난 지옥에서 개 통쾌할듯해
나란 인간은 너무도 모자라지만 다 좆까라 내 노랜 가능해
난 모두 행복하고 멋진 하루 보내란 말 따위는 번외로 해, 가능해
아 이대로 죽고 나도 다 엿먹일 수 있었다란 사실에 난 개 행복해 할 듯해




어둑한 겨울의 밤, 나는 서울에서 서산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실려 이 앨범을 들었어. 탈것에서는 잠만 자는 나의 성질 때문에, 나는 1시간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 노래들과 함께 3개의 악몽을 꿨지. 누군가를 압축적인 악몽에 빠트릴 정도의 위악. 미시마 유키오도 말하듯 감정보다는 꿈이 사실에 가깝잖아.②

노창의 위악에는 3가지가 빠져 있어. 통일성, 방향 감각, 그리고 목적의식. 상황에 맞게 몸집을 부풀리는 것처럼 말하곤 하지. 동물의 부풀림보다는 인간의 부풀림에 가깝달까? 노창도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대외적으로 어떻게 말해야 하고 비춰져야 하는지에 관해 잘 모르는 것 같아. 노창이 타블로와 함께 ‘All Day’③라는 노래를 낸 적 있는데, 당시 했던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 혼란과 혼돈이 잘 드러나. 원래는 그 노래를 장기하나 유세윤한테 주려고 만들었는데, 주변에서 노창이 직접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거야. 근데 노창이 조금 망설였대. 본인은 힙합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어, 그래? 그래도 나 힙합하는 사람인데.”④

근데 그 바로 앞에 이렇게 말하거든. “저는 원래 힙합만 하는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평소에 여러 가지 스타일의 곡들을 많이 만들어 놔요.”

인터뷰어가 바로 물어봐. “아니, 아까는 힙합하는 사람이 아니라면서요?” 거기에 대해서 노창은 여태 발표한 곡들이 힙합이고, 힙합을 준비하고 있으니 그렇다고 답변을 뭉개지. 사실 노창은 자기 자신이 힙합을 하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도 잘 몰라.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어.

한 발자국 더 나아가자면, 자기 자신을 ‘힙합하는 사람’ 혹은 ‘힙합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상태가 과연 솔직한 걸까? 그게 정말 진정성, 카리스마, 벌어질 모든 일을 책임지겠다는 진솔한 선언일 수 있는 걸까? 은퇴를 번복하는 사람만큼 멋없는 게 어디 있겠어. 애초에 장르라는 것도, 그 이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둔 장치일 뿐인데. 어떤 사람을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게 아주 힘든 건 모두가 알잖아.

여기에서 또 한 발자국 더 나아가자면, 자기 자신을 ‘힙합하는 사람, 혹은 힙합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과연 솔직한 걸까? 그런 깨달음을 바깥에 전시하는 것에 과연 본인을 포장하거나 납득시키려는 목적의식이 없다고 볼 수 있을까? 나는 노창의 저 통일성 없는 말에서, 한입으로 두말하는 저 문단을 읽으며 과연 진짜 솔직함은 어디까지 건드려야 하는 것인가의 문제를 떠올렸어. 사실 노창은 자신을 정의하는 것도, 자신을 정의하지 못한다고 정의하는 것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않지. 그 실패와 중얼거림이 아주 낮고 단순한 수준의, 그렇기에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솔직함은 아닐까?

그리고 그의 가사들을 훑고 있자면… 굳이 인터뷰를 통과하지 않아도 ‘정의할 수 없음’에서 오는 열패감이 느껴지지.

너와 헤어져도 난 노랠 부를 수는 없어
그건 힙합이 아니니까 나쁜 단어들이 많아야지 힙합
씨발 씨발 씨발 씨발 씨발 씨발 나는 이제서야 진짜 힙합

(...)

넌 절대 내 새 아이폰을 볼 수 없겠지 어라 이건 힙합인 걸
괜찮고 멋지게 산다고 자랑하는 게 힙합이니까
누가 더 잘 지내는지가 이별이나 힙합이나 심판이니까
진짜 지친다 계속 통장이나 나나 말라가
아직 가난한 감정과 통장은 계속 말라가




노창은 이 열패감을 직시하지도, 피하지도 않은 그 애매한 상태에 머무르길 택해. 머물기 위해서 강박적으로 말장난을 하고, 의도적으로 주변인들의 이름을 언급하고, 괴이한 형식을 택하지. 다시 말하자면 노창은 자기 자신이 해야 하는 것에 관해서는 알고 있지만 자신의 열패감을 진솔하게 털어놓지는 못해. 어쩌면 그 용기 없음이 진짜 진정성은 아닐까? 이런 생각에 닿게 된 이유는, 내가, 아직 직시하기를 무서워해서일까? 2021년에 나온 최엘비의 명반을 들으면서 괴로웠던 이유가 바로 그것일까?

최엘비가 낸 ‘독립음악’ 앨범을 자주 들었어. 본인의 비겁하고 무력한 모습을 엄청나게 직선적인 문장들로 표현하거든. 자신의 비겁함과 무력함을 반성하면서도, 때로는 그 과거에서 추진력을 얻지. 기리보이의 크루에 들어간 것이 본인의 넥스트 챕터였다는 걸 인정하고. 친구였던 씨잼과 비와이가 승승장구하는 것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었다는 그때의 감정을.

나는 너를 알아 너도 주인공이 되고 싶어 했잖아
5학년 때인가 아마 용기를 내서 반장 뽑을 때 손들었잖아

결과는 부반장 두 명이 나가서 거의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였고
반장으로 뽑힌 애가 포부를 말할 때 옆에서 넌 생각했지, 이 정도면 잘한 거라고

그렇게 몇 년이 흘러가고 여태까지 내가 살아온 삶이 몇 편의 영화라면
그때 맡은 부반장이 제일 큰 역할이었단 걸

내가 나왔다는 걸 알아보는 사람은 가족밖에 없는 단역으로 이젠 살아
울 엄마는 영화가 끝나도 엔딩 크레딧 제일 끝에 때쯤에 나올 내 이름은 어째 귀신같이 찾아




이 앨범에서 최엘비는 ‘아는 사람 이야기를 한다’라는 아주 투명한 레토릭을 쓰면서 자신의 고백을 열지. 나는 당당하게 ‘천재’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하는 사람보다는 루피의 친구 역할에 만족하는 사람에 가깝다는 생각 때문일까? 나는 최엘비의 이 앨범을 아주 좋아하면서도 듣기 힘들어해. 너무 직선적이고, 진솔하고, 솔직하고, 그에게서는 어떠한 악의나 가장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나 역시 초등학교 3학년 때, 반장이 될 자신은 없어 부반장에 입후보했으면서, 그것을 진심으로 바라는 체한 적 있기에.

나는 요즘 일기를 쓰면서 진솔함을 표현한 과정이, 종국에는 거짓과 과장으로 변모하는 순간을 마주하곤 해. 아주 솔직한 감정의 원형을 언어로 풀어놓는 과정에서, 나의 감정을 타인에게 공유하기 위해 표현을 고르는 과정에서, 내가 느낀 진짜 ‘원형의 감정’이 눈덩이 굴리듯 커지고 심각해지는 상황을 만나지. 물론 일기를 시작하기 직전의 감정에도 좌절이나 자기혐오, 무의미한 결심과 같은 맹아는 분명 존재하지만, 언어를 고르고 발화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그 감정이 무럭무럭 자라는 거야. 내가 정말 이 정도로 이 영화를 좋아했나/싫어했나? 내가 정말 이 정도로 나를 사랑하나/싫어하나?

그렇게 눈덩이를 굴려 가며 내가 생각지 못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언어와 표현이 가진 잠재력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진실한 솔직함에서 얼마간 멀어지는 과정이기도 하거든. 나는 내가 쓴 단어와 문장, 행간을 읽으며 그것이 진짜 내 감정이었다고 착각하곤 하지. 내가 나의, 나에 의한, 나만을 위한 에코챔버를 만드는 거야. 나는 최엘비 역시 이 감정에서 무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자신을 반성하기 위해서는 죄를 묻고 답하는 과정이 필요하기에….

노창은 최엘비가 택한 솔직함을 의도적으로 피해 나가지. 테토노창은 자신을 연민하는 남자가 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가 자기 자신을 연민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수준의 연민에 빠지지 않도록, 표현을 다듬어왔을지 모르겠어. 혹은 그가 에겐노창이라고 해도, 자신이 생각하는 힙합은 그런 게 아니라고 정의하는 것이겠지. ‘마이 뉴 인스타그램’의 모든 노래가 힙합인 것과 힙합이 아닌 것을 구분하면서, 그것을 동시에 조롱하고 있으니까.

노창이 보기에 어쨌든 힙합은 진솔하기보다는 냉소하고, 타인을 마음껏 비웃고, 지긋지긋한 현실이라는 레토릭을 내세우는 것에 가까운지도 몰라. 근데, 사실은 그 불안감과 확신 없음이 정말 솔직함이라면? 그것이 힙합에서 내가 착즙해 온 진정성이라면? 혹은 결단력이 힙합 씬의 진정한 진정성, 해방의 책임감 같은 것일까? 빌스택스가 켕기는 감정을 버릴 수 없어 이름을 바꿨던 것처럼, 노창이 ‘테토’도 ‘에겐’도 ‘천재’도 아닌 ‘그냥’이라는 새로운 수식을 택한 것처럼.

그나저나… 쓰고 나니까 내가 정말 이렇게까지 노창을 변호하고 싶었나? 하는 생각이 드네. 어쩌면 전우원이 MC몽글이 되는 것이 외려 그의 솔직한 심성을 망칠 수도 있는 건 아닐까, 주제넘은 걱정도 들고. 사실 처음 몽글의 힙합 에너지 이야기를 꺼낼 때만 해도, 나는 그것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여기서도 나는 솔직해지는 데 실패한 건가? 정말 솔직해지려면, 사실 어느 정도의 편집과 거짓말을 뒤섞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현실을 그대로 찍는다고, 현실 같은 영화가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들 하잖아. 모르겠어. 머리가 아프네. 힙합은 일기장과 얼마나 닮아 있다고 생각해?

① 그러나 받은 간식을 버릴 수도 없어서 난감하다는 내용이 쓰인다. 그는 사실 선물로 받은 간식을 버릴 정도로 냉혹하진 못한 것이다.
② “감정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판정할 방법이 없지만 꿈은 적어도 ‘사실’이었다.” – 미시마 유키오, 『봄눈』, 118쪽.
③ 당시 이 노래는 많은 힙합 팬들로부터 “트로트 아니냐?”라는, 조롱 어린 피드백을 받았다. 노창은 분노하여 ‘좆간지’라는 노래에서 “올드락이랑 트로트도 구분못한 병신들에게 개 빨리겠지”라는 가사를 쓴다. 아주 화난 것 같다.
④ 조하나, 천재노창|아름답게 불안정한, https://brunch.co.kr/@hana-island/805

Tags: 신포도 2호 교환일기 음악


Updated 26.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