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발신: 신포도
수신: 유유민



아니 엄청나게 큰 사고였잖아… 내 기억에 남은 사고는 미친 듯한 속도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다가 넘어져 보도블록에 살갗을 갈아버린 것, 가족끼리 태안 바다로 캠핑을 갔다가 생선구이 석쇠에 허벅지를 태운 것, 김치를 잘 먹었다고 아버지에게 칭찬받고 신나서 뛰어 들어가다 의자 바퀴에 새끼발가락을 부딪쳐 발가락을 휘게 만든 것 정도인데. (새끼발가락 올려두기 놀이를 했던 업보일까?)

       내게 힙합 청취의 첫 경험은 티코와 토끼굴, 사고의 충격과는 거리가 멀어. 그보다는 ‘사건’이 아니라고 해야 하겠다. 물론 네 일기는 아직 힙합 언저리에서 머물고 있으니. 그래, 나도 거기서부터 시작해 볼게.

      중학생 때의 나는 힙찔이보다는 락찔이에 가까웠어. FT아일랜드를 좋아하는 소녀팬을 ‘락찔이’라고 부를 수 있을 때의 정의겠지만 말이야. 난 사실 이홍기의 목소리를 좋아했거든. 멜론 탑 100을 장식하는 타이틀곡이 아닌, 앨범의 수록곡을 찾아 듣는 것도 일종의 고양감을 주었고. 지금은 추억의 이름, 혹은 추악한 간판이 되어버린 기타리스트와 드러머에게도 나는 공평하게 나의 작은 사랑을 배분하려 애썼어. 사실 밴드의 생리상 보컬이 많은 이목을 빼앗아 가잖아. 나는 모두에게 같은 정도의 사랑을 주지 못한다는 것에 꽤나 괴로워했던 것 같아. 이것도 일종의 자의식 과잉일까? 공평한 사랑을 주기 위해서 나는 보컬리스트의 벽을 넘어야 했어. 잘 들리지도 않는 베이스는 어떤 소리를 내는 악기인지, 기타 2대와 베이스 1대, 드럼셋 하나와 한 명의 보컬이라는 구성은 평범한 밴드의 문법인 것인지…

      서부평생학습관에 가서 FT아일랜드를 통과해 밴드에 관한 갖가지 잡소리들을 수집했어. “FT아일랜드는 정말 밴드가 아니다! 이들은 락을 하는 이들이 아니다!” (침묵) 나는 어린 마음에도 그저 아이돌 팬이 되고 싶지는 않았거든? 그보다는 그루피가 더 멋있는 수식이라고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지. 그런 내가 가장 모욕적이라고 느꼈던 사건이 있었어. 언젠가 FT아일랜드가 밴드 뮤즈의 음악을 커버했었거든. 그 영상에 외국인들이 “코리안 퍼킹 쉣”이라는 류의 댓글을 남겼다는 거야. BTS도, 블랙핑크도, 골든과 <케데헌>과 <오징어 게임>도 없던 시절의 한국 문화 팬들에게는 너무도 모욕적이지 않았을까?

       “와 작곡도 안하고 핸드싱크하는 가짜 밴드, 아이돌 찌끄래기가 한국의 실력 있는 수많은 인디밴드도 비하하고 있네요. 미로밴드보다도, 버즈보다도, 문희준보다도 최악입니다.” …그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던 상황이었어.

       뾰로통. 그놈의 진짜 밴드라는 게 뭐길래? 락의 정신이 뭐 얼마나 대단하길래,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남으려는 이들을 이렇게까지 모욕하는 거지? 스멀스멀 올라오는 억울함을 바로 풀지는 못했어. 그것은 연예인을 실제로 만나면 급속히 관심이 식는 나의 특성 때문이기도 했지. 사춘기를 지나면서 나는 FT아일랜드에 대한 관심을 끊었어. 그때부턴 ‘진짜 밴드’건, 핸드싱크건, 아이돌이건, 그루피, 락스타, 인디밴드건… 어찌 되든 상관없었어. 괜찮아! 나한테는 자비에 돌란이 있으니까. 저 먼 퀘벡에서 찾아온 또 다른 사랑의 상대. 서울까지 올라가 자비에 돌란이 연출한 <마미>를 봤는데, 아주 중요한 순간에 오아시스의 ‘원더 월(Wonderwall)’이 나오더라고. 정방형이던 화면비가 와이드하게 넓어지던 그 순간에. 주인공은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길을 질주하고.


아주 미약한 해방감을 느낀 것 같기도 해. 비유하자면, 1945년 8월 15일의 해방감이 아닌, 30년 동안 이따금씩 반복된 폭탄 던지기의 순간과 비슷했지. 그때의 결단과 성공이 독립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변화의 문턱을 넘었다는 감각은 분명 존재하잖아. 오아시스의 노래도 들어보고, 영화를 보면서 데이빗 보위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지. 보위의 여러 페르소나를 통과하며 머릿속에서 재조합한 서사들.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엄마에게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의 가사 의미를 설명해 주던 순간. 기스로 가득 찬 기차 창에 비쳐 들어오던 빛. 자신이 만든 페르소나를 과감하게 죽여버리는 락스타. 오아시스의 초기 앨범들. 팬들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진짜 락’의 정신…

       그런 조각들을 수집하면서도 해결할 수 없었던 갈증이 있다면, 그건 가사의 문제였어. 영어 가사를 하나하나 해석하고 이해하는 건 휴식과 먼 느낌이었고. 멋진 락스타들의 1970년대, 1990년대 이야기는 실상 불가해한 영역이잖아. 가사를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갈 때면 좋다는 감각과 함께 느슨한 탈진이 찾아오곤 했지. 게다가 FT아일랜드도 그 갈증을 해결할 수는 없었어. 전 세계의 진성 락팬들이 공증해 줬듯, 그들은 직접 작사나 작곡도 하지 않는 가짜 밴드잖아. 락의 핵심 정신인 야성과 진정성 사이의 빈 공간을 점유하지 못했지. 나는 영국과 아주 먼 곳에 살고, 시대를 뛰어넘어 단어의 맥락을 이해하긴 너무 과문했고. 나의 락 경험은 소속사에서 만들어준 가짜 노래들이고. 내가 좋아했던 밴드는 그저 잘 길러진 꼭두각시였고. 당시의 내가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갈 수 없었던 건 열등감 때문이야. 그때는 몰랐지. 수채화를 완성한 뒤에 남은 물통 속 물이 무슨 색인지를 정확하게 말하긴 힘드니까.

       진정성, 그런 게 음악에서 가능한 건가? 이 질문조차 떠올리지 못했던 상태. 그러다가 마주친 거야. 기리보이를… 직접 문을 열고 닫던 서산의 지식인 독서실, 4인실의 아주 작은 방의 한구석에서. 눈을 뒤집어 까고 분홍색 위에 떠다니던 그 남성을.



앨범의 제목은 ‘성인식’이었어. ‘성인’이라는 제목의 사랑 노래, 사랑을 이제는 잊고 포기하라는 노래, 성판매 여성을 사랑하는 남성에 빙의한 노래, 걸어서 왕복 30분이 걸리는 썸녀의 집… 그 중 두 곡을 뽑아보자면…


‘outro’의 가사: 힙합을 듣기 시작할 때 나는 모든 이유들을 따졌어. 학교에 간다거나 내가 싫은 애들과 친해지는 것. 친해지는 법과 잘나가는 애들 밑을 기는 것. I know, 나는 한국 사람, muthafucka. 땅으로 들어갔다 위로 올라, 디그다 flow. #포켓몬 #디지몬 #원피스 #드래곤볼 #배틀로얄 #블리치 #너무쓴커피.

나는 이 노래의 가사들이 왜 좋았을까? 이유를 따지며 노래를 듣는 것. 학교에 가거나 싫어하는 애들과 친해지는 것. 친해지는 법. 잘나가는 애들 밑을 기는 것. 불안과 혐오로 응축된 교실 풍경을 이렇게 정확히 묘사할 수 있을까? 객관을 흉내 내거나, 지나치게 멋을 부리지 않고도? 기리보이는 자기가 래퍼가 아니래. 사람들이 자신을 래퍼라고 잘못 알고 있어서 힙플에서 너무 거친 평가를 받는대. 그런데도 무대를 내려가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냥 음악을 한다는 거야. 신화와 김동률, 휘성과 거미, 브로콜리너마저와 버벌진트, 앤덥과 스윙스의 자장 위에서.

       나는 기리보이가 래퍼가 아니어서 좋아했을지도 모르겠어. 랩과 락은 팬들에게 FUCK YOU를 날릴 수 있어야 하고, 구린 노래여도 직접 작사와 작곡을 해야 하고, 몇 년간 쌓아온 과거의 영광을 자신의 손으로 질식시킬 수 있는 존재의 몫이었으니까. 근데 기리보이는 정상수한테 위협당하고, 신화와 김동률을 인용하고. 쿠폰을 모아 커피를 사 먹고. 잘나가는 애들 밑을 기어다니고. 잘난척하면서도 어딘가 뒷걸음질 치고 있었거든. 나는 기리보이가 겁쟁이어서 좋아했을지도 모르겠어.




‘좀 해’의 가사: 나는 너무 컸네, 머리에 피가 말렀네. 나를 깔보던 형들은 방금 제대로 말렸네. Paper에 내 음악을 담아서 말었네. 내 음악이 마약이면 만 그람 팔었네. 이제 지나간 추억들과는 안녕. 다가올 날들을 맞이하며 나는 감동, uh. Take over, 너네는 이제 game over. 오늘 나는 다시 태어났지, 케익 썰어. 초는 꼽지 않아, 나는 아직 young. 그래서 떡은 입 말고 다른 곳으로 삼키고. 술 좀 따라 봐, 잔이 부서질 듯이. 돈 많이 벌어, 지갑 무너질 듯이. 엉터리 래퍼들은 상황 파악 좀 해. 난 이제 너무 커 버렸어, 좀이 아냐, 좀 해.

지하철도 못 탈 정도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는 기리보이의 애티튜드는 허세라는 래퍼의 바이브로 설명할 수 있겠지. 어떤 허세는 거짓말 같은데, 막 래퍼로 불리기 시작한 기리보이의 허세는 연민과 더 가까워 보여. 동물들은 위험에 처하면 강한 척하려고 몸을 과하게 부풀리잖아. 그 부풀린 몸을 볼 때야 그 존재의 나약함이 비로소 드러나고. 예전의 나는 누군가를 동경하기만 했거든? 근데 기리보이의 저 앨범을 듣고 있자면, 은밀한 연민을 느끼곤 해.

       그 노래를 듣고 독서실에서 뛰쳐나간 것은 아니었어. <마미>의 주인공처럼 화면비를 과감히 넓히지도 못했고. 잘나가는 애들 밑을 계속 기었지. 여전히 지금도. 그럼에도 한 줄 한 줄에 깃든 연민이 나 자신을 위로했던 건 맞아. 물통에 담긴 괴이한 색의 물을 보면서, 내가 어떤 색을 써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를 조용히 되짚어 보는 일. 그것도 해방이라면 해방인 걸까?

       나한테 힙합은 눈을 뒤집어 깐 기리보이의 얼굴로 기억돼. 독서실에서 가사를 스크롤 하며 두근두근했던 심장 소리와 함께. 다행히 거기서 멈추지는 않았어. 저스트뮤직 콘서트를 간 다음에도 기리보이 음악을 즐겨 들었으니까. 2015년에 나온 그 앨범에서 시작해 2013년으로도, 때로는 2011년으로, 스윙스와 바스코, 앤덥, 트럭뮤직, 우주비행, 쇼미더머니, MC기형아, 새로운 얼굴들. 키드밀리와 오르내림, 코스믹보이. 저스트뮤직과 기리보이에서 방사형으로 뿜어져 나가던 나의 힙합 여정은 이렇게 시작됐어.

       생각해 보니, 2015년의 나는 19살이었네. 성인식을 코앞에 둔….

내 아기 고양이의 중성화를 기다리며, 포도가.

P.S. 나는 캉탱 뒤퓌외가 마음에 드네. 입을 옹졸하게 모으고 있다가 살짝 풀어주는 그 감각이 좋아서. 이름을 왜 이런 식으로 지은 거야?






① 놀랍게도 이 문법은 주어만 바뀔 뿐 현재 진행 중이다. “한로로는 진짜 인디가 아니다!” “QWER을 락페스티벌에 왜 부르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