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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수의 기능
👤신포도

[2026. 03. 20.]
1. 안전
1919년, 미국 미니애폴리스는 자동차 “사고 없는 주간”을 맞아 보행자와 자동차의 충돌 사고 등을 막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한다. 시는 한 주 동안 자동차의 위험성에 집중하며 시민의 인식을 높이고자 했고, 그 실험 중 하나로 미니애폴리스 경찰은 보이스카우트 대원에게 교통 통제 훈련을 시켰다.

얼마간의 효과가 있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21년, 대성당학교의 교장이었던 카멜라 항기 수녀는 고학년 학생들이 저학년 학생들의 교통 안내를 맡는 학교 순찰대를 창설한다. 당시 순찰대원이었던 학생들은 차를 멈추기 위해 팔을 옆이나 위로 뻗는 수신호를 보냈다. 이는 보행자가 운전자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시각적 신호의 시초다.

한편 한국 어린이들이 교육받은 횡단보도의 ‘거수’는 일본 모델을 직접적으로 원용했다. 1960년대 패전국의 역사를 딛고 고속 성장한 일본은 교통사고 사망자 역시 매년 1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심각했는데,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일종의 ‘손들기 교육’을 실시했다. 일본 경찰청과 교육계는 심각하게 토론했을 것이다.

어린이는 키가 작아 보이지 않으니…. 이를 어찌해야 좋을까요?
- 아이들이 손을 높이 들어 자신이 이 길 위에 존재한다는 걸 직접 알리게 하면 어떻습니까?
그런 캠페인을 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 그래요, 그런 캠페인을 한 번 해 보입시더.


까맣고 커다란 철제–이는 물론 자동차를 말하는 것이다–에 보호받지 않는, 게다가 체구가 작아 눈에 띄지 않는 어린이 보행자들에게 거수는 자신의 신체를 연장하는 자기 보호의 수단이었다. 사려 깊은 어린이의 거수 덕분에 살인자로 전락할 위험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눈 나쁜 운전자는 몇 명이나 될까. 수많은 어린이들의 거수는 사실상 자기 자신뿐 아니라 그들을 지키기도 했을 테다.

어디 그뿐이랴! 자동차를 만드는 자동차 회사들, 도로와 학교를 닦고 짓는 행정가들, 학교 주변에서 생업을 이어 나가는 자영업자들… 그 고사리손이 살린 이들을 생각하면 목이 멘다.

2017년 열린 제4회 Honda 교통안전 포스터·동영상 콘테스트에서 수상한 타키시타 어린이의 포스터. 심사평은 이러하다. “배경이 없고 심플하기 때문에 메시지와 횡단보도에 주목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습니다. 대담한 작품으로, 심사원 일동은 감심했습니다.”

2. 뽐내기 (혹은 나대기)
영국 교육기술부는 2007년,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손을 들라’고 요구하는 관행이 실상 많은 학생들에게 오히려 해가 된다는 내용을 발표한다. 이는 교사가 주도하는 형태의 토론이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거수가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분명한 넛지였다.

이를 보도한 영국 가디언 지①는 “선생님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항상 다섯, 여섯 명 정도의 자존심 강한 학생들이 답을 독차지하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러나 이 사실은 선생님이 되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으로서 교실에 10분만 앉아 있어도 알 수 있다.

“아는 사람은 손 들어볼래?” 이 말을 들은 어린이들은 즉각 3가지 카테고리로 쪼개진다.

(a) 답을 알아서 손을 드는 어린이
(b) 답을 아는데도 손을 들지 않는 어린이
(c) 답을 몰라서 손을 들지 않는 어린이


아니. 가장 중요한 카테고리를 빼먹었다!

(d) 답을 모르는데도 손을 드는 어린이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의 나는 (a)에 속하는 어린이였다. 아는데도 손을 들지 않는 것은 직무 유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답을 아는 학생으로서의… 과중한 책임감이랄까? 물론 답을 맞춘 이후에 찾아오는 만족감도 매우 컸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고학년이 되면서 반에는 사춘기에 조금 일찍 도착한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a)에 속한 어린이들을 혐오했다. “나댄다”라는 표현을 자주 썼던 것 같다. 누구에게도 미움받기 싫어하는 나는 반강제적으로 (b)에 속한 어린이가 됐다.

물론 성인이 된 지금은 다시 (a)로 돌아갔다. 사내 교육 시간, 혹은 발표 시간이 있으면 무조건 손을 들고 본다. 그러고 보니 나는 (c)에 속한 적은 없다. 그건 내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c)가 되느니 (d)가 되는 것이 멋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대는 어린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3. 정치적 의사 표현
고대 그리스의 케이로토니아(Cheirotonia, χειροτονία)는 손을 뜻하는 ‘Cheir(χείρ)'와 뻗는다는 의미의 ‘Teinein(τείνω)’이 합쳐진 단어다. 이는 아테네 시민들이 민회에 모여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거나 관직자를 선출할 때, 일제히 손을 번쩍 들어 찬반을 표시하던 다수결 투표의 원형이다. 오늘날의 거수경례 또한 고대와 중세에 걸쳐 기원했는데, 오른손을 높이 들어 자신은 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적의가 없다는 뜻을 나타낸 데서 시작되었다.

물론 아테네인들이 항상 이렇게 당당한 투표만 했던 것은 아니다. 추방자를 뽑을 때는 비밀스럽게 깨어진 도자기 조각에 이름을 썼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라를 이끌 공직자를 뽑을 때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남들 앞에 보이도록 손을 드는 그 용기! 그것이 유권자가 감당할 최소한의 책임이라 생각했던 듯하다.

앞뒤 사방이 꽉 막힌 투표소에 들어가, 비밀스럽게 도장을 찍고, 그 도장의 빛이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조심스레 접은 다음, 개표 시간이 되기 전에는 아무도 감히 펼쳐보지 못하도록 투표함에 용지를 쏙 넣어버리는 비밀스러운 근래의 투표 행위. 연예인들은 옷의 색, 인증 사진의 포즈까지 철저히 계산해야 한다.

완벽하게 무결한 투표룩을 선보인 데프콘

문민정부 이후 태어난 내게는 이러한 비밀 투표가 너무도 익숙하고, 또 아주 당연할 정도로 ‘선한 제도’인 탓에,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거수투표는 일견 폭력적으로 보일 정도다.

거수투표는 자신의 의사 표현이 남들에게 보여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며,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이 몇 명인지를 아주 투명하게 볼 수 있기에 때로는 군중심리 위에, 때로는 군중심리에 반하여 발언해야 한다. 기권? 그런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 어떤 선택지에도 손을 들지 않는 순간 “둘 다 손 안 든 사람은 뭐야”라는 결투 신청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거수투표의 경우, 의사 표현을 하는 순간과 다수결로서 답이 결정되는 순간이 사실상 겹쳐져 있다는 것도 뼈아픈 점이다. 한 장씩 투표함 속의 종이를 펼쳐보며 누군가가 누군가를, 어떠한 선택지가 또 다른 선택지를 추격하고 추격당하는 유의 느릿한 스릴을 지켜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 즉각성 때문에 때때로 거수투표는 더욱 드라마틱하다. 소크라테스는 모두가 손을 들 때 손을 들지 않아서, 모두가 중력을 거스를 때 그저 그 자리에 있기로 결정해서 살해 협박을 받았다. 북한의 거수투표는 항상 100%의 찬성률을 보인다고 한다. 사실 오늘날 한국에 사는 내게 더 드라마틱해 보이는 것은 후자다. 낯선 풍경이므로…

그렇다면 사실 모든 거수투표를 정치적 의사 표현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아니, 100%의 찬성도 어떠한 종류의 정치적 의사 표현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 어쨌든 어떤 용기는 폭력과 겹쳐져 있는 듯하고, 사려 깊은 비밀성은 일종의 무책임을 수반하는 것 같다.


추신. 손잡이와 거수용 손
지금 당장 손을 들어보아라. 나는 항상 오른손을 든다.

거수를 하기 전에는 엄지손가락 끝으로 오른쪽 중지의 굳은살을 한 번 매만진다. 아직 오른쪽과 왼쪽의 구분을 능숙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때문에 나는 내가 아직 어리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른손잡이인데, 그렇기 때문에 오른손으로 거수하는 것이 편한 것일지 모른다.

오른손잡이인데 왼손을 드는 사람이 있다면 제보해 주길 바란다. 반대도 마찬가지. 왼손잡이인데 오른손을 드는 사람도 있을까 궁금하다. 손잡이의 방향성과 무의식적으로 거수할 때 쓰이는 손은 언제나 같을까?

이 수수께끼는 개별 케이스를 모아 답을 밝혀내고자 한다.

① Philip Beadle, 「OK then, let's discuss raising your hand in class」,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education/2007/jun/19/schools.uk2)
Tags: 신포도 3호 끝말잇기


Updated 26.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