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플랫폼에서의 말은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자막 줄 수를 맞추고, 썸네일에서 잘리지 않는 안전 그리드 영역에만 중요 내용을 포함시키고, 해시태그는 몇 개를 달아야 하는지, 저장할 만한 것인지, 공유될 만한 것인지. 카드뉴스의 첫 장, 쇼츠의 첫 3초, 배달앱의 리뷰 답글, 스마트스토어의 상품명,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말이라는 것은 이제 어디에 올릴 것인지 먼저 정해지고 나서 태어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삼신할머니 같은 거죠. 다만 그 할머니가 저커버그와 일론머스크 같은 테크재벌이라는 게 조금 불쾌하지만... 어쨌든 너무 길면 접어야 하고(이 '일러두기'도 결국은 닫아버리실 거죠?), 규격을 이탈하면 알고리즘의 수로에 들어갈 수 없고, 너무 사적인 내용은 브랜드 톤앤매너 회의에서 통과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플랫폼은 말에게, 글에게 계속 말합니다. 네 사정은 알겠는데, 일단 이 [네모] 안에 들어와.

그런데 세상에는 그런 자세를 배울 생각이 전혀 없는 문장들도 있다고 합니다. 가게 유리문에 셀로판테이프로 대충 붙인 종이, 엘리베이터 한쪽 벽에 오래 붙어 누렇게 뜬 안내문, 시장 좌판 가격표, 주차장 벽면 경고문, 금연구역 표지판, 그리고 간판이라고 하기엔 너무 길고, 공지사항이라기에는 너무 거칠고, 안내문이라고 하기엔 너무 사적인 문장들. 이런 것들은 좋아요를 받을 생각도 없고, 공유를 염두에 둔 것도 아니며, 브랜딩 회의가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즉 통용될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발화자가 정한 바로 그 자리에 붙어 있어야만 성립합니다. 그 골목, 그 문, 그 계단, 그 화장실, 그 김밥집에서만.    
월간차지 5호 > 지시문을 찾아서 > 
감시와 처벌
👤월간차지 편집부

화악(설악) 출동 
꼬마 화춘이가 
드디어 장백회를 건드렸다 
겁이 없다
  • 나는 화춘이의 연령대가 궁금하다. 또한, 67세에 배팅하겠다.
이 보시게
왜 여기서 담배 피고 가래침 뱉고
—--------------------------------
꽁초 버리고 담배갑 버리는가?
자네는 부모님 앞에서도 그러는가?
다 보고 있고 이제 마지막 경고하네.
—--------------------------------
여기서 담배피지 마시게!!
얼굴 사진 찍어 신고 예정..
온난화가 진행되면 얼음이 녹아버릴거야!
  • 닝겐데 고멘 (인간이라서 미안해)
있잖아, 너는 소중해
  • 고…고마워…
새해 에는 복 많이 받으
        시고,,
  “개”처럼 살지 맙시다
  • 신년인사와 훈계를 동시에 한다는 점에서, 마치 명절에 만난 먼 친척 어르신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개처럼 살지 말라’는 말에는 왜인지 청자를 아래로 보는 태도가 느껴지지 않아 그럭저럭 받아들이게 된다. 
뻥튀기
흘리지 않을 정도만
반듯이 드시고넣어버리세요 ..
잡동산들     버리지 마세요 ..
내집처럼     깨끗이 사용해주세요
천국으로 갑니다!
저의집에 CCTV 있습니다
맬 확인 합니다
  • 작업실 근처 자판기 옆에 붙어있는 경고문으로, 나는 처음에 테이프를 붙인 모양이나 거친 필치에서 느껴지는 위용에 위축되어, “천국으로 갑니다!”가 ‘깨끗이 사용하지 않을 경우, 천국으로 가게 해주마’라는 경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들이 바로잡아 주어 오해를 풀게 되었다. 
화초 가져 가신 분
CCTV에 찍여 있습니다.
양심껏 다시 가져다 놓으세요.
양쪽옆에 CCTV가 두 대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는     을
                        훔쳐 가면 안 되죠?
                        걸리면        당합니다.
                                        입니다.
죄 아닌 죄 -나그네-

숨어서 피워야 되나요, 나라
담배를 도적질 한 것은 아니지
미세먼지

추잡하게 꽁초 함부로 리면서
가래침 뱉습니까
이 골목 전체 CCTV 찍힘
  • 시인 혹은 나그네의 한탄
킥..보드 주차금지 CCTV 녹화중
쓰레기 버리마세요
자기네 집앞만 깨끗하면
사람이…………??
CCTV 녹화중
  • 이 지시문을 부착한 이는 이웃이 범인임을 확신하고 있다.
        안 내 말 씀
성산 제 1동 주민 여러분!
주민 여러분께 안내말씀드립니다.
주민들께서 힘들게 납부하여 주신 세금이
이곳에 몰래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는데 
헛되이 사용된다면 좋으시겠습니까?
이제는 이곳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을 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민 전체의 복지를 위하여
사용되어야할 세금을 더이상 헛되이
낭비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주민여러분의 고발정신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신고처 : 동 사 무 소 ☎ XXX-XXXX~X
    : 청소행정과 ☎ XXX-XXXX
▶ 신고하신 분께는 10,000원의 포상금을 드립니다.
        성 산 제 1 동 장
    과태료 부과 안 내 문
장애인 전용 화장실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이곳을 이용할시
  비장애인
10만원에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올림픽프라자상가관리소장
쪽같은 내몸인데
기처럼 사라질소냐
십까지 살려면은
시 금연 뿐이로세

CCTV 촬영중
담배피다 걸리면 벌금 10만원!!
99세 절대금연!!

Tags: 필자 5호 탈플랫폼


Updated 26.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