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8호 > 엔시티피케이션 특집 > 
K-플랫폼 열혈 사용자 푸모 씨의 경이로운 생애 제1막
👤신포도

독자들에게

이 글은 『엔시티피케이션』의 서평 격으로 쓰였다. 엔시티피케이션은 저자인 코리 닥터로가 만든 신조어로 플랫폼 부패, 플랫폼의 쓰레기 및 개똥화를 부르는 말이다. 디지털 플랫폼이 수익을 추구하며 사용자에게 점점 나쁘게 변하는 현상을 가리키기 위한 단어.

코리 닥터로의 정의에 따르자면 엔시티피케이션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1단계. 일단 플랫폼이 당신(사용자)에게 잘한다.
2단계. 그러다 사업자 고객의 편의를 위해 당신을 괴롭힌다.
3단계. 그러고는 사업자 고객을 괴롭혀 가치를 몽땅 자기들 몫으로 거둬들인다.
4단계. 결국 플랫폼은 거대한 똥 더미가 된다.

아무래도 ‘엔시티피케이션’이라는 말로는 이같은 의미가 잘 다가오지 않으므로, 이하 글에서는 이를 ‘똥랫폼’이라 칭했다. 식사 중인 독자에게는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한다.


제1장. 푸모 씨의 화려한 우정과 이력에 관하여

푸모 씨는 현대 대한민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푸’ 씨 성을 가진 몇 안 되는 작자로, 마지막 남은 푸가(家)의 장자다. 그의 이름을 밝히면 즉각 신원이 노출되기 때문에 사실 적시 명예훼손 고발을 피하고자 이 연대기에서는 그를 ‘푸모 씨’라 칭하겠다.

푸모 씨는 1884년 12월 6일 서울 변방에서 출생하였다. 마침 삼일천하라 불리우는 갑신정변이 끝난 날이었고, 조선은 근대+식민주의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푸가는 대한민국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동짜가(家)와 오랜 연을 이어왔는데, 동짜가의 걸출한 인물 한 명을 뽑으라 한다면 그는 언쟁의 여지 없이 동짜몽일 것이다. 동짜몽은 근대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물품을 여럿 갖고 있었는데, 크기에 한계가 없는 흰색의 복주머니나 시간과 거리라는 이동의 필연적 한계를 보란 듯이 조롱하는 축지문(縮地門)①이 대표적이다.

푸모 씨는 동짜몽과 20년 가까이 두터운 친분을 쌓아왔다. 안타깝게도 1913년, 동짜몽은 아시아 유일의 열강국인 대일 제국에 피랍되었고, 푸모 씨는 동짜몽을 송환시키고자 언더커버 독립 열사로 활동하였다. 1945년 8월 15일, 동짜몽은 고향의 땅을 밟게 되었다. 둘의 포옹이 너무 뜨거워 종로 전체의 기온이 일순간 0.3도씨 올랐다고 전해진다. 독자의 이해를 위해 밝히자면 1969년 12월부터 일본에서 만화로 발행되기 시작한 ‘도라에몽’은 원본 동짜몽이 개인적으로 모아두었던 데이터를 딥러닝하여 생성된 복제 피조물이다. 자신의 데이터로 시퍼런 고양이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격분한 동짜몽은 도라에몽 만화책을 갈기갈기 찢어 키우던 햄스터의 베딩을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동짜몽도 가만히 있을 작자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데이터를 넘기는 대신 대일 제국에 잠시 서식하였던 렙틸리언 군체의 기술력을 습득하였고, 귀환 이후 그 기술을 응용해 축지문에 시간 축을 더했다. 그리하여 푸모 씨는 축지문을 통해 해외의 동향을 살피는 것은 물론, 사실상 영생에 가까운 삶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푸모 씨는 근현대 대한민국의 중요한 역사적 순간마다 이름과 나이를 바꾼 채 등장하였고, 익명의 존재로서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사라지길 즐겼다. 그는 뛰어난 식견을 활용하여 기상천외한 해결책을 고안하고, 그를 동네 아이들과 입이 가벼운 총각들에게 퍼트렸다.②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푸모 씨의 아이디어는 순식간에 대중적 움직임으로 번졌고, 그중 몇몇은 역사 교과서 끝자락에 실릴 정도였다. 독립 직후에는 거시경제와 정치적 갈등, 지정학적 역학 논리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40년 넘게 이어진 소모적인 냉전 시기 이후, 그는 완전히 국가 시스템 따위에 질린 듯 보이며, 보다 넓은 세계적 질서로 눈을 돌린다. (그가 경제 분야에서 시도한 마지막 서동요는 1997년 IMF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된 금 모으기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푸모 씨는 디지털과 통신, 게임, 데이터, 보안 등 테크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닷컴 버블dot-com bubble’의 흥망성쇠, 바닥에서 다시 돌아온 닷컴 좀비들을 조용히 응원했으며 심지어는 축적해 둔 자산의 30퍼센트를 기술 벤처 사업가에게 투자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익명의 피처폰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뭇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푸모 씨는 선한 딥스테이트처럼 움직였다. 해외는 물론 과거, 미래를 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고집스레 이름을 감추며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했다.

그러나 지금의 푸모 씨는 어떠한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현재 푸모 씨의 하루는 플랫폼이 설계해 둔 간악한 알고리즘의 리듬에 의해 조직되고 있다. 푸모 씨의 평균 스크린타임은 16시간 48분에 달한다. 동짜몽이 남긴 근사한 선물인 축지문은 오로지 복권 번호와 토토 베팅을 위해 농구 경기 결과를 미리 보고 오는 데 낭비되고 있다. 그가 돈에 집착하는 이유는 단 하나, 한 달 16만 원에 이르는 통신비와 스크린타임을 묵묵히 견딜 수 있는 최신 스마트폰을 구비하기 위함이다.

동짜몽은 푸모 씨가 16시간 48분 동안 사실상 ‘똥’과 다름없어진 현대의 플랫폼(이하 ‘똥랫폼’이라 칭한다)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식민화당하고 있는가를 알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여 이어지는 장은 이세계異世界로 이동한 동짜몽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쓰인 일종의 고발문이자 텍스트 르포다. 푸모 씨의 똥랫폼 이전 시절에 관해서도 꽤나 자세히 묘사했는데, 이는 동짜몽의 요청에 의한 것이다. 열정이 넘치던 2000년대 중반 푸모 씨의 반짝이는 눈, 그리고 똥랫폼에 푹 잠긴 현재의 푸모 씨를 보고 있자면 침울해질 터이나 부디 독자들의 너른 이해를 바란다.

아래 서술된 모든 내용을 사실이라 할 수는 없으나, 또한 어떠한 것을 거짓이라 확신할 수도 없을 것이다.

제2장. 똥랫폼 이전, 푸모 씨의 고상한 쇼핑 취미와 시간 낭비

똥랫폼에 지배당하기 이전, 푸모 씨는 온라인 아이쇼핑을 즐겼다. 남과 다른 것을 추구하던 2000년대 푸모 씨는 대개 이베이(eBay)③에 접속했다. 글로벌화된 온라인 골동품 가게 같던 이베이에는 푸모 씨의 오랜 기억과 추억을 되살릴 희귀한 물품이 가득했고, 푸모 씨는 업로드된 상품 목록을 살피며 그 전사를 냉소적으로 추측하길 즐겼다.

“이 새끼, 이거, 담뱃값 벌려고 할아버지 옷장에 있는 보물 상자를 훔쳤구만”
“이거, 이거, 돈 조금 더 받자고 열심히도 위조했구만”


따위의 혼잣말을 자주 지껄이곤 했다. 퉁명스러운 내용과 달리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으며, 심지어는 힘이 한껏 들어간 승모근으로 드르륵, 마우스 휠을 오랫동안 내리곤 했다.

그가 가장 몰입했던 쇼핑이라면 당연지사 베트남전 당시 보급되었던 지포 라이터의 중고품을 구하는 일이었다. 베트남전 당시 지포 라이터는 참전 미군들의 은밀한 BFF였다. 식량을 데우거나 거울을 대신할 용도로 지포 라이터가 필요했고, 은신처나 가옥을 수색하고 불태울 때는 지포 라이터만 한 게 없었다. 해당 작전을 ‘지포 레이드(Zippo Raid)’라 부르기까지 했으니, 지포 라이터의 살상력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전쟁이 길어지자 지포 라이터는 아뮬렛(부적·Amulet)의 역할까지 떠맡았는데, 때문에 당시 미군들은 라이터 뒷면에 자신의 군번과 이름, 혹은 짧은 유언을 새겨두기도 했다. 축지문 뒤에서 지긋한 냉전기를 목격했던 푸모 씨에게 참전 지포 라이터는 길어진 과거를 불러오는 값싼 소품이었음에 틀림 없다.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에도 이베이에서 유통되는 베트남 지포 라이터 대부분은 관광객용으로 위조된 제품에 불과했다. 1990년대 냉전 종료 이후 미국과 베트남이 전략적 친구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노점상들은 참전 용사들의 노스탤지어를 불러오는 신파 지포 라이터를 제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푸모 씨의 기이한 집념은 위조품이 판치는 시장에서도 진품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승부욕으로 이어졌으며, 리얼 쉿 베트남산 지포 라이터를 구매하는 과정은 매우 정교하고 지난했다.

일단 푸모 씨는 이 많은 지포 라이터 중 무엇이 진짜 베트남 참전 지포인지를 확인해야 했다. 정보는 충분치 않았다. 당시 이베이는 상품 상세 사진을 두 장 이상 업로드할 시 판매자에게 추가 수수료를 부과했기에, 더 많은 사진을 보기 위해서는 구매자의 개인적 접촉이 필수적이었다. 스피킹에는 능했으나 라이팅에는 영 꽝이었던 푸모 씨는 먼지 쌓인 영한사전을 들춰 보며 조잡한 영어 문장을 만들어야 했다.

Could you take extra pictures and send them to my email? po0po0@yahoo.co.kr
I need to see: Bottom stamp markings / Inside insert details


돈이 급한 판매자는 아주 친절하게도 바닥면의 지포 스탬프 마킹과 라이터의 속살 컬러를 찍어 전달했다. 그때부터 푸모 씨는 돋보기를 고쳐 쓰고 마크와 연도, 구린 화질의 사진을 비교하며 정품 판정을 내렸다. 당시 푸모 씨의 책상 앞 벽면에는 A3 사이즈로 인쇄된 ‘연도별 지포 바닥 마크 표’가 붙어 있었다. 푸모 씨는 판매자가 이메일로 전송한 사진 속 점과 기둥의 수를 세어가며 해당 모델이 1965년부터 1975년 사이에 생산된 모델임이 틀림 없는지 꼼꼼히 검토했다.

마음에 든 제품이 정품인 것을 확인한다고 끝이 아니었다. 그는 낙찰 전에 판매자와 몇 차례 메일을 주고받았다. 싸우쓰 코리아로 국제 배송을 해줄 용의가 있는지, 만약 있다면 어느 정도의 배송비를 덧대야 할지 등등 까다로운 문제에 대해 협의해야 했다. 한 판매자가 기적처럼 한국 배송의 수고를 감행하겠다 답했고 푸모 씨는 부푼 마음을 안고 즉각 우체국으로 향했다. (물론 배송비는 국제 우편 발송 비용의 세 배인 15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푸모 씨는 우체국에서 우편환을 산 뒤, 수표 뭉치를 판매자의 주소로 보냈다. 판매자는 우편을 받은 후 은행을 찾아 그것을 현금화했고, 그 돈을 확인한 뒤 물품을 전달했다. 이메일을 보낸 지 꼬박 두 달 하고도 12일이 지난 후에야 푸모 씨는 베트남전의 노스탤지어가 묻은 라이터를 손에 쥐었다. 기름내가 새어 나오는 소포 상자를 열 때는 식은땀까지 흘렸다. 똥랫폼 중독자가 되기 이전의 푸모 씨는 심심할 때마다 그 3초의 짜릿함을 되새김질했다. 기름 내음을 만끽하는 3초를 위해 오랜 지루함을 견딘 것이라고, 두 달의 모든 즐거움을 그 3초로 압축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소리쳤다.

여기까지가 그에게 남은 단 하나의 라이터가 탄생한 과정이다. 푸모 씨는 이후 10년간 베트남 지포 라이터로 세상의 모든 연초를 누렸다. 그야말로 사치스러운 흡연자가 아닐 수 없다.

제3장. 쿠팡의 기이한 시공간 왜곡 및 알고리즘의 곤충적 움직임에 관하여

2010년 여름 한국은 소셜커머스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티몬이니 위메프니 쿠팡이니… 고객 머릿수에 따라 물건 가격을 바꾸겠다는 선언은 당연스럽게도 이베이의 낭만적 지루함과 거리가 멀었다. 휠도 잘 돌아가지 않는 빈티지 지포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던 푸모 씨의 거만한 미소도 몇 년은 질기게 이어졌던 것 같다. 안타깝게 균열은 한순간에 도착했지만 말이다. 인절미 빙수와 봉구비어, 타요버스가 지배하던 2014년 어느 날, 그저 그런 소셜 커머스 중 하나였던 쿠팡이 충격적인 선언을 한다.

“우리는 아마존이 되겠소.”

이제 쿠팡이 직접 물건을 사서 판매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코딱지만 한 조선의 땅덩어리를 최대 효율로 사용하겠다는 듯 로켓 배송 시스템까지 도입한다.

“오늘 시켜보시죠, 내일 도착합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는 쿠팡맨들은 축지문의 미니어처 버전처럼 바삐 움직였다. 그때부터였다. 이 작은 땅의 시공간 축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물론 그때까지 푸모 씨는 냉소를 지우지 못했다.

‘저게 편하다는 걸 누가 몰라서 안 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거야.’
‘불가능으로 돈을 벌겠다는 것만큼 멍청하기도 힘들지.’
‘연금술사는 다 그냥 뒤졌나?’


푸모 씨는 한국을 휩쓴 인절미 빙수도, 놈코어도, 타요버스도, 봉구비어도 즐기지 않았다. 심술맞지만 눈치 있는 할배로, 그럭저럭 잘 늙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축지문 따위로 억지 생을 이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한 것도 여러 번이다. 푸모 씨는 본인의 탄생 140주년인 2024년 명예롭게 죽겠다 계획했다. 2019년 전염성 독감이 돌기 전까지는 흠잡을 곳 없는 계획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지배하던 약 3년이 모든 것을 바꿨다. 평생 동안 제도와 시공간을 마음껏 희롱해온 푸모 씨. 피도 눈물도 없는 바이러스는 그러한 이에게 더욱 가혹하게 굴 것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푸모 씨는 136살 같은, 애매한 나이에 죽고 싶지 않았다. 멋스럽고 의미 있게 죽고 싶었다. 살고 싶었다는 말이다. 푸모 씨는 팬데믹 종결이 선언될 때까지 마당 밖으로 나서지 않았다. 심지어는 똑똑하게 두문불출하고자 지나치게 노력했다.

손등보다 따뜻한 이마에 발열 불안이 도지던 날, 푸모 씨는 오래전 처박아둔 이름인 ‘쿠팡’을 떠올렸다. 의심 반, 기대 반으로 로켓 배송되는 수은 체온계를 주문했다. 10시간도 되지 않아 쿠팡맨이 푸모 씨의 마당 앞에 수은 체온계를 대령했다. 푸모 씨는 그야말로 감격했다. 쿠팡맨은 슈퍼맨이니, 아이언맨 같은 서구열강의 억지스러운 히어로보다 훨씬 더 위대한 존재임에 틀림 없었다. 게다가 길거리에 택배 상자를 두고 가도 괜찮은 나라라니! 그때 푸모 씨는 아주 오랜만에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을 느꼈던 것 같다.

그의 감동과 사랑은 푸모 씨를 이루던 성질과 냉철했던 시공간 감각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지포 라이터 판매자와 자기 자신 사이에 놓인 광활한 지구 땅덩어리를 17시간의 시차로 번역해 온전히 견뎌내던 그 마음, 기름 내음이 섞인 3초의 감동을 위해 축지문을 애써 못 본 체 하던 마시멜로적 인내. 그들은 전생의 꿈처럼 잊혔다. 2026년의 푸모 씨는 배송 기간이 이틀 이상 넘어갈 경우 즉각 ‘해당 기업을 폐쇄하라’는 내용의 국민청원을 올렸다. 집 앞 15초 거리에 있는 편의점에는 고집스레 들르지 않았고, 굳이 쿠팡이츠 장보기를 사용해 한 시간 더 늦게 물품을 배송받았다. (물론 푸모 씨도 팬데믹은 끝났다는 걸 알고 있다.) 심지어 푸모 씨는 쿠팡의 하드 유저가 되기 시작하면서 5살 때부터 태우던 연초를 끊는 데 성공했다. 신기하게도 쿠팡에서는 담배를 팔지 않았기 때문이다.

푸모 씨의 또 다른 소일거리라 한다면 인스타그램에 뜨는 쿠팡의 제품 추천 광고를 뿌리까지 파먹는 것이었다. 인스타그램 속 쿠팡 광고는 하나의 영역에 소속되길 거부하는 듯 예측 못 할 움직임을 보였다. 그들은 푸모 씨가 수차례 재주문했던 그래픽카드나 조립식 본체의 냉각팬, 5중날 면도칼이나 냉동 완두앙금빵 따위는 추천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푸모 씨의 삶과 지나치게 거리가 먼 용품들, 예를 들어 큐티클 케어 오일이나 거북목 견인기, 도라에몽 굿즈 따위를 추천하지도 않았다. 쿠팡은 그 사이, 어느 교묘하고도 야릇한 영역을 점유했다. 장난감처럼 생긴 4만 원짜리 중국산 카메라, 한국에서는 팔지 않는 태국의 망고우유향 향수, 고양이의 귀와 발이 튀어나온 280mm 사이즈의 샌들 같은 것 말이다. 쓰잘데 없으나 귀여운 물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또 그러한 물건들만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여느 날 같던 광고 알고리즘 산책 중, 푸모 씨는 쿠팡으로부터 검정 티셔츠 하나를 추천받는다. 앞판에는 대문짝만하게 ‘-.--  ---  ---  -.④어게인’이라는 문구가 프린팅돼 있다. 새로 산 티셔츠를 입고 광화문에 나간 날, 푸모 씨는 29년 만에 정치적 활동을 재개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2026년의 푸모 씨는 로켓배송으로 받은 확성기를 들고 전장 최전선에 서서 노인답지 않은 성량을 뽐냈다. 그렇게 대중 앞에 선 날만큼은 스크린타임이 10시간으로 줄어드니, 이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푸모 씨의 먼지 쌓인 책상 한 켠.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쓴 지포 라이터가 서있다. 부싯돌은 갯벌 위 모래알만큼 작아졌고, 불씨를 받아내던 실은 검은 잿가루가 된 지 오래다. 지포 라이터의 원래 주인이던 그 군인은 지포의 속살에 “Long Live”라고 새겨두었다. 뒤에도 무언가를 새기려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만 글자까지 식별하기는 어렵다. 그 미군은 전완근의 힘이 다해 마지막 단어를 조금 더 얕게 새겼을지도 모른다. 혹은 마지막 단어를 새기는 사이, 관자놀이에 총을 맞아 자신의 아뮬렛 지포를 놓쳤을 확률도 있다.

2026년, 국소적이고 치열한 전쟁을 펼치는 푸모 씨에게도 아뮬렛이 필요할 텐데. 검정색 알고리즘발 -.--  ---  ---  -.어게인 티셔츠는 지포 라이터처럼 단단하지 않으니 말이다. 지금의 푸모 씨는 Long Live 뒤에 어떤 단어를 적을까? 설마 Coupang? 에이. 아무리 푸모 씨가 스크린타임 노예로서 망가진 삶을 산다 하더라도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

[... 다음에 계속]


① 한국에서는 ‘어디로든 문’으로 번역되었다.
② 과거 푸모 씨는 이를 ‘서동요 기법’이라 불렀고, 그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역시 2005년 방영된 SBS의 드라마 <서동요>이다.
③ 이베이는 1995년 9월 3일에 ‘옥션웹’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중고 거래 플랫폼으로, 1997년 현재의 ‘이베이’라는 이름을 채택했다.
④ 불필요한 논란을 막기 위해 모스부호로 표기한다.



Tags: 신포도 8호 탈플랫폼 소설


Updated 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