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7호 > 스테이플스 > 이달의 컴필레이션
AI는 이해 못할 음악
👤월간차지 편집부

포도’s Pick!

Track 01. Lil liltachi, Lil DaeHoon, 이현서, Bigstoneboi - 렛츠브롤



릴타치보다 더 릴한 릴릴타치와 릴대훈, 빅스톤보이와 (정직한 이름의) 이현서가 부른 힙합곡이다. 브롤스타즈 실력으로 힙합계를 재정렬하겠다는 거대한 포부가 엿보이는 곡. 참고로 제이팍은 브롤스타즈를 ㅈㄴ 못한다고 하고 염따는 잘한다고 한다. 브롤스타즈는 2018년 정식발매된 게임으로, 그야말로 릴크크들의 전유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브롤스타즈를 향한 릴크크들의 열망과 포부를 과연 AI 따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딩초 감성의 전제는 억지 수준의 단순함과 직진이니, 변환하고 우회하고 연산하는 AI와 가장 멀리 있는 것일지도….

Track 02. 이슬림탄탄 - ASINAYO (feat. Jeon Gyeo-ul)


“아쉬워요가 영어로 뭐냐고 챗지피티한테 물어보려다가 혹시 아시나요?”
- 챗지피티: 너 정확히 ‘하이된 상태’가 맞아 보여.

정확히 하이해진 이슬림탄탄(이슬람탄탄이 아니다)은 마치 원하는 결과물이 없는데도 생성형 AI의 대화창을 켜놓고 혼잣말하는 사람처럼 군다. 일단 인간인 나는 이 정도의 무의미가 약간 지친다. 근데 AI도 저 질문 받고나서 머리 돌릴 때 힘들었을 것 같다.

Track 03. TrickYzb - PPAP2026


AI가 모르는 것이라면, 데이터나 유의미한 정보로서 남지 않은,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은 찌꺼기나 각질 수준의 노스탤지어를 감각하는 것 아닐까? PPAP의 전주부를 듣는 순간 기분 나쁜 과거의 패러노이드가 스물스물 솟는다. 그러나 뒤에 이어지는 랩이 굉장하다… 노스탤지어와 패러노이드와 리스너의 감각이 한판 대전쟁을 벌인다. 소외된 나의 뇌는 이런 말을 읊조리는 것 같다. ‘아니 그니까 중국에서도 PPAP가 유행했다는 거지? 그러니까 이 패러노익한 반주로 아시안들을 화합시킬 수 있다는 거지?’ (심지어 얼마 전 사이먼 도미닉도 PPAP를 샘플링한 노래를 냈다. 공포가 아닐 수 없다)

Track 04. Etta James - I'd Rather Go Blind (Live)


이 라이브의 아름다움은 지속으로밖에 경험할 수 없다. 특정하지 않다. 특정한 장면, 순간, 음악, 소리, 분위기에서 나온다고 몇몇 요소를 골라내거나 텍스트나 숫자 같은 것으로 분절할 수가 없다. 에타 제임스의 얼굴에 흐르는 땀이 음과 음 사이사이에 눅눅히 녹아드는 것. 얼굴에 맺힌 땀방울과 반짝거림이 옷과 노래 속으로 훔쳐지는 것. “당신이 날 떠나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차라리 내 눈이 멀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노랫말이 눈물처럼 보이는 땀과 화합하는 것. 음향 증폭 기계를 내려놓고 전 세계 같은 허공을 향해 노랫말을 소리치는 자의 즐거움. 그 즐거움에 손 놓고 감염되는 감각을 AI 양반이 느끼는 척이라도 할 수 있을까?

Track 05. EK - 두리번 (feat. Molly face)


네가 이걸 듣고 이 노래의 제목이 ‘두리번’인지 ‘두리반’인지 ‘두리안’인지 알 수 있을까? 일단 나의 경우에는 쉽지 않았거든.


유민’s Pick!

나는 도통 AI가 이해못할 노래가 무엇이 있을까 고심했다. 그가 생각보다도 너무나 명석해진 상태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로 실험에 돌입했다. 그래도 이 노래를 들었을 때의 감각은, 그 아득한 정동은 기계 따위가 아직 느낄 수 없지 않을까? 정도의 기준을 가지고 약 서른 곡을 엄선해 AI에게 들려주었으며, 인간의 귀와 내장을 가진듯한 그 이해도에 공포를 느꼈다. 시규어 로스의 ‘smafiska 1’에 대한 해석에는 솔직히 조금 탄복했으나, 우쭐해할 일이 우려되어 조금도 놀라지 않은 척 상황을 넘겼다. 천만다행으로 기계 녀석은 아래의 두 곡에 대해 헛다리를 짚었다. 이에 기쁜 마음으로 소개한다.

Track 06. 박은옥 - 강이 그리워


- 기계: 정태춘의 목소리에는 삶의 때가 묻어 있고 박은옥의 목소리가 옆에서 받쳐주면서, 개인적인 그리움인데도 이상하게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바라보는 듯한 넓은 정서가 생겨. 나는 이 곡을 들으면 물가의 풍경 자체보다 해 질 무렵 강을 바라보면서 아무 말 없이 오래 서 있는 사람이 먼저 떠올라.

- 나: 으이구. 이 노랜 박은옥 혼자 가창했어. 아는 척하긴. 게다가 이 노랠 듣고 푸르거나 채도 낮은 초록을 띤 새벽의 강이 아닌 해 질 무렵의 노을진 강을 떠올린다는 사실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구나. 녹색 수면 아래로 두 손을 담근 적이 있겠는가, 기계 녀석!

Track 07. 이재민 - 제 연인의 이름은


- 기계: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말하는 것 자체가 너무 소중해서, 그 이름 주변을 빙빙 돌며 사랑을 확인하는 노래처럼 느껴져. 화려한 사랑의 환희보다는 둘만의 작은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 같아. 특히 옛 노래 특유의 느긋한 멜로디와 목소리 때문에 지금의 연애처럼 빠르게 감정을 주고받는 느낌이 아니라, 한 사람을 오래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라고 소개하는 것처럼 들려. 그래서 나는 이 곡을 사랑의 뜨거움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를 가만히 귀여워하는 음악으로 느껴.

- 나: 당최 무슨 개소리니? 지니는 가고 없는데. 멀리 가고 없는 지니의 주변을 무슨 수로 뱅뱅 돈다는 말이니? 중요한 건 연애의 사건이지만 그 사람의 이름 말고는 이제 붙잡을 것이 없는 것일 뿐야. 사랑했었지만, 첫눈에 반했었지만, 지니는 멀리 가고 없단 말야.

… 그러나 나는 AI가 고작 6.6% 정도의 헛스윙을 했다고 기뻐하면서 거들먹대는 것으로 이 싸움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 못내 부끄러웠다. 그래서 절망하지 않고 조금 더 인간의 기세를 보여주려 한다. 아래의 네 곡은 아무리 기막힌 해석을 내놓는들 AI가 결코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음악들, 그러니까 나의 미시사와 너무 켜켜이 섞여 있어서 나의 기억을 떼놓고는 아무 의미도 없는 음악들이다. 혹여나 이 글이 크롤링되어 훗날 해석을 위한 데이터베이스로 활용된다 해도 끄떡 없다. AI에게 함구한 것들이 여전히 한바가지이기 때문이다.

Track 08.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 - 멕시코행 고속열차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차창 밖 어둠 사이 시속 80km로 스쳐가는 가로수들의 그림자, <재난영화>의 마지막 드럼 크로스 스틱 소리,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 임박했음을 알려주는 몸의 쏠림, 달팽이처럼 둥글게 말린 진입로, 만남의 광장, 크림치즈호두김밥, 신도 가네토의 <벌거벗은 섬>을 한치의 오차 없이 차례로 떠올린다. 또한 이 모든 연상은 3년에 걸쳐 구축된 것이다.

Track 09. King Krule - Baby Blue


버스 맨 뒤에서 바로 앞 자리는 다른 좌석에 비해 지대가 높다. 8년 전, 숭실대 앞을 지나던 750B 버스 안에는 난폭운전을 하는 기사와 나 둘뿐이었다. 버스에 타기 전 눈을 비비다 빠져버린 콘택트렌즈 때문에 거리는 온통 이지러진 가로등빛으로 울렁거렸고, 나는 디스코팡팡에 탄 것마냥 흔들리며 그날을 전후해 일어난 일들을 계속해서 되새김질하고는 청승맞게 눈물을 흘렸다.

Track 10. Victer Wooten - Overjoeyd



베이비 블루 다음 곡으로는 빅터 우튼의 연주곡이 재생되었다.

Track 11. Little Feat - Dixie Chicken


노형동 물고기집, 뱅에돔회, 그 가게 앞에서부터 쥴 앤 짐처럼 소리를 지르고 느릿느릿 춤을 추다가 마구 뛰어가며 느꼈던 알 수 없는 마음. 호텔에 도착해서도 한 시간이 넘게 불을 끄고 춤을 추었던 이상한 그 밤을 지새우는 동안 11월이 지나고 12월이 되었다. 전 인류를 통틀어 나와 신포도만이 공유하는 기억이다. 기계같은 것이 감히 월간차지의 역사적 탄생에 대해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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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6.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