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컴필레이션
춤추기 좋은 음악
유유민
나는 춤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다.
부끄러움. 초대받지 못했다는 기분.
꿔다 놓은 보릿자루. 멍하니 테이블에 앉아 정신없이 춤추는 사람들을 풍경처럼 바라보던 이상한 나의 몸. 친구의 손에 이끌려 갔던 클럽에서의 몇 안되는 기억은 죄다 그런 것들이다. 의문스럽다. 춤은 오히려 삶에 찌든 직장인들에게 강권되어야 하지 않는가? 클럽은 대개 그들을 위해 열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갖춰입지도 어리지도 않을 때 더욱더 가능한 행위가 아닌가? 경직된 자세와 견고한 기계들, 날서고 고달픈 업무와 둔탁한 관계, 사소한 정치, 오와 열이 맞지 않는 문서작업, 윙윙대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들. 마침내 춤이 필요해진다. 이 모든 스트레스와 긴장을 흘려보내는 이완의 춤… 퇴근한 당신은 온 방의 불을 끄고 LED 벽시계의 코드까지 뽑는다.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도 어느새 밤 10시가 넘었다. 헤드폰을 뒤집어쓰고 베이스와 트레블을 가능한 가장 높게 올린다.
Track 1. Le Freak (2018 Remaster) - Chic
디스코로 시작하는 건 그게 가장 빠르기 때문이다. 춤을 추라고 몸을 설득할 필요도 기분을 고양시켜 보리라는 의지도 필요하지 않다. 이미 몸이 다음 동작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어려운 비트를 학습하는 찰나의 망설임 없이 곧장 흔들면 된다. 2018 리마스터 버전은 베이스가 더 선명하게 들린다.
Track 2.
In the stone - Earth, Wind & Fire
디스코로 시작하는 건 그게 가장 빠르기 때문이다. 춤을 추라고 몸을 설득할 필요도 기분을 고양시켜 보리라는 의지도 필요하지 않다. 이미 몸이 다음 동작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어려운 비트를 학습하는 찰나의 망설임 없이 곧장 흔들면 된다. 2018 리마스터 버전은 베이스가 더 선명하게 들린다.
Track 3. Han Jan (Edit) - Peggy Gou
앞의 세 곡에서 사지를 크게 움직였다면 이제 팔꿈치를 구부리고 스타카토로 출 차례다. 얼굴 앞으로 팔을 세워 가드를 만든 채 흔드는 게 자연스럽다. 한 잔, 두 잔, 세 잔, 네 잔, 페기구의 주술 같은 목소리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주방으로 이동해 메밀차를 한 잔 마신다. 데낄라라면 더 좋겠지만 우리는 내일 출근을 해야 하니 숙취는 금물이다.
Track 4. Liverpool Street In the Rain - Mall Grab
Han Jan의 기세를 이어 계속해서 작게 출 수 있는 음악. 베이스가 낮게 깔리고 그 위로 패드 사운드가 비처럼 내린다. 이쯤 되면 당신의 고양이는 당최 저 인간이 무슨 일로 저렇게 춤을 추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하며 다가올지 모른다. 북슬북슬한 털이 다리를 휘감고 지나간다. 괘념치 말고 움직여야 한다.
Track 5. Lady (Hear Me Tonight) - Modjo
다시 에너지를 올릴 차례다. "As we dance, in the moonlight" 도입부에 머금고 있던 필터가 천천히 열리면서 점점 선명해지는 멜로디를 느낀다. 조금 구태의연한 후렴구의 흐름이 더 좋다. 후렴 한 번이 하나의 단위를 만들어주는 기분이다. 아마도 발이 이전과는 달리 좀 바삐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Track 6. Love Is Real - Loods
사랑이 진짜라는 걸 보여달라는 순전한 외침이 한겨울 양송이 수프처럼 뭉근하게 울려 퍼진다. 반복되는 보컬을 들으면서 아주 천천히, 3분 20초에 걸쳐 춤을 멈추자. 킥은 끝나지 않았지만 춤을 출 체력도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으니, 땀을 식히고, 숨을 고르고, 마지막 노래에 성심성의껏 대응해 본다. 헤드폰을 벗고 불을 켜면 다시 해야 할 일과 만나야 할 사람들, 밀린 업무들이 떠오르겠지만 괜찮다. 지치면 또다시 이 플레이리스트를 켜고 춤을 추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