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힙합 연대기 1
유유민


2005년 2월에 교통사고를 당했어. 아니, 냈다고 말하는 게 적절할지 모르겠어. 정확히는 내가 타고 있던 차가 사고를 냈어. 좀 더 솔직하게, 사고를 낸건 엄마였어. 실명까지 밝히게 된다면 그녀에게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하겠지. 카톡으로 몰래 알려줄게. 어쨌거나 그건 4차선 국도에서 일어난 일이었지. 나와 엄마는 자주색 티코를 타고 매일 아침 그 국도를 꼬박꼬박 28.8km씩 달렸어. 집에서 학교까지. 이 수치를 확인하기 위해서 방금 집(영덕군 남정면 양성리)에서 학교(포항시 북구 환호동)까지를 내비게이션 앱에 찍어보았는데, 놀라울 정도로 직선적인 경로였더라. 신호등도 없이 뻥 뚫린 길이니 안전에 불감했던 나의 엄마가 포르쉐 차주의 기분으로 질주하기에 그보다 더 나은 조건은 없었겠다. 나는 그 국도를 지나는 일을 항상 환상처럼 느꼈는데,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중간지역을 그야말로 ‘통과’ 한다는 인상 때문이었지. 멈추지도 주저하지도 않고, 목적지에 이르기 전까지 하염없이, 시속 80km/h의 속도로, 티코의 뒷좌석에 몽롱하게 몸을 뉘인 채로,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스타게이트나 앨리스의 토끼굴처럼… 

끼이이이이익—-- 쾅!!!! 나는 빙글빙글빙글 김연아의 비엘만 스핀처럼 돌아가는 차 속에서 비명을 지르고는 기절했어. 다음 기억은 “유민아” 하고 부르는 엄마 목소리에 눈을 떠보니 내가 운전석 밑에 처박힌 채 유리조각을 덮어쓰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다시 정신을 잃은 다음, 눈을 떠보니 이번에는 웬 낯선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사설 구급차로 이동 중이었다는 것. 교복 와이셔츠 카라깃이 피로 흠뻑 젖어, 목격자들은 내가 죽은 줄 알고 비명을 질렀대. 

사실 벌써 이 얘기를 할 필요는 없었는데, 나는 K-드라마의 산업 역군이지 않니? 그리하여 나는 후킹한 구절을 초반에 배치하지 않으면 플랫폼과 채널은 내가 쓴 기획안을 읽어주지도 않을 것이며, 기적처럼 편성이 이루어진다 해도 시청자들이 모조리 이탈할 것이라는 공포에 내내 질려있단 말이지.

위 문단에 낚여서 네가 지금껏 이 편지를 쉼없이 읽고 있다면 에구구, 성공이구나. 그럼 다시 국도의 토끼굴로 돌아가보자. 서사의 앞뒤가 뒤섞여 버렸지만 괜찮지? 우리의 두뇌는 이미 쇼츠에 절었잖아. 앞을 먼저 보든 뒤를 먼저 보든 무슨 상관이니? 후킹하기만 하면 되는데. 후킹하기만 하면 편성을 따낼 수 있잖아. 시청자들도 이탈하지 않을 거고. 그렇다면야 그 다음은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니? 

우리 집은 영덕군과 포항시의 접면에 위치해 있었어. 집에서 차를 타고 3분 정도 달리면 “안녕히 가십시오. 영덕군” 이라고 적힌 대게 모양의 흉측한 구조물이 나타났지. 그 경계를 지나기 직전 불과 1km 정도의 구간 동안 최후의 ‘영덕’적 정체성을 마구 토사곽란하듯이, 크고 작은 해안가의 주택들이 따개비처럼 밀집해 있고 고지대에는 청기와횟집, 가고파횟집, 대게회센터, 휴게소, 해물짬뽕집 같은 것들이 기를 쓰고 몰려 있었어. 안녕히 가십시오. 영덕군을 지나는 순간부터 도로는 요술에 걸린 마냥 고요해졌지. 아마도 앨리스는 그 지점에서 토끼굴로 뛰어들었을 거야. 토끼굴에서 풀려나면 어느새 도심에 진입해 있었어. 랜드마크와 랜드마크 사이를 구성하는 도농복합도시적 읍면리 지역들은 사실 행정구역 내에서 그들이 점유하는 영역이 훨씬 광활함에도 불구하고, 거주민이 아니라면 인식의 범위에 도통 포착되지 않는단 말이지. 송라, 청하, 칠포, 월포, 흥해, 이런 이름들이 환상의 터널에 속해 있었어. (아마 내가 살던 곳 역시 평범한 이들에게는 포항에서 영덕읍으로 가는 국도 사이 알 수 없는 웜홀의 구성요소에 불과했겠지?)

그렇게 이 길이 길이라는 인식도 없이 매일 통과하던 7번 국도는 사실 군데군데 수도관처럼 대강 뻗친 농로와 연결되어 있었고, 사고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했어. 샛길을 따라 국도로 진입하던 군용 장갑차와 우리 차가 충돌하고 말았거든. 천운이란 있구나, 싶은 게, 사고로부터 불과 며칠 전에 티코에 문제가 생겼고, 엄마의 친구인 미숙이 이모가 마침 즈음하여 신차를 구입하면서 구형 소나타를 엄마에게 빌려주었던 시점이었어. 사고 현장을 본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길, 티코였다면 엄마와 나는 즉사했을 거래. 소나타는 우리를 살리고 장렬하게 폐차되었지. 엄마의 갈비뼈가 두 대를 제외하고 모조리 부러진 큰 사고였어. 

엄마와 나는 (웜홀의 일부인) 흥해읍에 있었던 어느 정형외과 2인실에 입원 수속을 밟았어. 나는 깨진 유리창에 귀를 베이고 인대를 조금 다쳤을 뿐이라 2주 동안 귀를 치료한 뒤에 퇴원 허가가 떨어졌어. 반면 엄마는 거의 6개월간 거동하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으므로 온 가족이 이삿짐을 싸들고 입원실에 살림을 차린 뒤 엄마의 간병에 전념하게 되었지. 사실상 간병을 한 것은 아빠 뿐이었고, 다섯 살 배기 동생은 스케치북에 그림이나 그렸고, 나는… 나는… 

힙찔이로 진화했어!

물론, 이 모든 게 교통사고의 충격으로 뇌세포가 재배열되어 일어난 돌발상황은 아니었어. 소나타에 실려 팽이처럼 돌기 훨씬 전부터, 내 귀는 이미 모종의 빌드업을 거쳐왔거든.

바야흐로 2002년, 아빠의 PC통신 친구인 ‘백두 아저씨’의 집에 놀러갔어. 아빠와 아저씨가 심도 깊은 수다를 떠는 동안 나는 그 집의 차녀, 열여덟 살 은혜 언니의 방에 떠맡겨졌어. 언니도 곤란했겠지. 처음 보는 초등학생을 몇 시간씩이나 책임져야 한다니. 어색한 공기 속에 침대 모서리만 만지작거리던 나에게 언니가 툭 던진 한마디. 너... 알앤비 좋아하니?”

나는 엉겁결에 “약간요” 라고 대답했고, 그건 실수였어. 휴화산 같던 진성 알앤비 오타쿠를 자극하고 만 거지. 언니가 CD 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누르자 블루Blue의 ‘One Love’가 흘러나왔고, 우연히도 들어본 적이 있는 노래였고, 내가 홀린 듯 싸비를 따라부른 순간부터 그 방은 더 이상 평범한 여고생의 방이 아니었어.

   ‘블루’를 아는 초딩을 만난 은혜 언니는 선반에서 자기가 구운③ 컴필레이션 CD들을 왕창 꺼내서는 별안간 청음회를 개최했어. 1번 트랙 블라크Blaque의 ‘As If’가 끝나고, 2번 트랙 레미 션드Remy Shand의 ‘Burning Bridges’가 시작되던 순간을 나는 잊을 수가 없어. 
Another time, another space
Mark my words, I can't fake another day of sadness–
비윤리적일 정도로 끈적하고 뜨거웠던 그 도입부. 목덜미 뒤쪽으로 닭살이 돋다 못해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어. 달팽이관에 ‘본토’의 그루브가 다이렉트로 꽂히는 최초의 순간이었지. 언니는 헤어질 때 그 보물 같은 해적판 CD들을 몽땅 내 손에 쥐여줬어. 백두 아저씨는 개척교회 목사였으면서도 아빠에게 섣불리 전도한 적이 없었는데, 그의 자식은 나에게 알앤비의 복음을, 그 뜨겁고 축축한 흑인 음악④의 세례를 퍼붓고야 만 셈이지. 

이후로 거의 1년동안 매일매일 그것들을 돌려 들었어. 하루도 빠짐없이. 블루, 레미 션드, 베이비페이스Babyface, 보이즈 투 멘Boyz II Men,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 브라이언 맥나잇Brian Mcknight을, 귀에서 피가 날 만큼 말야. 

Remy Shand - Burning Bridges

은혜 언니가 뿌린 씨앗은 이듬해인 2003년에 새로운 밭으로 모종되었어. 반 친구였던 예지를 따라 휘성을 좋아하게 된 것이었지. 카세트테이프와 CD가 혼재하던 과도기적 시대, 우리는 쉬는 시간만 되면 교탁 옆에 있던 어학용 카세트 플레이어에 휘성 2집을 집어넣고 노래를 따라 불렀어.

휘성은 은혜 언니가 알려준 이들의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는데, 당시 내 귀에는 감히 그들보다 휘성이 더 대단하게 들렸어. 나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고(그 사랑은 무려 15년간 지속되었다), 휘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빅마마, 거미, 시스코Sisqo와 크렉 데이빗Craig David을, 급기야는 그의 SNP⑤ 동료였던 버벌진트와 피타입의 앨범까지 찾아 듣기 시작했지.

빅마마, 거미, 세븐, 휘성 - Color Of The Soul Train

다시 2005년. 입원실 천장에는 500원을 넣으면 2시간인가 동안 전원이 들어오는 텔레비전이 달려 있었는데, 나는 수시로 엠넷과 KMTV 같은 음악채널을 켜놓곤 했어. 그런 채널은 대개 최신 뮤직비디오만 줄창 틀어주면서, 실시간으로 문자를 받아서 화면 최하단에 랜덤으로 송출해 주었거든. 내가 보낸 문자가 나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뮤직비디오를 보는 게 낙이었단 말이지. 그 겨울의 인기 차트에는 유난히 힙합 음악이 많았어. 지누션의 ‘전화번호’, 드렁큰타이거의 ‘편의점’, 이현도(a.k.a. D.O.)와 조PD, 김창렬, 에픽하이, 주석, 바스코, Young GM, 에릭의 ‘힙합 구조대’ 까지. 사실 그런 것들이 나에게 엄청 새로운 건 아니었어. 그런데 어느 날 난생 처음 보는 스타일의 랩퍼가 등장했어. 그는 다름아닌 ‘더블케이’였는데... – 투 비 컨티뉴드… 

불 꺼진 방에서 유민.

Double K - Nu Skool, 더블케이 - 누 스쿨, Music Camp 20041204

P.S. 본문과는 아무 관계 없긴 한데, 편지를 쓰기 직전까지 내내 골몰해있던 문제가 있어서 공유하고 싶네. 너는 쿠엔틴 두피유, 캥탱 되푀유, 캉탱 뒤퓌외 중에 뭐가 맘에 드니? 법적으로 이 작자의 명칭을 통일해주었으면 좋겠어. 검색하는거 진짜 성가셔. 너무 짜증나. 답장할 때 이거 꼭 말해줬으면 좋겠어.

① 이 문장을 보면 엄마는 크게 화를 내겠지만, 그렇다고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② 비엘만 스핀Biellmann Spin: 등 뒤로 유연하게 다리를 들어올린 뒤, 손으로 스케이트 날을 잡고 정수리까지 바짝 당겨 물방울 모양이 된 채 고속으로 회전하는 기술. 1970년대 후반 스위스의 피겨 선수 데니스 비엘만Denise Biellmann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김연아 선수가 프로그램 후반부에서 어김없이 보여주던 시그니처 동작이다. ③ ‘네로 버닝 롬Nero Burning ROM’을 위시한 광디스크 레코딩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공CD(CD-R)에 MP3 파일을 기록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700MB라는 한정된 용량 안에 최적의 트랙을 꽉꽉 채워 넣기 위해 곡 순서를 고민하고, 오류가 나지 않기를 기도하며 구워진 CD를 케이스에 곱게 넣어 지인들에게 선물하던 낭만의 시절. 오늘날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 링크를 툭 던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물리적 헌신이었다. ④ 사실 엄밀히 말해 레미 션드Remy Shand는 백인이다. 하지만 흑인에 버금가는 기막힌 음색과 가창력으로 블루 아이드 소울Blue-eyed Soul의 대표주자로 인식되었다. 쉽게 말하면 알앤비계의 에미넴Eminem이었던 셈이다. ⑤ 나우누리 흑인음악 동호회. 데프콘, 버벌진트, 피타입, 정인, 4WD, 비솝, 휘성 등이 회원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