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4호 > 영업합니다 > 
칸예 웨스트에게 『애도일기』를 팝니다
👤신포도

◆ 칸예 웨스트, 2006년 미국 일리노이
스타일을 방패로 삼을 것인가, 상실을 막아볼 것인가.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은 칸예였던 예(ye)는 촬영 장소에 조금 늦게 도착하는 쪽을 택했다. 정전기 오른 풍선들이 천장에 잔뜩 들러붙어 있었다. '스윗 식스틴'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당첨된 아론의 열여섯 번째 생일 파티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떠들썩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칸예는 자기가 들어서는 순간 2부가 시작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와 함께 아론의 집을 급습한 MTV 카메라, 샴페인 타워, 비명을 질러대는 아이들, 붐박스. 칸예는 기분이 좋다. 아주 조금 우쭐하고, 아이들을 다정하게 대할 여유도 남아 있다. 데뷔한 지 고작 3년이 지났다. 그의 명성은 조금도 소모되지 않을 것 같고, 무한한 성공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는 낙관만이 가득했다. 훗날 그의 이름 주위에 들러붙게 될 수치심과 과대망상과 가족사진들, P-Diddy의 추문과 몰락이 미국 전역을 초토화시킬 미래도, 나찌가 될 미래도 아직 오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칸예 웨스트. 방금 제가 당신을 칸예 웨스트라고 불렀나요? 당신의 이름이 다섯 글자라는 게 퍽 감동스럽네요.

당신은 제가 방금 쓴 문장이 아주 이상하다고 생각했겠지요? 누군가의 이름을, 게다가 그 이름의 글자 수를 새삼스러워한다는 건 참으로 이상한 일이니 말이죠… 당신은 아직 당신의 이름이 다섯 글자인 것이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이름이라는 건 본래 선험적이고 필연적인 것이니까요. 당신은 당신의 이름을 선택한 적 없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이 작년부터 여러 스튜디오를 전전하며 앨범에 실릴 트랙들을 만들고,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소리의 요소들을 찾고, 피치를 높이거나 낮추고, 속도를 늘이거나 감겠죠. 아직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데다, 당신에게는 기이할 정도의 완벽주의 성향이 있으니, 아마 내년 가을이 되어야 새로운 음반이 나오겠죠? 얼마나 만족스러운 앨범일까요? 세간의 평가는 어떨까요? 그 앨범이 나온 뒤, 당신과 당신을 둘러싼 필연적이던 세계에는 어떤 균열이 생길까요?

이쯤 되면 제가 꽤나 건방져 보이겠네요.

‘뭘 안다고 이런 말을 처하는 거야? 이름이 다섯 글자니 두 글자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해대고(How you out here talking like you know something? Five syllables, two syllables—ain’t nobody even understandin’ what you sayin)’

싶을 수밖에요.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저는 당신이 살아갈(혹은 살았던?) 미래를 바꾸고 싶어 찾아온 사람입니다. 지금 당신에게는 나아갈 일만 남았지만, 미래의 당신에게는 뒷걸음질 칠 일이 더 많아질 것 같아서요.

저는 샤먼도, 예언가도, 재림 예수도 아닙니다. 다만 남들보다 직관이 약간 더 뛰어난 사람 정도라고 생각해 주세요. 저는 당신의 이름이 칸예 웨스트인 것이 좋아요. 카니예 웨스트라고 읽히는 것도 좋고요, ‘서쪽’이라는 뜻을 가진 당신의 라스트 네임도 좋아합니다. 특히 칸예 웨스트, 라는 다섯 글자를 소리 내어 발화했을 때 자연스레 덧붙는 리듬을 참 좋아하지요. 칸과 예를 띄워 불러야 할까? 아냐 역시 카녜, 라고 자연스레 이어 부르는 것이 좋을까? 이런 쓰잘데 없는 것을 아주 잠시 고민하게 만드는 글자의 배열마저 좋아합니다. 당신은 아마 걸작을 낼 거예요. 당신의 이름이 기이한 힘을 갖고 있으니까…

이렇게 당신의 이름을 좋아하는 이유를 하나둘 나열하다 보면, 역시나 불길한 감각이 저를 습격합니다. 저는 한평생 좋아하는 것을 잃어버리며 살았던 사람, 그리고 그렇기에 남들보다 아주 약간 나은 정도의 직관을 가진 사람. 그렇다면 당신이 언젠가 칸예 웨스트라는 이름을 폐기해 버리거나, 이름의 아주 많은 부분을 지워버릴 수도 있는 것이죠. 이름은 필연적이고 선험적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이름의 주인에게 귀속된 세계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택할 수 없었던 이름의 주인만이 이름을 바꿀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 이름을 달고 태어난 이상,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름을 바꾸라 명할 수 없어요. 제 직관이 맞다면 칸예 웨스트라는 이름을 포기하는 건 당신이겠지요. 그 사실이 또한 저를 슬프게 합니다…

만약 그런 때가 온다면, 아마 당신도 아주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겠죠? 성공 가도를 달릴 것이 아주 분명해 보이는 당신이 선험적이고 필연적이며, 심지어는 아주 사랑스러운 이름, 아주 오랜 시간 가꿔온 세계를 포기할 정도면요…

그간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잃고, 잊어 왔다고 말씀드렸죠. 그렇기에 주제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사실 사람의 삶이란 지나치게 취약해서, 아주 작은 상실로도 예상치 못한 곳에 당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주 작은 구멍이 나서, 서서히 바람이 빠지는 타이어를 끌고 미대륙을 횡단한다 생각해 보세요. 처음에는 1도, 3도, 5도씩 아주 약간 기울어진 채 달리다가, 눈을 떠보면 목적지와는 5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도착해있을지도 모르는 겁니다. 만약 그 상황에 놓이면, 얼마나 무서울까요… (저는 방향치, 길치라서 그 상황을 생각조차 하기 싫습니다.)

저는 당신의 이름을 지키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당신도 그렇겠지요. 미래의 당신이 어떨지는 모를 일이지만요. 다행히 당신에게 추천할 오늘의 살 것은 그리 비싼 물건은 아니에요. 대신, 시간을 들여 음미해야 하는 것입니다. 음… 당신은 돈을 꽤 모았을 테니 오히려 비싼 것을 사는 게 더 좋을까 싶긴 하네요. 당신에게 롤랑 바르트의 책 『애도일기』를 추천하고 싶어요.

이 책은 책으로 펴내기를 염두에 두고 쓰인 것이 아닙니다. 철학자인 롤랑 바르트가 그의 어머니를 잃은 후, 슬픔에 잠겨 남겼던 메모와 에세이들을 엮은 것이죠. 당신에게도 돈다 웨스트라는 이름의 아주 소중한 어머니가 있지요? 바르트에게도 그의 세계를 만든 마망이 존재했어요. 그런 세계를 잃었으니 바르트는 얼마나 슬펐을까요. 슬픔을 아주 느리게 잊어가는 자신이 얼마나 혐오스러웠을까요. 바르트는 어느 날 이렇게 씁니다.

“견딜 수 없었던 하루. 점점 비참해지는 날들. 울다.”

아마 당신은 LA로 이사를 했을 겁니다. 음악 작업을 위해 이런 저런 지역의 스튜디오를 옮겨 다니고 있겠죠. 그때마다 만나는 사람은 달라졌을 테고, 듣고 있는 음악도 달라졌을 거예요. 이사와 이동, 유랑 사이에서 무언가를 놓쳤거나, 놓고 왔거나, 두고 왔을 겁니다. 사람이란 무릇 무언가를 흘리고 다니는 존재니까요. 그리고 사람들은 무언가를 놓고 왔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곤 합니다. 혹은 그래도 괜찮을 거야, 다시 돌아가면 그 자리에 있을 거야, 생각하기도 하죠.

그런데 상실은 그럴 때 오더라고요. 안일함, 망각, 자기합리화의 틈을 뚫고요. 그러다가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견딜 수 없었던 하루들을 보내다가,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곳에 도착하게 되면 그 안일함과 망각, 자기합리화의 순간들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때 그러지 말았더라면, 그때 그곳을 떠나지 말았더라면. 무언가를 놓고 왔다고 생각했을 때, 구멍을 막으러 다시 돌아갔더라면.

하지만 상실은 그런 식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때 무엇을 했더라면’ 혹은 ‘그때 무엇을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착각은 상실을 경험한 이에게 나아갈 곳을 일러주지 않습니다. 과거나 후회는 절대 닿을 수 없는, 평행선 위의 점 같은 것이니까요. 신기루가 진짜 사물이 될 수 없듯,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에 갇혀 사는 건 산다고 하기 힘들 겁니다.

그때 이사를 가지 않았더라면, 그때 LA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때 어머니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때 돈다의 곁에 있었다면. 이런 생각들은 사실 생각보단 착각에 가깝고, 애도보다는 집착에 가깝습니다. 그 생각에만 갇혀있다면 당신의 삶은 가짜 세계 안에 고여 버리는 거예요. 허상 같은 세계를 짓는 것이라고요. 사이비 재림 예수가 되는 것이라고요.

『애도일기』는 흐르는 메모들입니다. 바르트가 매일 매일의 날짜를 상단에 써두거든요. 어제는 죽을 만큼 비참하지만, 오늘은 또 괜찮고, 그다음 날은 여전히 슬픈 아침을 마주하죠. 사실 진짜 상실이란 게 그런 것 같아요. 어제는 괜찮았지만, 오늘은 힘든 것. 내일은 둘 중 어느 쪽일지 몰라 두려워하는 것. 그럼에도 그 안에는 오늘과 내일, 어제가 있잖아요? 칸-예-웨-스-트-를 발음할 때의 리듬성이라는 것이 존재하잖아요?

저는 아마 당신의 이름을 지키지 못하겠죠? 당신도 『애도일기』를 읽지 않을 거고요. 당신은 바르트가 아니니 매일의 날짜를 위에 써두고, 애틋한 에세이를 쓰지도 않을 겁니다. 그런데 당신은 당신 자신의 애도를 언젠가 할 것 같아요. 자신의 사이비 재림 예수였던 과거를 인정하고, 불완전한 애도와 고백을 늘어놓으면서.

왜 이런 생각을 했냐면… 당신은 명반을 내는 사람이니까.

당신이 아론의 생일을 기쁘게 축하해주던 2006년… 그로부터 20년 뒤에는 어떤 앨범이 나올까요? ‘마마스 페이보릿’이라는 노래를 만들 생각이 있어요? 저는 그 노래 좋아할 것 같은데… 앨범으로 내주면 제가 그걸 잃을 일은 없을 테니까. 나오면 좋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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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