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4호 > 영업합니다 > 
일론 머스크에게 정정 스티커를 팝니다
👤유유민

◆ 일론 머스크, 2026년 미국 텍사스
직접 정정할 것인가, 동양의 샤머니즘에 명운을 걸어볼 것인가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는 매일 밤 멜라토닌을 이기는 중이다. 돈이 너무 많아 평생 써도 다 못 쓸 것 같은 그에게, 젊음과 건강은 사활이 걸린 문제다. 이걸 아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머스크의 불면 소식은 꽤 놀라운 일일 테다. 하지만 그를 이루는 요소 중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거대한 자존심도 빼놓을 수 없다. 온전한 어둠, 밤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침대에 누워도, 그의 머릿속에선 거대한 자존심과 젊음-건강-불멸에 대한 강박이 밤잠을 두고 씨름했다. 원인은 머스크의 거나한 쇼핑 행위에 있었다. 그가 440억 달러, 당시 환율 기준 62조 8천억 원을 쓰고 ‘트위터’라 불리는 소셜 미디어를 구매했던 탓이다. 이미 사용자도, 시스템도, 이름값도 탄탄했던 트위터를 산 머스크.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트위터’라는 이름을 ‘X’로 바꾸고, 파랑새 아이콘을 ‘X’ 아이콘으로 바꾸는 정도였다. 쇼핑한 지 4년이 지났는데 사람들은 아직 ‘X’라는 이름보다 ‘트위터’라는 이름을 즐겨 쓴다. 출판되어 나오는 책이나 기사들도 “X(전 ‘트위터’)”라고 쓴다. 과거의 유령을 덕지덕지 달고 다니기엔 440억 달러는 너무 비싼 값이다. 우주로 재사용 발사체를, 화성 이주를 위해 화폐 제도부터 검토하는 혁신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머스크는 오늘 밤잠을 위해 5번째 멜라토닌 알약을 삼키던 중이었다.


흠, 서구권 사람에게 한국어로 말을 거는 것은 처음이라 어떻게 불러야 좋을지 잘 모르겠어요. 일론 씨? 머스크 씨? 아무래도 우리는 친밀한 관계가 아니니 패밀리 네임으로 지칭하는 것이 조금 더 예의 바른 일이겠죠. 그렇죠, 머스크 씨?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의 유민입니다. 통 잠을 못 주무신다는 얘길 듣게 되어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러게, 왜 5억 5천만 명이나 멀쩡히 사용하고 있는 서비스의 이름을 냅다 바꾼 것입니까?

머스크 씨, 당신은 파랑새를 죽였습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계십니까? 당신이 샌프란시스코의 트위터 본사로 쳐들어가 곳곳에 붙은 트위터 로고를 마구 삿대질하며, “이 빌어먹을 새들은 모두 없어져야만 해”라고 했다는 부끄럽고 민망한 후일담들이 전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되었어요. 당신은 파랑새가 트위터의 PC주의와 성 인지 감수성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겠죠. 굴러들어온 x가 박힌 t, w, i, t, t, e, r을 모두 빼내 버렸습니다. 당신의 어처구니없는 우파 감성과 스페이스 엑스 브랜드를 위해서… 트위터라는 이름을 지우기 위해 그토록 과장된 시가를 지불했는데, 그 누구도, 아무도 X라는 이름을 쓰지 않으니 잠이 오지 않을 밖에요. 그런데 원래 뭘 파낸 자리는 움푹하니 티가 나는 법이랍니다.

저는 당신에게 아주 길고, 아주 얇고, 아주 민망한 스티커를 팔고 싶습니다. 이것은 오직 이 세상에서 당신만을 위해 발주한 정정 스티커입니다. 책과 기사, 회의 자료와 침대맡의 경제 잡지에 인쇄된 ‘트위터’라는 세 글자를, 영어로는 ‘twitter’라는 일곱 글자를, 그 위에 덜렁 붙이는 것만으로 정정할 수 있는 스티커 말입니다. 문제는 잘 아시다시피, 당신이 새로 지은 이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 짧다는 데 있습니다. 고작 한 글자를 붙여넣기 위해 스티커의 양옆 여백이 이상하리만치 길어질 수밖에 없었지요. 저로서도 어쩔 방도가 없었습니다. 장평을 옆으로 늘리자니, 그것은 마치 치실이나 창과 방패, 혹은 시골집의 울타리처럼 보였습니다. 심지어는 과거 웹의 유물인 ‘엑박’처럼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X named by ELON 같은 식으로 써볼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런 방식은 오히려 이전의 이름인 ‘트위터’를 더욱 강렬하게 떠올리도록 만들지 않겠습니까?

치실, 창과 방패, 시골집의 울타리처럼 보여 기각된 시안
‘트위터’를 더욱 강렬하게 상기시킬 뿐이라 기각된 시안
최종 시안

어쩌겠습니까? 본래의 이름이 일곱 글자였다는 것을 당신은 충분히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이 정정 스티커는 상처를 봉합하는 스테리스트립 테이프처럼 보여야 합니다.

자, 생각해 보세요. 머스크 씨는 잠들기 전 침실 협탁 위에 놓인 『블룸버그』와 『포브스』, 『월스트리트 저널』 따위를 집어 듭니다. 당신의 충직한 비서가 아마도 당신의 이름이 등장하는 페이지마다 정성스럽게 인덱스 라벨을 붙여두었을 것입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일간지들을 펼치면 여전히 당신의 이름 주변을 배회하는 ‘twitter’ 일곱 글자가 보일 것입니다. 당신의 분당 호흡수가 빨라지고 거친 쇡쇡 소리가 납니다.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440억 달러짜리 쇼핑에 대한 후회스러움이 4년째 당신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돈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당신은 트위터 백 개를 사도 남을 만큼 돈이 많으니까요. 당신을 괴롭히는 것은 자존심이겠죠. 이 하남자!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당신은 협탁에 달린 서랍에서 저에게 구매한 정정 스티커 묶음을 꺼냅니다. 검고 길쭉하고 얇은, 뒷면에 끈끈이가 발린 종이 띠를… 그 위에는 외로이 ‘X’라는 한 글자만이 인쇄되어 있지요. 당신은 그것을 서둘러 ‘트위터’ 활자 위에 붙입니다. 책등에도, 표지에도, 본문에도, 클리핑 북에도, 변호사들이 보내온 문건과, 세계의 개미들이 보내온 서신 위에도… ‘트위터’마다 ‘X’를 덕지덕지, 비로소 세상은 조금 더 당신의 뜻에 가까워집니다.

최근에 트위터에서는 4:3 비율의 고전영화에 AI 기술을 적용하여 16:9 비율로 변환시켜 보았다는 한 유저의 작업물이 화제였습니다. 작업자는 어떤 철학이나 개선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라 단순히 생성형 AI가 프레임을 다차원 배열에 로드한다는 가설을 테스트한 것뿐이라고 거듭 항변했으나, 사람들은 모두 화가 나 있었습니다.

이런 짓 하지 마라. 당신은 악마다.
형편없는 짓이었다.
와이드스크린은 단지 속임수에 불과하다.
맛알못 상대 안 한다.
AI 애송이들은 프레임을 예술적 결정으로 보지 못하고, 세상을 개선해야 할 소프트웨어로 인식한다.
공개적으로 굴욕당하고 싶은 마조히스트일 것이다.


등등… 네. 그래요. 본래의 프레임을 존중하지 못하고, 괜스레 양옆을 덧칠하여 더 넓고, 더 길고, 더 현대적인 것을 만들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조악한 것인지에 대해 사람들은 분개하고는 합니다. AI의 시대가 불러온 놀라우리만치 빠르고 급진적인 혁명, 그 반작용으로서요. 머스크 씨, 제가 당신에게 팔고자 하는 정정 스티커는 그러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트위터’의 잔재를 대강 덮고 ‘X’를 바르기 위해 생긴 더 넓고 길고 현대적이며 민망하면서도 처량한 그 여백을… 누군가는 이것이 현대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16:9 비율 스크린에 4:3 고전 필름을 영사했을 때 양쪽으로 드리워질 새카만 필러박스처럼 보인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모두가 그 여백을 증오하죠. 마스킹 커튼으로 그것을 가리지 않으면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군다고요. 그러니 저의 정정 스티커는 ‘트위터’라는 지긋지긋한 글자를 가려버리기 위해 당신에게 더없이 필요한 물건이면서, 동시에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인내심을 요구하게 하는 물건인 것입니다. 그 너른 여백을 매일같이 감수해야만 하니까요. 마치 당신의 440억 달러어치 리브랜딩의 축소판 같은, 이 스티커를 지금 당장 구매하세요!

한 다스에 얼마면 좋겠습니까? 염가에 드리겠습니다. 물론 당신은 부자이니, 제가 이 원가 9,600원짜리 스티커 묶음을 9억 6천에 판다 해도 군말 없이 이체할 것이지만, 붙여봤자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으니 과한 금액을 받긴 좀 그런 것 같아서요.

마지막으로 이 편지에 ‘트위터’라는 말을 너무 많이 써서 미안합니다. 제 스티커를 얼른 구매한 뒤 이 편지부터 정정하세요. 당신은 테스트베드를 참으로 좋아하지 않습니까…

한국에서, 유민

Tags: 유유민 4호 영업합니다 기술 플랫폼


Updated 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