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5호 > 교환일기 > 
인스타그램을 변기에 넣고서 내려 #6
👤유유민

방금 막 내 머릿속에 나타난 상상의 화장실에는 청회색 무광 타일이 도배되어 있고 한가운데 순백의 아메리칸 스탠다드 변기가 놓여 있어. 나는 인스타그램을 변기에 넣고서 내려.

인스타그램을 어떻게 내릴 수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 그 옛날의 폴라로이드 사진기처럼 생긴 누르스름한 갈색 앱 아이콘을 패널처럼 대강 들고 있다가 변기의 목에 쑤셔 넣었어. 그래. 생각해 보니 아이폰이 플랫 디자인을 표준적인 것으로 만들면서 모든 것이 개성을 잃었다. 인스타그램도 예전에는 괜찮았는데… 어쨌든 그 패널이 진짜 우드락은 아니었는지 내가 안고 있던 커다란 인스타그램 아이콘은 램프 속으로 지니가 빨려 들어가듯 손쉽게 사라졌고, 변기 뚜껑을 내린 다음 그 위에 앉았어. 변기 주변으로 나의 친구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어. 누구는 욕조 끝에 걸터앉았고, 누구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거야. 우리는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고 그저 멀뚱히 서로를 바라보네. 화장실에서 나갈 생각은 누구에게도 딱히 없는 것 같아. 사람은 변기를 내린 뒤에도 곧장 화장실에서 해방되지 않기 때문이지. 거울도 봐야 하고, 손도 씻어야 하고, 선반 위에 놔둔 핸드폰도 챙겨야 하잖아.

무엇보다 인스타그램을 하수구로 흘려보낸 뒤의 교우관계와 경조사 대책이 아직은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2014년 이후 이런 중차대한 고민은 처음이야. 미셸 우엘벡이 썼던 “가차 없는 형이상학적 돌연변이”란 이런 것을 두고 지어낸 말이었을까? 그렇다면 이 흐름을 중단시킬 수 있는 대항마는 인스타그램만큼 힘세고 강한 괴물 플랫폼의 출현뿐이라는 거잖아. 수많은 청첩장, 부음, 행사 포스터, 맛집, 건강이나 명성에 대한 사소하거나 중대한 소식들. 아… 락스 냄새.

인스타그램 앱 로고의 변천사

그러니까 변기에 넣을 것들을 더 많이 만들자는 네 말에 나는 어느 정도 동의가 돼. 하지만 그러면서도 조금은 소름이 끼쳐. 다른 게 아니라,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더 만들어내야 하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가 고작 인스타그램 하나 탈출하는 방법을 구상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글자를 써대고 과잉한 대안들을 소환해 냈는지를 좀 봐.

뉴스레터, 블로그, 디스코드, 셋로그, 비리얼, 개인 홈페이지, 이상하고 아름다운 웹앱들, 오프라인 모임, 교환 일기, <드럭스토어 카우보이> 상영회, 아마존의 DVD 섹션, 책갈피, 노란 명함, 보라색 명함, 초록색 명함, 메뉴판, 손 편지, 우편함, 포스트잇, 볼드모트, 안전제일주의자들, 상황주의자들, 레너드 코헨, 모델과 에이전시, 조부 투바키의 시.꺼.먼.베.이.글.

금연을 하겠답시고 연초 대신 비눗방울, 민티아 브리즈(최근 도쿄에 다녀온 수낭이 사다 준 후레시 레몬 맛은 정말 상쾌하다), 니코틴 패치, 허성현만큼이나 다양한 베이퍼 액상 콜렉숀, 명상 앱, 러닝 크루, 상담센터 예약, 새 텀블러, 텀블러를 담을 주머니, 텀블러를 담을 주머니를 담을 에코백, 그리고 “금연하는 나”를 기록할 인스타그램 비공개 계정을 만들고는 뿌듯해하는 사람을 상상해 봐… 마지막 준비물은 정말 최악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당분간은 이것이 최선이며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이지…

아냐 또 새로운 걱정을 하게 된다. 변기에 넣을 다른 것을 더 많이 만든다고 해서 우리는 정말 인스타그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우리 그저 하청업체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그들은 이미 검버섯 피고 쇠락할 조건을 갖추었어. 그런데 그들의 퍼런 혈관을 찾아서 줄기세포 주삿바늘을 꽂고 소생시키는 것이 바로 우리야. 탈플랫폼의 도모자들이야! 셋로그에 올린 것을 다시 인스타그램에 피드로 올리고 뉴스레터에 쓴 말을 다시 스토리에 인용하고 <드럭스토어 카우보이> 상영회 풍경을 업로드하고 ‘99개의 열린 탭’에서 “알고리즘 밖의 세계에서 길어 올린 이상한 웹사이트”를 소개한답시고 그것을 다시 저커버그와 일론 머스크의 터전에 헌납하는 꼴이라니! 이쯤 되면 거대 플랫폼들은 이미 세관일지도. 어디서 뭘 사 오고 발견하든 결국 여기에 신고해야만 해. 신고하지 않으면 없었던 일이 돼. 내 쪽으로 모객하고 싶은 타깃들이 그 안에 있으니까. 세관원은 묻겠지. 신고할 농담 있으세요? 신고할 ‘리얼 앁’ 있으세요? 신고할 대안적 시도 있으세요? 없으면 나가세요. 있으면 4:5 화면비 맞춰서 다시 접수하세요. 릴스 말아오시면 가산점을 드립니다. 아니 이 개자식들이?

약간만 엄밀해지고자 노력해 볼게. 플랫폼이 거대한 쇼핑센터라면 알고리즘은 강제되는 동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이런 일이 생길 수 있겠지. 나는 작업실에 놓을 플립형 시계를 구매하기 위해 자라홈에 가야겠다고 생각해. 나에게 가장 익숙한 자라홈 매장은 여의도 IFC몰 L1층에 있지. 하지만 퐁피두 센터를 닮은–그들 스스로는 글라스 파빌리온이라고 부르는–IFC몰 입구로 들어선다고 해서 곧장 자라홈에 들어갈 수는 없어. 입구에서 L1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하고, 애플 매장, 코치, 샤넬, 에잇세컨즈를 거쳐야만 자라홈에 도달할 수 있지. 지하철에서 이어지는 통로로 들어왔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져.

여의도 IFC몰 L1층 지도. 당신은 모든 알고리즘을 무시하고 자라홈으로 뚜벅뚜벅 직행할 수 있는가?

각종 찻집과 분식집이 즐비한 무빙워크를 통과해, 판다 익스프레스(이건 정말 지나치기 힘들지), 온더보더, 콘타이 같은 유혹적인 식당가를 가뿐히 무시했다 해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L2층으로 올라와 L1층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러 가는 동안 이솝, 에노테카, 영풍문고, 무인양품, 앤아더스토리즈, 코스까지 무시하기는 쉽지 않거든. 나의 구매력이 충분치 않다 해도, 내가 마치 그것을 금방이라도 살 것처럼 자유롭게 원단을 들여다보고 피팅해 보는 것을 방임하는, 너그럽고 무심한 직원들의 성정을 알고 있으므로 나는 결국 마시모두띠에 들어가게 될 테니까. 그뿐인가? 원래는 마시모두띠에서 나와 몇 걸음 걸으면 자라홈 앞에 도착할 수 있지만, 알 수 없는 신비의 무빙워크가 내 몸을 강제로 돌려서 러쉬나 아디다스에 나를 집어넣어 버린다면 어떻겠어? 꼼짝없이 구경해야만 하지 않겠어? 어쩔 수 없어. 난 나약하잖아. 그 모든 알고리즘 폭풍을 거쳐 간신히 자라홈에 입성했을 때쯤엔 이미 플립형 시계는 잊은 지 오래. ‘내가 왜 여기에…?’ 같은 생각을 하며 방향제 냄새나 맡다가 집으로 돌아올 것이 뻔해. 주말에 가고 싶은 식당의 영업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어느새 솥밥 레시피 릴스를 북마크하고 있고, 아무 생각 없이 내 스토리를 열람한 낯선 조회자를 눌러봤을 뿐인데 정신 차려 보면 친구의 선배의 전 직장 동료가 운영하는 카페 계정을 구경하고 있질 않나, 거기서 또 그 카페가 쓰는 원두의 납품처를 구경하고, 상세 페이지의 원두 이름에 모르는 영어 단어가 있어서 그걸 검색하다가 해외 토픽을 읽고 있는 거야. 이건 내가 걷는 게 아니야. 걸리고 있는 거지. 낚싯바늘에.

99개의 열린 탭이나, ‘차지’나… 나는 백화점 식품관 한가운데서 아무나 붙들고 재래시장 위치를 알려주고, 그러면서 은근히 백화점 카드 포인트 적립 같은 잿밥에 관심 있는 사람이려나? 알고리즘 바깥의 무엇을 소개한다고 말하면서 인스타 매거진식 카드뉴스를 매일 밤 제작하고, 업로드 시간, 섬네일, 카피, 리포스트 수, 비행기 개수, 전환 유입될 잠재 고객을 GA4로 분석하는 나는 대체 무엇이려나…? 하지만 분명 이건 모종의 저항이야. 네가 『타나토스』에서 <드럭스토어 카우보이>라는 제목을 발견하는 대신, 힙스터 타깃의 인스타 매거진에서

“씨네필만 몰래 보는
구스 반 산트의
숨겨진 명작 5선”


같은 카드를 클릭했다가 그것을 발견하게 됐다면, 아마도 ‘드럭스토어 카우보이 카우보이’ 같은 재미있는 말장난도, 둘이서 조촐하게 차우멘을 먹어 치우며 진행했던 금요일 밤의 상영회도 생겨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지금 정보 자체의 정보값이 아니라, 다종다양한 경로를 헤치고 나에게로 돌진해 오며 그의 몸에 묻혀온 도깨비 풀이나 냄새를 포함한 새로운 일체로서의 정보가 우리에게 더 풍요로운 것을 제공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아.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연결망 생태계가 내 글에 남긴 언어적 표식이며, 그 모두는 ■■가 내 컴퓨터를 떠나 여행하며 다른 기계와 상호작용한 결과물이다. 내가 보낸 전자우편을 파라텍스트로 읽는다면, 새로운 글 전체가 ■■에 버금가게 중요하다.①

바이브 코딩도 그래. 요즘 나는 내가 필요한 것들을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미약하게 들떠 있어. 물론 직접 만든다는 것도 지금의 시점에서는 우습게 들릴 말일지도 몰라.

“코덱스나 클로드, 깃허브, 버셀, 수파베이스, 구글 API가 ‘해 주는’ 거겠지. 너는 불평불만이나 얘기하고, 이래라저래라 마이크로 매니징할 뿐이잖아. 말하자면 너는 프롬프터일 뿐이잖아” 라고 누군가 말하는 것만 같고, 그 누군가가 나라는 사실을 고백해야겠어. 하지만 나는 뻔뻔하게 말할 수 있지.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타자기로 글을 쓰는 것조차 진정한 글쓰기가 아니라고 혼쭐내던 것이 이 갈대 같은 세상이라고 말이야. 웹사이트 ‘비관론자의 아카이브’②에서는 새로운 기술이나 문화가 등장할 때마다 반복되어 온 인류의 공포와 비관론을 수집하지. 백 년 전에 터부시되었던 것은 타자기뿐만이 아니야. 자전거 타기, 라디오 듣기, 침대에 누워서 책 읽기 같은 것들 역시 신기술을 배워먹은 ‘요즘 애들’이나 하는 몹쓸 짓에 불과했대. 그런데 요즘의 나를 봐.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유튜브 대신 라디오를 듣고, 오랜 독서불능 상태에서 벗어나 자기 전 침대에서 책을 읽는 내 모습을 얼마나 뿌듯해하며, 그로 인해 매일 방금 태어난 아이 같은 기쁨을 누리고 있는지… 장담컨대 바이브 코딩은 틀림없이 표준이 될 것이며, 이는 워홀이든 벤야민이든 그런 할아버지들이 영원히 주장해 왔던 정수의 연장에 불과할 거야. 돌고 돌아왔지만, 요컨대 나는 나의 도구를 ‘직접’ 만들고 있는 게 분명해. 미래적 관점에서는 말이야.

탈플랫폼을 하겠답시고 넷리파이 무료 계정을 세 개씩 만들고, 배포 실패 로그 앞에서 눈물짓고, 변수 앞에서 잠깐 이성을 잃으며 로보트들을 다그치고 있지만, 나는 그 더럽고 조악한 다품종 소량 생산의 신화를 조금 믿고 싶어. 인스타그램에서는 내가 올릴 게시물의 화면비 하나도 내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는데, 내가 만드는 온갖 웹앱에서는 버튼 이름 하나쯤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잖아. ‘보관함’을 ‘곳간’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정말 삭제하시겠습니까?’ 창에 ‘예’ 대신 ‘잔말 말고 꺼져라’ 라는 버튼을 달 수도 있어. 토글을 검색창 밑에 둘 수도 있고, 그걸 다시 화면 중앙으로 옮길 수도 있어. 그러다 뭔가 잘못되어 로그가 모두 날아가면 책상을 쾅쾅 칠 수도 있고 욕을 해댈 수도 있지만–이것은 인스타그램 오류 앞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다지 유의미하지는 않으니–심기일전하여 다시 그것을 고칠 수도 있어. 손잡이를 내 맘에 드는 것으로 골라 달 수 있는 자유를 얻은 죄로 비 오는 날 천장에서 새는 비를 견뎌야 하지만, 그것은 확실히 자유의 일종이야. 인스타그램은 쇼생크야. 쇼생크에서 탈출해도 끔찍한 인생이 남아 있고 지킬 법과 규범들에 갇혀 살아야 하겠지. 그래도 안락한 쇼생크 같은 것에 갇혀 평생을 살 수는 없으니, 이제 슬슬 이곳을 벗어날 준비를 해야지. 교정 시설에서 직업 훈련을 받는 미결수들처럼. 그러니 이번 주 금요일에는 <컴퓨터 인간>과 <스튜어디스 아카데미>를 보자꾸나…

조용한 일요일 밤에 작업실에서 유민

① 케네스 골드스미스,『문예 비창작: 디지털 환경에서 언어 다루기』 60쪽. ‘■■’은 원문에서는 본디 ‘동요’인데, 이 말이 왜 나왔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너무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하게 느껴져 자체 모자이크 처리했다. 분명 꼬장꼬장하게 인용 윤리 이야기를 하고 싶을 수 있겠지만,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골드스미스가 이러한 인용에 어떤 불만도 느끼지 않을 사람임을 알 것이며, 심지어는 책 제목조차 쓰지 않는다 해도 나를 용서하거나, 심지어는 독려할 타입의 재미있는 아저씨라는 생각에 틀림없이 동의할 것이다.
② http://pessimistsarchive.org (여러분, 99개의 열린 탭 팔로우하세요.)


Tags: 유유민 5호 탈플랫폼 교환일기


Updated 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