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5호 > 교환일기 > 
인스타그램을 변기에 넣고서 내려 #5
👤신포도

맞아. 네가 말한 것처럼… 어떤 말과 글은 모든 이에게 가닿지 않아도 좋으며, 어떤 사진은 무의미해도 유의미하며, 어떤 일상은 피드를 지나칠 수 있지. 하지만 동시에 탈플랫폼이 고립이나 소중한 인사이드 조크를 포기하는 행위라면, 탈플랫폼은 변기에 떠내려가는 인스타그램의 뒷모습을 보며 허망함을 느끼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라.

네가 언급한 ‘신포도의 하루 추천’ 이야기를 오랜만에 읽으니 참 좋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사실 신포도의 하루 추천을 하기 전에도 뉴스레터를 보내기를 즐겼거든. 이제는 다른 무언가가 되어버린 ‘콜리그’도 아주 처음에는 뉴스레터로 시작했던 것을 기억해? 2020년 당시, 콜리그를 시작할 때도 나는 아주 개인적인 갈증에서 출발했어. 이를테면 5월호에서는 사프디 형제의 영화를 다뤘거든. 그 글을 피씨방에 앉아 쓰고 있을 때는 대학에서 졸업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당시의 나는 영화 언저리에 남아 있겠다는 미약한 결심을 했지. 아니 근데, 돈이 벌릴 리가 없잖아?

콜리그 5월호 뉴스레터에 이런 이야기를 길게 늘어놨어. 나의 미약한 결심 뒤로 바짝 뒤따라붙은 건 생계의 문제였다고. 오늘과 내일의 문제인 생계 위기를 겪는 내게 사프디 형제의 영화는 꼭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고. 그 형제가 끈질기게 포착하는 유랑의 반복이 꼭 내가 놓인 상태 같았다고. 그래서 사프디 형제의 영화를 ‘화폐-영화’로 명명하겠다고(읭?)… 결론부는 참으로 노잼이 되어버렸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야. 왜 뉴스레터는 굳이 TMI를 명명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느냐고.

아주 작은 회사에 들어간 뒤 신포도의 하루 추천을 뉴스레터로 쓴 것도 그 TMI와 무관하지 않아. 아니… 네가 구독을 했으니까 알 테지만. 사실 그 뉴스레터는 ‘오직 TMI만 있는’ 레터였잖아. 나는 직장인의 오후 2시에 찾아오는 권태감을 해결하고 싶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 이를테면 양옆이나 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나와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 술자리에서 만난 반가운 인연에게 내 이야기를 떠벌떠벌하고 싶었거든.

사실 인스타그램은 ‘누가 볼지’를 생각하지 않아야 쿨한 플랫폼이잖아. 실상 타인에게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고, 나 자신을 PR하기 위한 플랫폼인 게 명확한데, 그 플랫폼에는 묘하게 ‘자기 기록’이라는 쿨병 찐따 정신이 묻어 있어.

‘이건 그저 내 삶, 보든지 말든지예요’

라는 태도를 가져야만 쿨한 것. 인플루언서조차

“자! 이게 저입니다, 어떠세요?”

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으니까. 참 복잡해? 그게 인스타그램을 변기에 넣고서 내리고 싶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지. 내 글을 읽을 사람을 생각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아니면 생각은 하되 생각하는 걸 티내지 말라는 거야, 뭐야? (인스타그램은 답하지 않는다)

뉴스레터는 그 머리 아픈 청기백기 싸움에서 조금 벗어나 있어. 발송하고 나면 누가 편지를 열어봤는지 곧바로 알 수 있거든. 공론장에 내보이지 않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자만이 갖는 특권이랄까? 게다가 메일 회신이라는 행위는 좋아요를 누르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서, 한번 그런 [re]나 “너무 재미있었어요”라는 말을 들은 날에는 뛸 듯이 기뻤어. 기쁨들이 쌓이면 나는 조금 더 솔직해지지. 조금 더 날 내보이게 되고, 조금 더 옷을 벗게 되고.

내가 인기 뉴스레터 발송인이 되지 않는 이상, 뉴스레터는 한 줌의 사람에게만 읽힐 거야. 그 사실은 누구보다 발송인, 즉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지. 나는 누구에게 보일 편지를 쓰는지, 그것을 왜 쓰는지, 그 쓰는 행위가 어느 정도의 영향력에 그칠지를 잘 알고 있어. 그래서 더더욱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 당신들을 위해 이 편지를 쓰고 있다고.

내가 뉴스레터에 중독된 이유는 바로 그 영향력에 대한 인식이야. 신포도의 하루 추천이 흐리멍덩해진 이후, 비교적 최근에는 지속고어 프로젝트를 했었잖아. 내가 개발한 괴이한 ‘지속고어’라는 개념에 대한 비평인지, 일기인지, 푸념인지, 드립인지 모를 이야기들을 써서 보내는 뉴스레터였는데. 그저 글을 첨부해서 보내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었지만, 나는 글만큼이나 즐겁게 썼던 것이 있어. 바로 쿠키…

지속고어 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한껏 늘어놓고 나면, 나는 일종의 혼잣말이나 중얼거림처럼 나의 TMI를 발설했거든. 글에서 썼던 개념에 대한 변명이나, 이 주제를 쓰게 된 계기 등에 관해 아무도 알고 싶지 않을 정도로 늘어놓곤 했지.

뉴스레터에 쿠키처럼 뒤따라붙은 TMI는 사실상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야 할 것 같아. 그렇다고 뉴스레터의 허공과 인스타그램의 허공이 과연 같은 모습일까? 나는 인스타그램에 나의 사적 생활을 전시한다 하더라도 지속고어 프로젝트 1편에 썼던 이 정도의 TMI, 그러니까,

“처음에 이 프로젝트 시작한다 했을 때 조증 왔던 것 같습니다. 근데 여행 다녀오고 나서 정신 상태 너무 안 좋아져 가지고 완성하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잘했죠? 저 진짜 비평 음.. 5년? 만에 쓰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잘 읽지도 않아서 이거 하려고 비평책들 막 들춰보고 읽었습니다.

<비지터 큐> 보신 분 계세요? 원하시면 파일 보내드릴게요. 영어 자막이긴 한데 뭐… 그닥 어렵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근데 제가 이거 보고 꼴렸다고 저한테 윤리적 잣대 같은 것 들이대시면 안 돼요. 다 어떤… 시적 표현인 것 아시죠? (과연 진짜 그럴까?) 버로스 책은 그냥 재미있어요. 네이키드 런치도 어떤 매혹이 있어요. 근데 막 너무 끔찍하고 힘들어서 못 읽겠다 이런 건 없습니다. 그래서 왜 둘 다 끔찍한 데 버로스 책은 읽을 만한 걸까? 그것을 파헤쳐 보고 싶었고요.

마지막 <미세리코르디아> 이야기는 유운성 평론가가 씨네토크에서 해주었던 말입니다. 근데 제가 더 명확하게 잘 설명한 것 같아요^^~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이 강연하실 때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학살이 계속되고 있는 이런 범죄적인 상황에서도 또 다른 범죄의 영역인 영화로 도피하는 감각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는데요 (정확하지는 않음) 그 이야기의 맥락까지는 제 부족함으로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서 대충 눙쳐서 썼어요. 아시는 분은 알려주세요.

근데 제목이 좀 멋진 것 같아요. 어때요?”


이 수준으로 남발하진 않을 거란 말이지. 뉴스레터와 인스타그램 모두 허공에 대고 나의 일상과 정신 상태를 전시하는 거지만, 나는 뉴스레터에서 더욱 솔직해. 그것은 뉴스레터의 허공과 인스타그램의 허공이 생겨 먹은 형태가 조금 다르기 때문일 거야. 사실 정말 공허한 곳에서 마구 소리 지를 수 있으려면, 내가 소리를 지르는 곳이 안전한 곳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거든. 내가 소리치는 그곳이 황야처럼 보일지라도 모래도 있고, 풀도 있고, 태양도 있고… 그래야 하거든.

그 허공이 진공 상태의 ‘무’라면, 혹은 좀비 떼가 드글거리는 세계관에 놓여 있다면, 나는 감히 큰 소리를 지르지는 못할 거야. 사람은 안전한 곳에서야 비로소 위험하게 행동할 수 있지. 날 지탱할 줄이 튼튼하다는 걸 알아야 번지점프를 레저로서 즐길 수 있지. 나는 꽤 겁이 많아서 그 사실이 더욱 중요했던 것 같아. 네 첫 생각처럼, 뉴스레터는 안전제일주의자의 운동장이 맞을 거야. 하지만 동시에 안전제일주의자가 가장 위험하게 뛰어놀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르겠어.

편지를 받는 사람으로서도 메일함에 꽂히는 콘텐츠와 인스타그램에 쌓여가는 피드를 보는 마음가짐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인스타그램에는 온갖 재미있는 것들, 자기 PR로 웅성댈 것이라 짐작하고 들어가지만. 그러니까, 모든 사람에게 전달될 만한 말들, 검색되어야 좋은 이야기들, 본인의 판단에 좋은 취향들을, 유의미한 것들을, 그리고 전시할 만한 일상들이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가지만, 메일함은 그렇지 않잖아.

현대의 메일함은 그보다 쓸모없는 이야기가 쌓이는 곳이지. 한 영어 교육 스타트업의 광고 메일, 읽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구독해 둔 수많은 언론사의 소식 뉴스레터, 피치포크가 사용자 리뷰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소식, 물건 하나를 살 때 할인쿠폰을 받으려고 구독해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브랜드의 할인 소식, 나의 버려진 SNS 계정이나 잘 들어가지 않는 링크드인 계정에서 누군가가 친구 신청을 했으니 확인해 보라는, 의미 없는 말 걸기만 가득한 공간.

그런 곳에 ‘나를 위해 쓰인 무언가’가 꽂힌다는 것은 아무리 하릴없는 것이라도 선물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사실 『에브리바디 노우스』도 코헨이 그저 끄적인 것이잖아. 그걸 모았더니 생일 선물이 된 이유는… 코헨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 그의 글씨가 예쁘다는 것, 그의 외형이 멋있다는 것, 책의 디자인이 멋있다는 이유도 물론 크겠지만, 그저 누군가의 어딘가에 꽂힌다는 것만으로도 ‘선물’의 의미를 충족하게 되어서인지도 몰라. (서비스는 주는 놈 마음이니까?)

아마 사람들이 일제히 인스타그램을 변기에 넣는 날은 오지 않을 거야. 누군가는 아직 진지하게 나치를 지지하는 시대에, 그건 너무 허황된 소망이라 소망처럼 들리지도 않아. 그렇다면 최소한, 누군가가 인스타그램을 변기에 넣고서 내렸을 때, 그 사람이 느끼는 허망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건물주 뒤집어질 소리를 해보자면… 변기에 넣을 것들을 아주 많이 만드는 건 어떨까? 플랫폼에서 벌어지는 자기 PR 피드 꾸미기 자체를 온전히 막는 걸로 시작하기보다, ‘인스타그램 이외의 플랫폼’들을 아주 많이 만들어 놓는 거야. 인스타그램이 변기에 들어간 뒤에 너무 쓸쓸하지 않도록… 모두가 각자의 인사이드 조크를 나눌 곳들을 아주 많이 만들어 두도록. 인스타그램을 변기에 넣고서 내려도 변기 위에 앉아서 할 일이 있도록. 사람들은 자신의 치질을 키우고자 (비유 미안…) 비리얼이든, 셋로그든, 디스코드든, 뉴스레터든, 블로그 같은 것들을 무심결에 놓지 못하는지도 몰라.

지금 내 옆에 있는 책,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에서 벤야민은 이런 말을 해.

“문학이 중요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오직 실천과 글쓰기가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괄적 지식을 자처하는 까다로운 책보다, 공동체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더 적합한 형식들, 예컨대 전단, 팸플릿, 잡지 기사, 포스터 등과 같은 형식들이 개발되어야 한다.”

벤야민은 길거리에 늘어선 간판, 벽보, 플래카드, 광고판, 쇼윈도, 번지수 등의 이미지에서 출발해 수많은 글을 기이하게 콜라주했어. 그것들이 ‘포괄적 지식을 자처하는 까다로운 책보다 공동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더 적합한 형식’을 택했다는 이유에서. 우리도 전단, 팸플릿, 잡지 기사, 포스터 같이 다종다양한 플랫폼들을 모으고, 돌리고, 또 이리저리 돌리면서 플랫폼에서 탈출할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차지도 그러한 시도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다소 낙관적인 판단일 수 있겠지만.

물론 블로그도 이웃 공개와 서로이웃 공개, 전체 공개, 비공개 등으로 자신의 덩치를 쪼개고 있어. 뉴스레터에서도 나는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을 가장할 수밖에 없고. 셋로그에서도 매번 같은 풍경을 전시하는 게 어딘가 지루한 인간처럼 비칠 것 같다는 마음을 품곤 해. 게다가 나는 현실 세계에서도 인스타그램적으로 행동한 적이 많은 것 같아. 이젠 인스타그래머블해야 한다는 게 패시브 스킬처럼 내 몸과 뇌에 딱 달라붙은 느낌이랄까? 비겁한 다른 플랫폼들도 그 낙수효과를 노리며 입을 벌린 채 서 있고.

하지만 그렇게, 인스타그램이 아닌 인스타그램 추종자 플랫폼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뛰어놀 플랫폼을 늘리는 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사업이라는 게 그렇잖아. 잘 되려면 차별화돼야 하고, 인스타그램과 완전히 똑같으면 안 되고. 무언가 다른 기능을 넣어서, 어떻게든 다른 니즈를 겨냥해서, 사람들을 끌어모아야 하잖아. 돈의 논리, 인스타그램의 논리를 깨부수려면, 그 차별화의 논리를 조금 해킹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또 하나의 낙관적인 판단.

여기까지가 내가 생각해본 탈플랫폼의 도모 방법…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몰인스타그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야. 어떠한 플랫폼 하나에 온몸을 풍덩 담가버리지 않는 방법이지. 달걀을 여러 바구니에 담는, 투자의 전제 같은 문장! 그게 어느 정도의 효과를 낼지, 아니면 더 무시무시한 부작용을 불러올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너무 무책임한가?

Tags: 신포도 5호 탈플랫폼 교환일기


Updated 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