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차지 8호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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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프리, 힙합계의 최수종
부제: 2026년 광복절에 열린 새로운 파도 음반사 음악회에 부쳐
👤신포도
주의사항: 만일 당신이 비프리라면, 이 글은 아예 읽지 말거나 무조건 끝까지 읽으시오. 글을 다 읽기 전까지는 판단하지 말아주시오. 부탁이오.
1.
자유
비프리의 자유는 좀 자기 멋대로인 것 같다.
비프리가 말하는 자유는 본인이 일상에서, 삶에서, 특정한 상황에서 마주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을 언급하고, 비판하는 데서 출발한다. 즉 그의 자유는 자유가 아닌 것 중 일부를 포함하는 형태의 정의를 거치지 않고, 자유가 아닌 것을 즉각 제외하는 부정적 정의의 메커니즘을 거친다. 예를 들어 보자면… INDO라는 노래에서 비프리는 서울에 인도가 없어서 눈치 보며 걸어야 하는 것이 짜증 난다고 말한다.
보행권, 그것이야말로 자유
그렇다고 그가 모두가 마음 편히 이동하는 것이 자유라고 정의하는 건 아니다. 정확히 같은 앨범의 다른 트랙에서 그는 위압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시작한다. 느리게 운전해 울화통을 터지게 만드는 아줌마에게 좀 빨리 가라고 명령하고 비프리 보호 구역을 만들어 달라 징징댄다…
“차가 막히면 울화통이 터져 내 앞을 막지 말고 빨리 가줘”
이러저러한 점에서 비프리가 말하는 자유는 사실… 비프리만을 위한 자유 같다. 그가 말하는 자유는 시대나 타자를 포괄하고자 하는 의지, 혹은 타인 역시 자신과 같은 정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자유롭다. 즉 비프리는 모두의 자유를 챙겨주겠다, 혹은 챙겨줄 수 있다거나 챙겨주고 싶다고 나서지 않는다. 그는 자유를 외치는 이기적인 개인일 뿐 타인의 자유를 위해 헌신하는 열사가 아니다.
어쩔 수 없다. 비프리가 자의적 자유를 일정 부분 포기하거나 양보하는 순간 그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비프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세계나 객관이나 타인을 전제한다면, 그는 솔직한 생각, 욕망, 어쩌면 추해 보일 수 있는 본심과 본능을 검열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비프리가 정의하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가 아닌 것은 물론, 그는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는 자유를 외친다고 지적할 것이다. 하지만 비프리에게는 그저 개소리다. 알지 못하는 타인의 자유를 내가 어떻게 챙겨? 나도 자유롭지 못한데. 우리 모두 자유롭지 못한데.
근데 비프리가 정말 온전히 이기적인 자유를 외치는 게 맞을까?
이건 또 아닌 것 같다. 비프리의 말을 잘 들어보면 그의 자유는 소극적 자유, 즉 ‘나만 자유로우면 돼’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비프리는 자신만 생각하거나 자신의 자유만을 위해 음악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유로운 세상이란 어떠해야 한다느니, 그를 위해 구조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느니, 모두가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느니 등 거시 관점이나 구조에 관한 통찰을 온전히 외면하거나 못 본 체하지 않는다.
그는 코로나 때 정부와 대기업의 시스템 통제가 심해졌고, 이로 인해 반항적인 사람들이 더욱더 반항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는 본인만의 세태 통찰 결과를 내놨다. 그에 더해 군대는 대한민국 남자들을 부려 먹는 노예 제도인데, 아무도 이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 보니 세뇌당한 것 같다며 국가와 정부의 시스템을 공개 저격하기도 한다.① 특히 그는 잘못을 저질러도 감옥에 가지 않는 정치인과 기업 경영인, 개인을 도구처럼 사용하는 한국의 구조와 규율에 관해 아주 거대한 분노를 표한다.
그럼 사실 비프리는 ‘자유 최고’라고 쓰고 ‘한국 싫어’라고 읽는 건 아닐까? 그저 한국이 자유를 가로막는 주적이라 믿는 것은 아닐까?
아니… 또 아니다. 그는 사실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한다.
비프리에게 한국은 썩은 군대를 가진 국가, 정부와 대기업이 사는 곳, 인도가 없는 곳, 성과주의, 압박과 속도, 대마초를 불법으로 규정한 선비 국가, 혹은 답답하게 운전하는 아줌마가 사는 구체적인 공간이 아닌 것 같다. 대신 추상과 이상, 감정과 구체적인 사람들의 얼굴로 구성된 기묘한 집합체다. 한국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한국전쟁에서 죽을 정도로 지키고 싶었던 곳이다. 한국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동생들, 가족들이 산다. 한국의 미래 세대는 본인 같은 또라이가 아니라 비교적 정상적인 사람들이 살았으면 한다. 비프리는 한국을 지키고 싶다.
어쩌면 비프리에게 한국은 현실의 한국과 이상의 한국으로 양분돼 있을지 모른다. 그는 현실의 한국과 싸우며 이상적인 한국을 사랑한다. 물론 그때의 이상 역시 그다지 이상적이라 보이지 않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그는 한국에 유교를 퍼뜨린 최승로를 죽여버리고 싶지만 이미 유교가 정착한 한국을 사랑한다. (타임머신 패러독스 같은 거다) 그는 국가나 정부, 시스템의 존재를 용인할 뿐 아니라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를 위해 동원된 구체적 행정 절차나 명령, 도구나 타협 등에 관해서는 비판적이다. 하지만 비프리는 그것들이 싫다고 해서 자신의 자유론을 타인에게 설득하기 위한 분석이나 논리 구성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군대 반대&남북통일 지향에 관한 그의 씽크플로우를 구체화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군대에서 남자들은 잔디 깎고 장군 다니는 길을 청소한다.
2. 이건 나라를 지키는 게 아니라 남자를 부려 먹는 노예 제도다.
3. 이런 군대가 없어져야 진짜 자유가 온다.
4. 군대를 없애려면? 남북통일을 해야 한다.
반박은 어렵지 않다.
1. 비프리는 나라를 지키고 싶다. 남자도 부려 먹지 않으면 좋겠다. 그래서 통일을 외친다.
2. 하지만 나라가 있는 한 통일이 온다 하여도 군대는 필요하다.
3. 그런데 왜 나라가 아니라 군대를 없애자고 하지?
4. 아하! 비프리는 사실 나라가 아니라 원하지 않는데도 군인이 돼야 하는 것, 군인에게 잡일을 시키거나 군번을 주거나 억지로 데려가는 게 싫은가 보다.
5. 그렇다면… 비프리가 반대하는 건 사실 군대가 아니라 징병제, 그리고 군인에게 잡일을 시키는 행태인 것 같다.
그렇다면 그는 ‘군인 잡일 철폐’ 및 ‘징병제 타도’를 외쳐야 한다. 하지만 잡일을 하지 않고, 자의로 군대에 간 군인만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군번을 부여받고, 국가 시스템에 소속되는 건 매한가지다. 즉 그의 자유를 향한 이상, 나라를 지키면서 군대를 없애는 것은 비현실적일 뿐더러 비논리적이다. 물론 비프리는 자신의 말이 논리적인지 현실적인지 따위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냥 비프리에게는 그러한 모습의 자유가 신념이다. 이를 타협하거나 굽힐 생각이 없다. 그 갈팡질팡과 머뭇거림 자체가 자유를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신념을 갖거나 주장하는 데는 현실성이나 논리가 필요치 않지만, 그를 타인에게 납득시키고 현실에 이식시키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부분을 분명 포기하거나 타협해야 한다. 비프리는 거기서 영 젬병이다.
게다가 비프리는 음악으로 싸운다. 그 자체가 그의 자유 지상주의를 향한 거대한 반증 아닌가? 자유를 위해 싸우기로 결심했다면 음악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하는 게 합리적이다. 사회 운동가, 정치가 같은 것 말이지. 그도 아니라면 (검은돈이라도 모아서) 언더그라운드 자유주의자들, ‘새로운 자유’ 크루에 거액의 후원금을 보내는 다크나이트 독지가가 될 수도 있었을 거다. 검은돈을 모은다는 점에서 시스템의 속박을 벗어나고, 자유의 실현에 보다 실질적인 힘을 보탤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음악은 어떠한가? 음악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다만 너무 어렵다. 매우 느리다. 너무너무 어렵고 느려서 그 결단이 무책임해 보일 지경이다.
그럼 비프리는 사실 무책임한 걸까?
근데 또 그건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비프리는 ‘korean dream’ 과 ‘희망’을 군대 없애자는 자신을 좋아한다고 쫓아다니는 여중생들을 위해 만든 앨범이라고 밝혔다.
“‘얘들이 나 좋다는데 왜 좋지? 나는 그냥 군대 욕하고 있는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때 그 아이들을 위해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자 했다.”
그에게도 책임감이 있다. 한국을 사랑하고 나라와 미래를 지키고 싶은 이로서의 책임감… 자신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는 부채 의식… 게다가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하고 음악을 한다. 비프리는 2016년부터 운영해 온 뉴웨이브 레코즈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말밖에. 목숨을 걸고 해야 한다. 모든 것을 잃을 각오, 이혼할 각오, 집 팔 각오를 하고 뛰어들어야 한다. 그냥 다 잃어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비프리는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고 얻었던 것 모두를 잃을 각오, 즉 자유까지 빼앗길 각오를 하고서 음악을 한다. 그리고 그 음악에서 자유만 외친다. 자신이 원하는 자유로운 음악을 하기 위해 평생 막노동하면서 음악할 것이라는 학사모 정신을 보고 있자면, 과연 비프리에게 음악이라는 것이 정말 자유이긴 한 건지, 혹은 자유를 가능케하는 도구가 맞긴 한지 의심이 간다. 만약 비프리를 한 명의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사랑하는 팬이라면 자유를 싫어하지 않을까? 그를 기본적 차원의 자유, 안락함과 안정감과 편안한 삶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는데?
아니 그러면 대체 뭐냐고. 대체 비프리는 왜 자유를 외치는 걸까? 왜 음악으로 자유를 말하는 걸까? 정말 자유롭고 싶은 건 맞을까? 자유에 관해 제대로 고찰하긴 했을까? 나름대로 생각은 많이 한 것 같으면서도 그 고찰이 누군가를 설득해야 한다는 식의 목적의식, 그러니까 진짜 자유를 찾고 싶다는 현실적 목표는 없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다… 아니 그러면 대체 뭐냐고? 비프리는 왜 음악을 하는 거냐고?
라는 복잡한 질문. 2026년 8월 15일 광복절에 열린 ‘새로운 파도 음반 음악회’를 본 이후에야 내가 잘못된 전제 위에서 잘못된 질문을 던졌다는 걸 깨달았다.
2. 사랑
공연은 꼬박 3시간 30분이나 이어졌다. 비프리뿐 아니라 새로운 파도 음반사의 소속 아티스트와 비프리의 친구들이 셀 수 없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고조선에 관해 노래하는 래퍼도 있었고, 백두산 천지를 보고 싶은데 백두산에 못 가는 게 짜증 난다며 얼른 통일해야 한다고 말하는 래퍼도 있었다. 광복절이었고, 모두가 태극기를 휘둘렀고, 관객들은 붉은 악마가 된 것처럼 대한민국을 여러 번 외쳐야 했다. (신나긴 했다) 그때까지도 의심했다. 아니 대한민국 왜 이렇게 사랑하냐고. 국가주의자야? 태극기 부대야? 네가 생각하는 자유가 이런 거야? ‘너, 생각 안 하지? 썩 그렇게 자유가 좋은 것도 아니지?’
그리고 비프리가 나왔다. 태극기를 망토처럼 두른 자유주의자가…
무대에 오른 비프리는 “너네가 얼마나 나한테 힘이 되는지 알지”라는 말을 10번은 한 것 같다. 비프리는 공연을 정말 열심히 했다. 땀을 정말 많이 흘렸고, 안경은 통상적으로 안경이 위치하는 곳에서 점차 밀려났으며, 앞줄에 선 모든 이들의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며 가치 있는 피사체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입으로는 랩을 하면서 손으로는 앞줄 관객들이 든 앨범에 사인을 해주었다. (그래서 뒤에 있는 나는 사실 비프리를 잘 볼 수 없었다. 비프리는 두더지 잡기 기계 속에 사는 두더지처럼 갑자기 내려갔다 다른 위치에서 쑥 올라오곤 했다.) 공연이 끝나자 “너네 삶은 너네 거야” “절대 누구한테도 양보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가지 마!! 우리 사진 찍자!” 소리를 질렀다. 출입문으로 향하는 관객들을 보며 “아냐, 그럼 우리 나가서 찍자”라고 대안까지 제시했다.
그 모든 이야기와 땀과 안경과 두더지 잡기적 무빙을 보고 나오니까 마음이… 마음이 이상했다.
비프리는 자유롭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음악을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모든 모순과 무책임이 설명된다.
일단 비프리는 미래에 생길 사랑하는 가족에게 한강뷰 고층 아파트를 선물해 주고 싶다. 전사한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어떻게든 이 나라를 지키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고층 아파트에 들어갈 돈을 벌기 위해 구린 음악을 하고 싶지는 않다. 자신이 사랑하는 동생들을 생각하면 군대를 없애고 싶다. 질주를 방해하는 어린이 보호 구역은 마음에 안 들지만, 자신을 좋아하는 중학생들의 마음에 보답하고 싶다. 자신의 괴로움을 사랑하는 팬들이 자신처럼 괴롭지 않았으면 한다. 한국은 자유롭지 않지만 한국을 지키고 싶다. 그의 사랑이 한국 안에 있으니까.
비프리는 자유가 아니라 사랑을 위해 음악을 한다. 사랑하는 음악을 제대로 사랑하려고 음악을 한다. 그래서 갈팡질팡한다. 머뭇거린다. 자신의 생각을 철회했다가, 반성했다가, 옹호했다가 변명한다. 비프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지키고 싶어서 음악을 하지만, 음악을 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을 모두 잃겠다 각오할 수 있다. 사랑은 이 말도 안 되는 모순도 품는다. 당연하다. 논리와 경중을 따지는 건 진정한 사랑일 수 없으므로.
비프리가 사랑을 위해 산다면 음악은 그 무엇보다 힘이 센 무기다. 그에게 음악과 공연은 사랑하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접점이다. 게다가 자신의 능력으로 그들을 즐겁게 해줄 수도 있지. 공연에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동생들을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내보일 수 있다. 자신이 믿는 제멋대로 자유론을,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이 따라 부른다. 땀을 닦아도, 마음껏 욕을 지껄여도 평가받거나 의심받을 거라는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음악을 하는 매 순간 사랑을 느낀다. 그 순간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자유를 완전히 포기할 수 있다. 포기한 것에 응답받는다. 사랑하기 위한 플랫폼으로서의 음악, 그것이야말로 가장 사랑스럽지 않을까?
비프리 공연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유튜브 영상 하나가 떠오른다.
이 영상에서 비프리는 재즈 아티스트 ‘선라(Sun Ra)’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며 일종의 입덕 설명회를 펼친다. 그는 선라의 철학 중 “사실 중요한 건 방종한 자유가 아닌 엄격한 규율”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가르침을 본받아 스스로도 규칙과 규율을 세워 생활하려 노력 중이라고. 게다가 우리나라는 규칙이 많아서 참 깨끗하고 살기 좋은 것 같다고 나름의 평가도 내린다. 그리고 10분쯤 지나서였나? 바로…
“근데 우리는 규칙이 진짜!!!!!! 많아!!!!!!”
라고 소리 지르며 일어난다. 선라의 철학을 듣고 본인 역시 그를 실천하려 하지만 한국에는 방종 같은 자유가 필요하다며 말을 뒤집는다. 심지어는 선라가 (규칙 많은) 한국을 참 사랑했을 것 같다며 조롱까지 한다. 여기서 나는 배꼽 잡고 웃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뭔가? 어찌저찌해도 비프리는 선라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는 선라를 사랑하고, 선라의 음악을 사랑하고, 선라의 규칙론을 사랑하고, 선라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걸 사랑하고, 그의 사랑을 이어받아 노래를 만들고, 그 노래로 다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걸 멈출 생각이 없다. 비록 선라의 규칙론에 동의했다가, 10분 뒤에 그 동의를 철회한다 하더라도 선라를 향한 비프리의 사랑은 위협받지 않는다.
왜? 그가 목 놓아 외치듯, “자연이 답”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자연이고, 자유는 인위다. 인위에는 기준, 논리, 옳고 그름이 있지만 자연에는 없다. 그 대단한 인위도 결국 자연이 있어야 존재할 뿐이다. 사랑은 언제나 자유보다 크다. 사랑은 자유를 품는다. 자연처럼. 그래 그게 전부다.
그야말로 비프리는 자유 없인 살아도 사랑 없인 못 사는 남자, 자타공인 사랑 노래 전문가, 사랑해요 한 마디에 힘 불끈 솟는 남자,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내가 말했지, 큐피트도 손이 오글거려 화살을 쏠 수 없는 남자, 하늘에서 사랑하라고 내려보낸 남자다.
몇 달간 격무에 시달린 내게도 새로운 파도 음반사 음악회는 해방이고 자유였다. 비프리의 사랑이 내게 자유를 줬다. 그의 공연과 음악을 즐기겠다는 결심, 관객의 자격을 얻기 위한 티켓값 5만 원, 그의 음악을 광분하여 즐기는 것. 그 정도만 지불하니 비프리가 내게 사랑과 자유를 줬다. 힙합계의 최수종이 아닐 수 없다.
아니지. 최수종을 배우계의 b-free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① 비슬라 매거진 (2024.12.09) https://visla.kr/interview/282732/